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의 마음정비 마마께서 정화에게 묻고 싶은 말을 빼놓지 않고 말했다.“너 걔랑…… 다시 합칠 가능성은 없는 게냐?”정화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지금 저와 그분은 친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굉장히 좋아요.”다들 듣고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고 손 왕비도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화가 셋째를 증오하는 건 당연하니 시간이 지난 뒤엔 언젠가 위왕이 가여울 거라고 지금은 정화 말에 무조건 지지하며 말했다. “그때 셋째가 진짜 너무했지. 어떻게 쉽게 용서할 수가 있어? 다시 잘 시험해 보고 그 뒤에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해도 늦지 않아.”정화 군주가 웃으며 말했다.“이제까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었으니 같이 있고 안 있고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각자 자유롭고 편안하면 되는 거죠.”정화가 화제를 바꿔 말했다. “태상황 폐하의 옥체는 좀 어떠세요?”“태상황 폐하께선 별궁으로 쉬러 가셨네.” 황귀비가 말했다.정화가 엷게 웃음을 띠고 말했다. “태자비가 있으니 확실히 괜찮겠네요.”“태자비가 그리우면 내일 내가 미색이랑 요 부인을 초대해 같이 별궁에 갈 약속을 잡지 뭐, 우리 한 번 모이자.” 손 왕비가 말했다.정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좋네요, 역시 얼굴을 보고 태자비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죠.”여자들은 한참을 얘기하고 황귀비는 명원제 쪽에 사람을 보내 정화가 돌아왔으니 알현하시고 싶은지 여부를 묻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목여 태감이 직접 와서 폐하께서 정화 군주를 보고 싶어하신다고 모셔갔다.손 왕비는 정화와 같이 가서 명원제에게 문안을 드리고 명원제는 아직 조정 일을 보지 않지만 요양하는 동안 살이 좀 찌고 얼굴도 좋아졌다. 호비 마마께서 곁에 있으며 세심하게 돌봐 주니 황제와 왕비의 관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사이가 좋았다.명원제가 정화에게 근황을 묻는데 정화 앞에서는 위왕을 언급하지 않고 몇 마디 당부의 말을 했다. 태도가 마치 이전 같아서 그녀를 외인으로 취급하지 않아 정화는 눈가가 계
위왕의 입궁손 왕비가 정화의 손을 잡고 가슴 아파하며 말했다. “그래, 네가 어떻게 하든 난 네 편이야. 너희가 같이 있으면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고, 진짜 인과응보다.”정화는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며 슬픔이 끊임없이 차올라 말했다. “그동안 바깥을 떠돌 때도 밤에 꿈을 꾸면 언제나 그 아이가 저를 보고 우는 소리가 들려요, 지금도 그래요. 도무지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가 그이 곁으로 돌아가기 원하는지, 그이와 다시 예전처럼 좋아지길, 지난날처럼 아무 일도 없었듯이 지내기를 바라는지 알아요, 하지만 정말 너무 어려워요.”“생각하지 마, 다 지난 일이야. 네가 셋째와 같이 있지 않아도 너한테 뭐라고 할 사람 없어. 누가 네 미어지는 가슴을 아는데? 견디기 힘든 골인 거 맞아.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살지 마. 정말 널 아끼는 사람은 너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 너한테 모진 말 할 리는 더더욱 없고.”“이번에 그이를 따라 경성에 온 건 중간에 태자 전하의 서신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경성에 변고가 있을 거라 저에게 제발 그이와 같이 돌아오라고 해서. 만약 그이가 죽으면 제가 그이를 위해 시신을 거둬 주길 바란다고. 저도 위험한 건 알지만 그이를 따라 돌아왔어요. 그 서신이 아니었으면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지나가는 말처럼 했지만 목소리에서 배어 나온 아픔을 무딘 손 왕비조차 알아챌 수 있었다.손 왕비는 눈을 곧추세웠는데 이런 얘기는 아무래도 불길하다고 미신을 믿었다. 손 왕비는 더 듣고 싶지 않아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 내일 태상황 폐하 뵈러 가는 김에 태자비 마마도 좀 만나자. 태자비 마마께서 또 아이 낳았는데 너 알아?”“알아요, 남강 북쪽에 있을 때 태자비 마마를 만났었는데 그때 얘기해 줬어요. 사실 제가 계속 경성의 일에 마음이 갔거든요, 북당에서 태자비 마마께서 쌍둥이를 낳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쌍둥이를 낳는 복은 정말 엄청난 거잖아요.”“너도 큰엄마가 됐는데
형제 간의 술자리위왕이 궁을 나선 뒤 초왕부로 다섯째를 찾아갔다. 다섯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초왕부 사람이 병부로 우문호를 찾아가 위왕이 돌아왔다 소식을 알렸다. 우문호는 회왕, 손왕과 제왕을 집으로 오라고 초대하고 오늘 저녁 형제들이 거나하게 한 잔 하기로 했다.또 이리 나리를 청했는데 이리 나리는 매부로 한가족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리 나리 성격이 차가워서 꼭 온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몇 명이 모이자 술자리가 시작됐다.회왕은 최근 한약을 먹으며 보양하는 중인데 미색에게는 늘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하지만 미색이 포기하지 않고 본인도 한약을 먹으면서 회왕을 원경릉 할머니께 끌고 가서 진맥을 하고 처방대로 반드시 먹으라고 시켰다.회왕은 미색의 살벌함에 꼼짝 못하기 때문에 한약을 먹으면 술을 마실 수 없으니 미색이 딸려 보낸 심복이 회왕이 술을 마시나 지켜보고 있었다.형제들이 이런 회왕의 모습을 보고 놀리지 않을 리가 없는데 회왕은 오히려 덤덤하게 말했다. “공처가가 뭐 대수라는 겁니까, 다들 공처가잖아요?”이 설렁설렁한 한 마디에 위왕이 쓴웃음을 지은 것을 제외하고 우문호와 제왕은 괜히 딴 데를 바라봤다.하지만 곧 뭐 그럴 필요 있나 공처가가 뭐 대수라고.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같이 있는데 무서워하든 공경하든 뭐 어때서?회왕은 술을 마시지 않고 다른 세 왕야는 거나하게 취했다. 오늘 밤은 구사와 냉정언은 부르지 않은 것이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누군가는 역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오늘 밤은 집안의 일상사를 얘기하고 형제 사이의 대화를 주고받았다.물론 큰형 우문군에 대한 얘기도 언급했다.우문군이란 이름을 그가 살아 있을 때는 모두 싫어했지만 죽고 나니 그가 한 나쁜 일은 선택적 기억처럼 기억나지 않았다.위왕은 돌아오는 길에 부고를 들어서 큰형의 죽음은 그에게 있어 역시나 상당히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태자 자리를 다투는 과정전체에서 큰형은 비록 위왕을 아예 제꼈지만 실질적인 피해로 따지면 넷째가 한 짓만 못하기
우문호의 계획“낮다고?” 위왕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산은 절대 눈늑대봉보다 낮지 않아.”회왕과 제왕은 모두 숨을 멈추고 말했다.“그게 어떻게 가능해?”“내가 직접 봤어.” 위왕이 경탄의 눈빛으로 말했다.제왕이 우문호에게 놀라서 말했다.“다섯째 형은 믿어?”우문호는 술잔을 들고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믿어, 당연히 믿지.”‘경공이 대단한 게 뭐? 용태후는 다른 사람이 시공을 넘나들게도 하는데.’모두 우문호가 전에 대주에 가서 경천 섭정왕과 용태후를 만난 걸 알고 있다. 우문호가 믿는다고 하면 분명 진짜다.왕야들은 시야가 넓어졌구나 생각하며 동경하는 마음으로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그를 알현하고 싶었다.형제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이렇게 정사 이외의 일로 앉아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금방 술을 다 마셔버렸고, 술기운이 얼큰할 즈음 손왕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난 이생에 조용히 소일하며 보내고 다른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아바마마는 늘 내가 포부가 없다, 칠칠치 못하다고 하셨지. 하지만 난 전에 계속 이렇게 무능하게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거든, 이제 나라에 여러 일이 터지고 보니 문득 아바마마께서 큰 인물이 되지 못한 날 한스러워 하신 게 이해 돼. 내가 좀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다섯째를 좀더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지금 내가 처음 병부로 와서 도대체 뭐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고, 뭘 할 수 있는지 모르다니 난 여섯째랑 마찬가지로 무능한 존재야.”회왕은 처음에 굉장히 감동적으로 듣다가 마지막에 자기 이름이 나오자 순간 어이가 없었다. “둘째 형, 형이 자기비하하는데 나는 왜 끌어들여요?”손왕이 회왕을 보고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에휴, 난 너만 못해, 넌 그래도 능력 있는 아내라도 있지. 둘째 형수는 나랑 똑같이 칠칠 맞다니까.”다들 박장대소하면서도 손왕을 달래야 했다.위왕이 말했다.“다섯째야, 너 둘째 형을 병부로 보낸 건 무슨 의도야?”우문호가 기가 차서 말했다.“있죠, 전 둘째
원경릉과 동서모임다들 술을 거의 다 마셨을 즈음 이리 나리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리 나리도 술은 마시지 않고 단지 와서 한 바퀴 돌더니 몇 마디 주고받고는 가버렸다.다음날 정화 군주가 요 부인, 손 왕비, 제 왕비 그리고 회 왕비를 청해 겸사겸사 원경릉도 보자고 황실 별궁에 태상황 폐하께 문안드리러 갔다. 이들은 태상황 폐하 쪽에 문안을 드리고 몇 마디 나눈 후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마음이 불안한 때 다들 오는 것을 보고 얼른 감정을 정리하고 정화 군주를 맞이했다. “군주 기분이 괜찮아 보이는데 경성에 돌아오니 여전히 익숙하던 가요?”“익숙하죠!” 정화 군주가 원경릉에게 예를 취하고 말했다.“태자비를 뵙습니다.”“서먹서먹하게 왜 그래요!” 원경릉이 예로 답했다.정화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마주보더니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예는 됐다고 해도 고맙다는 말은 늘 가슴에 품고 있었어요.”“벌써 고맙다고 했으니 또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요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됐네, 서로 고맙다고 난리고 귀찮지도 않아? 어서 들어가서 얘기나 하자.”다들 웃고 떠들며 안으로 들어가는데 여자들이 같이 있으니 화제가 끊이지를 않고 원경릉은 마음이 원래 불안했다가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조금씩 주의가 그쪽으로 옮겨가며 그다지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미색과 정화 군주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로 사식이를 시켜 미색에게 별궁을 보여주도록 했다. 명목은 참관하는 거지만 실질적으론 미색이 방어병력 배치를 위해 시찰하는 것이다.사식이가 자연스럽게 상황을 물었는데 담담한 척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서일을 걱정하고 있었다.미색이 다독이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안심하고 여기서 태자비 마마를 보필해 드려, 모든 일을 장악하고 있으니까.”“무슨 소식이 있으면 와서 우리한테 알려줘야 해요.” 미색이 알았다고 하고 다시 위로하며 말했다. “그래, 걱정하지 마, 서일은 지금 이미 혼자 몫을 담당하고 있으니 틀림없이 이번 일을 겪고 위로 발탁될
안왕부를 찾아온 적귀비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런 말 안 할 게, 가봐.”미색이 별궁을 떠나 먼저 회왕부로 돌아가 한 바퀴 돌고는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입궁했다.회왕이 정사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독고 사람은 그들 부부에게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는 미색을 업신여긴 게 아니라 늑대파만 감시하면 충분하기 때문으로 안타까운 건 늑대파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는 게 늑대파 사람은 신출귀몰하기 때문으로 특히 이리 나리는 더했다.이리 나리는 얼핏 보기에 저택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어젯밤 불현듯 초왕부에 나타났는데 이리 저택을 감시하던 사람은 이리 나리가 언제 나갔는지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그래서 늑대파 사람 전체를 감시하지 않고 단지 핵심 인물만 감시하기로 했다.미색이 입궁해서 적 귀비를 찾아가 안 왕비와 안지가 납치된 일을 얘기하자 귀비가 대경실색해서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듯 했다. 이때 미색이 귀비가 침착하지 못하면 아무도 안 왕비와 귀비의 손녀를 도울 수 없다고 경고했다.적 귀비는 바로 냉정을 되찾더니 미색이 얘기하는 대로 안왕부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기로 했다.다음날, 적 귀비는 황제에게 출궁 교지를 내려줄 것을 청했다. 귀비가 안왕부에 왔다는 통보를 받고 안왕이 직접 나와 맞이하는데 아공도 따라와 같이 예를 올렸다.미색이 안왕 곁에 첩자가 있다는 걸 알려줘서 적 귀비는 화를 누르고 담담하게 아공을 흘끔 보더니 시선을 돌려 안왕에게 말했다. “안지를 보러 왔네.”안왕이 약간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게 마침 왕비가 안지를 데리고 친정에 갔습니다.”“친정에 갔다고?” 적 귀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거 참 하필이면, 오늘 돌아오니? 아니면 내가 걔들을 기다릴까?”“며칠 못 올 듯 싶은데 왕비와 딸이 돌아오면 소자가 안지를 데리고 입궁해 어마마마를 뵈러 가겠습니다.” 안왕이 바로 적 귀비를 돌려보낼 태세다.적 귀비는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이틀간
태풍 전의 고요적 귀비가 안왕부를 떠난 뒤 바로 사람을 시켜 목도리를 회왕부로 보냈다.미색이 바로 초왕부로 가서 다바오에게 목도리 냄새를 맡게 하고 호국사로 갔다.서일 쪽에서 감시하고 있던 조광방도 소식이 있어 몰래 뒤져보니 적지 않은 약상인이 찾아와 의사를 타진했다. 이것을 통해 그가 대량으로 약을 구매한 배후 인물인 것을 증명할 수 있으나 서일도 조사해 보니 이 약점포는 매년 버는 은자가 몇백 냥 수준이라 이렇게 많은 약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건 불가능하다. 더 조사해 보니 그와 강남의 거상이 밀접하게 왕래하고 있음을 발견했다.즉 조광방은 수뇌가 아니라 독고의 첩자 중 피라미에 불과했다.안 왕비를 숨긴 곳을 찾기 위해 우문호는 두 갈래로 나눠 미색이 이쪽에서 대대적으로 찾고, 서일이 저쪽에서 몰래 조사하는 방식을 택했다.실마리를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 구사를 데리고 홍엽을 찾아가자 홍엽이 그림 하나를 주는데 첩자가 안 왕비를 숨겨둘 가능성이 있는 곳을 표시한 것으로 말했다. “산꼭대기를 제외하고 가장 가능성 있는 건 민가로 빈민가일 가능성이 있고 회왕비는 호국사로 갔는데 호국사일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이 그곳은 이미 노출돼서 그들이 사람을 그곳에 가둘 리 없어요. 빈민가 쪽을 찾아보죠.”우문호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서일이 이미 주변에 많은 사람을 잠복시켜 뒀으니 만약 빈민가에 있다면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안왕 전하는 왜 조굉방을 주목하는 거죠? 배후에서 약초를 운용했지만 안 왕비 마마와 아가 군주를 납치한 일과는 무관한데요.” 구사가 말했다홍엽이 고개를 흔들며, “그게 아니죠. 그가 약초 일에 관여했다고 해서 다른 걸 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 집사가 안 왕비를 우선 조굉방의 약상점에 데리고 간 것이 그가 보낸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구사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말했다. “그럼 안왕 전하는 어째서 조굉방을 알고 있는 거죠? 안 왕비 마마께서 납치당하셨을 때 안왕 전하는 궁에 계셨습니다.
적중양을 거두러 온 적위명적중양의 장례는 적씨 집안도 주씨 집안도 관여하지 않았지만 주씨 집안에서 요양하고 있는 적위명에게 알려 적위명이 전면으로 나서 이 일을 처리했다.적위명이 경조부에 나타났을 때 제왕이 직접 맞이했다.적위명은 많이 늙어서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데 특히 눈을 가늘게 뜨고 제왕을 볼 때 날카로운 빛은 사라지고 노쇠함만이 드러날 뿐이었다.적중양의 시체는 석회로 덮었으나 이미 냄새가 나기 시작해 장지로 이동하는데 아직 입관하기 전이라 나무 침상에 뉘어 놓고 제왕이 사람을 시켜 새 이불을 덮어주게 하니 그렇게 초라하지만은 않았다.시체를 검시해야 해서 적위명이 직접 장지에 가기로 하고 제왕이 직접 적위명을 모시고 갔다.나서는 순간 마침 우문호가 경조부로 들어오다가 적위명을 보고 마음속으로 조금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확 늙을 수가 있지?’적위명이 우문호를 흘끔 보더니 바짝 마른 입가를 삐죽거리며, “태자 전하는 소신을 못 알아보시겠습니까?”이 목소리조차 늙어서 비꼬는 게 눈에 훤했다.“어찌 모를 수가 있습니까? 하지만 좀 연세가 들어 보이시는군요. 사람은 다 늙는 법이니까요.”적위명이 허리를 곧게 펴기 위해 애를 쓰며 근근이 남은 존엄을 유지하며 한 걸음씩 걸어나갔다.우문호가 제왕을 불러 말했다.“적중양의 시신을 수습하러 왔나?”“맞아요, 분명 주국공 쪽에서 알려서 온 걸 겁니다. 들어오자마자 얼마나 놀랐던지.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죠?”“네가 직접 갈 필요 없어, 다른 사람을 시켜 모시고 가라고 해.”“괜찮아요, 제가 다녀오죠. 적중양도 꽤 불쌍하고.”“사람을 좀 더 데리고 가.” 우문호는 제왕이 적중양을 동정하는 걸 알고 차마 말리지 못했다.“알았어요. 형이 특별히 다 오고 무슨 일이에요?” “별 일 아냐, 좀 조사할 게 있어서. 가봐 일찍 다녀오고, 마음에 오래 걸렸던 일이니 얼른 해결해서 마음의 짐을 덜어야지.”“적중양이란 자는 참 가여워요, 사람이 죽었는데 적씨 집안은 죄를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