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장의 수가 놓인 화려한 곤룡포가 명덕전 대리석을 쓸고 지나갔다. 명덕전 황색 비단이 살짝 흔들리고, 용이 조각된 기둥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황실의 기세와 위엄을 드러냈다. 황제의 용상은 지척에서 조용히 우문호와 원경릉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황제와 황후가 들어서자 문무백관들과 귀빈들은 순서에 따라 명덕전으로 들어와 예부 관리의 지휘 아래 여러 차례 무릎을 꿇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황제의 보좌 앞에서 곤룡포를 펄럭이며 몸을 돌리자, 과거에 친구였든 신하였든 지금은 모두 바닥에 엎드려 군신의 예로 알현하고, 삼궤구배(三?九拜)로 절하며 큰소리로 만세를 외쳤다!우문호는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보위에 오른 기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오직 황제와 신하의 경계가 분명함만 느껴질 뿐이었다. 원경릉은 그런 우문호의 손을 꼭 잡고 힘을 실어주었다.우문호는 덕분에 한껏 감정을 추스릴 수 있었다. “일어서..라!”하지만 목이 메인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러자 문무백관들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주 재상이 책봉 성지를 선포하는데 새로운 황제가 등극했으므로 연호를 경초로 바꿔 우문호는 경초제가 되었다. 태상황은 성덕대인무상황이 되고, 명원제는 지성효성태상황이 되었다. 황귀비는 의덕모후황태후으로 봉서궁을 하사받았으며, 주 황후는 경민성모황태후로 황실 별장을 하사받았다.적귀비는 귀태비로 성모황태후와 함께 별장에 살도록 했다.손왕과 위왕의 어마마마는 자안귀태비로, 나머지 명원제의 비빈은 전부 태비로 봉했다. 이에 죽은 나귀빈도 아홉째 순왕의 어마마마이기에 나태비로 추존되었다.현비는 경유황태후로 추존되었는데 경유의 시호는 우문호 자신이 직접 붙인 것으로 현비가 경외함과 유순함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명덕전에서 원경릉을 북원황후로 책봉했는데 이 봉호도 우문호가 직접 붙인 것으로 북당 황제의 원황후란 뜻이었다. 원은 정실이란 뜻도 있고 황제의 유일한, 단 하나의 황후란 뜻도 있었다. 그렇기에 내일 거행될 황후 책봉례와 동시에
효성 태상황의 인생이 드디어 새로운 궤도에 접어들어 다른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원씨 집안 네 식구도 명덕전 밖에서 소름이 쫙 끼치며 이 행사를 가만히 지켜봤다.모든 사람의 이목이 쏠린 그 사람이 그들의 손자사위이자 사위이고, 매부이기에 이 자긍심은 그들이 어디 있더라도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을 게 분명했다.성루에 횃불이 계속 비췄고 저녁이 되도록 불꽃은 계속 타올라 백성은 너도나도 거리로 나와 축하대열에 참여했다.즉위식 당일 저녁 연회는 다음 날 저녁으로 미뤄졌는데 내일이 바로 우문호가 고대하던 황후 책봉례를 진행하기 때문이었다.그렇기에 오늘 밤 우문호는 여전히 동궁에 머물렀다. 궁에서 더는 황후의 궁과 황제의 침궁을 나누지 않았다.방덕전을 소월궁으로 명칭을 바꾸어 앞으로 이 소월궁이 두 사람의 침궁이 된다.소월궁은 이미 모든 것을 새것으로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새 용봉 이불에 여기저기 붉은색으로 ‘기쁠 희’자 를 붙여놓아 어느 모로 보난 신방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효성 태상황은 황제 부부에게 인사를 올린 후 매화장으로 옮겨 오늘 밤은 젊은 남녀가 광란의 밤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하지만 효성 태상황 생각은 틀렸다. 광란의 밤이 아니라 늙은 이목이 쏠린, 무상황을 필두로 한 노인 남자들이 유례없는 열정을 뽐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황후 책봉례와 혼례 준비에 큰 행사부터 작은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조사하고 확인했다. 특히 내무부가 준비한 용봉 화촉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며 제일 큰 걸로 바꿨다. 신혼 초야의 화촉은 꺼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원경릉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동서들이 내명부 부인 등을 데리고 와 동궁을 물 샐 틈 없이 둘러싸는 바람에, 원경릉은 화장할 때 엄마가 가져온 화장품을 썼는데 아주 고급이라 내명부 부인들이 보더니 이구동성으로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며 집에 하나 두어야겠다고 했다.원경릉은 그저 자신의 대모께서 가져오셨
여럿이 원경릉을 부축해 일으킨 뒤 기다란 봉황의 꼬리를 드리우고 한 바퀴 걸어보는데 안풍 친왕비가 들어와서 원경릉을 자세히 보더니 칭찬을 건넸다. “정말 예쁘다!”모두 예를 취하며 안풍 친왕비를 맞이했다.안풍 친왕비는 손에 든 비단 상자를 원경릉에게 건넸다. “두 사람이 혼인하는데 나도 뭔가 선물하고 싶었어. 근데 마땅한 게 없더라고. 이 귀걸이라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원경릉이 감사히 받으며 비단 상자를 열었는데 상자 안에는 한 쌍의 이쁜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모두 다가와서 보더니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풍 친왕비의 걱정과 달리 정말 예뻤다. 한 쌍의 물방울 다이아몬드 귀걸이로,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보기 드물게 컸다. 가운데에 놓여진 다이아몬드는 물방울 모양이나 백금 조각이 복사꽃 모양으로 빙 둘려 있었다. 귀걸이가 마치 복숭아 같은 모양처럼 생겼는데, 빛에 비추어 보면 다이아몬드가 휘황찬란하고 옆에 조각은 같이 빛을 반사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을 타고 복사꽃이 흘려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이 물방울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원경릉의 오늘 메이크업과 매우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이 귀걸이를 하고 가면 정말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하지만 원경릉은 한번 보더니 귀걸이를 얼른 안풍 친왕비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전 받을 수 없어요. 이건 너무 귀한 거잖아요..”안풍 친왕비가 귀걸이를 꺼내 들고 상자를 냅다 버려 버리더니 원경릉을 앉혔다. “앉아, 내가 해 줄게.”“그…. 그건 안 돼요. 이건 정말 너무 귀해 보여요.. 왕비 마마께서도….” 원경릉은 안풍 친왕비 본인도 부유하게 살지 않고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지내는데, 이 다이아몬드는 가치만 해도 상당해 보였다. 만약 현대라면 순도가 이렇게 높고 흠이 없는 다이아몬드를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답게 세공하려면 20억 아니 200억이 들 정도였다. 원경릉은 보석 업계에 대해 모르지만 대충 들은 게 있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풍 친왕비는 굴하지 않고 원경
하지만 원경릉은 여전히 이 귀중한 선물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가격을 모르지만, 자신은 대략 알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수십 수백억의 가치라 원경릉은 차마 받을 수 없었다. “왕비 마마, 혼례를 마치고 귀걸이는 돌려 드릴게요.”“가져, 농담이 아니라 이 귀걸이는 두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야. 앞으로 황제와 황후가 마음을 합쳐 북당을 잘 다스려준다면 내게 있어 그 가치가 천 쌍의 귀걸이보다 더 클테니까.” 안풍 친왕비가 힘차게 말했다.“원 언니, 그냥 받으세요. 이건 왕비 마마의 성의니깐요.” 원용의도 이 귀걸이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거라는 것을 알고 옆에서 말을 보탰다. 원경릉이 가지면 자신은 한 번씩 와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모두 원경릉에게 받으라고 권하는 바람에 결국 진심으로 감사하며 진귀한 귀걸이를 받겠다고 했다. 웃어른이 준 결혼 선물을 무르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길시가 되었다.우문호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와서 신부를 맞이했다. 원래 친영례는 생략할 수 있는 절차였으나 우문호가 하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 결국 친영례를 하게 되었다.붉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원경릉이 나가자 사람들의 물결이 인산인해를 이뤄 환호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컸다. 원경릉은 마치 구름을 밟듯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나왔다. 우문호가 큰 손을 뻗어 원경릉의 손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 넣고 원경릉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것같았는데 사람들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특히 제왕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누가 보면 제왕이 혼인하는 줄 알 정도였다. 원경릉은 수 많은 사람들 중 자신의 아이들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붉은 면사포가 덮여 있어 아이들을 보지도 못하고 대열을 따라 앞으로 걸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천지에 절을 올리는 곳은 천문궁으로, 원경릉은 전에 한두 번 와본 적 있었지만, 붉은 양탄자가 문 앞까지 깔려 있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손에 이끌려 앞
천지에 절을 올리는 예식을 마친 뒤 원래는 신방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누군가 황후를 책봉하는 성지를 펼쳤다. 우문호는 원래 이렇게 줄 생각이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저 사람 손에 줬어?’화가 나서 고개를 들어 책봉 성지를 건네는 손을 붙잡고 크게 소리쳤다. “너 이 손….”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무상황이었다.그 순간, 장내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모두의 눈빛이 우문호와 우문호가 잡은 손을 바라봤다.우문호가 어색하게 손을 놓았다. “황조부!”무상황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이 책봉 성지는 얘한테 주는 거 아니었어?”“당연히 원 선생에게 주는 거죠.” 우문호가 말했다.“그런데 왜 막아?” 무상황이 물었다.우문호는 어금니가 다 욱신거렸다. “안 막았습니다.”‘너무 아무렇게나 주잖아. 이렇게 아무렇게나 줘도 돼? 이렇게 주는 게 무슨 의식이냐고.’“그럼 됐어, 원이니 받아. 앞으로 네가 다섯째의 황후다.” 무상황이 함박웃음을 지었다.원경릉이 받아 들고 약간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예식이 정신없었으니 우문호도 화가 났었겠네.’그러든 말든 무상황은 즐거웠다. 다섯째의 혼례를 자신이 주관했고, 다섯째의 황후도 자신이 책봉하게 도와줬다. 더불어 황제와 황후의 예식도 마쳤겠다, 효성 태상황도 황제와 황후의 절을 받았으니, 몸을 뺄 적절한 타이밍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은 것이 혼란한 틈을 타 빠져나가려 했다. 태감은 효성 태상황의 가마가 움직인다고 고함을 질렀으나 징 소리와 북소리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하고, 덕분에 효성 태상황은 매끄럽게 궁에서 떠날 수 있었다.그러나 안왕이 지켜보더니 아바마마의 병색도 전혀 위중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여기며 따라갔다. “아바마마….”효성 태상황이 안왕을 보고 말했다. “너 마침 잘 왔다. 아바마마를 매화장까지 보내 다오.”안왕이 놀라서 대답했다. “아바마마 오늘 가시게요?”“오늘 갈 거야, 이미 준비도 다 했어. 구사가 나서서 호송할 필요 없으니, 네가 해. 과인
일행이 탄 마차가 성을 나가자 규정에 따라 드나드는 사람을 검사를 해야 했다. 마차의 가리개를 젖히고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 수문장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효성 태상황이 성문을 나서는 것을 배웅했다.다행히 뒤를 돌아보는 효성 태상황의 눈가에 뿌듯함과 따스함이 배어 나왔다.안심이다!궁에서는 목여 태감이 매화장 방향을 향해 무릎을 꿇고 세 번 절을 올린 뒤 눈물을 흘렸다. ‘태상황 폐하, 안심하세요. 황제 폐하를 기필코 잘 모셔서 태상황 폐하를 근심시키지 않겠습니다.’밤이 되자 젊은이고 노인이고 전부가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다. 새로운 황제의 축하연이 드디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성루에는 횃불이 타오르고 백성들의 경축 행사도 최고조에 이르러 이리 나리와 경조부가 복지 차원으로 경성의 모든 집에 고기를 한 근씩 나눠줬다.성 밖에는 죽 배급소를 설치해, 새로운 황제와 황후의 혼례를 경축하는 의미로 앞으로 사흘간 쉬지 않고 만두와 뜨거운 죽을 나눠주었다. 처음엔 다들 황제와 황후가 벌써 혼인을 한 사이라 황후 책봉식은 그냥 의식에 불과하다고 여겼으나, 경조부와 이리 나리가 복지 혜택을 집집마다 누리게 한 결과 온 거리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비록 혼례식은 혼란스러웠으나 궁중 피로연은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연회석에 맞춰 앉아 술잔이 오가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해 연회는 한 시간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둘 취해갔다.무상황도 거의 취할정도로 마셔서 주디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았지만, 오늘 밤만은 그도 겁나지 않았다.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 주디가 말리면 그건 새로운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무상황은 옆에 있던 소요공을 부여잡고 딸꾹질하더니 홍시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십팔매, 나이 들어도 누가 잔소리해 주는 게 좋네 좋아.”소요공이 눈에 불을 켜며 무상황을 밀치더니 쩌렁쩌렁 울리게 말했다. “과음하셨어요. 폐하는 무상황이신데 누가 폐하께 잔소리합니까?”무상황은 여성스럽게 손짓하고 배시시 웃었다. “그런게 있어,
새로운 황제가 보위에 오른 후 무상황 일행은 숙왕부로 다시 이사를 가, 그들의 불타는 노년 라이프는 계속되었다.원경릉 부모는 이곳에서 한 달여 시간동안 머물었는데, 원경릉은 그들을 데리고 많은 곳을 놀러 다니며 북당의 풍토와 사람, 북당의 수려한 풍광을 누리고 견문을 넓혀드리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돌아갈 때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경호가 뚫려 있어 또 만날 기약이 있으니 안심했다.원경주는 현대에서 준비해 온 카메라로 혼례 전 과정을 몰래 찍었는데, 나중에 두 사람이 보고 싶을 때마다 보기 위해서였다.우문호는 역시나 좀 바빠졌다. 역시 등극 초기라 처리할 일이 많았지만, 매일 밤에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같이했고, 솔직히 말하면 태자이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그때와 비교하면 원경릉이 우문호보다 바빠졌다. 원경릉은 할머니를 도와 의료 개혁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의료 개혁은 우문호가 보위에 오른 뒤 시행하는 주요 정책으로 의료의 중요성은 의식주에 버금가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의료 개혁에는 선결 조건이 있었다. 바로 국력이 충분히 강해야 한다는 것으로 경제도 확실히 손에 잡히는 결실을 거두도록 진행해 나갔다.그래서 우문호는 이리 나리한테 눈을 돌리게 되었다. 냉 재상 등과 상의하자 이리 나리가 호부시랑직을 맡았으면 하고 관리들이 건의했다. 호부는 국가 재정을 맡아 지금 이미 상서가 있고 두 명의 시랑이 있는데 우문호는 세분화해서 이리 나리에게 경제 활성화 부분을 담당시키려는 것인데, 까놓고 말하자면 이리 나리의 사업수완을 빌어 나라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것이다.하지만 이것도 여의찮은 것이 이미 이리 나리는 여러 개의 직책을 겸한 데다 조정에 도움을 주는 일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단 호부시랑직을 맡으면 막대한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기에 곤란해지고 만다. 나라의 관리는 장사를 할 수 없다는 조정의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 끝에 우문호는 이리 나리를 궁으로 오라고 한 뒤 세세한 얘기를 나눴다. 바로 호부 시랑으로
이리 나리의 시종이 평범한 시종일 거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 늑대파 정예 중에 선발한 무림의 고수로 이리 나리 시종은 출궁하자마자 말을 타고 목여 태감을 멀찍이 떨어뜨렸다. 목여 태감은 따라잡지 못할 것을 알고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방향을 바꿔 말을 달렸는데 바로 혜민서로 황후를 찾아갔다.공주가 이 북당에서 누구 말을 제일 들을까? 그야 당연히 황후이다.이리 나리의 시종이 제아무리 빨리 가서 문을 다 걸어 잠가도 황후가 가는 이상 열지 않을게 분명했다. 목여 태감은 먼저 혜민서에 도착해 원경릉에게 상황을 전해주었는데, 황후가 된 지 3개월 된 원경릉은 이전처럼 바깥을 다니는 게 익숙해서 가만있지를 못했기에 우문호와 일심동체로 나라와 관련된 일이란 소리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 내가 가서 얘기할게.”이리 나리는 현재 장사의 대부분을 사람을 시켜 살피게 해 정작 본인은 한가했는데, 꿀벌처럼 바빠야 사람들이 보기에 나라가 융성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실감할 것이므로 그가 조정 일을 하는것에 원경릉은 특히나 찬성했다. 원경릉이 바라는 의료 개혁을 이루려면 경제적 중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었다.궁에서 바둑을 두던 두 사람도 품은 마음이 각각 달랐다. 우문호는 자기가 승기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리 나리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숨겨져 있는 것이 그윽한 눈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문호는 이리 나리의 표정을 보고 왠지 작전에 걸려든 건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조건을 놓고 보면 그럴 리 없었다. 령이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고, 이리 나리는 령이가 동의하면 하겠다고 했으니 이 일은 분명 자신이 이긴 셈이었다.‘그런데 이리 나리의 저 웃음은 대체 뭐지?’한 편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한 편으로는 바둑판에서 대마를 포위해 이리 나리를 연속으로 몰아붙였다. 이리 나리를 깨끗하게 다 털어버린 줄 알았는데 역습을 당해버려 우문호는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폐하 지셨습니다!” 이리 나리가 여유만만하게 찻잔을 들고 진하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