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고개를 들고 기왕비를 바라보았다.“후회하십니까?”기왕비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것을 후회해봤자 뭐 합니까. 사람의 마음은 참 어렵습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 했다고 그 사람도 나에게 최선을 다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내가 준 만큼 받고 싶은 건 욕심입니다.”“그래서 기왕비께서는 진심으로 사랑하셨다는 겁니까?”기왕비는 원경릉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사랑? 어쩌면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기왕의 어디가 좋습니까? 도대체 어느 부분이 기왕비의 마음을 빼앗은 겁니까?”“그 사람이 좋은 점이 있어서,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남편이기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겁니다.”“예? 그게 말이 됩니까?”“되지요. 더 필요한 게 뭐가 있습니까?” 기왕비가 의아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쳐다보았다. “그럼 기왕비께서는 아직도 기왕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기왕비 말대로 남편이잖아요.”“이제 아닙니다.” 기왕비의 눈빛이 차가웠다.“왜요?”“그가 저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저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상대를 죽이고 싶어 한다면 그건 부부가 아니라 원수가 되는 거지요.” 기왕비의 눈빛이 한순간에 싸늘해졌다.‘사랑하던 사람이 원수가 되다니…… 이 얼마나 잔혹한 일인가!’원경릉은 기왕비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기왕비의 눈빛이 평정을 되찾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걱정 마세요. 초왕비와 다섯째는 원수가 될 일이 없을 테니까요.”“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보고 남자를 믿지 말라고 한 게 누구였지요? 기.왕.비?” 원경릉이 장난스레 물었다.“사람은 늘 경계해야 하는 게 맞아요. 아무리 사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경계는 늦추면 안 됩니다. 몰라요…… 에휴, 됐습니다. 이런 말을 해봤자 뭐 하겠습니까.”원경릉은 문득 자신이 마음이 무겁거나 힘들 때 기왕비와 함께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녀가 분석한 기왕비는 잘해줄 때는 한없이 잘해주고 마음이 틀어지면 한없이 무서운 사람이다.
희상궁은 원경릉을 부축해서 자리에 앉혔다. “왕비, 조급해하지 마세요. 사식이가 헛소리를 하는 겁니다. 왕야께서 암실에 갇히다니 말도 안 됩니다. 성년이 된 친왕이 궁에서 밤을 보낼 수 없기는 합니다만 궁에는 다른 친왕들이 있습니다. 왕야께서는 팔황자를 찾아갔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태상황님을 찾아갔을 수도 있죠.”원경릉은 희상궁의 말을 듣고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사식이 말대로 암실로 끌려갔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가자 원경릉은 눈앞이 아찔해졌다.원경릉은 마음속으로 부황을 원망했다. ‘왜 다섯째에게만 이렇게 엄하고 모지실까?’사식이는 손톱을 뜯고 있는 원경릉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희상궁만 바라보았다.희상궁은 한숨을 쉬며 “그럼 제가 주부 골목을 지키고 서있다가 주수보에게 물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예, 그래 주세요. 역시나 희상궁님이십니다!”“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야죠.”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떨리는 손은 숨길 수 없었다. 우문호의 소식을 알 수 없으니 계속해서 최악의 상황이 떠올라 머리가 아팠다.희상궁은 원경릉에게 몇 마디 위로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희상궁은 주부 문 앞 골목에서 꼬박 두 시간 가까이 주수보를 기다렸다. 추운 날씨에 몸이 꽁꽁 얼었지만 우문호의 소식을 알 방도가 그밖에 없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주수모를 태운 가마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가마 앞에 서서 가마를 가로막았다.가마가 바닥에 내려앉고 장막이 걷히니 그 안에는 주수보가 보였다. 주수보는 덜덜 떨고 있는 희상궁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렇게 추운 날에 밖에서 뭐 하고 있습니까!”희상궁은 파랗게 질린 입술이 추워서 떨어지지 않는 듯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며 주수보를 보았다.“여쭤볼 게 있습니다.”“일단 들어갑시다!”주수보는 화가 난 말투였지만 겉옷을 벗어 희상궁의 어깨에 덮어주었다.희상궁은 놀라서 “됐습니다……”라고 겉옷을 돌려두었지만 주수보의 날
주수보는 희상궁에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생강차를 쥐어주었다.희상궁은 생강차를 마시고 나자 온몸이 뜨거워지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두 모금을 남겨두고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자 주수보가 다가와 “낭비 말고 다 마시거라.”라고 말했다.희상궁은 호랑이 같은 주수보의 말에 잔을 비우고 소매로 입을 닦았다.“초왕비 대신 왔습니다. 초왕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혹시 황상께서 그를 암실로 보내셨습니까?”주수보는 두루마기에 손을 넣고는 희상궁을 보았다.“가서 왕비를 안심시키시오. 황상께서는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쫓았을 뿐.”“하지만, 왕야께서는 왕부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조급해하지 마세요. 초왕은 건곤전으로 갔으니까.”“예? 건곤전으로요?”희상궁의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눈동자를 보자 주수보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오늘 건곤전에 갔었는데 거기서 초왕을 봤습니다.”“왜 건곤전에 말도 없이…… 왕비께서 얼마나 걱정하시는데요.”“초왕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갈 겁니다.”“무슨 목적이요?”주수보는 아무 말 없이 씩 웃었다.*우문호는 건곤전에 있었다.그는 건곤전에 있는 나한 침상에 누워 먹지도 마시지도 세수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있었다.태상황은 처음에 그를 모른 척했지만 저녁이 되어도 그가 꿈쩍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화가 치밀었다.“뭘 하자는 거야? 빨리 궁에서 나가거라!”우문호는 대답도 하지 않고 큰 눈망울로 천장에 있는 대들보의 문양만 바라보았다.“여기서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짐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말이야. 싹수가 아주 노랗구나, 저 황소고집을 누가 말려…… 쯧쯧, 빨리 돌아가! 가서 소식을 기다리거라!”태상황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우문호는 그제야 고개를 천천히 기울여 태상황을 바라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태상황은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짐에게 골치 아픈 일을 떠넘기는 이유가 뭐야, 여기서 징징거린다고 해결이 되느냐? 너는 아직도 네가 세 살짜리 꼬맹이라
“어이고! 못났다 못났어!”우문호는 태상황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상황의 종아리를 꽉 껴안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맘대로 하라고 했지? 지금 놓지 않으면 두 손을 확 잘라버릴 것이야!”태상황이 화를 냈다.“그 말씀 손자는 믿지 않습니다.”그러자 태상황이 금군을 바라보며 “그래? 여봐라! 이 놈의 양손을 잘라버리거라!”라고 말했다.금군의 번쩍이는 긴 칼이 우문호 귓가를 스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칼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 할 새 칼이 바닥에 꽂혔다.우문호는 눈꺼풀 하나 깜박이지 않고 칼이 자신의 두 손을 배길 기다렸다.긴 칼이 마루에 떨어지니‘쾅’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부서져 불꽃처럼 사방으로 튀었다.“으악……!”태상황이 부서진 칼날이 눈에 들어간지도 모르고 눈을 비비자 눈이 따가워 눈물이 줄줄 흘렀다.그 모습을 보고 금군들이 놀라 칼을 버리고 태상황 앞에 무릎을 꿇었다.상선이 태상황의 눈을 벌리고 눈을 후후 불었다.“빨리 황제를 불러오시게!”상선이 남아있던 금군을 보고 소리쳤다.우문호는 상선의 말을 듣고 대들보에 올라타 엎드렸다.*명원제가 왔을 때도 우문호는 대들보 위에 올라가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태상황은 위쪽을 가리키며 시퍼런 얼굴로 명원제에게 말했다.“저 자식을 빨리 궁에서 내쫓거라! 짐은 저놈을 보고 싶지 않다!”명원제가 태상황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대들보 사이에 엎드려 있는 우문호가 보였다.“저…… 저놈이! 썩 꺼지지 못 할까!”명원제를 보고 우문호가 대들보 위에 일어서더니 무릎을 꿇었다.“소자, 부황께 문안을 드립니다.”“왜 이 난리를 피우는 거야!”명원제가 분노했다.“소자, 왕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건곤전에 남아 황조부를 돌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부황께서 부디 소자의 효심을 헤아려주십시오.”명원제는 대들보에 올라간 우문호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고 그 때문에 뒷목이 시큰거렸다.“네가 내려오지 않는 다면 내가 너의 죄를 직접 다스릴 것이야!”“소자가 황조부를 돌보려고 한 건데
명원제는 우문호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버럭 화를 냈다.“왜 아직도 멍하니 서있어? 꺼지거라!”“소자 황조부께 사죄를 드리고 가야겠습니다.”우문호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명원제를 바라보았다.명원제는 우문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태상황에게 예의를 차려 인사를 하고 물러섰다.“아버님 살펴 가십시오!” 우문호가 명원제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명원제는 아들의 외침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곤전 밖으로 나갔다. 그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우문호는 태상황 앞에 무릎을 꿇고 “황조부께서 원경릉을 도와주시지 않으면 누가 원경릉을 도와주겠습니까?” 라고 말했다.“일단 돌아가거라. 짐도 다 생각이 있다.” 태상황이 담담하게 말했다.“예! 그럼 손자 물러가겠습니다.” 우문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봐라.”그 시각 탕양은 궁 밖에서 우문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문호가 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본 탕양은 그제야 안도했다.“왕야! 희상궁께서 오늘 왕부로 왕야의 상황을 물으러 오셨습니다. 왕비께서 왕야를 찾으시나 봅니다.”“몇 시에?”우문호가 물었다.“한 시간 전인 것 같아요.”“그래? 빨리 가야겠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우문호가 흰자를 번뜩였다.“왕야, 도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왕비께서 왕부로 돌아오실 수 있습니까?”“당분간은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매일 30분씩 원경릉을 볼 수 있다. 만약 왕비가 돌아온다면 진북후(鎮北侯)의 일을 분석하신 것 같으나 황조부는 이미 마음을 정하신 것 같다.”“그럼 이 문제는 해결된 겁니까?”탕양이 물었다.우문호는 말에 올라타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저으며 탕양을 보았다.“아니, 부황께서 아직 확답을 주지 않으셨으니…… 황조부께서는 부황의 뜻을 뒤집지는 않으실 거야.”태상황이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탕양은 마음이 놓였다.우문호는 어제저녁에 왕부로 돌아가지 않고 냉정언을 찾아가 상황을 알아보았고, 거기다가 왕비의 말을 곱씹으니 어찌 된 일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우문호와 탕
황씨가 정후의 옆에서 원경릉에 대해 떠들어대자 정후의 불안한 마음이 황씨 때문에 더 혼란스러웠다.“체면이 그렇게 중요하느냐?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아시게!”정후가 소리를 질렀다.황씨는 평소 남편을 하늘처럼 여겼기에 정후의 진노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정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야겠어.”정후가 일어섰다.황씨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소리로 “어딜 가십니까? 어젯밤도 그렇고 지금도 또 어딜 가십니까?”라고 물었다.“당신 그 누런 얼굴이 보기 싫어 그래!” 정후는 황씨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황씨는 정후가 딸 때문에 화가 나서 엄한 자신에게 화풀이한다는 생각에 딸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있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 나인과 함께 원경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희상궁이 돌아와 원경릉에게 우문호가 어젯밤에 건곤전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숨을 크게 내쉬며 안도했다. 만아는 원경릉이 먹을 탕을 끓이다가 황씨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경릉은 원주의 모친인 황씨에게 별 다른 감정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으로 자녀들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황씨는 원경릉이 머무는 곳에 오자마자 탕을 마시려는 원경릉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너는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태평하게 그러고 있어?”그녀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 앉았다.사식이는 황씨의 언행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원경릉의 모친이기에 주먹을 꽉 쥐고 참았다.그러나 희상궁은 달랐다.“부인, 왕비께서는 저녁을 아직 드시지 않았기에 지금 드시는 겁니다. 어찌 왕비님께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황씨는 희상궁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울기 시작했다.“아이고 내 팔자야…… 초왕부로 시집을 보내면 나도 호사를 누리고 살 줄 알았지! 근데 고작 일 년 살고 애까지 딸려서 쫓겨나다니! 네 아버
사식이는 참고 참다가 원경릉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부인, 왕비께서 쉬셔야 하니 이만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했다.황씨는 사식이의 태도에 기분이 나쁜 듯 사식이의 손을 뿌리쳤다.“왕비는 무슨 왕비? 쫓겨난 주제에 아직도 왕비 취급을 받고 싶은 거야? 그리고 원경릉 어미에게 그따위로 밖에 말 못 해?”“사식아 빨리 모시고 나가라!” 원경릉은 황씨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사식이에게 말했다.사식이는 황씨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이거 놓아라! 뭐하는 짓이야!”사식이는 버둥거리는 황씨를 데리고 나가나다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았다.“왕야께서 오셨습니다!”사식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우문호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원경릉을 꼭 안았다.매일 맡던 냄새, 익숙한 옷의 촉감, 따듯한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그녀는 손을 뻗어 그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그 모습을 본 희상궁과 만아는 밖으로 나오며 문을 닫았다.바깥에 있던 황씨는 눈을 크게 뜨고 “왕야? 내 사위가 왔다고?”하며 크게 기뻐했다.사식이는 황씨를 끌고 나오는 것이 힘들어 확 던져버리고 싶었다. 황씨는 사식이가 방심한 틈을 타 손에서 빠져나가더니 후다닥 정후를 찾아 달려갔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손을 풀어 서로를 바라보았다.원경릉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말도 없이…… 근데 왜 몸에서 담배냄새가 나는 거야?”원경릉이 물었다.“건곤전에 하룻밤 묵어서 그런가? 영감님 냄새지.”“어떻게 됐어?”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바닥에 깨진 그릇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근데 이게 다 뭐야, 누가 너 괴롭혔어?”“아니, 말도 마.” 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우문호는 깨진 그릇의 파편을 치우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정후부 사람들은 너한테 왜 이러는 것이야? 왕비 대우도 안 해주고. 내가 네 부친을 찾아가 뭐라고 해야겠다.”“가지마, 내가 황상께서 공주부의 일을 추궁했다고 말했거든, 내가 아들을 낳아야 황상께서 나를 용서해줄 것이라고
원경릉은 억지로 웃으며 “그 호 아가씨…… 어떻게 할 생각이야?”라고 물었다.“뭘 어떻게 해? 그 여자랑은 혼인하지 않을 것이야.” 우문호가 인상을 썼다.“그럼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어?”우문호는 원경릉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볍게 안아 그녀를 반쯤 눕혔다. 그는 원경릉의 배에 귀를 대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 일은 우리랑은 무관해. 만약에 진북후(鎮北侯)가 위협을 한다면 그것은 부황께서 해결하실 일이지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 종마도 아니고 마음대로 가져다가 교배를 시키는 게 말이 안 되지. 그렇게 혼인을 하고 싶다면 부황께서 직접 하라고 하면 돼.”그는 고개를 들고 원경릉을 보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녀석 오늘은 움직임이 적구나. 집안에 큰일이 생겼는데 계속 잠만 자다니! 아버지가 왔는데도 반겨주지를 않네.”원경릉은 손을 뻗어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하지 마. 다 듣고 있다고.”라고 말했다.“근데 경릉아 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우문호의 낯빛이 변했다.“아니야. 내가 일은 무슨…… 괜찮아. 내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지 아기도 움직이지 않네. 전혀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니야. 부중에 있을 때보다는 조금 덜 움직이는 것 뿐.”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아기가 움직이지 않는데 이게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이걸 부친께서 아셔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어떻게 알려? 지금 입궁해서 내 배 속에 아기가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말해?”원경릉이 빙그레 웃었다.“본왕은 하루에 30분씩만 후부에 있을 수 있어. 어의를 불러 같이 있는다면 아마 조금 더 오래 있을 수 있을 거야. 이거 좋은 생각인데?”우문호는 즉시 나가서 만아를 시켜 어의를 불러오라고 했다. 마침내 정후부에 오래 머무를 수 있을 방법을 생각해낸 우문호는 흥분된 표정으로 원경릉의 볼에 계속 입을 맞추며 원경릉의 배를 쓰다듬었다.“아가야 네가 아버지를 도와주는구나! 근데 오늘따라 정말 움직이지 않는구나!”*정후는 황씨를 통해 우문호가 정후부에 왔다는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