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군을 살릴 길우문호가, “애초에 우문군의 역모죄는 병여도를 훔친 게 주요한 원인으로, 병여도는 대주에서 제공한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무기와 전차를 제조하는 내용이라 전쟁용이야. 본인이 역모의 마음이 없으면 병여도를 훔칠 필요가 없지. 당연히 병여도를 훔치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은 없었던 일이 되니까 역모죄도 성립하지 않아.”원경릉의 얼굴에 긴장이 풀려 재촉하듯, “그럼 얼른 입궁해서 아바마마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아? 비록 우문군은 동정 받을 자격이 없지만 기왕비와 두 군주를 봐서라도 우리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우문호가 쓴 웃음을 지으며, “하지만 내가 가짜라고 하면 가짜가 돼? 증거를 내 놔야 해. 아바마마께 다짜고짜 말씀드릴 수는 없어. 태자비가 가짜라고 했어요 하면 아바마마께서 그러냐 하고 믿으시겠어? 당신이 아바마마의 심중에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해도 사안이 국가의 대사이니 만큼 아바마마는 아주 신중하실 거야. 인품이나 인격으로 보증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그것도 그러네!” 원경릉이 순간 그 생각을 못하고 병여도를 본 사람이 없고 봤다고 쳐도 두 그림은 눈에 확 띄게 다른 점이 없기 때문에 알아챘을 리 없을 수도 있다.어쨌든 원경릉이 가짜라는 걸 안다고 말할 수 없으니 아바마마는 믿을 게 분명하다.우문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있다가 주재상을 찾아가서 이 일을 좀 상의해봐야 겠어. 어떻게 생각하는 지.”“재상은 믿을 수 있어?” 원경릉이 물었다. 주재상은 사람이 미심쩍은 구석이 많고 병여도가 가짜라는 사실을 믿을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못 미더워도 잠시 네 말이 맞다고 가정하고 방법을 도출해 줄 수 있지. 주재상은 아바마마의 성격을 잘 알고 아바마마와 어떻게 애기를 풀어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지 아니까.” 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침 생각 났는지, “맞다, 휘종 할아버지 때 성지를 내려 유친왕 일가의 재산을 몰수하고 멸문을 명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이거 자기도 알아?”“들어봤어.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가짜라고 믿지 않다우문호가, “그건 괜찮습니다, 어차피 말 타고 가니 힘 안 들어요. 재상은 겨우 얻은 휴가니 집에서 반나절 푹 쉬세요.”주재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럼 이렇게 하지요. 내일 제가 말을 타고 초왕부로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우문호는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야 집에 돌아온 맛이 나는데 왜 주재상은 굳이 초왕부로 오겠다는 거야?하지만 뭐 편할 대로, 누가 가든 먼 길도 아닌데.다음날 우문호는 원경릉을 데리고 병여도를 가지고 입궁했다. 원래 병여도는 더 일찍 올렸 어야 했지만 사건 증거물이라 경조부에 며칠 남겨둔 것이다.거기다 명원제가 시큰둥해 해서 재촉하지도 않았다.명원제가 병여도를 보고 그것이 가짜라는 우문호의 말에도 표정에 변화없이 고개를 들어 우문호에게, “태자비가 가짜라고 해서 너는 그냥 믿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태자비가 그렇다고 했습니다.”명원제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별 말 묻지 않고 주재상의 예상대로 곧 원경릉에게 알현하러 오라고 성지를 내렸다.원경릉은 우문호와 같이 입궁해서 우선 건곤전에 가서 황제의 전언을 기다리고 있었다.어서방으로 오자 우문호는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하고 원경릉만 단독으로 안으로 불러들여 얘기를 나눴다.원경릉은 명원제의 안색이 초췌한 것을 보고 마음 저 밑바닥이 아렸다.원경릉이 무릎을 끓고 예를 취한 뒤, 명원제는 서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병여도를 봤다고?”원경릉이 고개를 떨구고 사실대로, “예, 당시 대주에서 사신이 병여도를 가져온 뒤 저는 기밀이란 사실을 모르고 검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열어본 것으로 일부러 훔쳐보려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그럼 이것과 네가 전에 본 것이 다르다?”“며느리는 감히 제 목을 걸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짜입니다. 그중 몇 군데 작은 변동이 있어 제가 봤던 것과 다릅니다.” 원경릉이 단호하게 말했다.명원제가 병여도를 보고 표식과 서술이 복잡한데, 제 아무리 한번 봤다고 해도 종일 자세히 들여다 본 것도 아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원경릉이 순간 명원제의 의도를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건 저만 봤습니다. 다른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초왕부에 계신 대주에서 온 그 노마님도 보신 적이 없나?” 명원제의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원경릉은 무슨 마음으로 하는 말인지 짐작되지 않아 살짝 고개를 흔들고 답을 하지 않았다.“봤어? 그분도 가짜라고 했나?” 명원제는 다시 떠보듯 물어봤다.이 말을 듣고 그제서야 원경릉도 명원제의 의도를 파악했다. 명원제는 원경릉의 말을 믿은 것이 아니라 적당한 구실을 찾아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했을 뿐이다.명원제가 어두운 눈빛으로 계속, “그 노부인은 대주의 용태후 측근 분이시니 이런 병기 연구에 참여하셨겠지?”원경릉은 이 얘기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에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아들은 큰형이 죽는 걸 안타까워하는데, 아비라는 사람은 오히려 슬픔과 분노를 참는 게 먼저고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만약 우문군이 이번에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정말 나가 죽어야 한다.“그런 가 아닌가?” 명원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원경릉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예!”명원제가 원경릉에게, “울긴 왜 울어?”원경릉이 눈물을 닦으며, “입궁할 때 눈에 먼지가 들어가 서요.”명원제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손을 내젓더니 피로한 목소리로, “가봐, 짐은…… 됐어.”원경릉은 눈물이 솟구쳐올라 얼른 인사를 드리고 물러났다.밖에서 기다리던 우문호는 원경릉이 눈가가 빨개져서 나오는 걸 보고 아바마마께 책망을 들었다는 생각에, “아바마마께서 널 안 믿으신 거야?”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안 믿으셨어. 제대로 묻지 조차 않으시고, 오히려 나와 할머니가 전부 병여도가 가짜라고 했다고 만드시더라.”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원경릉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결국 사건을 다시 심리할 때 원경릉과 할머니는 모두 재판정에 나와 증언을 했는데, 기왕부에서 찾아낸 병여도는 가짜라고 했다.재
기왕과 기왕비의 마지막그래도 머리가 목 위에 붙어 있게 되었다.우문군은 자신이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아서 다시 경조부 감옥을 나갈 줄 몰랐다. 하지만 막상 감옥밖에 우문군을 맞으러 온 사람 하나 없고, 과거 죽을 각오로 충성을 맹세하던 식객과 신하들조차 코빼기 하나 뵈지 않았다.햇살이 정수리에 내리 꽂히는데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래도 역시 우문호가 사람을 보내 우문군을 일단 기왕부로 돌려보내 자신의 물건을 챙겨가게 했다. 당연히 이름 있는 비단은 안 되고 일상복만 가능했지만 말이다.기왕부에도 죄가 없음을 통지해서 하인들이 각자 갈 길을 가게 했는데, 모두 크게 안도한 것이 더이상 사신이 나타날 까봐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따라서 우문군이 돌아갔을 때 마침 하인이 기왕비와 작별하는 장면을 목도했다.무리가 꿇어 앉아 인사를 드리고 여전히 왕비 마마라고 부르는데, 기왕비가 처연하게 웃으며, “왕비 아닙니다, 다들 나를 요(瑤)부인이라고 부르세요.”요(瑤)는 기왕비 결혼 전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잊고 지낸 데다 죄인의 가족이라 친정의 성씨를 쓰고 싶지 않았다. 요 몇년간 친정을 너무 많이 연루 시키고 말았다. 불효녀다.미색 쪽에서 은자를 보내 마침 딱 하인들에게 퇴직금 명목으로 돈을 나눠주니 각자 은자를 받고 한바탕 울더니 뿔뿔이 흩어졌다.머리는 산발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자신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문 뒤에 숨어있었기 때문에 우문군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이별을 마치고 가는 사람은 당연히 전신에서 악취가 나는 이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냥 거지가 문 앞에 구걸하러 왔다고 생각했다.완전히 영락해 버린 이 사람이 과거 위풍당당하던 기왕이란 걸 누가 알 수 있을까?하인들이 모두 가길 기다렸다가 우문군이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 갔다.저택은 거의 완벽하게 비어 있는 상태로 정원에는 막 싹이 돋아 올라오는 나뭇가지까지 시들시들해 보이는 게 온통 쇄락한 흔적으로 보였다.
작별과 새로운 시작요부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이혼장을 잘 접어 마치 귀한 보석이라도 되는 듯 소매 속에 넣고 우문군에게 예를 취하며, “그동안 은혜를 입어 돌봄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렇게 헤어지면 아마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옥체 보중하세요!”요부인은 보따리를 든 채 고개를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나갔다.원경릉과 미색은 문밖에서 요부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얼른 가서 한 사람이 한쪽 팔 씩 잡고 밖으로 갔다.마차가 바로 밖에 대기하고 있어 미색이 요부인을 부축해 태우고 가리개를 내리기 전, 원경릉은 요부인이 밖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내다볼 줄 알았는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감아버렸다.원경릉이 마부에게, “가자!”가리개를 내리고 말발굽소리가 ‘따가 닥’ 거리로 퍼져 나가고, 뒤쪽엔 요부인이 보낸 10여년의 청춘이 속절없이 지나가버렸다.“이혼하길 잘했어요!” 요부인이 괴로워할 까봐 미색이 서툰 위로로, “나중에 좋은 남자 몇 명 소개 시켜 드릴 게요. 남편 걱정은 마세요.”요부인은 고개를 들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됐어요, 이렇게 편한 적 없었으니까.” 미색이, “다시 남편감을 찾는 것도 좋아요. 시집 못 가는 고통이 얼마나 외로운지 제가 깊이 체험해 봤잖아요.”원경릉과 요부인은 웃음이 터졌다. 그렇다. 하마터면 잊을 뻔 했다. 미색은 시집가길 얼마나 애절하게 기다렸던가.요부인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작은 소리로, “걱정 하지마요, 난 좋으니까. 가장 좋은 결말이 지금인 걸요.”원경릉은 요부인의 손등을 살포시 두드리며, “그럼 됐어요.”미색이 약간 이해가 안되는지, “지금 그 사람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혼을 했을까요? 형님께 묻어가면 적어도 처가에서 나오는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을 텐데.”요부인은 우문군을 알겠다며, “우문군은 오만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라 제가 그 사람을 배반했는데 어떻게 절 용납할 수가 있겠어요? 평생 절 뼈 속까지 증오할 거예요.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자신이 마침내 태자가 될
병여도 사건 이후말을 마치고 요부인을 밀어냈다.요부인은 꾸역꾸역 원경릉에게 들러붙으며, “붙어 있을 거예요, 두 사람한테 안 붙어있으면 앞으로 난 먹고 살 것도 없는데 머리에서 쉰 내 좀 나는 게 대수예요? 머리가 목 위에 붙어 있는 게 중하지.”말하며 자기 머리를 원경릉의 머리에 들이대자 원경릉은 하하 웃음이 터졌고, 요부인의 머리를 미색에게 밀자 미색이 칠색팔색 구석으로 숨으며 외치는데, “이거 새 옷이예요, 머리장식도 새 거고, 얼굴에 화장한 분도 새 거란 말이예요……”마차 안은 웃음소리가 가득가득!2월에 벌어진 변고는 3월 초에 결론이 나며 막을 내렸다.박원은 박씨 집으로 돌아갔고 가끔 눈을 뜨지만 이 세상과는 단절되어 있다.박씨 집안에서는 원용의와의 혼인을 취소하겠다고 했는데 원용의가 따르지 않고 박원이 일어나길 기다리겠다고 했으나 박씨 집안이 강경하게 나가며, 입장을 바꿔 생각해 양가집 규수의 인생을 그르칠 수 없었다. 그래서 박씨 집안에서는 원용의가 그간 박원에게 한 모든 일에 감사하는 뜻으로 원용의를 수양딸로 삼고 싶다고 제안했다.원씨 집안에서 동의해서 특별히 성대한 연회를 열어 대대적으로 알렸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누구인지 박원에게 달려 있으므로 다들 그가 깨어나길 간절히 바랬다.주재상은 사람을 시켜 엄밀하게 주명양을 감시하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이토록 치밀하니 괜히 경솔하게 주명양에게 물어봤다가 경계심을 가지게 할 수 있고, 분명 아무것도 나올 게 없으므로 여기서 실마리를 끊어버릴 필요가 뭐가 있겠냐 판단했다. 주명양은 상대방에게 순순히 이용당할 사람이 아니므로 분명 의도하는 게 있을 것이고, 이 일이 잠잠해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주명양은 분명 그 사람과 연락을 취해 이득을 요구할 것이다.그리고 우문호도 생각이 있었다.병여도를 훔친 사람은 자기가 병기를 제작하고자 하던지, 아니면 적과 내통하려는 자다.병기를 제조하려면 병력이 있어야만 하는데 지금 병권은 집중되어 있어 지방 병력도 위협이 되지 않으므로
입궁하고 싶은 우문군우문군은 기왕부를 떠나자 태비가 친정 사람을 보내 작은 집을 사주고 노비 둘을 붙여 시중을 들게 했다.우문군은 주씨 집으로 주명양을 찾아갔지만 주명양은 피하고 만나주지도 않았으며 숙모를 내보내 이혼장을 써 달라고 했는데, 우문군은 써주지 않않지만, 주씨 집에서 소란을 피울 엄두도 나지 않아 차갑게 홍색 대문을 한동안 보더니 고작 한마디 한다는 게, “이혼장은 주지 않을 것이다. 일생을 허비해 보라고, 누가 괴로운지 두고 보지.”우무군이 이런 처지에 놓이다 보니 당연히 사람들은 그에게 눈을 흘기고 전에 그렇게 친하던 식객과 친구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우문군은 주씨 집에서 그렇게 푸대접을 받고도 주명양은 매정하지 않을 거라며 주명양이 자신을 그대로 둘 리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주명양은 매정하고 싸늘한 사람이다.우문군은 입궁하고 싶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일개 평민은 궁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회왕부를 찾아갔다.친왕을 하나씩 따져봤는데, 우문호에게는 절대 사정하지 않을 것이고, 안왕은 집에 박혀서 미소만 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며, 둘째 쪽은 더 가기 싫은 게 전에 둘째를 괴롭힌 적이 적지 않아 차마 갈 수 없고, 일곱째는 지금 경조부에 파견되어 우문호와 같이 밤이슬을 맞고 다닌 다니 분명 자신을 도와줄 리 없다.이리 저리 생각한 끝에 역시 시간을 만들어 줄 사람은 여섯째밖에 없다.회왕은 인간성이 관대하고 후덕해서 형제 간의 우애를 생각해 우문군의 지금 처지에 상당히 가슴 아파했다.그래서 우문군이 찾아 왔을 때 예를 다해 접대했다.하지만 우문군이 자신을 데리고 궁으로 들어가 달라고 하자 회왕이 손을 내젓고, “안돼요, 아바마마께서 어명을 내리셔서 큰형은 입궁하실 수 없습니다. 저는 못해요.”우문군이 애원하며, “아바마마께 용서를 구하려는 게 아냐. 그저 어마마마를 한번만 뵙고 싶어서 그래. 나때문에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셨을 거야. 아들인 내 실패로 어마마마를 연루 시켰으니 부끄럽기가 그지 없네, 형을 좀 도와서
우리 떡들 생일그래서 명원제는 세 꼬맹이의 생일 연회를 성대하게 열기로 했다.만두는 이미 황태손으로 봉해졌기 때문에 생일은 단순히 초왕부의 경사일 뿐 아니라 궁에도 큰 일이다.태자가 동궁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일 연회는 황실의 별장에서 거행했다.희상궁이 일찌감치 가서 내무부 사람과 같이 이 일을 처리하는데 잔치에 여러 귀빈 뿐 아니라 각 궁의 마마님들도 오실 거라 조금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됐다.황귀비도 직접 선물을 들고 왔는데, 다섯째와 우문령이 자기 슬하에 있게 된 만큼 우리 떡들은 명실상부한 그녀의 친손자들로 잘 보여야 했다.경사가 시작되자 그간의 처량함을 상쇄할 수 있었다.초왕부 안은 시끌벅적해 졌다. 형제들, 동서들 간에 왔다 갔다 하며 요 보름간 안왕비와 손왕비는 시간을 내서 초왕부에 들르곤 한 것이 한사코 요부인을 데리고 와서 서로 아주 잘 지냈다.그리고 4월 16일에 멀리서 온 선물을 받았다.3개의 황금 열쇠로 위에 만수무강이라고 새겨져 있다.우리 떡들의 셋째 큰아버지 위왕이 보내온 것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하게 축복한 것이다.우문호가 받은 후 희상궁에게 주며 생일 당일날 우리 떡들에게 황금 열쇠를 걸어주라고 했다.동서들은 자연스럽게 정화군주 얘기로 흘러갔다.정화군주가 경성을 떠난 지 몇 개월이 되었고 어디로 갔는지 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정화군주와 손왕비가 가장 친해서 정화군주 얘기를 꺼내자 손왕비가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다들 위로하는데 경사스러운 날 역시 위왕 부부때문에 슬픔이 살짝 덧입혀 지고 말았다.원경릉이 마지막에, “슬퍼할 거 없어요, 인연이 있으면 결국은 다시 만날 테니까.”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날을 고대했다.원용의는 최근 초왕부에 자주 오는데 대부분은 박씨 집에서 박원 곁에 있다.박원은 여전히 깨어날 기색이 없지만 박씨 집안은 희망을 다시 품고 언젠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생일 당일은 상당히 성대하고 떠들썩했으며 폭죽까지 터트렸다.우리 떡들은 새 옷을 입고 또랑또랑한 모습으로 목에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