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는 기왕기왕부.확실히 기왕은 좋아서 죽는 중이다. 연일 심복인 대신들과 만나 탄핵 상소를 올릴 상의를 했다.기왕은 전에 갖은 계책을 동원해도 우문호를 끌어내릴 수 없었는데 현비가 자기를 이렇게 도와줄지 몰랐다.기왕은 주명양을 주씨 집안으로 돌려 보내 그쪽 상황을 알아보고 주재상이 어떻게 말하는지 살폈다. 태상황과 주재상 쪽에서 우문호를 변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기왕은 되도록 일찍 전략을 알아챈 뒤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했다.주명양은 요즘 기왕에게 상당히 냉담했으나 이 말을 듣고 기왕이 태자가 될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기민하게 친정으로 돌아가 스파이 역할을 맡았다.기왕은 기왕비의 도움을 구하길 마다하지 않은 게 기왕비의 인맥은 여전히 기왕비의 수중에 있어 우연히 기왕을 한 번 돕기는 했지만 전심을 다하지는 않은 걸 알 수 있었다.기왕비는 기왕이 투지가 불타올라 큰소리 치는 것을 듣고 무표정하게, “응? 그래서? 탄핵 상소 뒤에는요? 우문호를 끌어 내린 뒤에는요?”“그럼 내가 태자가 될 기회가 생기지.” 기왕비의 이 무관심한 표정은 정말 적응이 안된다. 꼭 기왕이 매사를 기왕비에게 구걸하는 것 같다.“당신이 기회가 있는 거예요, 아니면 넷째가 기회가 있는 거예요? 아니면 일곱째가 기회가 있는 거예요?” 기왕비가 매정하게 반문했다.‘넷째의 야심은 이미 아바마마께 들켰는데 무슨 기회가 있다는 거야? 안왕부에 데리고 있던 여자 참모를 죽여서 아바마마께서 본보기를 보이셨다고. 일곱째는……” 기왕은 말없이 옷자락을 떨치고 앉아 표독스럽게, “수저가 좋을 뿐이야. 황후의 몸에서 태어났다 거 뿐이라고. 내가 그랬으면 벌써 태자가 됐지. 걘 영 쓸모가 없는데 아바마마가 어떻게 태자 자리를 걔한테 물려주실 수가 있어? 원래부터 기회는 있었지, 적자에 주씨 집안이라는 뒷배에 원씨 집안 계집애까지 후궁으로 맞았으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바보가 소중히 여길 줄을 모르더니 이젠 다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어. 두 눈 멀쩡히
기왕비의 방문아이들이 기왕비를 알아보고 달려오며 ‘큰어머니’하고 부르는데 기왕비가 웃으며 아이들에게 가서 손에 약과를 하나씩 쥐어 주었다, “가서 놀아라!”아이들이 같이 예를 취하고 폴짝폴짝 뛰어갔다. 만두가 이리 나리에게 약과 하나를 던져 주었다.이리 나리가 입에 넣으려고 달려오는데 눈늑대가 날름 가로채서, 이리 나리는 계속 달리다가 나무에 부딪혀 눈더미를 맞았다.기왕비가 깔깔 웃고 말았는데, 초왕부는 이렇게 생기가 넘치니 여기 오는 게 점점 좋아진다.누군가 와서 기왕비를 본관으로 모시고 갔다.잠시 후 원경릉이 손난로를 든 채 꽤 두툼하게 꽁꽁 차려 입은 것이 북극곰 같다.기왕비가 웃으며, “새로 좋은 모피를 구했는데 줄게요. 태자비라는 분이 이렇게 입고 초라하지도 않아요?”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왕비에게 눈을 흘기며, 가볍게 인사하고 같이 들어가자고 하더니, “됐어요, 전 기왕비 마마의 모피를 누릴 복이 없네요. 이렇게 입는 게 어디가 초라한 데요? 일반 백성들은 좋은 솜저고리 하나도 못 해 입는데, 이 목화 솜 괜찮아요.”“아무리 좋아도, 모피만큼 따듯하진 않죠.” 기왕비가 앉아보니 너무 추워서, “어떻게 본관에도 난로를 안 피워요? 여긴 하루 종일 아무도 안 와요?” “찾아오는 분이 뜸해서 좋죠, 조용하니까요.” 현비가 태후를 찔렀다는 소식이 퍼지고 누가 세배를 하러 오고 싶겠어? 그 중엔 약점을 잡으려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덩달아 재수 옴 붙을 까봐 피했다. 정초에 누가 이런 대역무도한 일에 끼고 싶을까?기왕비가 웃으며, “맞아요, 고요해서 좋네요.”원경릉이 눈을 치켜 뜨며, “어떻게 온 거예요?”기왕비가 맥이 탁 풀려서 의자에 기댄 채로 눈살을 찌푸리며, “기왕부는 아주 시끌벅적해요. 쓸데없이 떠들썩한 게 문제지만. 혼자 고민하느니 여기와서 얘기나 하려고요.”원경릉은 기왕비가 온 이유를 짐작하고 ‘돌직구’로, “위로할 필요 없어요. 전 괜찮으니까. 다섯째도요.”기왕비가 서서히 웃음을 지으며, “괜찮은 거 알아요. 위
현비를 찾아간 우문령기왕비가 듣더니 눈을 내리깔고, “다섯째가 다 알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까지 전부 생각했군요, 그러니 그 책을 필사하죠.”원경릉은 불경에 대해 잘 몰라서, “지장보살 본원경이 무슨 내용이예요?”기왕비가, “지장보살은 무량겁 전에 인도의 브라만 여자였는데, 어머니가 불·법·승 삼보(三寶)를 믿지 않아 악한 길을 걸었기로 사후에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브라만 여자는 죄에 빠진 중생을 제도해 해탈 시킴과 동시에 돌아가신 엄마의 속죄를 위해 돌아가신 엄마를 제도하겠다고 불상 앞에서 서원했어요. 지장보살 본원경은 본래 이렇게 한없는 효와 서원을 대표하는 거예요.”기왕비가 말을 마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원경릉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마음이 순간 꽝꽝 얼어붙었다.우문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기왕비가, “현비 마마는 이제 기회가 없지만 태자 건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폐태자는 후폭풍이 심하기 때문에 아바마마께서는 그 길을 택하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아바마마께서 어떻게 하실 지 대략 짚이는 데가 있어요.” 원경릉도 기왕비 말에 동의했고, 아마 우문호도 그럴 거다.경여궁.태후를 찌른 후 현비는 경여궁으로 보내졌는데 원래 시중을 들던 현비 사람들은 전부 전출되었고, 내무부에서 새 사람을 몇명 보내 시중을 들게 했다.현비는 막 보내온 사람들이 시중을 들자 한동안 소란을 피우며 물건을 던지고 부쉈지만 어제부터 조용해져서 여우 털을 두른 망토를 걸치고 종일 바람이 아무리 심해도 몸이 굳어질 때까지 계속 문 앞에 앉아 있었다.이때 우문령이 몸종을 데리고 들어갔다. 우문령이 은덕을 베풀어 한 번만 만나 뵐 수 있게 해달라고 아바마마께 빌었기 때문이다. 우문령은 현비가 멍하니 복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현비가 고개를 들어 우문령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 “왜 울어? 나 아직 안 죽었어.”우문령이 다가와 현비의 손을 잡고 울며, “어마마마, 들어가요, 여긴 추워요.”현비는 우문령의 손
현비의 발악“그럴 리 없어!” 현비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음험한 표정으로, “날 죽이면 태자의 생모를 죽이는 게 되는 걸. 폐태자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런데 폐태자는 국본을 동요해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상하게 하는 일이니, 매사에 나라와 천하를 중히 여기는 네 아바마마께서 그런 위험한 길을 택하실 리 없어. 설령 분을 꾹 누르더라도 이 일을 덮으실 것이야.”우문령은 현비가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큰언니 말이 아마 정월 초파일 아침 일찍 다섯째 오빠를 폐하라는 상소가 올라올 거라고 하던 걸요.”“누가 감히 그런 짓을?” 현비가 고개를 돌려 우문령을 보더니 악에 받쳐서, “그런 상소를 올리면 네 아바마마께서 목을 베실 거다. 부부생활이 몇 년인데 내가 그이 성격을 몰라? 네 아바마마께서 국본을 흔드는 꼴을 허락하실 것 같아? 그리고 내가 태후 마마를 다치게 했어도 태후 마마도 소씨 집안 사람인데 태후 마마께서 캐묻지 않으시겠다면 누가 따지고 들 수 있어?”“맞다,” 현비가 우문령에게, “황조모는 뭐라고 하시든? 따지겠다고 하셨어? 넌 가서 내 대신 태후 마마께 사죄 드리고 내가 한 모든 일은 전부 소씨 집안을 위해서 였다고, 태후 마마도 소씨 집안 딸이니 내가 한 일을 전부 이해해 주실 줄 안다고 전해라.”우문령이 고개를 흔들며 한손으로 눈물을 닦고, “아바마마께서 소녀가 황조모를 뵙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황조모께서도 화가 나셨을 거예요.”“나도 태후 마마께 화를 안 내는데 태후 마마께서 나한테 화날 게 뭐가 있어?” 현비는 우문령의 손목을 잡고 날카롭게, “그리고 사람을 시켜 우문호에게 전해라. 소씨 집안 사람 목숨을 이렇게 많이 죽였으니 소씨 집안에서 조만간 복수하러 올 거라고. 얼른 소씨 집안 대문에 가서 무릎 꿇고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말이야.”우문령이 입이 딱 벌어지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마마마, 소씨 집안에 죽은 사
현비의 굳은 생각궁인들이 황후에게 현비가 공주를 인질로 잡고, 공주를 찔러서 다치게 했다는 얘기를 듣고 두 눈이 홀딱 뒤집어질 지경인데 그렇다고 졸도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현비가 얼마나 독한 인간인지 태후를 찌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마음 속엔 오직 소씨 집안만 중요하다.“마마, 공주를 구해주소서, 공주께서 심하게 놀라서 울고 만 계십니다. 현비 마마는 이미 광증으로 정말 공주를 다치게 하셨어요. 현비 마마께서 태자비가 와야 공주를 풀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궁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울부짖었다.황후는 숨이 잘 안 쉬어지는데 얼른 폐하를 청하라고 분부했다.태자비를 입궁 시킬지는 황제가 결정할 일이다.그런데 뜻밖에도 이 순간 명원제와 주요 신료들은 어서방에서 회의 중으로,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정월 초파일 태자 일을 상의하는 것으로 상당히 중요했기 때문에 목여태감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저지당했다.황후는 황제 쪽에서 보기 싫다는 말이 없으니 일단 가마를 준비하라고 시키고 본인이 직접 가는데 피를 토할 심정이다. 만약 오늘 이렇게 소동을 부릴 줄 알았으면 당초에 현비에게 계책을 쓰지 않는 거였는데, 현비가 소씨 집안을 위해 이렇게 모질고 매정한 짓을 벌일 줄 누가 알았어?만약을 대비해 경여궁으로 가는 길에 황후는 사람을 출궁시켜 태자비를 오라고 했다.경여궁에 새로 온 시위들은 현비가 손을 삐끗해서 공주를 다치게 할 까봐 꼼짝도 하지 못했다. 현비는 마음속으로 이미 거의 절망했다.우문령에게 소씨 집안이 이번 대화제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현비는 분명 음모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불을 내서 전체 소씨 저택을 다 태웠는데 죽거나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어떻게 믿을 수가 있어?’ 현비의 친정이다, 그들 목숨이 얼마나 중한데? 폐하께서 소씨 집안 사람들의 죽음의 진상을 은폐하기로 선택한 이상 소씨 집안을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현비가 낳은 아들이 소씨 집안을 거의 멸문에 이
현비의 인질우문령이 힘겹게, “어떻게 소씨 집안의 억울함을 풀어주나요? 아바마마께서 다섯째 오빠에게 처분을 내리시기를 원하는 거세요? 소씨 집안은 어마마마의 친정이고, 저와 다섯째 오빠는 어마마마께서 낳은 자식입니다.”현비가 고개를 저으며 원한에 사무친 말투로, “아니, 네 아바마마는 네 오빠에게 처분을 내릴 리가 없어, 태자를 폐위할 리 없지, 그래. 너희들은 전부 내 친자식이다. 내가 너희를 낳았지. 그래서 너희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한테 빚을 진 거야. 하지만 나도 엄마 아빠에게 빚을 졌고, 소씨 집안에 빚을 졌지. 그런 소씨 집안이 오늘 이토록 수치와 모욕을 당했으니 나는 죽어 저승에 가서도 부모님과 소씨 조상을 뵐 낯이 없구나. 네 아바마마에게 반드시 소씨 집안에 작위를 올려주고 호화 저택을 하사하며,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이 목숨과 바꿔 요구할 거다. 어미가 원하는 것은 이게 전부야.”현비는 고개를 숙이고 작지만 집요하게, “그거 알아? 이 세상은 정말 불공평 하단다. 어마마마가 네 아바마마에게 시집올 때 네 황조모는 이미 태상황 폐하의 황후셨어, 어마마마가 주씨 집안의 그 여자보다 네 다섯째 오빠를 먼저 낳았지. 네 황조모가 만약 피붙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어마마마를 태자비로 삼았어야 해, 네 아바마마가 보위에 오르면 소씨 집안은 태후와 황후를 동시에 배출한 집안으로 얼마나 영화롭겠냐? 하지만 네 황조모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 어마마마는 오래 참았지. 계속 피붙이의 정을 고대하며 말이야. 그런데 아니더구나. 날 실망시켰어. 세상에 이렇게 집안에 불효하다니, 하지만 결국 내가 태후를 다치게 했으니 내가 불효, 불충, 불의한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이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니?”현비는 우문령의 귀에 침을 튀기며 얘기하는데 침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이 혀를 깨물어 약간 썩은 냄새가 섞인 것이 우문령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돌계단 쪽으로 돌리는데 볼이 아팠다.원통하고 분해하는 말투가 더욱 우문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황후가 와서 이 모습
덕비의 인질 교환덕비가 천천히 앞으로 가자 황후가 걱정하며, “덕비, 조심하게.”덕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우문령의 목에 비녀만 보는 것이 현비는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고 찌를 인간이라 그녀를 자극할 까봐 두렵기 때문이었다. 덕비는 보잘 것 없는 초식을 조금 흉내 낼 수 있어서 조금 있다가 공주가 나오면 얼른 현비를 제압할 생각으로 천천히 다가가 두 손을 내밀며, “내가 왔으니 이제 공주를 풀어줘.”“기어와!” 현비가 왜 덕비 생각을 모르겠어? 덕비는 손발이 빠른데 무릎 꿇고 기어오지 않으면 무슨 수로 제압하냐?덕비는 열 받아서 얼굴이 벌게졌다.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건 현비를 당할 사람이 없다.하지만 지금은 현비를 자극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무릎을 굽혀 기어서 다가갔다.금군 시위들이 한 걸음 다가가려다 현비의 일갈에 물러섰다.황후와 다른 비빈은 가슴을 졸이며 쳐다보며, 덕비는 사람들의 신임도 있고 자식이 없으므로 모두 덕비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랬다.언제 궁에 이런 엄청난 일이 있어본 적이 있나?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상황이다. 궁안에서 비빈이 공주를 인질로 잡고 위협하는 일이 터지다니. 심지어 인질로 잡은 건 다름아닌 친딸이다.덕비가 기어가서 작은 소리로, “자, 이제 공주를 놔주세요.”현비가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 우문령의 목에서 비녀를 떼고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황후가 막 공주에게 어서 돌아오라고 부르려던 찰나, 현비가 갑자기 비녀로 덕비의 이마를 그었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손바닥에 비녀를 꽉 움켜 쥐고 덕비 이마에 있는 힘껏 그어서 피가 용솟음치는데 덕비의 머리를 발로 차서 그대로 돌계단을 굴러 떨어졌다.그리고 얼른 우문령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계속 바닥에 눌렀다.다들 경악하며 얼른 덕비를 부축했는데 덕비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거의 실신해 있었다.황후도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헌비, 네가 아주 미쳤구나?”현비는 미치지 않았다. 덕비 따위와 우문령을 바꾸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황제가 덕
현비를 만나러 간 원경릉원경릉이 바로 나가서 궁에서 온 사람을 보고 상황을 물어본 뒤 만아에게 분부하길, “이 일은 일단 태자전하께 알리지 말고, 나는 사식이와 입궁하마.”사식이는 오늘 막 원씨 집안에서 설을 보내고 돌아왔다가 이 일을 만나 상당히 긴장했다.사식이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니 태자전하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그럴 필요 없어, 태자 전하는 서재에서 이리 나리와 얘기 중이니 차분히 계시도록 하자.”이 일을 만약 우문호가 안다면 궁으로 달려가 더욱 어지러워질 가능성이 크다.원경릉은 현비가 뭘 하고 싶은 지 알았다.원경릉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만아에게 당부하길, 만약 태자 전하께서 자기가 어디 있는지 찾으시면 정후부에 할머니를 보러 갔다고 하라고 했다.원경릉은 마차에서 약 상자를 열었는데 마취약이 준비되어 있었다.이건 효과가 짧은 정맥 마취제로 대체로 낙태에 사용되는데 5초면 마취가 되고 5분에서 8분이면 깨어나니 시간은 충분하다.주사바늘에 고무마개를 씌우고 소매속에 감췄다. 현비가 뭘 하려는 지 원경릉은 대략 명확했다.현비는 자기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소씨 집안을 싸고 도는 성격을 보아하니 분명히 목숨을 걸고 소씨 집안에 은덕을 베풀어 주길 바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에게 엄청난 증오를 품고 있으므로 죽기 전에 당연히 원경릉을 상대하고 싶겠지. 그래서 우문령을 인질로 원경릉을 입궁 시키려는 것이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못 할 게 없다.마차가 궁에 들어서자 마자 바로 경여궁으로 가는데 두번째 궁문을 지나자 마차는 더이상 들어갈 수 없어 원경릉은 마차에서 내려 뛰어갔다.경여궁 앞에 도착해 원경릉은 사식이에게 뒤쪽으로 담을 넘어 들어가 기회를 봐서 현비 앞에 달려들라고 했다.원경릉은 경여궁에 들어가기 전 옷 매무새를 고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귓가에 우문령이 쉰 목소리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미 상당히 미약하다.마당에 들어가자 황후와 귀비가 원경릉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일제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