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는 원경릉의 전화기를 받아 들며, 돌아가 다시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 어머니께서 동의하면 전화로 연락을 주겠다고 답했다.원경릉은 번호를 남기고, 잠깐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제야 그녀는 그동안 진이 어머니가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진이가 병에 걸린 뒤, 그들은 빌릴 수 있는 사람에게 모두 돈을 빌렸다. 수술 후, 아이가 회복할 거라 생각해 빚을 갚기 시작했고 허리끈을 졸라맸다고 했다. 게다가 약값을 아끼기 위해 약을 종종 거르기까지 했다. 수술 후 약은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되는데, 결국 그 탓에 재발하고 만 것이었다ㅏ.“그녀는 늘 죄책감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혼자 두 군데 일을 병행하며 너무 힘들게 고생하다 보니, 진이가 약을 거른 것도 몰랐죠. 그녀를 원망하지 마세요... 진이 어머니는 정말 더는 버틸 힘이 없어요. 포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제 지탱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은 겁니다.”원경릉이 어찌 그녀 눈 속에 깃든 절망을 못 봤겠는가? 사실 그녀도 절망 뒤에 희망조차 감히 품지 못하고, 마음이 나약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 한 줄기 희망을 붙잡는 것도, 그만큼 더 큰 고통을 치러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오히려 끈을 놓아버리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그녀는 이미 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탓할 수 없다. 그녀가 겪은 고난은, 다른 이가 아무리 안다고 해도 결코 똑같이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병원으로 가서 의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진이네가 예전에 실험군 참여를 신청했었고, 첫 번째 평가도 통과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실험에 들어가기 전, 문제가 생겨 버리고 말았다. 두개 내압이 너무 높아졌고, 종양의 확산 속도도 예상보다 빨라, 결국 실험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그날 실험군에 못 들어간다는 통보를 받자, 진이 어머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침대 곁에 앉아, 진이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진이는 그때,
원경릉은 자료를 다 본 뒤, 오라버니와 함께 병원으로 가서 아이의 주치의를 만났다.주치의인 이 선생님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사실 아이 집안에서는 오래전부터 치료비를 체납했고, 이미 치료도 포기한 상태입니다. 지금 병원에 남아 있는 것도 그냥 버티는 거죠. 지금 병원에 대기하는 환자도 많은데... 가족도 어렵고, 병원도 어렵습니다.”“아이 엄마는 안 왔나요?”원경릉이 물었다.“자살을 시도한 뒤로 계속 정서가 불안정해서, 심리 전문가가 상담을 맡고 있어요. 간호사에게 아들이 죽는다면, 차라리 먼저 죽어서 밑에서 아들을 기다리겠다고 했었는데... 간호사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나 보네요. 정말 그렇게 할 줄은 몰랐겠죠.”“아이의 아빠는 요?”이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진이 아버지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참 안됐죠... 결혼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을 때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고, 그때 겨우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집안에서는 낙태를 권했지만 진이 어머니는 끝까지 반대했고, 그렇게 혼자서 아이를 키웠어요. 아이가 그녀의 전부죠.”“핸드폰 수리 때문에 뛰어내리려고 했다는데, 핸드폰엔 대체 뭐가 있었던 거죠?”“핸드폰에 남편과 함께 찍은 영상이 있다네요. 다른 데 저장하지 않아서, 초기화하면 아예 없어져서 그랬나 봐요.”원경릉이 말했다.“그렇게 중요한 영상을 왜 다른 곳에 저장해두지 않았을까요… 일단, 아이가 표적치료제에 대한 유전자 민감도 검사를 해본 적 있나요? 이매티닙 같은 약을 사용한 적도 있었는지요?”“이미 지갑을 탈탈 턴 상황이라, 약값까지 감당 못 했어요. 게다가 검사 결과도 좋지 않았습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지금 상황에서는 두개 내압을 낮추지 않으면 언제든 생명이 위험합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아이어머니를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저희가 진행 중인 임상 실험이 있는데, 재발과 불응성 뇌종양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 방법입니다. 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찔한 장면이었지만, 사실 우문호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무조건 그녀를 구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무공이 드러나지 않으면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곧이어 우문호를 향해 수많은 핸드폰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기에, 그는 여인을 홀로 두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런데 여자가 갑자기 울부짖으며 소리쳤다.“날 왜 구했어? 살아서 뭐 하라고? 누가 살려 달랬어?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그녀는 우문호에게 다가와 마구 욕을 퍼부었다.“당신이 뭘 안다고 날 구해? 구해달래? 그렇게 대단하면 내 아들도 살려봐. 정말 능력이 있으면 내 아들도 살려보라고. 왜 이렇게 참견이야?”우문호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모두가 보고 있는 곳에서 죽으려 해놓고, 어찌 남 탓을 하는 것입니까? 차라리 인적 없는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그랬어요? 그리고 아들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주위 사람들은 여자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자살을 시도한 사람 앞이라 감히 뭐라 하지도 못했다. 그저 다들 우문호에게 옳은 일을 했고, 의로운 행동을 했다며 칭찬할 뿐이었다.우문호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마침 도착한 소방관들을 보자마자, 황급히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왔다.밖으로 나오자, 또 여자가 울부짖으며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아들이 지금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어요. 먼저 가서 아들 기다려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 애가 무서워할 거예요.”그 말을 듣고, 우문호는 못내 마음이 아파왔다. 자신도 역시 아이가 있지 않은가? 만약 택란이가… 아니야, 퉤, 퉤, 퉤…그는 체면도 잊고 몇 번이나 침을 뱉으며 불길한 상상을 쫓아내고는, 마트로 향했다. 의술을 모르는 그가 도울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우문호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원경릉에게 이 일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연구소에서 돌아왔으니, 괜히 기분 나쁜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원경릉은 인터넷에서 우문호가 사람을 구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우문호는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가족회의 끝에 먼저 자동차 면허를 따고, 그 다음에 오토바이 면허를 따기로 결정되었지만, 이는 그의 뜻에 어긋났다. 그는 오토바이 면허부터 따고 싶어 했다. 예전부터 눈여겨본 ‘야마하’ 오토바이가 이미 있을 만큼, 그는 이미 부르릉거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넋을 잃을 만큼 빠져있었다.그는 당장이라도 오토바이에 원 선생을 태우고 온 시내를 달리고 싶었다. 얼마나 멋질까?무엇보다도 그는 오토바이를 탈 때, 말을 타는 듯한 익숙한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하지만 그는 오토바이를 제대로 타본 적은 없었다. 단지 판매원이 태워 준 한 바퀴가 전부였다. 말을 탈 때도 다른 사람의 뒤에서 탄 적 없었는데, 판매원에게 의지해야 했다는 사실은 황제였던 그에게 큰 굴욕으로 다가왔다.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오토바이 면허부터 따겠다고 제안했지만, 다른 면허를 따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했기에 현실적으로 자동차 면허부터 따는 게 맞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목여를 직장까지 데려다 줄 일도 있을 텐데, 목여가 오토바이를 무서워하기도 하니 말이다. 운전면허는 우문호게 크나큰 도전이었다. 그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교통에 관한 규정들이 그의 머리를 쉽게 어지럽혔기 때문이다.교통 지식이 전무했으니, 모든 걸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다행히 우문호는 황제의 자리에 오래 있으면서, 지혜가 부족하면 근면으로 메운다는 것을 익혔다. 그래서 밤낮없이 문제를 풀며 머리에 쥐가 날 지경으로 공부했다.장인어른도 그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이 정도로 공부에 빠져있으면, 대학원 학위쯤은 문제없겠어.”하지만 장인의 말 속에 섞여 있는 비웃음을 단번에 알아챈 장모가 화를 내며 그를 흘겨보았다. 그리고 말조심하라는 눈빛도 보냈다. 지금 장모의 마음속엔 오로지 사위 뿐이었기에, 그가 무엇을 버리고 이곳에 왔는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누가 그렇게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무뚝뚝한 딸을 위해서 이렇게 큰 희생을 한다니, 그녀는 우문호의 마
택란은 일주일 머물다가 돌아갔다. 여전히 목여 태감이 걱정되긴 했지만, 오라버니들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 어르신을 데리고 자주 나들이하라고 부탁했다.게다가 집에 어르신이 두 분 더 계셔서 다행이었다. 원 교수는 목여 태감을 데리고 산책도 하고 태극권도 즐겨 했다.목여 태감은 다른 건 몰라도 태극권이나 검술에는 자신 있었다.아마도 다섯째조차 잊고 있었을 것이다. 이 노인의 무공이 얼마나 높은지를.그날 공원에서 검을 휘두르며 시범을 보였더니, 할머니들이 손이 퉁퉁 부을 정도로 박수를 금치 못했다. 목여 태감은 다들 깜짝 놀라서 감탄을 보내는 모습에, 자신이 오히려 더 놀라고 말았다. 단순한 검법에도 이렇게까지 감탄을 하다니? 공주는 이곳에서 경공이나 다른 무공은 쓸 수 없고, 단순한 권법이나 검무 정도는 괜찮다고 했었다.태감은 속으로 의아했다.‘설마 이곳 사람들은 무술을 전혀 익히지 않나?’공원에는 스트리트 댄스를 추는 젊은이들도 있었는데, 무협 세계에 대한 동경이 가득한 나이대였다. 그들은 목여 태감이 검을 휘두르는 걸 본 후, 우르르 몰려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하지만 제자를 받는 문제이니, 그는 더욱 신중히 생각하고 싶었다. 그는 바로 답하지 않고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는 찬성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며 사소한 것에 트집을 잡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평소라면 매일 집에서 투덜거렸을 것이다.우문호는 주진에게 무술 훈련장을 열 수 있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목여 태감에게 사범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다섯째는 요즘 현대의 글을 배우고 있었다. 최강 두뇌의 부군이자, 잠시 약물의 도움까지 받아서인지, 똑똑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유치원 과정을 건너뛰고 곧장 초등학교 수업도 받을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원경릉은 그를 위해 가정교사를 구했다. 성은 범으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을 몇 년간 맡아왔던
별장 상황이 안정되자, 원경릉은 부모님을 모셔 와 함께 지냈다. 그리고 오라버니는 홀로 아파트에서 지내도록 했다. 그도 이제 나이도 있는데 어서 독립해야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부모님께 빨래와 집안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주진과의 동거를 슬슬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하지만 원경릉의 오라버니는 특이했다. 부모님과 함께 지낼 때도 행복했고, 지금 혼자 지내는 것도 행복하니, 굳이 동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한가할 때만 만나도 된다고 답했다.그리고 주진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둘 다 개인 공간을 중요시했고, 따로 살면서 만나는 것이 서로의 좋은 모습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함께 살다 보면 상대방이 방귀를 뀌거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모습까지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럼, 그간의 아름다운 환상이 깨져버릴 수도 있었다. 원 교수 부부는 딸과 함께 사는 걸 바라고 있었다. 예전에는 딸과 사위가 오더라도 금방 또 다른 일을 하러 나가곤 했는데, 지금은 정말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그동안 얼마나 바라고 기다려온 순간인가?이사가 마무리되고, 원경릉은 일단 목여 태감을 데리고 치과로 향했다. 그에게 틀니를 하나 해드리고 싶었다. 목여 태감은 처음엔 몹시 거부감을 가졌다. 이가 없어도 그저 만만한 음식을 먹으면 그만인데, 어찌 가짜 이를 준비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남의 이빨일 수도 있지 않은가? 목여 태감은 못내 틀니가 더럽다고 생각했다.그래서 태감은 절대 안 하겠다고 버텼고, 결국 택란이 나서서 그를 설득했다. 그녀는 틀니가 남의 이가 아니라 특별한 재료로 만든 것이고, 끼면 고기도 먹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서일 아저씨도 두 개는 틀니인데, 입안에서 제일 반짝이고 예쁜 게 그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태감은 공주의 말이라면 곧잘 듣는 편이었다. 그는 직접 서 대인의 입까지 벌려 확인 했고, 공주의 말대로 그 두 개의 이가 유난히 반짝이고 보기 좋은 것을 보았다.우문호는 치과에 가지 않고 집에 남아 남극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