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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79화

Author: 유애
냉정언이 홍엽에게 답했다. “서일이 한 마디는 제대로 했군요. 그가 얼마나 간악한 인간인지 안왕에게 당한 사람 이야말로 말할 권리가 있다는 말, 말입니다. 섭정왕은 북당 내부의 일은 당연히 깊이 알리 없어요. 그리고 특정 부류 사람을 증오하지요. 그들이 바로 골육상잔을 일으키는 자입니다. 근데 안왕 전하는 섭정왕의 그런 금기를 범했으니 도와줄 리 없습니다.”

다들 냉정언의 분석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섭정왕은 대주 황실 사람으로 황위를 위해 골육상잔을 일으키는 자를 증오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홍엽이 냉정언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대주 섭정왕에 대해 잘 아시는 군요.”

냉정언이 미소를 짓고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음. 많은 사람들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홍엽이 살짝 당황했으나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먼 산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조금 더 술을 마셨는데, 가정이 있는 사람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홍엽은 섭섭해 했다. 이제서야 막 분위기가 무르익는 참이었는데 다들 간다니까 나서서 말렸다.

그러자 우문호가 손을 내저으며 거절했다. “안돼, 집에 임신한 아내가 있단 말이다!”

서일과 구사도 손을 내저었다. “안됩니다. 저도 집에 임신한 아내가 있어요!”

“안됩니다. 집에 갓난아이가 있어요.”

세 사람은 말 그대로 굴비 엮듯이 줄줄이 꿰어져 자리를 떴다.

냉정언이 일어나자 홍엽이 뿌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냉대인도 집에 임신한 아내가 있는 건 아니겠죠?”

냉정언이 답했다. “집에는 엄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가 계시는데, 전 통금시간이 있어서 너무 늦게 들어가면 안 되옵니다.”

홍엽이 기가 막혀서 툴툴 거렸다. “그래요, 저 혼자만 남는군요!”

“괜찮으시면 우리 집에 가서 저랑 한 잔 더 하시죠.” 냉정언이 청했다.

“사부님께서는?”

“아직 계십니다!”

“그거 잘 됐군요. 당신 사부님은 제 전우 시니까요!” 홍엽이 얼른 일어나 냉정언과 같이 나갔다.

나가자 주막이 둘을 계산하라고 잡는데 냉정언이 못 들은 척하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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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3423화

    공주는 이 말을 듣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정말 그녀가 예상했던 이유와는 너무나도 다른 진실이었기 때문이다.공주는 이내 입을 열었다."하지만 설랑은 만두와 경단과도 잘 지내잖습니까? 심지어 부군을 배척하지도 않았습니다.""배척하지 않았다고?"왕비가 웃으며 물었다."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공주는 순간 이리 나리가 설랑들과 놀던 장면을 떠올렸다. 설랑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를 쫓아다녔다."확신합니다!"공주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왕비가 말했다."집에 가서 설랑들이랑 놀 때, 설랑이 몇 번이나 덮쳤는지 물어보거라. 이리율은 설랑이 복수하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공주는 생각에 잠겼다. 이리 나리가 설랑들과 놀고 나면 항상 옷차림이 더러워져 있었고, 평소처럼 우아한 모습을 잃었었다."하지만 설랑이 그를 다치게 한 적은 없습니다."공주가 나지막이 말했다."설랑에게 이리율도 같은 설랑이니, 해칠 정도는 아니다. 설랑의 젖을 먹고 자랐으니, 냄새를 풍기는 것이지. 하지만 우리가 성격이 모진 사람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마음이다. 가끔 함께 노는 것 정도는 괜찮다."공주는 고민에 빠졌다. 이리 나리가 워낙 설랑을 좋아하니, 이 이유를 직접 그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설랑 무리에게 배척당하고 있다니.이때 원경릉이 허를 찌르는 말을 했다."혹시 설랑들에게 설명하거나 사과로 그 오해를 풀 수는 없을지요?"왕비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생각은 안 해봤구나. 이제 천천히 생각해 보마. 아무래도 오해가 아니라, 진짜 있었던 일이니. 설랑은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라, 이리율의 행동은 이미 설랑 무리 전체에 퍼져 있을 것이다."공주는 의아했다."퍼진다고요? 말도 못 하는데 대체 어떻게 퍼집니까?"원경릉과 왕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공주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못내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어리석다고 하기에는 그녀의 말은 틀린 점이 없었다. 원경릉은 넋을 잃은 공주의 표정을

  • 명의 왕비   제3422화

    마침 이때, 안풍 친왕 부부가 경성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비록 화려한 행색은 아니었지만, 돌아오자마자 흑영 어르신들에게 한 사람당 다섯 냥의 돈을 나눠주었다.공주는 이 소식을 듣고 바로 궁으로 달려가 원경릉에게 알리고는, 설랑에 관해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원경릉도 그들이 돌아와 돈을 나눠줬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마침 안풍 친왕 부부를 뵈러 궁을 나설 계획이었다. 원경릉은 때맞게 찾아온 공주에게 물었다."그렇다면, 같이 가지 않겠느냐?"공주는 흔쾌히 따라가고 싶었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듯 물었다."제가 있으면, 말 꺼내기 힘들지 않을까요?""괜찮다. 안풍 왕비는 네가 있다고 해도 하고 싶은 말은 할 분이시다. 답을 하고 싶지 않으면 모를까.""그것도 그렇네요."공주는 하루라도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기쁘게 원경릉을 따라 궁을 나섰다.숙왕부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다들 활기찼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심지어 원경릉에게 예를 올리기까지 했다. 예전엔 주사를 자주 놓는 황후의 얼굴만 봐도 피해 다니던 사람들이었다.역시 돈이 생기니, 무서울 게 없어지는 법이다.원경릉과 공주는 먼저 안풍 친왕을 찾아뵈었다. 안풍 친왕은 늘 엄숙했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는 원경릉과 공주에게 물었다."오늘 밤 저택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올 것이냐?"안풍 친왕이 직접 초대했기에, 두 사람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물론입니다."그러자 옆에 있던 흑영 어르신이 덧붙였다."가족도 데리고 오십시오. 돈도 저희가 내고 술도 저희가 준비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돈을 벌었으니, 역시나 씀씀이가 컸다.원경릉은 그들의 우정이 부러웠다. 돈이 생기면 다 같이 모여 한 끼 먹고, 명절보다 더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음식도, 재부도, 명예도, 부유함도, 심지어 가난까지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었다.원경릉은 웃으며 고마움을 전했고, 흑영 어르신에게 말했다."예.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시니, 다음에 피 뽑을 땐

  • 명의 왕비   제3421화

    그러자 공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언니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안풍 왕비께 몇 마디 해주시면… 설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왕비가 주지 않는 건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리 나리가 어찌 그에게만 주지 않는지 물은 적 있느냐?"원경릉이 물었다."아마도 물었을 것입니다. 미색의 말로는, 왕비님께 무릎까지 꿇고 부탁했다고 합니다."공주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부군이 무릎까지 꿇었으니 말이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공주, 왕비께 무릎 꿇은 건 큰일이 아니다. 그는 왕비의 제자고, 심지어 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령 설랑을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무릎 꿇을 일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그 말도 맞네요."공주는 그제야 부군과 안풍 왕비의 사이가 떠올랐다. 부마가 왕비께 무릎 꿇었다는 말에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그만 생각하거라. 왕비가 드리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왕비의 뜻을 알아보마."공주는 정말 원경릉에게 고마웠다."부탁 좀 드리겠습니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요즘 너가 이리 나리의 일에만 정성을 쏟는 것 같구나."공주는 장난치듯 혀를 내밀며 웃었다."오라버니의 일이라면, 언니도 신경 쓰겠지요? 오라버니가 혹시라도 아쉬움이 있다면, 아마 언니는 저보다 더 마음이 쓰일걸요?"원경릉은 잠시 멍해졌다. 사실, 그녀는 지금껏 다섯째에게 후회되는 일이 있는지, 아쉬운 것이 있는지 물은 적 없었다. 그동안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다섯째도 늘 좋다고 말했었다. 원경릉의 가족도, 그는 자기 가족이라 했었고, 그녀의 일과 꿈도 끝까지 응원해 주겠다고 했었다. 심지어 그와 함께할 시간이 없어도 괜찮다고만 했었다.그렇게 생각하니, 원경릉은 괜히 우문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공주가 떠난 후, 원경릉은 점심 무렵 어서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어서방에서 우문호와 함께 식사하려 했다. 의논하러 온 대신들도 있기에, 궁에서 식사를 준비했다. 평소라면

  • 명의 왕비   제3420화

    이리 나리는 술이 깼을 때, 하늘은 아직 밝지 않았다. 온 세상이 고요한 밤, 부인은 그의 옆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그는 살금살금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문 앞에 엎드려 자던 강아지가 그가 나오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강아지는 이제 많이 늙어 움직이기를 싫어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꼭 붙어 있으려고 했다.이리 나리는 강아지를 안고 함께 계단에 앉아, 마당의 불빛을 빌어 어두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제법 세서, 초여름 특유의 서늘함이 느껴졌다.그는 턱을 강아지 머리에 기대고 있었다. 강아지도, 그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그는 생각에 잠겼다.그는 한때 설랑봉에 돌아가 설랑을 찾으려 했는데, 설랑은 모두 숨은 것처럼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스승은 떡들에게 줄지언정, 끝내 그에게 설랑를 보내주지 않았다.그의 삶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장사도 잘됐고, 좋은 부인도 만났고, 아이들도 잘 자랐으며, 어머니도 다시 찾았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바로 설랑이 곁에 없다는 것이다.그동안 무릎도 꿇고, 애원하며 무슨 방법을 써도, 스승은 끝내 그에게 설랑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만두와 경단이 기르는 설랑를 대신 바라보며 만족해야 했다.사실 이리 나리는 스승이 설랑을 주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는 정말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심지어 소요공에게도 있는데, 어찌 그에게만 없는 것일까 고민 되었다. 그가 그렇게 미움받는 걸까? 스승이 그렇게 자기를 싫어하시는 걸까?이제 그는 더 이상 스승께 묻지 않기로 해서 마음속 욕망을 억누르려 노력했지만, 설랑 생각이 떠오르면 걷잡을 수 없었기에, 그는 스승이 돌아오면 다시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그에게 설랑만 있으면, 완벽한 삶이 될 것이었다."왜 그러십니까?"이때 공주가 맨발로 나와, 뒤에서 그를 껴안으며 말했다."술에서 깨서,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까? 머리가 아프신가요?""정신이 맑으니, 잠이

  • 명의 왕비   제3419화

    비록 잠시 다른 화제가 생기긴 했지만, 다들 이내 신경 쓰지 않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술이 들어간 남자들은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다들 길에서 보았던 풍경들을 흥겹게 풀어내기 시작했다.그러자 여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들 풍경을 볼 때,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심지어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치기까지 했다. 시장에서 닭싸움 장면을 보고도, 그저 잠깐 서서 바라봤을 뿐, 돌아설 땐 재미없었다고 시큰둥하게 말했었다.하지만 술을 마시니, 술기운에 닭싸움 장면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자세히 묘사했다. 심지어 현장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의 흥분되고 긴장된 기분까지 전했다.물론, 현장에서 보고 있던 관중은 사실 그들이었다. 사실 당시엔 겉으로만 무심한 척했을 뿐, 속으로는 몹시 긴장되었다.너무 웃기지 않은가?여인들은 그런 남자들을 향해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술잔이 계속 오가다 보니, 모두가 흠뻑 취했다. 이리 나리는 그동안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어느 정도 달래고 나서야, 사람들을 돌아가게 했다.공주는 이리 나리가 취한 모습을 보고, 해장국과 따뜻한 수건을 준비해 직접 곁을 지켰다. 비록 부군의 미모가 준수하다는 것은 늘 알고 있었지만, 항상 함께 지내왔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었다. 하지만 오늘 여섯째 형수님의 말을 듣고, 그녀는 다시 진지하게 부군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러다 보니, 이리 나리가 정말로 젊어 보이는 것 같았다.물론 소년 같은 젊음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 거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부마, 당신은 왜 늙지 않는 것입니까?"공주가 부드럽게 물었다.이리 나리가 완전히 취해 잠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낮은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난 설랑의 젖을 먹고 자랐소."그는 취기가 짙게 서려 있는 눈을 천천히 떴는데, 눈빛은 몽롱했고, 흐릿하게 눈앞에 공주가 두 명, 세 명으로 보였다. 이리 나리는 어지러움을 느껴 곧바로 다시 눈을 감았다."설랑의 젖을 마시면 젊어지나

  • 명의 왕비   제3418화

    여정이 고되었는지, 우문호는 급히 궁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일행을 거느리고 이리 나리의 저택으로 가서 술 한잔을 기울였다.연회에서는 경단이 쌀가게를 열었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깜짝 놀랄 줄 알았던 이리 나리는 오히려 잔을 들고 조용히 자랑했다."이미 오래전에 알았습니다. 처음 쌀가게를 열 때부터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하면 화제를 일으켜, 시장을 빨리 차지할 수 있을지 일러주었던 것입니다."그러자 우문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이미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런데 어찌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까?""별일도 아닌데 이리저리 소문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경단이가 큰일이라도 해낸 줄 알고 거만에 빠져 버리면 어떡합니까?"이리 나리가 답했다.우문호는 잠시 멈칫했다. 돌아오자마자 자랑하는 자신을 향한 이리 나리의 공격을 받자, 그는 이내 반격했다."아비의 심정은 아마 모를 것입니다. 자식이 출세하면 온 천하에 알리고 싶은 법이지요.""참나!"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아이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제 자리를 이어받을 것입니다.""그래도 의미가 다르지요.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리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이에 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은 유치한 사내들의 전쟁에 고개를 저었다. 사내들은 정말 사소한 일로도 언쟁을 벌일 수 있었다.그리고 그들과 달리, 여인들의 대화는 몹시 평온했다. 한바탕 서로를 칭찬하고 나니, 원경릉은 문득 이리 나리의 늙지 않는 외모가 떠올랐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보니, 부드러운 불빛 아래, 이리 나리의 피부는 예전보다도 더욱 고와 보였다. 여름이 왔으니, 피부가 조금 그을릴 법도 하지만, 오히려 피부가 더욱 좋아진 것 같았다. 게다가 눈가에는 주름도 없었고, 그저 전체적으로 성숙해 보일 뿐, 늙어 보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원경릉은 시선을 공주에게 돌렸다. 공주는 이리 나리보다 어린 나이지만, 이제는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리 나리의 성숙한 분위기가 아니었

  • 명의 왕비   제3417화

    위왕은 욕심을 부리지도, 바람을 품지도 않았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지나친 욕망은 오히려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예전의 위왕은 오늘과 같은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이 순간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었다.위왕은 한참 웃고 난 후, 자리를 틀고 앉아 작은 책자를 꺼내어 자녀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자식이 워낙 많다 보니, 위왕은 아직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경성으로 돌아가기 전,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썼다.몇몇은 이미 혼인할 나이가 되었기에, 위왕은 이번에 돌아가서 그들의 혼사를 먼저 정해두려고 했다. 올해 바로 결혼하지는 않더라도, 우선 혼사를 정해두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못내 가슴이 아파왔다."위왕이 속상해한다고 생각하오?"원경릉이 물었다."그렇지는 않소. 다만, 그 많은 아이 중에 친자식이 하나도 없지 않소."다섯째가 답했다."그건 중요하지 않소. 정화가 하는 일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오. 그녀가 구해준 아이들은, 모두 새로운 삶과 세상을 시작한 것과 다름없소.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나지막이 말했다."알고 있소."그는 애써 감정을 가라앉히며 말했다."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따라 감수성이 많아지는 것 같소."그 모습에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황제는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되네. 자, 이제 출발할 시간이 되었으니, 어서 준비하시오."명령이 떨어지자, 일행은 다시 길에 올랐다. 다들 타지에 있을 때는 경성이 그리웠지만, 막상 돌아가려니 이 아름다운 강산이 아쉽기도 했다.원경릉은 마차에 오르지 않고 다섯째와 함께 말을 타고 나란히 달렸다."이번에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려 했지만,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소. 1년 반 정도 지나면 그들도 자리를 잡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오. 그때 가끔 경성으로 찾아오면 되지 않겠소? 어떻게 생각하시오?""좋은 생각인 것 같소."원경릉이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다섯째, 아이들을 정말

  • 명의 왕비   제3416화

    일행은 경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그들은 상처 입은 위왕과 그의 곁을 지킨 정화를 데리러 가기 위해 먼저 강북부로 가야 했다.우문호는 강북부로 가는 내내, 위왕과 정화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지 추측했다. 그는 셋째의 삶에 다시 여인이 나타날지 궁금했다.그렇게 강북부에 막 도착했을 때, 위왕과 정화는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서일이 경성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먼저 알렸었던 터라, 위왕은 당장 경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의 상처는 이미 아문 듯하나, 걸음은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우문호는 자신을 위해 저승에 한 번 다녀온 것 같은 위왕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왔다. 이에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다 사양하고, 직접 위왕의 짐을 마차에 실었다. 마지막 여정을 마쳤기에, 그는 급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따라가도 괜찮았다.위왕은 그동안 강북부에 안착해 있었지만, 귀한 물건을 많이 갖고 있지는 않았다. 위왕의 짐이라 하면, 그저 정화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볼 때마다 사두고, 선뜻 선물하지 못한 물건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것을 이제야 한꺼번에 정화에게 선물하려 하니, 마차로 운반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다들 길을 가다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원경릉은 위왕과 정화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위왕과 정화 사이에 특별한 분위기는 없었고, 그저 부드럽고 가족 같은 느낌을 풍겼다. 두 사람이 가끔 서로를 챙기긴 했지만, 시선을 거의 마주하지는 않았다.다섯째도 그 모습을 살펴보고 원경릉에게 말했다."오붓한 우리 부부의 사이에 미치려면 한참 멀었소.""그렇게 비교하면 안 되오. 우리야, 누군가가 뻔뻔하게 달라붙고 있지 않았소?"원경릉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알고 있소."우문호가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당신이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충실한 부하 노릇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토록 사이가 좋을 수는 없었을 것이오. 이렇게 부부 사이의 정을 유지하게 해 준 충실한 부하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해야지 않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

  • 명의 왕비   제3415화

    원경릉도 우문호의 말을 듣고, 너무나도 기뻐,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마 이리 나리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엄청나게 기뻐하실 것이오.""돌아가자마자 바로 전해야겠소. 우리 아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질투나게 해야겠소."다섯째는 신이 나서 말했다가, 이내 멈칫거리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뛰어난 인재는 마땅히 곁에 두어 조정 일을 돕게 해야 하거늘. 훗날 이리 나리를 따라 장사를 하게 하고 싶지는 않소.""경단이가 좋아하는 일이오. 어려서부터 장사를 좋아했지 않소?"원경릉이 답했다."맞는 말이긴 하오."다섯째는 어린 시절의 경단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경단이는 어릴 적, 다른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돈을 벌만큼 장사를 좋아했었다. 사실 경단의 장사 재능은 어려서부터 이미 드러나 있었다.원경릉은 못내 의혹이 있어, 우문호와 함께 거닐며 물었다."하지만, 이리 나리께서는 어찌 집안 장사를 친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시고, 우리 경단이를 후계자로 삼으신 것이오? 장사 규모가 하도 크니, 해마다 얼마나 벌지 상상도 가지 않소. 경단에게 조금만 나눠줘도 적지 않은 돈이네."우문호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답했다."장사 방면에서는 이리 나리가 북당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오. 하지만 재능이라는 것은 모든 이에게 있는 게 아니네. 엄청난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은, 경단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만 해낼 수 있소."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신 말도 일리가 있소.""게다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은 법이오. 이리 나리는 말년이 되어서야 아이를 얻었소. 세월이 지나, 언제까지 자식을 도와줄 수 있겠소? 결국은 돕지 못하는 날이 오기 마련이오. 그리되면, 어마어마한 가업을 넘겨줄 텐데, 탐내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소? 1대가 지켰다 해도, 2대, 3대는 또 어찌 장담하겠소? 차라리 가업과 자식에게 평생 넉넉하게 지낼 수 있는 재물을 남겨주는 편이 더 나을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그의 팔을 가볍게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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