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식이는 주명취를 발견하고 그녀의 뒤에 조용히 서서 그녀를 지켜보았다.주명취는 차갑게 웃으며 “사식, 너는 내가 정말 불을 지를까 무섭니?”라고 물었다.“당신은 불 못 지를걸요?”“그럼 여기까지 나를 따라온 이유가 뭐야?” 주명취는 고개를 돌려 사식이를 보았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광기가 서려있었다.“당신을 따라온 게 아니라 여기 경치가 좋아서 온 겁니다.”지금 손왕부의 모든 출입문이 닫혀있기에 손왕부 내에 위험인물은 주명취 뿐이었다.주명취는 정원 한 귀퉁이에 노랗게 시든 나무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나무가 시들어서 좋아. 다 시들어서 없어졌으면 좋겠어.”주명취는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사식이를 보았다.“여기 앉아. 서있으면 얼마나 힘드니?”사식이는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주명취는 차갑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사식이를 보았다.“너는 사람이 절망의 끝에 다다르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사식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명취를 보았다.주명취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귀 옆으로 흘러나온 머리를 쓸어 넘겼다.“내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1년 전만 해도 난 주씨 집안에서 가장 총명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였지. 내가 초왕비가 될 수도 있었는데, 내가 적자인 제왕을 택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지 뭐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제왕이 태자가 될 줄 알았어. 난 그럼 태자비가 되었을 것이고, 그럼 난 이 나라에 국모가 되었을 텐데……”“그럴 그릇이 안 되는데 야심만 커서 뭐 합니까?” 사식이가 차갑게 말했다.“네 말이 맞아. 야심만 컸지.” 주명취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식이를 보았다.“근데 이건 사실 야심의 문제가 아니야. 누구나 마음속에 원하는 게 있어. 사식이 너는 야심이 없니? 원하는 게 없어? 원경릉이라고 부처일 것 같아? 걔도 야심이 없을까? 사람이라면 모두 마음속에 야심 하나쯤 다 있단 말이야. 어쩌겠니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을……”“그것 또한 당신의 선택이니 누굴 탓할 수 없죠.”주명취는 사식이의 말을 듣고
사식이는 주명취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그녀가 단도를 드는 순간 사식이가 달려들었다.“멈춰! 죽으려거든 딴 데 가서 죽……어!”주명취 자신을 향하던 단도가 순식간에 방향을 돌려 사식이를 겨누자 사식이 급히 달려가 단도를 빼앗으려 했다. 가녀린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어찌나 세었는지 사식이는 주명취의 반항에 온 몸이 휘청였다. 그 순간 주명취가 손을 빼 단도로 사식이의 복부를 찌른 후 빠르게 도망갔다.사식이는 그녀의 뒤를 쫓기 위해 달렸으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너……”주명취는 차갑게 웃으며 쓰러져있는 사식이를 보았다. “사람이 절망에 다다랐을 때는 눈에 뵈는 게 없는 법이야.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증오하는 사람이든 다 죽여서 데리고 갈 거야.”주명취는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가 측문을 열었다.“들어오시게.”사내 몇 명이 들어오더니 허리를 굽히고 빠르게 손왕부 안으로 뛰어들어왔다.대청 안에서 기다리던 원경릉은 바깥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갑자기 왜 이렇게 어지럽지?” 문경공주가 관자놀이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나도 머리가 아파.” 진평공주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원경릉은 고개를 번쩍 들어 발자국 소리를 따라 귀를 쫑긋 세웠다. 발자국 소리가 몇 번 크게 울리더니 손왕부 마당에 멈춰 선 것 같았다.원경릉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제왕부에 불을 낸 것은 함정이었어!’원경릉은 병풍 뒤로 들어가 약상자를 안에서 날카로운 수술칼과 후추 스프레이를 꺼냈다.약상자를 오래 사용하니 이제 약상자도 원경릉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았다.그녀가 병풍 밖으로 나오자 밖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그 소리를 듣고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무서워 벌벌 떨었다. 손왕비가 밖으로 나가 상황을 보니 처음 보는 사내들이 칼을 들고 부중의 하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하인들이라고 해봤자 음식을 하는 하인, 정원을 가꾸는 하인, 목욕을 시키는 하
“네 목적은 나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 필요 없이 나를 여기서 죽이든지 나를 데리고 나가!”원경릉이 주명취에게 다가가 소리쳤다.그녀는 주명취가 그 자리에서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죽이려고 했으면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을 텐데 이렇게 소란을 피울 이유가 있었겠는가.주명취의 눈이 반짝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그게 무슨 말이죠? 저 사람들은 잔치집을 털러 들어온 강도 아닙니까? 저 사람들하고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럽니까? 무고한 사람을 연루시키지 말고 저 사람들을 따라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뭔 쓸데없는 소리야. 같이 가자고!” 주명취가 다가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초왕비, 저기 향로를 봐, 내가 방금 약을 탔거든? 네가 저 사람들만 잘 따라간다면 내가 여기 남은 손님들에게 해독제를 줄 것이야.”원경릉은 대청 가운데에 위치한 금빛 향로에서 희미하게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공주들은 이미 눈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있었고, 손왕비도 눈이 풀려 휘청거렸다.“데려가!” 주명취의 명령에 사내들이 원경릉을 에워쌌다.“주명취 네가 나를 죽이면 너도 죽는 거야!”원경릉이 소리를 지르자 주명취가 음흉하게 웃었다.“내가 죽는 게 무서울 것 같아? 죽는 게 무서웠으면 이렇게 하지도 않았지…… 널 죽이고 제왕도 죽이고, 우리 사이좋게 황천길에서 만나자고.”“네 죄로 남은 가족들이 죽어나갈 것은 생각도 안 하는구나?”“그들이 죽든 살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주명취가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원경릉은 사내들에 힘에 못 이겨 질질 끌려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떠나면서 뒤돌아 손왕부를 보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손왕비가 휘청거리더니 바닥으로 쓰러지자 원경릉은 정원에 숨어있던 하인들에게 소리쳤다.“나를 쫓아올 필요 없으니 빨리 사식이를 찾아!”원경릉은 열린 측문으로 끌려가다가 골목에 세워진 마차에 집어던져졌다.잠시후 주명취가 그 마차
멀리 있는 향로에 독을 넣었다는 말에 원경릉은 마음이 놓였다. 만약 주명취가 해독제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소량의 독은 황실의 어의들이 충분히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원경릉은 주명취가 하라는 대로 충실히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주명취의 광기 어린 편집증에 원경릉이 맞서 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주명취는 인적이 드물고 외진 곳에 원경릉을 데려가 천천히 긴 시간 동안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만약 주명취의 목적이 원경릉을 죽이는 것이라면 마차에 태워서 이동할 필요도 없다.마차가 부두에 이르렀을 때 주명취가 마차에서 내려 손을 뻗었다.“내 마지막 호의.”원경릉이 주명취의 손을 잡고 내려오자 두 명의 인부가 원경릉의 양 쪽 겨드랑이에 팔을 넣었다.부두에서는 짐꾼들이 짐을 나르고 있었고, 인력거꾼들은 마대를 싣고 달려왔다.그중 한 명이 시간에 쫓겨 급하게 인력거를 몰다가 원경릉과 부딪칠 뻔했다.“걔가 눈이 멀어서 그럽니다!” 옆에 있던 여자 인부가 황급히 사과를 했다.그 순간 원경릉의 얼굴에 희망이 스쳤다.‘이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목소리인데?’원경릉은 팔을 단단히 잡고 있는 사내들이 불편해서 몸을 흔들어 사내들의 팔을 뺐다.“아프다고! 내가 알아서 갈 테니 이거 놓아라!”앞장 서던 주명취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그러자 원경릉이 고개를 푹 숙이고 그녀를 따라갔다.강가를 따라 걷다 보니 구석에 정박되어있는 배가 한 편 보였다. 인부는 원경릉을 배에 끌어올렸고 주명취도 뒤따라 배에 올랐다. 그 후에도 몇명의 인부들이 배에 올랐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배를 몰았다.배에 탄 원경릉은 은연중에 걱정이 되었다. ‘육지였다면 귀영위가 어떻게 해서든 구하러 왔을 텐데, 배를 타고 간다면… 귀영위가 나를 찾을 수 있을까?’수를 쓰더라도 배가 출발하기 전에 써야 한다.주명취는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선실의 등받이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바다를 보았
원경릉을 수장시키려는 주명취원경릉이 차갑게 웃으며, “손왕부에서 하인 몇 명이 벌써 당신 손에 죽었는데, 그건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인 게 아니고 뭐지?”주명취가 하찮다는 듯 웃으며, “버러지들인데 뭐, 넌 네 걱정이나 하시지.”원경릉이 주명취에게, “날 어떻게 죽일 건데?”주명취가 대놓고 원경릉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악의적으로 웃더니, “서둘 필요 없어, 이 배 밑바닥이 뚫렸거든, 천천히 물이 새들어 오다가 때가 되면 물에 잠길 거야. 너랑 나는 자연스럽게 죽는 거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거야, 아주 천천히 공포에 떨면서 죽게 해주마. 사람들은 시체도 못 찾고 넌 영원히 물귀신이 될 거야.”원경릉은 바로 여기저기 물이 새는 곳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아래층에서 팔뚝만한 크기의 구멍으로 물이 들이치는 것을 발견했다. 대충 예상하길 배가 침몰하는데 적어도 반 시진은 걸릴 것이다.노 젓는 뱃사람들이 여기서 같이 죽을 리 없으니 그들은 반드시 구명정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원경릉이 배 뒤쪽을 보니 과연 조각배가 하나 있다.뱃사람들은 부두에서 배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면 그녀들을 버리고 도망칠 예정이다.원경릉은 수영을 할 줄 모르니 만약 도망치려면 반드시 이 배를 탈취해야 한다.하지만 원경릉이 가진 최루 스프레이는 뱃사람 전부를 상대할 만큼은 안되고, 설사 양이 된다 하더라도 그녀 혼자 구명정을 띄워서 도망칠 수도 없다.주명취를 협박해도 별 수 없는 게, 주명취는 이미 죽음을 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주명취가 자기 뒤에 서 있는 것을 봤다.주명취는 이 망망하게 물결치는 강물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넌 못 도망가, 여기서 나랑 같이 죽을 수밖에 없지, 그러니 괜히 헛수고 하지 마, 오늘을 위해 내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데. 원래는 너만 죽이고 호오빠와의 과거를 되돌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호오빠 성격을 알거든. 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테니 난 살아도 아무 의미가 없어, 선심 쓰는 셈 치고 네가 죽을 때 함께
뱃사람과의 싸움, 협력자의 등장원경릉은 주명취의 얼굴에 떠오른 미세한 표정 변화를 보고, 자기 추측이 옳았음을 알았다.주명취는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왕부때 협박 당하는 척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사람은 평생 ‘척’이다. 이 판국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속마음을 가졌는지 똑바로 마주하려고 하지 않는다.주명취는 흉포하게 원경릉을 쏘아보며, “그래서 어쨌다고? 내가 죽든 말든 넌 볼 수도 없어.”원경릉이 주명취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그래서 말이야, 네가 반드시 나보다 먼저 죽어야 안심이 된다는 소리지.”“이런 안됐네, 넌 날 못 죽여.” 주명취가 싸늘하게 말했다.“그럴 필요없……”원경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매스를 꺼내 들고 주명취의 팔목을 그었다.원경릉이 주명취에게 다가가 매스로 정확하게 주명취의 손목 동맥을 그었고, 주명취의 손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주명취는 죽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가에 닿아 구조를 요청해야 했으므로 뱃사람들을 재촉해 어서 구명정을 내리도록 했다.주명취가 경악해서 분노한 가운데 한 손으로 손목을 누르고 거의 실성한 상태로 소리치길: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뱃사람 두 명이 와서 주명취가 손에서 계속 피가 떨어뜨리며 비틀비틀 서있는 것을 보고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밧줄을 잘라와서 손목의 상처를 동여매자 피가 덜 흘렀다.다른 한 사람은 한 손으로 원경릉을 잡고 바로 따귀를 날렸다.원경릉이 따귀를 맞고 머리가 빙빙 돌고 눈앞이 어지러운 가운데 코에서 피가 났지만 할 말을 잊지 않고, “저 여자는 동맥을 다쳤으니 만약 빨리 옮겨서 치료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사망해. 억지로 동여매도 소용 없어, 피를 멈췄다 해도 그 손은 못 쓰게 될 테니까.”주명취는 표독한 눈으로 이를 악물고, “저년을 죽이고, 어서 날 데리고 돌아가!”뱃사람이 한 손으로 원경릉의 목을 틀어쥐자 원경릉은 이미 대비하고 있다가 최루 스프레이를 꺼
치열한 싸움살인청부업자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건 돈을 받는 것으로 만약 주명취가 죽으면 그들이 한 일은 수포로 돌아간다.주명취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저들을 죽여, 다른 거 없이, 나와 저년 몸에 있는 패물만도 은자 천냥은 족히 넘고 그녀 몸에는 남주라는 귀한 진주가 한 알 있는데 만 냥의 가치가 있지. 못 믿겠으면 너희들이 뒤져 봐.”뱃사람들 눈에 순간적으로 탐욕이 일어났다.만 냥이면 그들 형제가 이 일만 마치고 손을 씻은 뒤 다시는 살인과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다.원경릉이 눈앞이 어두워졌으나 주명취의 머리채를 쥐고 힘껏 뒤로 당겨 주명취의 얼굴을 눕힌 뒤 원경릉 손에 비수로 모질게 그녀의 얼굴을 긋더니 구멍을 두 개 냈다.주명취는 고통으로 괴물 같이 울부짖는데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고 원경릉이 주명취를 끌고 가며 만아에게 공간을 틔워주었다.만아의 무공은 눈에 띄게 이 사람들에 못 미쳤으나 만아는 사나웠다.하지만 제아무리 사나워도 곳곳에 부상을 입은 상태이고, 뱃사람들은 원경릉 몸에 남주를 갖고 싶은 나머지 거의 미쳐 날뛰며 만아부터 죽이려고 했다.원경릉이 만아가 이미 말도 못하게 당한 것을 보고 속이 타 들어 가는데, 머릿속에 퍼뜩 섬광이 스치며 외치길: “만아, 미혼술!”만아가 정신을 차리고 손에 은방울을 들어 올리더니 몇 번 흔들었다.방울소리가 맑게 울리며 만아는 소매에서 하얀 가루를 꺼내 바람에 날리니, 뱃사람들은 이 가루를 들이마시고 방울소리를 듣자 놀랍게도 하나씩 멍 해지며 비수를 땅에 떨어뜨렸다.주명취가 미쳐 날뛰며, 원경릉에게 덮쳐 손목을 깨물고 죽기 살기로 물고는 원경릉을 제압하려고 했다. 원경릉은 너무 아픈 나머지 비녀로 주명취의 배, 가슴을 찌르고 서야 마침내 주명취에게서 풀려나 바닥에 쓰러졌다.원경릉은 온 몸에 힘이 빠져서 겨우 앉아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 쉬는데 손목 부분의 통증이 심각해서 전신이 덜덜 떨리고 만져보니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만아도 갑판에 누웠는데 전신의 힘을 다 쓴데다 온통 상처 투성이다.
구명정을 앞에 두고 온 힘을 다하는 원경릉원경릉이 입술을 깨물고 고통을 견디는 동안 급히 싸맨 만아의 상처가 더 버티질 못하고, 물은 차올라 배가 가라앉고 있다.만아의 상처가 위중해 거의 혼절했으나 고통으로 간신히 깨어 있는 상태로, 차오르는 물을 보며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고 힘겹게: “왕비마마, 나무토막을 끌어안고 뛰어내리세요, 이쪽으로 오는 배가 구해줄 겁니다.”원경릉이 만아를 부축하려고 시도하며 다급하게: “만아, 아직 힘 있어? 여기 구명뗏목이 있는데, 뗏목을 물에 띄우면 우린 도망갈 수 있어.”만아의 눈에 한 줄기 생기가 차오르며 한걸음 기어와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당최 몸을 일으킬 수 없어 몇 번 시도하다가 바닥에 세게 넘어져서 상처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원경릉은 만아가 완전히 뻗어 버려서, 구명 뗏목을 내리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경릉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비수를 들고 힘겹게 걸어갔다. 발 아래는 이미 물이 차올라 발목까지 차오르고 비틀거리며 두어 걸음 걷는데 물결이 일었다. 물결은 높지 않아 고작 무릎에 닿는 정도였지만 원경릉은 종아리에 상처가 있어 부딪히는 물결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원경릉의 마음 속에 이토록 절망적인 적은 없었다. 원경릉은 죽고 싶지 않다. 배속에 아이까지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원경릉은 다시 이를 악물고 앞으로 기어가는데 차가운 물이 몸을 덮치니 뼈속까지 한기가 차올라 온몸을 덜덜 떨며 산발한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다. 구명정이 그녀 앞에 있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지만 구명정을 뒤집어 내릴 힘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구명정에 묶여 있는 밧줄을 끊을 힘조차 없다.귓가에 주명취의 예리하고 공포에 가득 찬 절규가 들린다, “죽고 싶지 않아, 어서 날 구해줘, 어서 날 구해달라고.” 원경릉이 고개를 돌리자 주명취가 허우적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이는데 피로 얼룩진 것이 씻겨져 마치 악귀 같다.주명취는 원경릉의 발 아래 엎어지며 원경릉의 발을 끌고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