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천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며 날카로운 말투로 소리쳤다. “어디서 감히 고상을 떨어? 늑대골에서는 화장한 뼈 담은 항아리도 썼던 주제에.”그러자 모두가 껄껄 웃었고, 냉정언도 눈웃음을 지었다.사발이 다시 홍엽 앞에 놓이자, 이번엔 홍엽이 받을 수밖에 없어 머지않아 고개를 들고 한 잔을 다 비워냈다. 그러자 구사가 바로 또 가득 따랐다. “계속 마셔!”홍엽이 또 다 비웠는데 급하게 마셔서 그런지 계속 기침을 하는데 홍엽이 죽든 말든 구사는 또 사발에 가득 따르며 외쳤다. “마지막 한 잔!”그러자 홍엽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어질어질한 상태였지만, 손을 뻗어 사발을 잡으려는 순간 냉정언이 가로채 손을 뻗었다. “내가 대신 한 사발 하지!”“됐어!” 홍엽은 ‘고작 세 사발이 뭐 대단하다고?’ 다시 사발을 가져오려 했다.냉정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손대지 마!”냉정언은 곧바로 술잔을 들고 고개를 살짝 젖힌 뒤 술 한잔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세 모금에 한 사발을 다 마셨다. 냉정언은 원래가 우아한 사람으로 사발에 술을 마셔도 군자의 품위를 잃지 않았으나 이렇게 소탈하게 마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홍엽의 눈빛은 자기도 모르게 따듯해져 있었다. ‘냉정언이 알고 보니 의리의 사나이였군.’재상이 술을 대신 마셨지만 아무도 감히 트집 잡을 생각을 못 하는데 우문호만 냉정언을 쓱 째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냉대인이 술이 고팠나 보네. 냉대인에게 건배!”사람들이 우르르 건배하러 냉정언에게 몰려가 너도나도 신임 재상에게 건배를 청했다.냉정언이 사발을 들고 일어나 우문호를 째려보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입을 뗐다. “빌어먹을 태자야!”우문호가 아니라며 손을 내저으며 태자로서 한껏 거드름을 피워댔다. “말하는 것 좀 보게!”접객실에서는 황실의 며느리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얘기 중이었다.그동안 남편들이 어디 낮술 마실 짬이 있기나 했나? 낮술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로, 그동안 뼈가 부서지도록 고생했으니 오늘은 마시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마시고 즐거워서 다행
미색이 턱을 괴며 물었다. “둘째 형님, 남의 인륜지대사에 뭘 그렇게 신경 쓰시나요?”그러자 손 왕비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어쨌든 냉 대인이 지금 재상인데 혼사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작은 일도 신경 써야 할 건 신경 써야 하는 것이야.”요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한테 신경 꺼. 한가해서 그러는 거니까.”손 왕비가 한가한 게 당연한 거 아냐? 지금 희동이도 커서 곁에 붙어있으려 하지 않고 집안일은 별것 없는 데다 싸울 첩도 없다. 손왕은 또 출장을 가서 나름 일을 잘하고 있다니 손 왕비가 매일 고민하는 게 고작 오늘 하루를 또 뭐하면서 보내나였다.손 왕비가 개탄하며, “심심해도 너무 심심해. 뭐라도 할 일이 좀 있나 찾고 있다니까.”“정말 그렇게 심심하면 정화를 좀 도와줘. 거긴 하루하루가 전쟁이던데.” 요 부인이 말했다. 요 부인은 요즘 내내 거기서 돕고 있는데 오늘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모두와 만나고는 싶지만 애들을 내려놓지 못해 안 오려는 정화를 억지로 끌고 와야만 했다.“그래, 둘째 형님. 할 일 없으면 와서 우리 애들이나 좀 데리고 있어.” 정화가 웃으며 말하는데 아이들이 생긴 뒤로 의지할 곳이 있자 사람이 아주 생기로 충만했다. 안색은 아직 좀 안 좋은 게 잠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갓난아이 엄마가 세상에서 잠이 제일 부족하기 마련이다.손 왕비가 말했다. “그래, 내일 갈게.”그러나 그렇게 다정하게 굴지 않는 것은 손 왕비가 아이를 싫어해서가 아닌, 정화의 아이이기에한참을 아이들에게 정을 붙였는데 자기 아이가 아닌 걸 알면 정을 떼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었다.손 왕비가 안 왕비에게 물었다. “언제 강북부로 돌아갈 생각이야?”안 왕비가 입을 열었다. “며칠 있다가요. 왕야의 상처가 거의 나아서 오늘 제가 온 것도 겸사겸사 여러분께 작별 인사도 드리고요!”손 왕비가 어머 하고 놀라했다. “이렇게나 빨리 간다고? 좀 더 있지? 지금 넷째가 다쳐서 아바마마께서도 쫓아내실 리가
“주 어르신은 좀 어떠세요?” 미색이 원경릉에게 물었다.“눈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다른 후유증이 있을지는 아직 잘 몰라. 없기를 바라고 있고.” 원경릉이 탄식했다.원용의가 말했다. “일곱째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어르신이 주씨 집안 사람들에게 명을 내려서 조정 관리가 되지 못하게 했다고 해요. 과거도 보지 말라고. 예전에 소국공 소창 나리 느낌이에요!”“아마 뒷일을 걱정하셔서 그러실 거야. 주씨 집안의 일부는 아주 뼛속까지 나빠 처먹었거든.” 미색이 콧방귀를 뀌었다.주씨 집안은 주 재상 전에 사실 평판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함부로 날뛰는 것으로 유명했고 애초에 주 재상의 아버지는 황위를 넘본 적도 있었으나 말로는 비참했다.이렇게 뼛속 깊이 뿌리박은 야심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게 아닐지 걱정해서 주 재상이 그런 엄명을 내린 것으로 야심을 품지 못하게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원용의가 문가를 보더니 물었다. “사식이는요? 오늘 왜 사식이가 안 보이죠?”“기 상궁이랑 구경하러 갔어. 좋은 비단을 몇 필 사고 싶다던데. 애 낳고 입을 수 있게 옷을 만들겠다며.” 원경릉이 대답했다.사식이가 임신한 뒤로 배가 엄청 불렀는데 아이를 낳고 나면 분명 지금 이 옷은 못 입게 되므로 다시 급하게 새 옷을 지어야 할 것이다.“굳이 당신까지 갈 필요까지 있어요?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되지. 무턱대고 부딪히고 본다니까요. 자기가 임신한 몸인 걸 신경 안 쓰나 봐요.” 원용의는 사식이가 불안하고 걱정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식이는 역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물불을 안 가리는 무모한 동생이었다.“조심할 거야, 전에 착상을 위해 꼼짝도 못 해서 답답해 죽을 뻔했거든. 나가서 좀 돌아다니라고 해. 사식이가 이제 많이 철이 들었어.”원경릉이 이 말을 하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사식이 뿐 아니라 모두가 철이 들어버렸다. 미색마저 처음의 예리함은 없고, 원용의는 어머니가 된 뒤로 상당히 우아하고 차분해지며 점점 일국 친왕비의 풍모를 갖춰가고 있었다.모두가 성장했고 모두가
원경릉의 이런 얘기를 원용의도 미색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미래는 아주 멀리 있으니 눈앞에 있는 것만이 가장 실제적이란 말로 해석했다.우문호는 만취해서 소월각으로 옮겨졌다. 원경릉도 말없이 우문호를 챙기러 돌아갔다.우문호는 침대 끝에 반쯤 엎드려 있고 탕양이 하는 수 없었다는 듯 말했다. “침대에 똑바로 올려드렸는데 이렇게 또 엎드려서 주무시네요.”“이 자세 어디서 많이 보던 자세 같지 않아요?”우문호가 엉덩이를 치켜들고 침대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본 탕양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곤장을 맞았던 초왕 전하와 완전 똑같네요!”“누가 감히 나한테 곤장을 때려?” 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막 손을 휘휘 젓더니 베개 하나를 끌어와서 턱 밑에 괴더니 웅얼웅얼 뭐라고 하다가 그대로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원경릉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내가 챙길 게. 탕양도 적지 않게 마셨으니 가서 좀 쉬어!”탕양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탕양이 가고 원경릉이 우문호의 등을 두드리며, “똑바로 누워 발로 내 배 차겠어.”우문호는 쿨쿨 잠에 빠졌다가 이 말을 듣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침대 한쪽으로 웅크리며 조심조심 돌아눕더니 미안한 얼굴을 보였다. “차?”원경릉이 침대 곁에 앉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안 차. 그런데 어쩌자고 그렇게나 많이 마셨어? 완전 떡이 됐네!”우문호가 히히 웃으며 원경릉에게 외쳤다. “좋아서!”우문호가 자기 가슴을 쾅쾅 치며 술기운을 토해냈다. “좋아서, 오늘 이분께서 기분이 좋으셔서 아주 끝장 보게 마셨지.”우문호가 원경릉의 손목을 잡아끄는데 눈가는 술에 취해 벌겋고 눈은 흐리멍텅했다. “원 선생, 나 기분이 너무 좋아, 알아? 진짜 너무 좋다고!”“냉대인이 재상이 돼서?”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물었다.“그렇지, 수리시설이 엄청 열악했거든. 길을 닦는 것도 열악하고. 전에는 답답해도 참아야 했으니 큰 뜻을 품어도 유명무실했지. 뭐든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우
술을 깨자마자 술이란 말을 들으니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녹주야, 태자 전하께 죽 올려드려!” 원경릉이 일어나 밖에 대고 소리치자 밖에서 녹주의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예!”우문호가 침대에서 내려와 원경릉을 껴안았다. “역시 우리 마누라밖에 없다니까. 내가 배고픈 거 바로 알고 죽도 준비해 주고.”“앞으로는 이렇게 많이 마시지 마요. 몸 상해!” 원경릉은 뒤에서 자신을 감싼 우문호의 손을 꽉 쥐고 머리를 우문호의 가슴팍에 기댔다. “애들이 봐, 애들은 본 대로 배운다고.”“알아!” 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 원경릉 앞으로 돌아와서 원경릉이 방금 쓴 걸 보고는 물었다. “이건 뭐야?”“자기가 술 마시고 한 얘기를 다 적을려고!” 원경릉이 방긋 웃었다. “관계 수리 시설이랑 길을 닦는 거랑. 북당의 미래 발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했어. 아마 자기가 하려는 건 이 두 가지 일이겠지.”“쓸 필요 없어. 내가 다 기억하는 걸!” 우문호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원경릉에게 미소를 띠었다.“자기한테 보여줄 거 아니야. 황조부랑 주 재상이 나더러 정기적으로 보고하라고 시키신 일이야!”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도 따라 웃었다. “어째서? 별장까지 가셔서도 정사를 내려놓지 못하시는 거야?”“평생 신경 써 오시던 건데 내려놓는다고 순간 놓아지겠어? 오해하지 마. 저분들이 자기가 어떻게 하는지 감독하시려는 거 아니니까. 그저 알고 싶으실 뿐이야.”우문호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오해할 게 뭐가 있어? 언제든 당신한테 보고하라고 하시는 건 저분들이 궁중과 조정에 밀정을 남겨두지 않았다는 뜻으로, 오히려 저분들이 정사에 손을 놓으셨다는 말이지.”원경릉이 말했다. “사람을 통해 서신을 보냈어, 이틀 뒤에 나랑 할머니가 같이 별장에 다녀오기로. 주 재상 처방을 조절해야지.”녹주가 죽을 가져와서 우문호가 먹으며 물었다. “주 재상의 눈은 정말 좋아질 수 있을까?”“아직도 그 얘기, 추적을 관찰해야 한다니까!” 원경릉이 한
경단이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빠, 화본에서 그거 유행 지난 지 꽤 오래 됐어요.”우문호가 놀라며 물었다. “유행이 이미 지났어? 그럼 지금 뭐가 유행인데?”경단이가 우문호를 자리에 앉히고 정색하며 말했다. “말씀드릴게요. 그건 아주 오래된 공식으로, 지금은 안 써요. 이 화본의 서생은 경성에 과거를 보러 갔다가 장원급제를 해서 관아에 들어갔죠. 하지만 출신이 가난하고 비천한 관계로 배경이 없어 사람들의 사냥감이 되었어요. 사람들의 속임수에 당하고 이용당하다가 배척당하기까지 해요. 나중에 여자가 그 사실을 알고 가산을 모두 팔아 경성으로 들어오죠. 물론 경성으로 오는 도중에 반드시 기연을 만나 특별한 능력을 배우게 되고요. 예를 들면 절세의 무공 같은거죠. 나중에 이 여자가 경성에 들어와 장원 급제를 도와 맞닥뜨리는 모든 적을 하나씩 다 죽이고 결국 두 사람을 해코지 한 모든 사람들은 다 진멸하겠죠. 그리고 대단원은 둘이 혼인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막 그들이 혼인하는 부분을 보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세요.”우문호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고개를 돌려 어이없다는 듯 원경릉을 바라봤다. “그...... 여자가 상경하는 도중에도 배울 수 있었던 절세무공을 당신은 이리 나리께 그렇게 오랜 시간 배웠잖아. 어디까지 배웠어?”원경릉이 우문호의 목에 손 날을 새우더니 웃으며 말했다. “자기에겐 이걸로 충분해!”우문호가 “아야!”하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 쓰러진 척을 하며 칠성이 다리 위에 누웠다. 칠성이는 포동포동한 손가락으로 우문호의 얼굴을 만지며 장난쳤다. “아빠는 아직도 엄마 못 이기네?”“못 이겨, 아빠는 평생 엄마의 적수가 못 돼!” 우문호가 일어나서 한 손으로 칠성이를 품에 안고, “물론 아빠가 다 양보해서 그런 거지. 진짜 능력은 아빠 손가락 하나로도 엄마를 납작 쿵으로 만들 수 있어.”칠성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도 손가락 하나로 아빠를 납작 쿵으로 만들 수 있어요. 아빠.”우문호가 칠성이를 내려놓고 무표정하게 말했
우문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원경릉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원 선생, 나 내일부터 매일 태부 집에 가서 한 시간씩 있다가 올게.”“태부 집에 가서 뭐 하게?”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살짝 의기소침해져 말했다. “역시 공부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 앞으로 애들이 뭐라고 했는데 또 못 알아들으면 안 되잖아. 이번엔 이매망량이었지만 다음은 무슨 알아듣기 어려운 걸 꺼낼지 모르니까.”원경릉은 그 말에 조금 감동했다. 우문호가 이렇게 자식들을 위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공부하려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사실 부모가 아무리 따라잡으려고 노력해도 결국 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날이 오고야 만다.원경릉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바빠서 다닐 수 있겠어? 매일 한 시진씩 내는 건데. 태부가 알겠다고 한 뒤에는 빠질 수 없어. 어르신이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알잖아.”“괜찮아. 아무리 바빠도 애들이 더 중요하니깐.”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자갈길을 따라 걸으며 말을 이었다. “난 이제 한가해져서 걔들과 같이 있고 싶은데, 걔들이 우리랑 있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오는 게 걱정이야.”“알았어, 난 당신 항상 응원해!” 원경릉이 온화하게 웃었다.우문호는 한 번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으로, 매일 태부를 찾아가 한 시간씩 공부하는 것 외에도 화본을 읽기 시작했다.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 머리가 띵하고 혼미해졌지만 계속 읽어 나가다 보니 결국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2~3권정도 다 본 뒤 경단이와 서로 줄거리에 대해 의견을 내세우며 토론했다. 그 둘은 줄거리를 가지고 얼굴이 다 시뻘게지도록 싸워댔지만 금방 의견이 통일되며 토론하는 나날이 계속 이어졌다.나중에는 다른 아이들도 토론에 참여시키는 데 성공해서 쌍둥이도 곁에 앉아 들으며 재밌어 하는 게 부자가 정말 하나가 된 모습이었다.원경릉은 이 모습에 기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문호가 이번에 아바마마의 중년 ‘모반’에 무엇인가를 느
태상황은 원경릉의 할머니를 불러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원경릉에게 대흥국에서 오신 노부인은 박식하고 말투와 태도가 예의 발랐기에 그녀와 얘기하고 있으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 같이 편했다. 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늘 긴장하고 있어서 내천(川) 자로 깊은 주름이 패인 태상황의 얼굴을 보고 또 보며, “봄바람이 마음에 불어온다고요?”태상황이 한줄기 미소를 보였다. “맞아!”원경릉은 태상황과 우문호 둘이 갑자기 고상해진 게 영 낯설었다. 요즘 우문호는 집에서 말투도 부드럽고 따듯한 게 아주 우아 그 자체였다.원경릉이 말했다. “노인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은 점이 있죠.”할머니도 자신의 친구가 있고 자신의 사교권이 있어야 했다.하지만 이어진 태상황의 물음을 듣고 원경릉의 몰골이 순식간에 헬숙해졌다. “너 노부인의 아명이 뭔지 알아?”“아...... 명이요?” 원경릉은 하마터면 너무 놀라 사레가 들릴 뻔했다.“응, 이름말이야. 과인이 계속 노부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게 호칭 자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잖아.”“할머니께서는 이미 나이가 들으셨어요. 적어도 태상황 폐하보다는 많으시죠!” 원경릉은 ‘천벌을 받으시려고. 태상황 폐하께서 대체 왜 이러시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태상황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말했다. “어디가 늙었다는 거야? 그렇게 안 늙어 보여. 내가 보기엔 그냥 여동생 같아.”원경릉은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었다.“노부인 아명이 뭐야?” 태상황이 꿋꿋하게 물었다.원경릉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일부러 영어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었다. “할머니께서는 주디라고 합니다!”왜인지 모르지만 태상황에게는 할머니의 본명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주딩? 주딩이? 왜 그런 이름으로 지었어?” 태상황이 미간을 찡그렸으나 곧 고개를 갸웃거리고 생각하더니 과찬의 평가를 내렸다. “이 얼마나 겸손한 이름이야. 입은 화를 부르는 뿌리임을 잊지 말라고 강렬하게 표현했군. 그런 뜻 맞지?”원경릉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이 말에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