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색은 양경경의 일 때문에, 특별히 원경릉을 찾으러 궁으로 향했다.그러자 미색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랑스럽고 존경스럽지만, 또 밉기도 한 아버지가 편지를 보내셔서 그 아이를 돌봐달라고 하더군요. 대흥의 공주가 온갖 잡다한 무리와 어울리고 지낸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 무리 속에도 좋은 사람은 있다고 봅니다. 저도 비슷한 부류가 아닙니까? 하지만 그 아이는 저와 달리, 겨우 세 발재간로 이리저리 설치고 다니며, 사고를까지 치지 뭡니까? 아버지한테서 제가 북당에 있다는 것을 듣고는, 무턱대고 장사를 배우고 싶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도저히 그 아이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일단 경단이를 따라다니며 실력을 쌓고, 다시 돌려보내려 합니다. 그때가 되면 시집을 가든, 장사를 하든, 마음대로 하라지요.”원경릉은 조금 놀랐다.“대흥 황제가 걱정하지도 않더냐? 이렇게 홀로 뛰쳐나왔는데, 아무도 뒤쫓아 오지 않은 것이냐?”“대흥 황제로서도 어쩔 수 없지요. 딸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 그저 방임하는 것입니다. 아들만 계속 낳다가, 겨우 얻은 딸이라 어려서부터 애지중지하며, 원하는 건 다 해주다 보니 통제가 안 되지 뭡니까? 저를 찾아온 것도, 대흥 황제가 몰래 사람을 붙여서 호위하게 하고, 저와 인계하고 나서야 호위들을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저 홀로 북당까지 왔다고 생각하며, 어찌나 뿌듯해하던지.”원경릉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그 먼 길을 홀로 오다니, 참 대담한 아이구나. 혹시 오다 무슨 위험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그런 생각을 했더라면, 사람 한 명도 없이, 인사조차 남기지 않고 바로 오지 않았겠지요.”미색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녀는 대흥의 친척들과 같이 오랫동안 지낸 적이 없어서 정이 없었다. 여섯째와 대흥에 몇 번 갔을 때도, 유독 이 조카한테만 정이 갔었다. 그런데 미색의 호감을 알고는, 이렇게 대뜸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역시 친척들과 너무 가까이
경단과 서일은 궁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새카맣게 타고 야위어져 몰골이 말이 아닌 서일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무슨 일이냐? 경단이가 밥도 안 주고 괴롭히기라도 한 것이냐? 돈을 챙기라 해도 듣지 않더니.”“폐하, 이젠 저도 나이가 들어서 둘째 황자를 따르지 못하겠습니다.”서일은 햇볕에 그을려, 잔뜩 벗겨진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날씨가 얼마나 독한지, 그의 고운 피부가 다 벗겨지고 말았다.“황자들 곁에 믿을 만한 자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우문호는 곧장 사람을 시켜 약을 가져오라 명한 뒤, 서일의 얼굴에 약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다과를 준비시켜, 서일과 함께 자리에 앉아, 서일의 억울함을 들어주었다.사실 우문호도 오래전부터 그들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려 했었다. 다들 경성에 남게 되었으니, 작위를 봉하지 않고 저택을 하사하지 않더라도 각자 어느 정도 일을 도맡아야 했기에, 곁에서 도울 사람이 꼭 필요했다.태자는 무상황이 모든 것을 챙겨주고 있고, 태자 자신도 계획이 있으니, 걱정할 것 없었다.“그 일은 이미 탕 대인에게 맡겼다. 경단의 곁에 둘 사람은, 장사를 하는 원가에서 찾기로 했다. 탕 대인의 말로는 원가 자제가 마땅한 자리를 찾아달라 부탁했다더구나. 나이도 경단과 비슷하니, 며칠 지나 만나보게 할 셈이다.”“한 명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서일은 둘째 황자의 체력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둘째 황자의 모습을 보니, 이 한 명으론 한 달도 못 버틸 것이었다.“미색이 추천한 자가 또 있다. 대흥 출신으로, 장사에 흥미가 많고 억지라 할 순 있지만 또, 아주 먼 친척이라 할 수 있지.”서일은 좋다고 생각했다. 원씨 집안 사람들은 똑똑하고 성실하고, 회왕비가 추천하는 사람도 믿을 만한 인물일 것이다. 게다가 경단은 아직 작위나 저택이 없어, 여전히 궁에서 지내고 있었다. 궁에는 궁인들이 시중들고 있으니, 궁 밖에 두 사람 정도 배치하면 충분했다.서일은 궁에서 배불리 얻어먹은 후, 바로 부인과 아이를 보러 집으로 돌
경단은 경성 사업의 시작을 매화장의 운석을 파는 일로 정했다.하지만 광산 채굴에 필요한 절차가 많아서 채굴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광산은 사적 소유이고, 소유주가 다름 아닌 태상황이기에, 복잡한 절차도 쉽게 해결되었다.경단은 스스로 신분상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사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 법이다.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쓰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단은 그렇게 청렴결백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리고 장사꾼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니, 창피해할 것도 없었다.동궁 수리를 위해 운석을 사야 했다. 적어도 궁 앞에 새로 조각해야 할 두 마리 석사자에 쓸 운석이 필요했다.내부 건축에 쓸 석재는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매화장 운석이 필요가 없긴 했지만, 경단은 간신히 문 앞 석사자 조각에 매화장의 석재를 사용하는 데에 성공했다.이 소식이 퍼지자, 아직 광산을 채굴하기도 전, 이미 여러 석재 상인이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광산 장사는 1~2년 정도만 해도 수익이 났지만, 경단의 계획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일단 첫 장사로 석재를 선택했으니, 직예도 개발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경단은 서일과 설랑을 데리고 직예로 향해, 근처에 있는 산을 탐사하기로 했다.서일은 말을 타고 경단을 따라가며 생각했다. 황제의 곁을 지키는 호위 무사는, 늘 황제 곁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이젠 황자들에게도 충성스러운 신하를 마련해줘야지 않겠는가?황자들 변방 도성에서 지내며, 옆에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있었는데, 경성으로 오면서 그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그래도 서일은 둘째 황자와 나서는 것이 그렇게 고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어린 황자가 장사를 핑계 삼아 나들이를 간다고 생각해서 이참에 놀고먹으면서, 사식을 놀라게 할 겸, 살이나 찌우기로 결심했다.이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니, 서일은 말을 타는 것도 여유롭게 느껴졌다.하지만 직예에 도착하자, 서일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경단은 말솜씨가 뛰어났다. 아바마마와 황조부를 비교할 때도 근면함을 언급했으며, 이는 정말 거짓이 아니었다. 사실 명원제도 자기가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이어 경단은 황조부가 재위할 당시의 업적들을 언급하며, 존경과 찬사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삼대 거두가 칭찬했다는 말도 중간중간 곁들였다. 명원제가 황제의 자리에 있을 때, 나라의 기반을 세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북당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경단의 말을 들은 명원제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지난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과거에 북당을 위해 온 힘을 쏟았고, 게으름과 안일함에 빠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늘 한 치의 방심도 없이, 자신을 단속해 왔고, 의지를 잃을까 걱정했었다.그는 감정이 격해졌고, 경단을 더욱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참 세심한 아이가 아닌가?경단은 명원제의 눈빛을 보고, 그의 마음을 단번에알아차릴 수 있었다. 경단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할아버지, 듣기론 매화장 뒷산이 한백옥으로 되어있다던데… 정말 사실입니까?”그 말에 명원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숙부에게서 매화장을 사들인 이유가 바로 그 한백옥 때문이었지만, 나중에 보니 속은 것이었다.“그래.”그는 대충 얼버무렸다.경단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축하드립니다. 산 전체가 한백옥이라니, 정말 큰돈의 가치가 있을 겁니다.”“별로 값어치도 없다.”명원제가 어색하게 답했다.경단은 눈을 크게 떴다.“어찌 값어치가 없습니까? 요즘 북당의 경제가 좋아져, 부잣집에서 한백옥으로 기둥과 난간을 만들고, 심지어는 그릇과 잔, 탁자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한백옥을 얻으려 산도 옮길 정도인데, 그런 산 전체를 갖고 계시니, 정말 대단한 부자시지요.”예전엔 궁이나 중요한 조정 관리의 저택에서만 한백옥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엄격하게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닌, 돈만 있으면 모두가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경단이 매화장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 광산 때문이었다. 물론 황조부를 달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임무였다.
주 어르신은 명원제가 그저 조용한 삶을 원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니, 무상황이 굳이 간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날 저녁, 호태비가 예를 올리러 왔다가 사실을 털어놓았다.사실 명원제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음식이든 감정이든 모든 욕망을 억누르고 있어 거의 병적인 상태에 이르렀다고 전했다.“예전에 황후가 맥을 짚으러 오려 했지만, 그저 거절하고 예만 받으시고 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호태비는 난감했다. 그녀는 이런 생활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매화장이 너무 고요하다고 생각했다. 매화장은 그에게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봄이면 산에 꽃들이 만개했지만, 명원제는 구경은커녕 그저 하인에게 꽃을 꺾어 꽃병에 꽂아두라고만 했을 뿐이었다.무상황은 호태비를 바라보며 말했다.“감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내가 이야기해 볼 테니 그만하고 이만 돌아가거라.”호태비는 무상황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고, 예를 올린 뒤 자리를 떠났다.태상황은 고민에 빠졌다. 감정에 병이 생기는 것은 그도 들은 적이 있었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조차 잃는 병 말이다. “내일 태상황과 바람을 쐬러 나가는 것이 어떻소?”소요공이 말했다.주 어르신이 답했다.“먼저 이야기를 나눠보고, 마음속에 담아둔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봐야 하네.”“마음속에 담아둔 문제라...”무상황은 한참을 생각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알 것 같네.”자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항상 부모님인 법이었다. 특히 무상황은 어린 명원제를 직접 돌보았기에, 성격과 생각까지는 어느 정도 다 꿰뚫고 있었다.주 어르신과 소요공이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무상황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다섯째가 이렇게 나라를 잘 다스리는 걸 보고, 황제의 자리에서 그만큼 해내지 못한 내가 마음에 걸리는 것뿐이지. 업적을 이루고 싶었지만, 해내지 못해, 자기가 쓸모없는 존재라고 자책하고 있는 것이네.”주 어르신과 소요공은
삼대 거두는 억울하고 허탈한 마음이 가득했다. 마치 온갖 고생 끝에 밥상을 차려놨는데, 한 입도 못 먹고 치워진 느낌 같았다.그래서 그런지 다들 이젠 황후에게 맞설 엄두가 나지 않은 듯했다. 원경릉이 얼굴을 굳히면, 그녀의 할머니와 똑 닮아서 꽤 무서웠다.삼대 거두는 그저 원경릉이 원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 동궁을 다시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동궁 수리를 감독하는 권한을 빼앗긴 후, 이들은 다시 심심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나이가 들어, 다들 함께 모여 지내고 있지만, 그동안 워낙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녀서 더 이상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아이들을 돌보자니 이미 다 컸고, 혼사를 도우려니 아직 일렀다. 게다가 아이를 돌보거나 혼사 준비 같은 건, 그들 같은 늙은이들이 할 일이 아니었다. 이건 너무 길가의 잡담하는 아주머니 같지 않은가? 위엄이 깎이는 일이었다.결국, 삼대 거두는 명원제의 매화장에서 한동안 머물며 산책도 하고, 풍경도 즐기며, 여유를 즐기기로 결정했다.삼대 거두는 희상궁을 데리고 매화장으로 출발했다.그리고 가기 전에 명원제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마차를 타고 바로 들이닥쳤다.태상황인 명원제는 이미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들은 군영으로 갔고, 매화장에는 명원제와 호비만 하인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복잡한 경성을 떠나, 이곳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 궁의 일도 가끔 누군가 와서 전해줄 뿐이었다. 나라도 안정되고, 다섯째도 가정이 화목하니, 명원제는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었다.은둔 생활은 사실 누구나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길어야 1~2년 정도는 괜찮지만, 오래되면 결국 화려했던 생활이 그리워지는 법이다.하지만 명원제는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황제로 지내는 동안 너무 분주하게 살아온 탓에, 그는 이렇게 조용히 지내는 것을 늘 꿈꾸고 있었고,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명원제는 오히려 누가 찾아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아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