보친왕과 진비“그 집? 12황자를 빼고 온 집안이 천상에 올랐지!” 태상황이 눈을 감고 말했다.황실의 참사였다고 해도 그때 태상황도 나이가 어렸고 유친왕이라는 황숙에 대해 별반 감정이 없는데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전부 아득한 옛일로 당연히 무슨 슬픔 같은 건 없었다.“그럼 그 12황자는요? 아직 안녕하신가요?” 태상황이 눈을 뜨고 원경릉을 흘겨 보며, “잘 있지!”“오, 그거 다행이네요.” 상선이 옆에서 웃으며, “태자비 마마, 그 12왕야님을 마마께서도 몇 번 보셨습니다.”원경릉이 놀라서, “제가 몇 번 뵈었다고요? 십……친왕으로 봉해지셨어요?”재산몰수와 멸문을 당한 남은 고아는 결국 친왕으로 봉해졌다. 태후가 말한 대로 정말 누명이었던 것이다.“그럼요, 바로 보친왕이십니다.” 상선이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이 상당히 의외라, “정말 그분 이세요?”보친왕, 지금 우문씨 집안의 가장 어른으로 지난번 족보를 고칠 때도 보친왕이 했으며 황실의 집례 친왕이다.원경릉은 깊이 생각했다.“뭘 생각해?” 태상황이 행동을 멈추고 원경릉을 보더니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원경릉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아뇨, 그냥 좀 의외여서, 어르신을 뵙고……” 어르신이란 호칭이 사실 그다지 맞지 않는 게 이 보친왕은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태상황보다 10살에서 8살은 적고 관리를 잘 해서인지 아바마마와 형제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활달하시고 지혜로우셔서 그렇게 큰 일을 겪으셨는지 몰랐어요.”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이 일이 있었을 때 보친왕은 강보에 쌓인 어린 애였고, 나중에 일문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졌지만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나?”“그렇네요!” 원경릉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어서방에서는 명원제가 어떻게 태후를 설득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원경릉이 용화전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데리러 갔을 때 태후는 눈물은 흘리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원경릉이 아이들이 데리고 용화전을 떠날 때 진비가 막아 섰다.진비는 줄곧 원경릉과 개인
병여도를 봤다고?진비의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에 원경릉의 마음도 영 석연치가 않았다.하지만 이 일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범인이 스스로 나타나 병여도는 자기가 훔쳐서 우문군 집에 가져다 두고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하지 않는 이상 결백을 증명하기 어려워 보인다.원경릉은 진비의 손을 빼고 애원하는 눈빛을 피해, “진비 마마, 이 일은 다섯째도 마음은 돕고 싶으나 힘이 닿지 않을까 두렵습니다.”진비가 다급히 원경릉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며, “아니야, 태자가 원하기만 하면 반드시 할 수 있어. 그 병여도는 누가 큰애를 모함하려고 한 거야. 자네가 태자에게 병여도는 누가 몰래 가져다 놓은 거라고 폐하께 말씀드리라고 해줘. 아니면…… 어쩌면 그 병여도는 가짜일 수도 있잖아. 병여도가 가짜면 이 일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니까. 태자가 이렇게 폐하께 말씀드려 주기만 하면 폐하께서는 반드시 살 길을 열어 주실 거야. 제발 부탁이네. 내가 앞으로 반드시 보답할 걸 약속하네.”“병여도의 진위를 다섯째가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해, 가능하고 말고. 병여도는 아무도 본 적이 없잖아. 보내온 뒤로 병부에서도 감히 보지 못했고, 먼저 폐하께 올려야 하니 병부에서는 본 사람이 없지. 그럼 아무도 못 본 게 아닌가.”원경릉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게 병여도는 보면 안 되는 건가? 하지만 원경릉은 당시에 봤는 걸. 병여도가 초왕부에 도달했을 때 원경릉은 이미 봤다.탕양이 그때 얼른 병여도를 병부로 보내고 눈에 띄게 정중한 태도였던 것으로 보아 아바마마께 먼저 올려드리고 비로소 볼 수 있는 것 같았다.그럼 만약 아무도 병여도를 본 적이 없다면 기왕부 밀실에서 찾아 낸 것이 진짜 병여도인지 누가 알지?우문군을 구하는데 이건 확실히 훌륭한 빠져나갈 구멍이자, 배후에 숨은 자를 끌어낼 기회기도 하다.원경릉은 여기까지 생각하고 진비가 징징거리며 애원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유모들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초왕부로 가게 하고 본인은 경
진짜 가짜다?하지만 정정대장군이 원본을 모사한 병여도 한 폭을 보낸 이상 반드시 우문호를 위해 마지막 수를 남겨두었을 것으로 진짜 주조할 때 이런 문자와 도안이 무슨 뜻인지 우문호에게 알려줄 전문 인력이 와야 한다.병기의 주조는 북당에 있어 선결 과제로 병여도에 접촉한 사람은 많을 수 있지만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건 우문호 뿐으로 우문호의 절친은 진짜 주도 면밀하게 우문호를 위해 방법을 강구함과 동시에 최적의 도난방지 장치를 장착했다. 알아 볼 수 없다는 것 만큼 확실한 도난 방지장치도 없으니까.원경릉이 갑자기 뭔가 생각해 내서, “병여도를 훔쳐간 사람도 알아 보지 못한 게 아닐까?”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병여도는 내일 내가 궁중으로 가져가서 아바마마께 드릴 거야. 혼자 한참을 봐도 어떤 부분은 알고 어떤 부분은 모르겠어.”“모르는 부분 얘기해 줄게.” 원경릉이 말했다.“넌 알아?” 우문호가 놀라서 원경릉을 쳐다봤다.원경릉이 웃으며, “그 그림 분명 문이가 만들었을 거야. 난 이해할 수 있어.”우문호가 굉장히 기뻐하며 얼른 서재로 데려가 비밀 열쇠를 열고 병여도를 꺼내 바닥에 펼쳐 두고 둘이 쭈그리고 앉아 보는데 우문호가 모르겠는 부분을 짚자 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렸다.“모르겠어?”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이 그림은 좀 문제가 있어.”우문호가 놀라서, “무슨 문제?”원경릉이 자신의 분석을 얘기하는데, “문제점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종이질 문제야. 원래 보내온 병여도는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 물이 마른 자국이 있고, 종이가 오랜 된 거였어. 그런데 이건 새것으로 물 얼룩도 없어. 게다가 원래 것보다 색이 좀 하얗고 종이질이 달라. 두번째로 이 화포 그림 위에 영문을 잘못 베꼈어. M자가 N자가 됐고, 이 부호도 그래. 더 중요한 건 화포의 제조 방식인데 순서가 잘못돼 있어. 하지만 내가 원래 봤던 거는 순서가 맞았어. 이건 누가 고의로 이렇게 한 거 같아.”우문호의
우문군을 살릴 길우문호가, “애초에 우문군의 역모죄는 병여도를 훔친 게 주요한 원인으로, 병여도는 대주에서 제공한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무기와 전차를 제조하는 내용이라 전쟁용이야. 본인이 역모의 마음이 없으면 병여도를 훔칠 필요가 없지. 당연히 병여도를 훔치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은 없었던 일이 되니까 역모죄도 성립하지 않아.”원경릉의 얼굴에 긴장이 풀려 재촉하듯, “그럼 얼른 입궁해서 아바마마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아? 비록 우문군은 동정 받을 자격이 없지만 기왕비와 두 군주를 봐서라도 우리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우문호가 쓴 웃음을 지으며, “하지만 내가 가짜라고 하면 가짜가 돼? 증거를 내 놔야 해. 아바마마께 다짜고짜 말씀드릴 수는 없어. 태자비가 가짜라고 했어요 하면 아바마마께서 그러냐 하고 믿으시겠어? 당신이 아바마마의 심중에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해도 사안이 국가의 대사이니 만큼 아바마마는 아주 신중하실 거야. 인품이나 인격으로 보증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그것도 그러네!” 원경릉이 순간 그 생각을 못하고 병여도를 본 사람이 없고 봤다고 쳐도 두 그림은 눈에 확 띄게 다른 점이 없기 때문에 알아챘을 리 없을 수도 있다.어쨌든 원경릉이 가짜라는 걸 안다고 말할 수 없으니 아바마마는 믿을 게 분명하다.우문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있다가 주재상을 찾아가서 이 일을 좀 상의해봐야 겠어. 어떻게 생각하는 지.”“재상은 믿을 수 있어?” 원경릉이 물었다. 주재상은 사람이 미심쩍은 구석이 많고 병여도가 가짜라는 사실을 믿을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못 미더워도 잠시 네 말이 맞다고 가정하고 방법을 도출해 줄 수 있지. 주재상은 아바마마의 성격을 잘 알고 아바마마와 어떻게 애기를 풀어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지 아니까.” 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침 생각 났는지, “맞다, 휘종 할아버지 때 성지를 내려 유친왕 일가의 재산을 몰수하고 멸문을 명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이거 자기도 알아?”“들어봤어.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가짜라고 믿지 않다우문호가, “그건 괜찮습니다, 어차피 말 타고 가니 힘 안 들어요. 재상은 겨우 얻은 휴가니 집에서 반나절 푹 쉬세요.”주재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럼 이렇게 하지요. 내일 제가 말을 타고 초왕부로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우문호는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야 집에 돌아온 맛이 나는데 왜 주재상은 굳이 초왕부로 오겠다는 거야?하지만 뭐 편할 대로, 누가 가든 먼 길도 아닌데.다음날 우문호는 원경릉을 데리고 병여도를 가지고 입궁했다. 원래 병여도는 더 일찍 올렸 어야 했지만 사건 증거물이라 경조부에 며칠 남겨둔 것이다.거기다 명원제가 시큰둥해 해서 재촉하지도 않았다.명원제가 병여도를 보고 그것이 가짜라는 우문호의 말에도 표정에 변화없이 고개를 들어 우문호에게, “태자비가 가짜라고 해서 너는 그냥 믿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태자비가 그렇다고 했습니다.”명원제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별 말 묻지 않고 주재상의 예상대로 곧 원경릉에게 알현하러 오라고 성지를 내렸다.원경릉은 우문호와 같이 입궁해서 우선 건곤전에 가서 황제의 전언을 기다리고 있었다.어서방으로 오자 우문호는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하고 원경릉만 단독으로 안으로 불러들여 얘기를 나눴다.원경릉은 명원제의 안색이 초췌한 것을 보고 마음 저 밑바닥이 아렸다.원경릉이 무릎을 끓고 예를 취한 뒤, 명원제는 서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병여도를 봤다고?”원경릉이 고개를 떨구고 사실대로, “예, 당시 대주에서 사신이 병여도를 가져온 뒤 저는 기밀이란 사실을 모르고 검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열어본 것으로 일부러 훔쳐보려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그럼 이것과 네가 전에 본 것이 다르다?”“며느리는 감히 제 목을 걸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짜입니다. 그중 몇 군데 작은 변동이 있어 제가 봤던 것과 다릅니다.” 원경릉이 단호하게 말했다.명원제가 병여도를 보고 표식과 서술이 복잡한데, 제 아무리 한번 봤다고 해도 종일 자세히 들여다 본 것도 아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원경릉이 순간 명원제의 의도를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건 저만 봤습니다. 다른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초왕부에 계신 대주에서 온 그 노마님도 보신 적이 없나?” 명원제의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원경릉은 무슨 마음으로 하는 말인지 짐작되지 않아 살짝 고개를 흔들고 답을 하지 않았다.“봤어? 그분도 가짜라고 했나?” 명원제는 다시 떠보듯 물어봤다.이 말을 듣고 그제서야 원경릉도 명원제의 의도를 파악했다. 명원제는 원경릉의 말을 믿은 것이 아니라 적당한 구실을 찾아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했을 뿐이다.명원제가 어두운 눈빛으로 계속, “그 노부인은 대주의 용태후 측근 분이시니 이런 병기 연구에 참여하셨겠지?”원경릉은 이 얘기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에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아들은 큰형이 죽는 걸 안타까워하는데, 아비라는 사람은 오히려 슬픔과 분노를 참는 게 먼저고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만약 우문군이 이번에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정말 나가 죽어야 한다.“그런 가 아닌가?” 명원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원경릉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예!”명원제가 원경릉에게, “울긴 왜 울어?”원경릉이 눈물을 닦으며, “입궁할 때 눈에 먼지가 들어가 서요.”명원제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손을 내젓더니 피로한 목소리로, “가봐, 짐은…… 됐어.”원경릉은 눈물이 솟구쳐올라 얼른 인사를 드리고 물러났다.밖에서 기다리던 우문호는 원경릉이 눈가가 빨개져서 나오는 걸 보고 아바마마께 책망을 들었다는 생각에, “아바마마께서 널 안 믿으신 거야?”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안 믿으셨어. 제대로 묻지 조차 않으시고, 오히려 나와 할머니가 전부 병여도가 가짜라고 했다고 만드시더라.”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원경릉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결국 사건을 다시 심리할 때 원경릉과 할머니는 모두 재판정에 나와 증언을 했는데, 기왕부에서 찾아낸 병여도는 가짜라고 했다.재
기왕과 기왕비의 마지막그래도 머리가 목 위에 붙어 있게 되었다.우문군은 자신이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아서 다시 경조부 감옥을 나갈 줄 몰랐다. 하지만 막상 감옥밖에 우문군을 맞으러 온 사람 하나 없고, 과거 죽을 각오로 충성을 맹세하던 식객과 신하들조차 코빼기 하나 뵈지 않았다.햇살이 정수리에 내리 꽂히는데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래도 역시 우문호가 사람을 보내 우문군을 일단 기왕부로 돌려보내 자신의 물건을 챙겨가게 했다. 당연히 이름 있는 비단은 안 되고 일상복만 가능했지만 말이다.기왕부에도 죄가 없음을 통지해서 하인들이 각자 갈 길을 가게 했는데, 모두 크게 안도한 것이 더이상 사신이 나타날 까봐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따라서 우문군이 돌아갔을 때 마침 하인이 기왕비와 작별하는 장면을 목도했다.무리가 꿇어 앉아 인사를 드리고 여전히 왕비 마마라고 부르는데, 기왕비가 처연하게 웃으며, “왕비 아닙니다, 다들 나를 요(瑤)부인이라고 부르세요.”요(瑤)는 기왕비 결혼 전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잊고 지낸 데다 죄인의 가족이라 친정의 성씨를 쓰고 싶지 않았다. 요 몇년간 친정을 너무 많이 연루 시키고 말았다. 불효녀다.미색 쪽에서 은자를 보내 마침 딱 하인들에게 퇴직금 명목으로 돈을 나눠주니 각자 은자를 받고 한바탕 울더니 뿔뿔이 흩어졌다.머리는 산발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자신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문 뒤에 숨어있었기 때문에 우문군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이별을 마치고 가는 사람은 당연히 전신에서 악취가 나는 이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냥 거지가 문 앞에 구걸하러 왔다고 생각했다.완전히 영락해 버린 이 사람이 과거 위풍당당하던 기왕이란 걸 누가 알 수 있을까?하인들이 모두 가길 기다렸다가 우문군이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 갔다.저택은 거의 완벽하게 비어 있는 상태로 정원에는 막 싹이 돋아 올라오는 나뭇가지까지 시들시들해 보이는 게 온통 쇄락한 흔적으로 보였다.
작별과 새로운 시작요부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이혼장을 잘 접어 마치 귀한 보석이라도 되는 듯 소매 속에 넣고 우문군에게 예를 취하며, “그동안 은혜를 입어 돌봄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렇게 헤어지면 아마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옥체 보중하세요!”요부인은 보따리를 든 채 고개를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나갔다.원경릉과 미색은 문밖에서 요부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얼른 가서 한 사람이 한쪽 팔 씩 잡고 밖으로 갔다.마차가 바로 밖에 대기하고 있어 미색이 요부인을 부축해 태우고 가리개를 내리기 전, 원경릉은 요부인이 밖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내다볼 줄 알았는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감아버렸다.원경릉이 마부에게, “가자!”가리개를 내리고 말발굽소리가 ‘따가 닥’ 거리로 퍼져 나가고, 뒤쪽엔 요부인이 보낸 10여년의 청춘이 속절없이 지나가버렸다.“이혼하길 잘했어요!” 요부인이 괴로워할 까봐 미색이 서툰 위로로, “나중에 좋은 남자 몇 명 소개 시켜 드릴 게요. 남편 걱정은 마세요.”요부인은 고개를 들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됐어요, 이렇게 편한 적 없었으니까.” 미색이, “다시 남편감을 찾는 것도 좋아요. 시집 못 가는 고통이 얼마나 외로운지 제가 깊이 체험해 봤잖아요.”원경릉과 요부인은 웃음이 터졌다. 그렇다. 하마터면 잊을 뻔 했다. 미색은 시집가길 얼마나 애절하게 기다렸던가.요부인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작은 소리로, “걱정 하지마요, 난 좋으니까. 가장 좋은 결말이 지금인 걸요.”원경릉은 요부인의 손등을 살포시 두드리며, “그럼 됐어요.”미색이 약간 이해가 안되는지, “지금 그 사람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혼을 했을까요? 형님께 묻어가면 적어도 처가에서 나오는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을 텐데.”요부인은 우문군을 알겠다며, “우문군은 오만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라 제가 그 사람을 배반했는데 어떻게 절 용납할 수가 있겠어요? 평생 절 뼈 속까지 증오할 거예요.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자신이 마침내 태자가 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