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돌아온 독비

지옥에서 돌아온 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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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공경했고, 누구에게나 선의를 베풀었다. 심지어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정혼자 곁에서도 한결같이 정성을 다하며 함께했다. 그러나 다리를 회복하고 태자의 자리에 오른 정혼자는 가장 먼저 그녀의 친여동생에게 마음을 돌렸다.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칼날로 그녀를 거듭 짓밟고 능멸했으며, 끝내 비참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21 세기에서 온, 독의(毒醫: 독과 의술에 능한 의사). 이번 생에서는 반드시 원주의 원한을 대신 갚고, 그 천하의 쓰레기들을 제 손으로 심판하리라. 여동생이 계략을 꾸민다고? 좋다. 그렇다면 그 명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주마. 정혼자가 다리가 나았더니 변심했다고? 그렇다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어주지. 그녀는 정말 궁금했다. 서로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 장담하던 두 사람. 한 사람은 흉해지고, 다른 한 사람은 불구가 된 뒤에도 과연 그 맹세를 지켜 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태자에게 파혼당한 이상,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할 남자는 이제 없을 거라고.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가 천하를 손에 쥘 권세를 얻고, 세상을 놀라게 할 재능과 풍모를 드러낼 줄은. 그녀를 향한 인연 또한 끊이지 않았다. 복사꽃처럼 피어난 인연이 하나둘 이어지는 가운데,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십일 황숙마저 직접 그녀를 찾아왔다. “본 왕의 여인을 감히 누가 넘볼 수 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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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화

“소운금, 내가 분명 약속하지 않았느냐. 설령 월이가 너와 함께 시집온다 해도 태자비의 자리는 오직 네 것이라고. 이 정도면 너도 만족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어째서 또 이런 소동을 벌이는 것이냐?”

끝없이 펼쳐진 절벽 위, 천 년은 족히 되었을 고목 한 그루가 눈보라 속에 외로이 서 있었다.

그 곁에서 소운금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남국의 태자이자, 그녀의 정혼자였다.

“당신도 제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하나요?”

초현진은 노골적으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월이를 들이겠다고 한 뒤로 넌 월이를 모함하는가 하면, 스스로 몸을 해치는 소동까지 벌였다. 이제 혼례도 코앞인데, 이번에는 절벽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하는구나. 이만큼 소란을 부렸으면, 이제 그만 멈출 때도 되지 않았느냐?”

그의 말에 소운금은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자해를 했다고요? 제 몸의 상처들은...”

“그만!”

초현진이 짜증스럽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또 그 상처들은 전부 월이가 한 짓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냐? 월이는 순진하고 착한 아이다. 그 아이는 내 앞에서 네 험담 한마디 한 적 없는데, 넌 번번이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지. 적어도 적장녀다운 체통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는 뒤에 늘어선 호위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조회에 나가 있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호위까지 데리고 와서 이렇게 널 달래고 있지 않느냐. 내 인내심은 이미 충분히 보여 줬다! 네가 계속 이따위로 굴겠다면, 정말 여기서 뛰어내린다 해도 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운금은 가슴이 저려 왔다.

“당신은 분명 말했었죠. 평생 저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고…”

초현진은 더욱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때의 나는 진짜 사랑이 뭔지도 몰랐다! 월이가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됐어! 너와의 일은 애초에 잘못된 시작이었을 뿐이다!”

말을 마친 그의 눈빛은 점차 차갑게 가라앉았다.

“게다가 이건 전부 네가 월이에게 빚진 일이야. 삼 년 전 네가 그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본래 나와 혼약을 맺었어야 할 사람은 월이였다! 지금도 넌 이미 그녀의 정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지. 같은 날 시집오게 하는 정도인데, 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 것이냐?”

“같은 날 시집온다고요?”

소운금이 허탈하게 웃었다.

“정말 쉽게 말씀하시네요. 정비와 측비가 같은 날 정문을 통과하는 일이, 당신 눈에는 그 정도로 하찮은 일인가요? 입으로는 제가 정비고 그녀가 측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평처를 들이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요! 혼례도 치르기 전에 이토록 저를 욕보이시면, 제 명예는 어쩌라는 겁니까?”

소운금의 감정은 점점 격해졌다.

“게다가 제가 그녀를 잃어버렸다고요? 하하…”

말을 하며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뒤는 곧바로 만 길 낭떠러지였다.

“잊으신 건가요? 삼 년 전만 해도 당신은 태자가 아니었어요. 심지어 평생 불구가 될 뻔했죠. 그때 곁을 지킨 건 저였어요. 의원을 찾아 사방을 헤매고, 당신의 두 다리가 회복되기만을 바라던 것도 저였고요! 그런데 이제 당신은 다시 일어섰고, 소명월도 돌아왔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그해 그녀는…”

“또 그 소리냐!”

초현진이 신경질적으로 말을 끊었다.

“소운금, 넌 대체 얼마나 악독하기에 친동생을 이토록 헐뜯을 수 있는 것이냐? 월이가 길을 잃었을 때는 겨우 열세 살이었다. 그 나이에 뭘 알았겠어? 게다가 그해 우리도 고작 열네 살 남짓이었다. 사랑이니 뭐니 알 나이도 아니었고. 모든 것이 잘못된 일이었을 뿐인데, 왜 넌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운금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비로소 약간의 미안함이 스쳤다.

“네가 나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는 안다. 파혼당한 여인이 앞으로 얼마나 힘든 길을 걷게 되는지도 알고 있고. 그래서 네 체면을 생각해 단 한 번도 널 버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월이가 돌아온 지금도 내가 그녀에게 준 것은 고작 측비의 자리뿐이다. 월이 역시 너와 다투려 한 적이 없는데 왜 넌 그 사소한 일 하나를 붙들고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것이냐?”

소명월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넌 네 자신만 불쌍하게 생각하지. 정비 자리를 너에게 양보한 뒤 월이가 얼마나 억울했을지는 생각해 본 적 있느냐? 마음속에 아무리 한이 맺혀 있어도 그녀는 너처럼 제멋대로 굴지 않았다. 철이 든 아이라 소박한 소원 하나만 품고 있을 뿐인데, 너는 그것마저 양보하지 못한단 말이냐?”

“제가 양보한 게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요?”

소운금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늘 동생에게 양보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동생이 제 처소를 쓰고 싶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저더러 별채로 옮기라고 했죠. 불구가 된 정혼자를 피하려고 도망쳤을 땐 큰오라버니가 저더러 대신 나서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녀가 돌아와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니, 다들 제가 그 아이의 남자를 빼앗았다고 말하네요! 모두 제가 그녀에게 미안해해야 한다고 하고요. 저는…”

“그 아이를 모함하는 소리는 이미 충분히 들었다! 너는 어찌…”

“못 해요!”

소운금이 울부짖듯 외쳤다.

억눌러 왔던 눈물이 끝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감정이 지나치게 격해진 것을 본 초현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마침내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그만 좀 하거라. 정말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면, 혼례 당일 네가 먼저 문을 넘고 월이가 네 뒤를 따르게 하겠다. 이 정도면 되겠느냐?”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소운금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제가 원한 건 그런 게…”

“그만!”

초현진이 버럭 소리쳤다.

“본 태자가 여기까지 양보했는데도 대체 뭘 더 바라느냐? 설마 본 태자에게 월이를 포기하라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넌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그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이냐?”

초현진은 더욱 짜증이 치밀어 올라 무심결에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제야 보였다. 이미 눈물로 흠뻑 젖어있는 소운금의 얼굴이.

그 눈빛에는 짙은 절망마저 어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초현진은 목소리를 낮춘 채, 짜증을 억누르며 그녀를 달랬다.

“더는 투정부리지 말고 이리 오거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눈에는 단 한 점의 초조함도, 걱정도 없었다. 마치 소운금이 절대로 뛰어내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처럼.

그는 다시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이리 와.”

소운금은 눈물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그녀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제가 행복하다고요? 하하…”

쓴웃음과 함께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제가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당신은 날마다 제가 소란을 피운다고 했죠. 모두 제가 철이 없다고 했고, 가족이라는 사람들마저 매일같이 제가 그녀를 괴롭힌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제가 행복하다고요? 하하…”

“제가 무슨 일을 해도 제멋대로 구는 것이 되고,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데, 제가 행복하다고요? 하하하!”

우스웠다. 너무도 우스웠다.

홀로 남겨진 자신의 처지가. 기댈 곳 하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그토록 정성을 다해 곁을 지켰던 지난 이삼 년의 시간이, 누군가 돌아와 한 번 미소 짓는 것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본래 자신이 맞이해야 할 대혼의 날에, 십수 년 동안 자신을 짓밟아 온 여자와 한 부군을 나누어야 한다니...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이나 그 여자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소운금은 차마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녀가 이겼네요. 그리고 당신도 이겼어요! 초현진, 제가 두 사람을 성사시켜 주면 되잖아요?”

그녀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두 눈 가득 증오를 담고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죽은 뒤에는 부디 악귀 하나가 저 대신 혼을 거두러 와 주길 바라요. 제가 겪은 모든 고통을, 천 배 만 배로 되갚아 주길 바랍니다! 그래야 저는 죽어도 한이 없을 거예요!”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몸을 던졌다. 그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진심으로 이 세상에 지쳐 버린 사람처럼.

그녀의 모습이 절벽 아래로 순식간에 사라지자, 초현진은 그대로 눈을 크게 떴다.

“소운금! 미쳤느냐!”

심장이 당장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다급히 몸을 날려 앞으로 달려들었지만, 옷자락 끝조차 붙잡지 못했다.

“안 돼!”

그럴 리가...

그녀는 그저 소란을 피우고 있었을 뿐일 텐데. 정말로 뛰어내릴 생각이 없을 텐데.

그 순간, 가슴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통째로 뜯겨 나간 듯한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초현진은, 자신만큼이나 충격에 빠져 있는 뒤편의 사람들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다들 멍하니 뭐 하고 있는 것이냐? 당장 내려가 찾거라! 살아 있으면 사람을 데려오고,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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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챕터
제1화
“소운금, 내가 분명 약속하지 않았느냐. 설령 월이가 너와 함께 시집온다 해도 태자비의 자리는 오직 네 것이라고. 이 정도면 너도 만족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어째서 또 이런 소동을 벌이는 것이냐?”끝없이 펼쳐진 절벽 위, 천 년은 족히 되었을 고목 한 그루가 눈보라 속에 외로이 서 있었다.그 곁에서 소운금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았다.그는 남국의 태자이자, 그녀의 정혼자였다.“당신도 제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하나요?”초현진은 노골적으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내가 월이를 들이겠다고 한 뒤로 넌 월이를 모함하는가 하면, 스스로 몸을 해치는 소동까지 벌였다. 이제 혼례도 코앞인데, 이번에는 절벽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하는구나. 이만큼 소란을 부렸으면, 이제 그만 멈출 때도 되지 않았느냐?”그의 말에 소운금은 씁쓸하게 웃었다.“제가 자해를 했다고요? 제 몸의 상처들은...”“그만!”초현진이 짜증스럽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또 그 상처들은 전부 월이가 한 짓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냐? 월이는 순진하고 착한 아이다. 그 아이는 내 앞에서 네 험담 한마디 한 적 없는데, 넌 번번이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지. 적어도 적장녀다운 체통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그는 뒤에 늘어선 호위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원래라면 지금쯤 조회에 나가 있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호위까지 데리고 와서 이렇게 널 달래고 있지 않느냐. 내 인내심은 이미 충분히 보여 줬다! 네가 계속 이따위로 굴겠다면, 정말 여기서 뛰어내린다 해도 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소운금은 가슴이 저려 왔다.“당신은 분명 말했었죠. 평생 저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고…”초현진은 더욱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그때의 나는 진짜 사랑이 뭔지도 몰랐다! 월이가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됐어! 너와의 일은 애초에 잘못된 시작이었을 뿐이다!”말을 마친 그의 눈빛은 점차 차갑게 가라앉았다.“게다가 이건 전부 네가 월이에게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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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찬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발이 흩날렸다.가파른 절벽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절벽 아래 역시 두터운 눈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눈은 한 소년의 옷자락마저 흠뻑 적셔 놓고 있었다.마치 무언가의 소리를 들은 듯, 소년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가 눈부시도록 선명한 붉은빛이 시야에 들어왔다..“왕야, 시신입니다.”소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무에 걸린 채 아무런 생기 없이 늘어진 여인을 바라보며 그가 낮게 말했다.“위에서 떨어진 것 같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밭 위로 또 다른 흰옷 차림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손에는 장검을 들고 있었고, 새까만 머리카락은 높이 묶여 있었다. 거센 풍설조차 그의 몸에서 풍기는 위험한 기운을 가리지 못했다.“신경 쓰지 말거라. 계속 길을 재촉한다.”“왕야, 상처를 입으셨으니 우선 여기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놈들이 금방 따라오진 못할 겁니다. 지금은 눈보라도 너무 심하고요. 제가 근처를 둘러보며 몸을 누일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눈이 조금 잦아들면 그때 허무지를 계속 찾아보시지요.”청묵이 공손히 말한 뒤 몸을 돌려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반면, 초군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몸을 짓누르는 통증 탓에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억지로 버티며 근처의 고목에 몸을 기댔다.“윽, 아파….”그 순간 귀에 들려온 미세한 소리에 초군혁은 즉시 경계심을 높였다.그는 재빨리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무슨 일이지? 분명 조금 전까지는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설마 저 시체가 살아난 건가?나무 위에는 여전히 소녀의 시신이 조용히 걸려 있었다. 새하얀 눈밭 위에 번진 붉은 흔적은 마치 설원에 피어난 매화꽃처럼 선명하고도 눈부셨다.초군혁은 자신이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하지만 잠시 뒤, 나무 위의 ‘시신’이 갑자기 몸을 뒤집더니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정확히 그의 앞에 착지했다.상대는 마치 그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곧장 자신의 상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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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소운금은 자신이 어떻게 승상부로 돌아왔는지 알지 못했다.분명 조금 전까지는 눈밭에 쓰러졌던 것 같은데, 다시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따뜻한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아가씨, 드디어 깨어나셨군요…”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에 소운금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녀는 침상 곁에 있는 어린 시녀를 힐끗 바라보았다.기억 속에서 이 아이는 자신의 곁을 지키는 시녀, 동이였다.동이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말했다.“아가씨, 저도 태자 전하께서 아가씨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하셨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분은 태자 전하시잖아요. 설령 지금 셋째 아가씨를 들이지 않더라도 훗날에는 어차피 첩을 거느리실 분인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몰래 뒷산에 올라가 절벽에서 뛰어내리시다니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다시는 아가씨를 못 뵙게 될 줄 알았단 말이에요. 흑흑…”방 안은 어두웠다. 흔들리는 촛불을 통해 보아하니 이미 깊은 밤인 듯했다.소운금은 조용히 방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여기 너밖에 없어?”동이는 눈물과 콧물을 훔치며 말했다.“셋째 아가씨께서는 아가씨께서 절벽에서 뛰어내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기절하셨어요. 지금은 큰도련님도, 태자 전하도 모두 그쪽에 가 계시고요…”소운금은 머리를 짚었다.그랬다. 이 승상부에서는 모두가 소명월만을 중심으로 움직였다.승상부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승상은 늘 국사에 바빴다. 그래서 집안의 대부분 일은 장남이 처리하고 있었다.지금 승상부에 살고 있는 주인은 고작 셋뿐이었다.큰오라버니 소준연, 셋째 아가씨 소명월. 그리고 모두에게 미움받는 자신, 소운금.그녀가 계속 말이 없자 동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래도 아가씨, 태자 전하 마음속에는 분명 아가씨가 있어요. 아가씨를 안고 돌아오실 때 태자 전하의 표정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아세요? 전하께서는 아가씨가 질투심에 충동적으로 그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특별히 선물까지 보내 주셨잖아요.”동이는 바닥에 놓인 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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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소운금이 파혼서를 챙겨 넣자, 초현진은 결국 자리를 떠났다.그가 나가고 나서야 동이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아가씨!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태자 전하께서 어렵게 아가씨를 보러 와 주셨는데, 어찌하여 전하의 화를 돋우신 겁니까? 그리고 이것도요! 어서 찢어 버리셔야 합니다. 다행히 이 일은 우리 셋만 알고 있지 않습니까. 찢어 없애기만 하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습니다.”동이는 허둥지둥 파혼서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소운금은 그것을 곱게 접어 챙겨 넣었다.“왜 없던 일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내 자유야.”동이는 다급히 말했다.“아가씨, 그게…”소운금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너, 너무 시끄러워.”동이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결국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물러섰다.오늘의 아가씨는 어쩐지 이상했다.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일까?그렇게 막 방을 나가려던 순간이었다.문도 두드리지 않은 채, 관리인 차림의 중년 부인이 안으로 들어왔다.“둘째 아가씨. 아가씨께서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울고불고 소란을 피우신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끊으려 하여, 온 승상부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태자 전하를 하루 종일 난처하게 하신 데다, 선량하신 셋째 아가씨까지 크게 놀라게 하셨지요. 그러니 큰도련님의 분부에 따라, 아가씨께서는 깨어나시는 즉시 사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하루 동안 근신하셔야 합니다. 내일이 되면 큰도련님께 이번 일을 잘 설명드리시고요.”그 여인은 오만한 태도로 말한 뒤 문가 쪽으로 물러섰다.“아, 그리고 태자 전하께서는 방금 화가 나 떠나셨습니다. 이제 아가씨를 대신해 사정해 줄 이도 없으니, 어서 가시지요.”“임 집사님, 아가씨께서는 오늘 절벽에서 떨어지셔서 온몸이 상처투성이십니다. 큰도련님께 말씀 좀 전해 주세요. 오늘 밤만큼은 쉬실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동이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그러자 임 집사가 곧장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짝!“내가 말하는데 네가 끼어들 차례냐? 규율이라고는 조금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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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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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소준연은 그녀의 말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정말 철이 없구나!”그는 답답하다는 듯 소운금을 바라보았다.“태자 전하께서는 너를 아끼셨다. 네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장 사람들을 데리고 구하러 가셨고, 네가 뛰어내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음에도 직접 너를 안고 돌아오셨다. 게다가 태자비의 자리도 끝까지 네게 남겨 두셨지. 그런데 너는 너무도 철이 없어, 그분이 네게 베푼 모든 것을 단 몇 마디 말로 부정해 버리는구나! 그리고 셋째도 그렇다. 밖에서 온갖 고생을 겪다가 겨우 돌아왔는데, 너는 사사건건 그 아이와 비교하려 들지 않느냐? 그런데 그 아이는 언제 너를 먼저 괴롭힌 적이 있었더냐? 네가 도화과자를 좋아하는 걸 알고는 날마다 사람을 시켜 만들어 보내 주었고, 또 네 처소에 시종이 적을까 봐…”“할 말은 다 끝나셨어요?”소운금이 짜증스럽게 그의 말을 끊었다.“안 가시겠는 거죠? 기어코 저랑 끝까지 얘기하겠다는 거죠? 좋아요. 그럼 오늘 여기서 전부 확실히 해 두죠.”소운금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오라버니는 입만 열면 태자 전하께서 저를 아끼셨다고 하시는데, 그럼 왜 굳이 소명월을 들이려 하셨죠?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제가 진실이 뭔지 알려 드릴게요.”“진실은 태자 전하께서 한 번도 저를 아낀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는 저를 막은 것도 소명월이 괴로워할까 봐 그랬던 거죠. 저를 구하러 온 것도 결국 소명월 때문이었고요. 그게 아니었다면 어째서 제가 정말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숨겼겠어요?”소준연이 입을 열려 하자 소운금은 곧바로 양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소매가 올라가는 순간, 팔 가득한 상처가 눈앞에 드러났다.소준연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남녀유별만 아니었다면 몸에 난 다른 상처들도 보여 드리고 싶네요. 물론 알아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오라버니는 믿지 않으시겠죠. 그런데 오라버니도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승상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오라버니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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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소명월을 바라보던 소준연은 마음속이 복잡해졌다.이토록 철이 들고 속 깊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넌 신경 쓰지 말거라. 그 아이는 원래 자기밖에 모르는 성정이라, 어디 가서든 스스로 손해 볼 일은 없을 테니.”소명월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제도 그렇게 큰 소란을 피웠는데, 어디 다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또 혼자 나갔다고 하니, 정말 걱정되네요.”“너는 그게 문제다. 늘 남부터 챙기느라 정작 네 자신은 돌보지 못하지 않느냐. 그 아이는 일을 그렇게 크게 벌여 네 체면을 깎아 놓고도 태연한데, 너는 끝까지 그 아이 걱정뿐이구나. 어제도 제대로 쉬지 못했을 텐데, 오늘만큼은 그 아이 생각은 접어 두고 푹 쉬거라.”그때였다.한 시종이 밖에서 급히 들어왔다.“도련님,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소준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귀한 손님이라니, 누구 말이냐?”이른 아침부터 누가 찾아온단 말인가.시종은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이왕부에서 온 분들이라고 합니다. 오래 머물지는 않고, 전할 말만 남긴 채 곧바로 돌아가셨습니다.”이왕부라는 말이 나오자, 소준연과 소명월의 얼굴빛이 동시에 변했다.소명월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 이왕부를 말하는 것이냐?”하인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예. 경성에는 이왕부가 하나뿐이니까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이왕부에서 둘째 아가씨를 선향루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말씀만 남기시고, 이층 별실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하셨습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준연의 두 눈이 충격으로 크게 뜨였다.“뭐라고? 이왕부 사람이 둘째를 만나자고 했다고?”그럴 리가 없었다.소명월 역시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그녀 또한 적잖이 놀란 듯했다.그녀의 뒤를 묵묵히 따르던 시녀 춘매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혹시 잘못 들으신 건 아닐까요? 만나자는 분은 우리 셋째 아가씨 아니었을까요?”소명월이 눈을 내리깔았다.“춘매,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춘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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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소운금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아는 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이 아이의 팔을 자를 필요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팔을 잘라 내는 건 가장 간단한 해독 방법일 뿐이에요. 팔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진정 사람을 위한 방법이죠.”말을 마친 그녀는 아이 곁에 쪼그려 앉았다.그리고 아이 몸에 꽂혀 있던 은침 하나를 뽑아 다른 위치에 다시 찔러 넣었다.“이 자리에 놓아야 독이 더 이상 퍼지지 않아요.”옆에 있던 의원은 눈을 크게 떴다.“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어찌 이리 함부로 굴 수 있단 말이냐!”“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하는 법이죠.”소운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그녀는 말을 마친 뒤 아이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이 아이는 당신 아들이죠. 한 가지만 묻겠어요. 당신은 아이가 무사하기를 바라시나요?”부인은 이미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그러자 소운금은 다시 물었다.“제가 이 아이의 목숨도 살리고 팔도 지켜 낼 수 있다고 하면, 저를 믿으시겠어요?”부인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옆의 의원을 돌아보았다.“의원님...”의원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흥!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어디 한 번 해 보아라! 나중에 아이를 죽여 놓고는 관아에 넘기지 말아 달라고 우리를 붙잡고 사정하지나 말라고!”그는 말을 마친 뒤 바닥에 주저앉은 부인을 바라보며 덧붙였다.“내 분명 말했소! 당신 아들을 살릴 유일한 방법은 그 팔을 잘라 내는 것이라고! 계속 우물쭈물하다 일이 잘못되면, 내가 치료하지 못했다며 원망하지 마시오!”겁에 질린 부인은 황급히 의원의 다리를 끌어안았다.“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그녀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그 모습을 본 소운금은 더 이상 나서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바닥에 누워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아이를 바라보자 마음이 흔들렸다.아이는 아직 너무 어렸다.결국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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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맞네, 맞아. 내 어디서 봤다 했는데... 쯧쯧, 명색이 승상부 아가씨라는 사람이 대낮부터 거리 한복판에서 저런 소동을 벌이다니. 자기 신분만 믿고 백성들이 감히 어쩌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군.”“예전부터 승상부 둘째 아가씨는 돼지처럼 뚱뚱하고 성정도 악독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소문대로야.”“무고한 아이를 죽여도 아무도 자기한테 손대지 못할 거라 믿고 있는 거겠지.”“태자 전하께서 변심하신 것도 이해가 가는군. 내가 태자라도 저런 뚱보와는 혼인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못생긴 것들이 꼭 유난은 떤다더니. 저 아이가 정말 죽기라도 하면 그땐 어쩌려고 저러는 겐가?”사방에서 온갖 말들이 쏟아졌다.사람들은 소운금이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 여긴 듯, 입을 열수록 점점 더 심한 말을 내뱉었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소운금의 이마에도 어느새 땀 한방울이 흘러내렸다.그 순간만큼은 온 거리의 시선이 이곳으로 쏠린 듯했다.대부분은 조롱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고, 극소수만이 아이가 깨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한편 선향루 이층 창가.두 사내가 그곳에 선 채 한참 동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청묵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직접 이곳으로 오라 했더니, 길에서 사람이나 구하고 있군요. 시간 개념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그 곁에 선 초군혁은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선향루는 경성에서 가장 큰 주루였고 거리와 바로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지금 이 순간에도 이층은 물론 삼층 창가마다 사람들이 몰려 아래를 구경하고 있었다.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정말 승상부 아가씨였군. 어릴 적 한 번 본 적이 있소. 그때는 전혀 뚱뚱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저렇게 살이 찐 거지?”“어릴 때는 꽤 예뻤다고 들었소. 다만 크면서 체형이 점점 둥글어진 모양이지.”“분명 너무 호강해서 살이 쪘을 것이오.”“그러게 말이오. 같은 승상부 아가씨인데 셋째 아가씨는 버들가지 같은 허리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여리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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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유 의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에서 곧바로 분노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유 의원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저 여자를 그냥 보내 줄 수 있단 말입니까?”누군가 말을 꺼내자마자 군중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그러게 말입니다! 명문가 아가씨라고 해서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겁니까?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아이 몸에 침을 잔뜩 꽂아 놓고, 치료가 안 되겠다 싶으니 침만 뽑고 도망가려 하다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맞습니다! 우리야 비록 평범한 백성이지만, 백성의 목숨도 목숨입니다!”“그래요! 오늘 저 여자가 죄 없는 아이를 죽게 만든다면,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절대 그냥 보내지 맙시다!”“맞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다 같이 관아에 고발하면 승상부라도 반드시 아이 어머니에게 공정을 돌려줘야 할 것입니다!”군중의 분노는 점점 거세졌다.사람들은 떠들어 대면서도 어느새 사방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다.유 의원은 이마의 땀을 훔친 뒤 난처한 얼굴로 소운금을 바라보았다.“아가씨, 지금 아가씨를 곤란하게 만드는 건 내가 아니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가씨를 보내주려 하지 않소.”그는 한숨을 내쉬며 약상자 안에서 작은 칼 하나를 꺼냈다.“아가씨가 조금만 덜 고집을 부리고 내 말을 들었더라면 저 아이는 벌써 깨어났을 것이오. 이렇게 시간을 끌었으니 독이 얼마나 퍼졌는지도 알 수 없소. 이제 실컷 소란을 피웠으니 비켜 주시오. 내가 다시 아이를 살펴보겠소.”소운금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꿈틀거렸다.“제가 침을 뽑은 건 침술이 끝났기 때문이에요. 영감님은 왜 이렇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걸 좋아하시죠?”그 말에 유 의원의 얼굴이 굳어졌다.“이 계집아이가 어찌 이리 버릇이 없단 말이냐? 나를...”“버릇없는 건 오히려 당신 아닌가요? 이 아이는 분명 살릴 수 있는데도 기어코 팔을 자르려 했잖아요. 제가 사람을 살리는 동안에는 계속 옆에서 훼방을 놓더니, 이제는 치료가 끝났는데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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