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위왕이그리고 이제 곧 해가 떨어지려고 한다.두 명의 무당 노인이 나무 아래 서서 전세를 지켜보다가 여차하면 바로 시작하려 했다.엎치락뒤치락 하며 앞으로 밀어붙였다. 북당 대군이 비록 지치고 힘을 다했지만 그동안 칼을 갈았기에 지금 적과 진정으로 싸우게 되자 끝장을 볼 태세로 죽여 나갔다.하지만 남강 북쪽 사람들도 소질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산세에서 싸우는 걸 훈련 받아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렸다. 순식간에 양쪽 군대가 격전을 벌여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위왕과 안왕은 몸을 빼내 검에 의지해 바로 정화에게 날아올랐다. 날이 아직 완전히 저물지 않아 무당이 밧줄을 끊지 않고 두 사람과 싸우기 시작했다.무당이 비록 나이가 지긋해도 무공이 상당히 높아서 시작하자마자 두 사람을 몇 걸음 물러서게 하더니 위왕이 바로 날아올라 둘을 정화군주에게서 떼어놓으려 했으나 무당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바람을 일으키며 얼른 막은 뒤 장력을 쏘자 위왕은 어렵사리 겨우 피했으나 한 걸음도 파고들어가지 못했다.정화군주는 위왕에게 위기가 연달아 닥치는 것을 보고 소리치길, “날 구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요.”위왕이 검을 휘둘러 무당을 막아내며 이 말을 듣고 황급히 정화를 돌아봤다. 무당이 공격해 들어오자 위왕이 검을 휘둘려 물리치며 낮은 목소리로, “난 절대로 널 여기에 버려 두지 않아.”그가 이 말을 하느라 하마터면 밀릴 뻔 해서 정화는 감히 더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가슴을 졸이며 전투를 지켜봤다.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마지막 한줄기 석양이 어둠에 먹히고 말았다.만아가 아래서 크게 소리치며, “왕야, 시간이 됐습니다!”위왕이 마침 무당과 접전을 벌이는 중으로 혼란한 가운데 만아의 외침소리를 듣더니 다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누군가 날아올라 정화를 묶고 있던 밧줄을 끊자 정화는 수직으로 아래로 떨어졌다. 위왕이 이 모습에 가슴이 찢어져 날아올라 막 정화의 옷자락을 잡으려 했다. 그 때 무당이 뒤에서 위왕의 팔을 칼로 베어 팔이 날아가고 선혈이
팔이 잘린 위왕원경릉과 진근영, 사식이 등은 눈 늑대를 데리고 골짜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싸우는 소리가 온 무당 지대에 울려 퍼지자 그 속에 직접 뛰어들지 못했으나 전황이 얼마나 격렬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원경릉은 전장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진근영 등에 비해 당황했다. 북당에서 보낸 시간 동안 철저하게 자신의 단점을 깨닫았는데, 돌아간 뒤에 반드시 이리 나리에게 무공을 열심히 배워야지.적어도 중요한 상황에 짐이 되고 싶지 않다.“태자전하께서 오셨어요!” 원경릉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진근영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우문호가 등에 사람을 업고 달려오는데 업힌 사람은 갑옷으로 보 건데 위왕인듯 하다.“경릉아!” 우문호가 아직 오기도 전에 먼저 부르며, “약 상자 가지고 기다려, 팔이 잘렸어.”원경릉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얼른 외투를 벗어 바닥에 깔고 약 상자에서 외상에 필요한 약을 꺼냈다. 진근영 쪽에서도 신속하게 바닥에 건초를 펴고 자기 외투를 벗어 베개로 말아 두었다.우문호가 위왕을 눕혔는데 위왕은 정신을 잃은 상태로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창백하고 팔이 잘린 채 피를 억지로 멈춰 놓았으나 절단 부위에서 여전히 베어 나오고 있었다.“세상에, 이렇게 심각해?” 원경릉이 심장박동과 호흡 소리를 들어보니 전부 지극히 느려 응급상황이다.우문호가 눈가가 벌게져서, “어때? 구할 수 있어? 피를 많이 흘렸어.”“수혈해야 해!” 원경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행히 여기 여러사람이 많아 신속하게 혈액형을 검사했다.곧 만아와 정화군주가 왔는데 정화군주가 거의 탈진 상태인 것을 보고 사식이가 얼른 부축했다.정화가 숨을 헐떡이며 얼굴도 새하얗게 질린 채 두 눈은 바닥에 눕혀져 있는 위왕에 고정돼 있다. 정화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어때? 구할 수 있어?”사식이가 위로하며, “원 언니가 구할 수 있다고 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정화가 이 말을 듣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데 눈물이 어떻게 해도 멈추지 않았다.진근
만아의 결심정화는 눈물을 떨구며 괴로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지 말고 지난 일은 잊어요.”“그래!” 위왕의 눈도 붉어진 채 쉰 목소리로 계속 정화를 보며 가슴 가득했던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대오는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 사상자를 점검한 후 친왕들은 위왕 곁을 지켰다. 안왕도 부상을 입고 팔과 어깨에 칼을 맞았으나 상처가 크게 심각하지 않아 지혈하고 붕대를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 한쪽이 잘려서 어깨 위에서 나부끼니 원래의 위풍 당당하던 안왕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한참 뒤 안왕은 메마른 입술을 뗐다가 결국 한 마디도 못하고 고개를 들어 우문호를 흘끔 봤다.우문호도 안왕을 흘끔 보는데 경성에서는 이래저래 서로 눈에 가시였지만, 권력이 소용돌이 치는 경성을 떠나니 오히려 지난 날 소년 시절의 형제애가 떠올랐다.역시 경성은 너 죽고 나 살자는 전쟁터이나 거기를 떠나면 모든 게 잘 돌아간다. 과연 그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을 것 같은 강북부로 안왕을 보낸 아바마마의 뜻을 알겠다.위왕 상황은 아직 안정적이지 않지만 수혈 후 길을 갈 수 있었다. 남강 북쪽 땅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고 특히 하늘 구역과 땅 구역을 또 지나가야만 했다.다행히 이번에는 길을 아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그 누구보다 눈 늑대가 길을 가장 잘 알아 눈 늑대가 선두를 잡고 대오를 끌고 갔다.만아는 길에서 내내 한 마디 말도 없다가 남강 북쪽을 떠날 때 갑자기 원경릉에게, “태자비 마마, 쇤네 일단 마마와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쇤네 남강에 한 번 가야겠습니다.”원경릉이 만아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가서 작은 소리로, “만아야 네가 지난날을 기억하는 걸 알아, 너무 괴로우면 울어도 돼. 참지 마.”만아가 고개를 흔들고 눈가를 붉히며, “울음이 나오지 않아요.”원경릉은 만아의 마음이 괴로울 것을 알고 작게 탄식하며, “남강으로 돌아가서 뭐 하게? 너 혼자 돌아가는 건 마음이 안 놓여.”“쇤네 돌아가서 아바마마께 제를 올리
남강으로 가는 만아원경릉이 만아의 손을 끌고 정색해서, “안돼, 만아야. 내 말 들어, 개인적으로 움직이면 안돼. 게다가 넌 혼자가 아니야. 복수라면 모두 널 도울 거야.”만아가 거의 피 눈물을 흘릴 듯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태자비 마마는 모르세요. 쇤네 마음 속에, 머릿속에, 이 눈에 이글이글 불이 타오릅니다. 이 불은 쇤네를 불태워 잠시도 평안할 수 없어요, 복수하지 못하면 쇤네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원경릉은 만아의 이런 마음을 보고 말할 수 없이 괴로운데 도무지 그녀를 떠나 보낼 수 없어 우문호를 오라고 불렀다.만아 얘기를 듣더니, “만아야, 네가 복수하겠다면 내가 반드시 널 도울 거야, 사람을 보내 너와 함께 남강으로 돌아가서 세력을 모으자. 기억해, 승리의 확신이 없는 복수는 헛된 희생이 될 뿐이야. 내 말 들어, 내가 미리부터 계획을 세워 뒀어.”만아가 우문호가 이렇게 말하자 입술을 떨며, “태자 전하, 정말 쇤네를 도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단지 너를 돕는 것 뿐 아니라 대세와 대통을 위해서 이기도 해. 네가 개인적으로 간다면 목숨을 헛되이 버리고 태자비는 너 때문에 가슴이 아파서 죽겠지. 절대 무모하게 굴어서는 안돼. 네 목표는 죽는 게 아니라 복수라는 걸 잊지 마.” 만아가 꿇어 앉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전하, 만약 만아가 복수하는 걸 도와 주신다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전하와 태자비 마마의 크신 은덕을 잊지 않고 결초보은 할 것입니다!”원경릉이 얼른 만아를 일으키며, “결초보은이라니?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내가 너한테 결초보은 하는 게 먼저 아냐?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만아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 올랐다. “태자비 마마, 쇤네 앞으로 돌아와서 마마를 모실 게요.”“네가 모실 필요 없어, 하지만 무사히 돌아와야 해.” 원경릉 눈가가 새빨개졌다.만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쇤네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우문호는 우문천과 몇 십 명을 만아를 남강에 데리고 돌아가라고 보냈다. 만아는 가면서 정
정화의 한마디위왕이 천천히 한쪽 손을 들고 물병을 받으려 하는데 정화가 물병을 위왕 입에 대주었다. 위왕이 당황해서, “내가 할 게.”정화가 위왕에게 물을 주자 위왕은 손에 힘이 없어 억지로 들고 마시니 사레가 걸려 기침을 했다.정화가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아주는데, 위왕이 보고 발그레하게 웃으며, “여전히 손수건에 소나무 수놓는 걸 좋아하네.”“네!” 정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마른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소나무 좋잖아요, 억세고.”위왕이 살짝 숨을 들이마시고,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경성으로 돌아갈 거야?”“몰라요.” 정화는 막연한 눈빛이다. 어떤 곳은 떠나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게 거기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너무 많다.위왕은 너무너무 간절히 정화를 데리고 강북부로 돌아가고 싶지만 말이 입에만 맴돌고 자기에게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2년여 세월동안 위왕은 내내 이전에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을 생각하고 전에는 정화가 자신과 같이 있는 게 싫은데 자기가 정화를 억지로 데려와서 하는 수없이 자기에게 시집왔다고 생각했다.위왕은 처음 그때부터 계속 정화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처음 그녀를 본 순간, 정화가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고, 그녀를 감동시키고 따듯하게 품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말을 잘 하지도 비위를 맞추지도 못하는 성격이라 그런 표현들이 너무 조잡하게만 떠올랐다.“당신은요?” 정화가 심호흡을 하더니 위왕에게, “당신은 어디로 가요?”위왕이 감정을 정리하고, “난 강북부로 돌아가, 지금 넷째와 강북부에 주둔하고 있거든, 맞아, 넷째 재수씨도 거기 있는데 아이를 가지셨어.”정화가 눈으로 활짝 웃으며, “정말 잘됐어요.”이 웃음은 위왕에겐 치명적이다. 정화를 처음 봤을 때 바로 이렇게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멍하니 바라보는데 마음 속에 용기가 불끈 솟아나며, “당신……”“셋째, 좀 어때?” 안왕이 하필 이때 성큼성큼 들어오며 물었다.위왕은 김이 세서 뾰로통하게 안왕에게 눈을 흘기고, “많이 좋아졌어.”안왕이 앉더니
부부싸움정화가 이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잠시 있다가 우문호와 원경릉을 찾아 갔다.경성에서 헤어진 후 거의 천일만에 만나는 것이다. 정화는 원경릉이 아이를 두번이나 출산했다는 얘기를 듣고 감탄하며 황홀해 했다. “세월 정말 빨리 지나갔네요.”“경성으로 돌아가나요? 친정 사람들도 그리워하던데. 돌아가서 좀 만나주세요.” 정화가 씁쓸하게, “친척들은 제가 그동안 밖에 있어 늘 마음을 놓지 못했죠. 마음 속엔 한 번 가서 뵈어야지 하는데 경성에 가면 다시 가지 못할까 두려워요 계속 있을 수도 없고요.”우문호가, “혼자 밖에 계시고 무공도 하실 줄 모르니 위험합니다. 곁에 시중을 드는 사람도 없고 역시 경성으로 돌아가서 자리 잡으시죠.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정화가 웃으며, “습관이 됐어요, 오히려 이제 누가 시중을 들어주니 어색해요. 혈혈단신의 좋은 점은 하고 싶으면 하는 거랍니다. 자유로운 나날이 익숙해져서 속박으로 돌아가지 못해요. 제가 이렇게 찾아온 건 태자 부부께서 저이를 좀 설득해 주셨으면 해서예요. 대주에 가서 대장군께 도움을 청해 섭정왕 전하께 부탁드렸으면 해서요. 저이는 무장인데 한쪽 팔을 잘리고 앞으로 어떻게 가족과 나라를 지키겠어요?”우문호가 멀찍이 쳐다보자 위왕도 마침 여기를 보는데 긴장하면서도 실망에 빠진 눈빛으로 우문호가 자기 쪽을 보자 정화가 뭐라고 하는지 물어보는 듯한 눈빛이다. 우문호는 셋째형이 아직 형수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그때 셋째형이 형수를 얼마나 미친듯이 쫓아다녔는지 마치 어제일처럼 기억했다. 우문호는 정말 안타까웠다.“설득해 볼 거예요, 하지만 형수님도 알겠지만 셋째형이 한 번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못 바꿔요. 그때 생각해 보세요, 형이 다리가 부러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형수님을 데리고 갔던…” 우문호가 말을 꺼냈다가 끊고는 정화군주를 쳐다봤다.정화가 깊은 눈빛으로, “마치 전생의 일 같네요.”“형수님이 같이 가시겠다고 하면 형은 절대로 거절할 리 없습니다.”정화가 놀라며, “제가요?”“좀 곤란하겠지만
위왕은 어디로?서일과 사식이가 둘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사식이는 원경릉을 쫓아가고 서일이 우문호에게 와서, “전하, 태자비 마마께서 누구 아이를 낳으신다고요?”“누가 낳는데?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그럼 지금 예를 드는 거에 화가 나신 겁니까? 진짜였음 난리 나겠네.” 서일이 놀렸다.우문호가 짜증나서 서일을 흘겨보더니 만약 진짜면 물론 난리 나지. 막상 이렇게 입장 바꿔 생각하니 정화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겠다.하지만 만약 원 선생이 다른 ‘놈팽이’를 만난 뒤라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한쪽 팔이 잘리고 목숨을 잃을 뻔 했다면 자기는 원 선생을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우문호는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우문호는 원 선생과 사이가 그렇게 변하게 끔찍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살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전란의 비장함이 지나간 뒤엔 평온한 삶의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돌아갈 텐데 마음이 다르면 각자의 길을 찾아 갈 것이다.진정정과 진근영은 대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위왕에게 대주로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만약 대주로 가겠다고 하면 사람을 보내 가는 길을 호송하기 위해서다.위왕은 거절하고 안왕과 강북부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안왕이 화가 나서 위왕을 한대 때리며, “미쳤어? 고칠 수 있는데 왜 안 고쳐?”위왕도 화가 났지만 반격할 수 없어서, “너랑 무슨 상관인데? 팔 잘린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안왕이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왜 상관이 없어? 네가 팔이 잘려서 가면 연아가 날 원망할 거 아냐? 전에 일을 들먹여 나한테 화를 내지 않겠냐고? 못 쓰게 될 거면 혼자 그러지 나 끌어들이지 마.”위왕이 차갑게, “너랑 상관없으니까 넌 조용해. 안 간다면 안 가는 거야.”진정정이 예를 취하며, “그러시다고 하니, 저희 부부는 여기서 여러분들과 작별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납시다.”“대장군과 군주께서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왕이 감사했다.“손만 까딱했을 뿐인 걸요!”
너도 밥 먹지 마우문호와 원경릉은 서일, 사식이 등을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가고 박원과 소홍천은 안왕을 따라 대오를 이끌고 일단 강북으로 돌아갔다. 비록 몇 천명의 사병이지만, 우문호는 역시 조심스럽게 안왕 혼자 통솔해서 가지 못하게 했다.안왕은 물론 우문호의 뜻을 알아서 경멸하는 듯, “고작 몇 천 사병으로 내 눈에나 차겠어?”우문호도 별로 변명하지 않고, “그럼 좋고요, 여기서 헤어지니 형도 몸조심 하세요.”말을 달려 경성으로 오는 길에 사식이가 이해가 안돼서 서일에게, “그 병사는 위왕의 병사인데 소홍천이나 무과 장원이 따라가지 않아도 별 일 없는 거 아냐? 안왕 전하도 군 장수가 아닌데, 왜 저들을 딸려 보내시는 거야?”서일이, “저 대오는 당연히 위왕 전하의 명령을 듣지, 하지만 위왕 전하가 안계시면 군에 다른 장수의 명을 들어야 해, 만약 안왕 전하께서 장수들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면 수천명의 군사는 안왕 전하께서 부리게 되지 않겠어?”사식이가 그제서야 깨닫고, “역시 태자 전하는 치밀하시다니까, 조금의 기회도 주지 않으시는군. 하지만 이번에 안왕 전하를 뵈니 상당히 평화로워 지신 거 같아.”서일은 혼인하고 성숙해 져서 문제를 생각하는 것도 상당히 긴 안목을 가지고, “지금 평화로운 건 패거리도 다 흩어졌고, 비빌 언덕도 무너졌기 때문이야. 평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혼자 목숨 걸고 덤벼야 하는데 그럼 계란으로 바위치기지? 안왕 전하는 계략이 뛰어난 분이라 은일 자중해야 하는 시점도 아시는 거야. 역시 만만하게 봐서는 안돼.”우문호는 말고삐를 돌려 서일을 보니 햇살을 받은 서일 얼굴이 남자답게 느껴지며 예전의 촐랑거리고 풋내나는 모습은 사라지고 진짜 성장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안색이 아직 좋지 않은 걸 보고 속으로 화가 났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뻔뻔하게 도리어 화를 내?’ 원경릉이 사과하지 않으면 우문호는 원경릉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저녁에 역관에 들어가는데 원경릉이 밥을 안 먹고 물만 조금 마시고 가서 누웠다.우문호도 화가 나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