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은 원경릉의 명령을 받고 약을 보내러 갔다.잠시 쉬고 나서 기분이 좋아진 노부인이 희상궁이 온 것을 보고 상궁을 시켜 마중을 하라고 했다.희상궁은 웃으며 “노부인 계십시오. 지금 몸이 어떠십니까? 저희 부인께서 약을 보내드리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 약을 입에 넣고 녹여드시고, 증상이 있을 때마다 드십시오. 그러시면 발작하는 일이 없으실 겁니다.”라고 말했다.노부인은 희상궁을 보고 상궁이지만 기품이 흐르는 것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상궁, 노인이 감히 묻겠습니다만, 댁네 부인께서 혹시 초왕비입니까?”희상궁은 놀라서 “그……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밖에 노신들이 말하건대 댁네 부인을 왕비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의술이 뛰어나고 임신을 한 왕비는 초왕비뿐이라서요.”그 말을 듣고 희상궁이 씩 웃으며 “노부인 저희 집안의 부인이 누구든 상관하지 마세요. 이렇게 만나는 것도 인연이니 그냥 스쳐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하시고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했다.*명월암에서 원경릉은 잠시 쉬다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름도 남기지 않고 공양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식이와 원용의는 왕비가 왜 명월암에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왕비가 부처님을 섬기러 온 건가?’그 둘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원경릉은 그 둘을 보며 웃었다.“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내 목적은 바로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었어.”“예?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요? 설마…… 태상황님? 태상황님이 신도 아니고 노부인에게 병이 생길 줄 어떻게 알고요?” 사식이가 놀랐다.원용의는 원경릉의 말을 듣고 노부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아마 노부인께서는 진북후의 모친일 것이야.” 원경릉이 말했다.“듣자하니 진북후가 소문난 효자라고 하더라고요. 만약 노부인이 이 일의 은혜를 갚겠다고 나선다면 왕비를 도와줄 수 있겠네요!”원용의가 말했다. “태상황님은 정말 잔머리가 좋으시네요!” 사식이가 기뻐했다.“잔머리라니
“왜인지 모르게 요즘 걸핏하면 졸리고 피곤해. 오늘은 마차에서 꾸벅꾸벅 졸았다니까?” 원경릉은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그럼 이제부터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 우문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했다.“이제 별일 아니면 밖에 안 나가려고. 만사가 다 귀찮다.”원경릉이 아랫배를 만지며 웃었다.“움직였다! 만져봐!”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자신의 배 위에 올렸다.“배가 금방 커진 것 같네.” 우문호가 그녀의 배를 보았다.“응. 요즘 잘 먹어서 살이 쪘나 봐. 이제 돼지가 되는 건 시간문제야.” 원경릉이 말했다.“돼지 중에서도 가장 예쁜 꽃돼지가 되겠네.”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이 웃으며 그의 발을 밟자 그는 발등을 움켜쥐고 그녀를 응시했다.“근데 경릉아 어찌 얼굴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구나. 나랑 떨어져 있는데 얼굴이 폈네?” 우문호가 말했다.“치!”원경릉이 그를 노려보았다.우문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정말 신기해. 전에는 내가 널 밀어내기 바빴는데, 지금은 없으면 허전하고 보고 싶고 너랑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 우문호가 말했다.“전에 알던 원경릉이 아닌가 보지.” 원경릉은 그런 그를 보며 웃으며 눈동자를 반짝였다.우문호는 그녀의 배에 귀를 대고 아이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예전의 원경릉은 의술도 몰랐고, 동정심도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였거든.”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에 깜짝 놀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녀의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경릉아 뱃속에 사람이 하나가 들어있는 게 맞지? 근데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설마…… 쌍둥이는 아니겠지?” 원경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는 거 있잖아. 그거로 들었을 때 두 개의 심장 박동이 들렸어?” 우문호가 물었다.“나는 태동 수만 측정했지, 박동 측정은 하지 않았어.”원경릉은 손가락으로 임신 개월 수를 세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쌍둥이라면 지금 청진기로
“왕야께서 헛소리를 하시는 거야. 그걸 믿니?” 원경릉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키우기 힘든데, 둘이라니…… 원경릉은 쌍둥이 생각만 해도 눈이 질끈 감겼다.엄마가 된다는 것도 적응하는데 한참이 걸렸는데 한 번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니 원경릉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원용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배를 바라보며 “원누이, 제가 한 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저도 만져보고 싶습니다!” 사식이도 벌떡 일어났다.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다가 얼굴이 숯검댕이가 된 서일이 들어오며 사식이의 말을 듣고 “무슨 좋은 게 있길래 만져본다고 그럽니까?”라고 말했다.그 말을 들은 우문호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서일을 노려보았다.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었다. 임신을 하고 나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배로 향했고, 만져보고 싶다는 둥 마치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전시품처럼 대하는 것 같았다.원경릉은 원용의와 사식이를 보고 “그래, 이리 와서 만져 봐.”라고 말했다.둘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배에 손을 올렸다. 마치 귀한 보물을 만지듯이 깨질까 두려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배를 쓰다듬었다. “세자, 이모가 한 번 만져보겠습니다.” 사식이가 경건한 목소리로 큰 숨을 내쉬더니 그녀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언니! 안에 사람이 있어요! 너무 신기합니다! 사람 몸 안에 또 사람이 있다니!”사식이는 원용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원용의는 사식이의 말을 듣고 웃었다. “너는 임신한 것을 처음 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원누이와 오랫동안 같이 지냈는데 뭘 그렇게 놀라느냐?”“전에는 만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죠! 아이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만져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을 느끼니 너무 신기합니다!” 사식이가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사식이의 모습을 본 우문호도 처음으로 원경릉의 배를 만졌을 때의 감정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제가 세자의 이모가 될 수 있을까요?” 사식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당연하지!” 원경릉이
원경릉의 맥을 짚던 어의가 말을 더듬으며 “왕야…… 소신이 왕야께서 저를 찾으신다고 하여 왕비의 상태가 좋지 않은 줄 알고 금군에게 말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쉿. 어의는 맥을 짚어서 태아의 맥박에 이상한 점이 있는지만 확인하거라.” 우문호가 말했다.어의는 엄숙한 표정으로 왕비의 맥에서 이상한 점이 있는지 눈을 감고 신중하게 맥을 느꼈다. 그러나 왕비가 이전까지 별 증상이 없었고 맥박도 안정적이라 크게 이상한 점이 없었는데, 왜 지금 와서 맥을 다시 짚어보라는 건지 어의는 의아했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수차례 맥을 짚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조어의가 난처한 표정으로 손을 떼더니 “왕야, 맥이 조금 이상한 것은 사실이나 쌍둥이임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왜 확신할 수 없단 말이야? 조어의 그거 하나도 진단을 못 내리면서 황실 어의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우문호가 어의를 몰아붙였다. 조어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활활 타오르는 난로를 보았다. “왕비님께서 지금 약을 많이 드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무우환이나 자금탕을 많이 먹으면 간혹 이런 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지금 맥박으로는 쌍둥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그럼 언제 확인해야 알 수 있느냐? 만약 쌍둥이라면 더 신경을 써야 할 텐데……”우문호는 쌍둥이이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초산에 쌍둥이면 원경릉이 힘들까봐 걱정이 되었다.“한두 달만 지나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어의 그럼 두 달 후에 뵙겠습니다.”원경릉이 말했다.“예, 그럼 소신 물러가겠습니다.”만아는 조어의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섰다. 조어의가 떠난 후 우문호는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두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만약 쌍둥이라면 애를 낳을 때 얼마나 위험하겠느냐!”“왕야 그런 말은 삼가세요. 왕비께서는 젊고 건강하시니까 아이를 무사하게 낳을 겁니다. 임신 중에 걱정은 독입니다. 좋은 생각만 하시고 안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문호는 말없이 손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난로를 힐끗 보았다. 난로 안에 불이 어찌나 활활 타오르는지 그 모습이 우문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왕야, 도대체 왕비 뱃속에 아이가 몇이라는 겁니까?” 사식이가 물었다. 우문호는 손을 저으며 “재촉하지 마라. 본왕이 지금 듣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잘 들어봐.”원경릉은 의자에 머리를 가볍게 대고 한숨을 쉬었다. 우문호는 스스로 청진기를 움직이며 숨까지 참으며 소리에 집중했다. “왕야, 도대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원용의도 참지 못하고 우문호를 재촉했다. 우문호는 뻘뻘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들었다. “셋!”“셋이요?” 원경릉을 제외한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문밖의 탕양과 서일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우문호가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지며 큰 소리가 났다. “왕야!”서일과 탕양이 깜짝 놀라 기절한 우문호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우문호를 일으켜 그의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잠시 후 우문호가 휘청거리며 일어나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린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예전에 태상황님께서 비취를 세 개 주셨지? 설마…… 당장 그거 돌려드려야겠다!”“왕야, 일단 진정하세요! 잘 생각해보면 좋은 일입니다!”탕양이 우문호를 끌어당겼다.우문호는 탕양의 말에 화가 났다. 그는 몸이 떨리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방방 뛰었다.“이게 어떻게 좋은 일이란 말이야? 한 번에 셋을 임신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느냐? 탕양은 셋을 낳은 여자를 본 적이 있느냐? 쌍둥이도 위험한데 세 쌍둥이라니! 자칫 잘 못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그걸 알고도 좋은 일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냐?”희상궁이 황급히 우문호를 잡아당기며 “왕야, 진정하시지요. 왕비께서 놀라십니다!”라고 말했다.우문호는 희상궁의 말에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원경릉은 날뛰는 우문호를 보자 덜컥 겁이난 듯 눈시울이 붉어졌
“적어도 사람이 진맥을 하는 것보다는 정확할 겁니다.”원경릉이 희상궁에게 답했다. 우문호는 지금 이 순간부터 원경릉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서일을 불러 부병을 형녕각(邢寧閣) 주변에 배치해서 엄호하도록 했고, 문지기와 하인들에게 정후부를 수시로 순찰하게 했다. 만약 도중에 의심스러운 사람이 나타나면 즉각 체포하라고도 지시했다.그리고 사식이와 만아에게 왕비의 곁을 지키고 만약 일이 생겨 한 사람이 자리를 비워야 한다면 한 사람은 꼭 그녀의 곁을 지키도록 교육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마친 우문호는 원경릉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경릉은 그를 보고 조용히 “가서 일 봐. 하루 종일 여기 있으면 부황께서 화를 내실 거야.”라고 말했다.“부황께서 정후부에 와서 너를 볼 수 있도록 하셨어.”“다섯째, 그는 황제야. 넌 부황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그는 이미 관용을 베풀었고 그 덕에 네가 지금 정후부에 와서 나를 볼 수 있는 거야. 만약에 네가 부황을 속인다면 분명 부황께서 크게 화를 내실 거야. 정해진 시간 이외에는 경조부로 돌아가 일을 하는 게 좋겠어.”그는 원경릉의 말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아무리 자신의 아버지라고 해도 부황은 황제이다. 황제의 권위에 반항을 하는 것은 대역죄임을 우문호는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원경릉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서 일해. 난 괜찮으니까.”원경릉이 그의 어깨를 다독이더니 “아 맞다! 배에 셋이나 들어있으니까 임신기간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거 알고 있지?”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우문호는 눈을 반짝이며 “너는 내 머릿속에 그런 생각만 가득한 줄 아느냐? 너만 건강하다면 내 욕구정도는 참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정말?”“정말이다.”“그래, 그럼 일 잘 하고, 내일 보자.”“하…… 널 두고 발이 안 떨어져. 불안해 죽겠다.”“네가 그러면 내가 더 불안해져.”우문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참으로 경사입니다! 어떤 훌륭한 어의가 세 쌍둥이임을 진단했다고 합니까?”조어의가 물었다.“그 지역의 용한 어의라고 해요. 확실한 건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손자며느리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래요.”노마님이 말했다.“걱정스러운 일인 건 확실합니다.”“심지어 초산이라고 해요.”“초산이라면 더욱 주의해야 할 일들이 많지요. 하나만 품어도 아이에게 영양 공급하기가 벅찬데, 셋이면 산모가 쉬지 않고 영양을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숨 쉬는 방법부터 운동하는 방법까지 다 달라요. 아마 6개월 정도만 돼도 무거워서 걷기 힘들 겁니다. 셋이 배에 들어있으면 조산을 할 수도 있으니 8개월이 지나면 어의를 상주시켜야 할 겁니다. 인삼을 먹이는 것도 좋아요. 산모가 기력을 잃지 않도록 좋은 음식도 많이 먹여야 합니다. 또 아이만 전문적으로 보는 어의도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나오면서 건강하지 않다면 어의가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제가 예전에 세 쌍둥이 산모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산모가 아이를 낳던 도중에 하혈을 심하게 했고, 결국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어요. 산모 그리고 아이 셋 모두 죽었습니다.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던 도중에 사망해서 아이들이 안에서 질식해 죽었거든요.”말을 하던 조어의가 노마님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노마님,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얼굴이 창백하십니다.”노마님은 손발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 쌍둥이를 낳다가 원경릉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노마님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노마님, 괜찮으십니까? 정신을 좀 차려보세요!” 조어의가 노마님에게 소리쳤다. 노마님은 천천히 눈을 뜨고 조어의를 보았다.“난로가 너무 뜨거워서 공기가 답답했는지 머리가 핑 돌았네요.”“그럼 창문이라도 열어서 환기를 시키겠습니다.”조어의는 추운 날씨에 창문을 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세 아이를 모두 건강하게 낳는다면 그야말로 경사입니다!” 조어의가
노마님은 조어의가 기절하는 것을 보고 손씨 아주머니를 불러 그를 일으키라고 했다. 어의는 정신을 차린 후에도 휘청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울상을 지으며 노마님을 바라보았다. “노마님, 도대체 누가 세 쌍둥이라고 진단을 내린 겁니까?”“왕비가 직접 내리셨습니다.”조어의는 천천히 일어서며 “그럼 이 사실을 황상께 알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노마님은 웃으며 “조어의, 그럼 이 진단을 확신하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그…… 그건……” 조어의가 당황한 표정으로 노마님을 보았다. “만약 왕비께서 오진을 했다면요? 오진 사실을 황상에게 알린 죄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요?”노마님이 물었다. “그건……”“세 쌍둥이라는 것은 지금 섣불리 진단할 수 없으니, 나중에 황상께 보고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황상께서도 예상하지 못한 세 쌍둥이라면 기쁨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일단은 지켜봅시다.”조어의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 머뭇거리며 노마님을 바라보았다. “그럼 노마님의 뜻은?”“일단 이 사실은 우리끼리만 압시다. 나중에 맥이 뚜렷해져서 세 쌍둥이라는 것을 조어의가 확인을 하면 그때 황상께 말씀을 드리면 됩니다. 그동안 어의는 많은 의학서적을 탐독하십시오. 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차질이 없게 완벽한 방법을 생각해내야 합니다. 왕비와 아이들을 꼭 지켜야 합니다.”“노마님, 어의 인생을 걸고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어의의 말에 노마님은 한시름 놓았다. “어의의 손에 이 나라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지금부터 어의는 왕비만 신경 쓰십시오.”노마님의 말에 부담이 된 어의는 귀라도 막아 말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노마님의 날카로운 눈빛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어의는 노마님의 정원에서 나와 책더미 속에 틀어박혀 밥 먹는 시간에도 의학 서적을 보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의 전공은 산부인과가 아니지만 조어의는 지금 이 순간부터는 이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번에 왕비가 세 아이를 모두 순산한다면 그는 당대의 최고 명의로 칭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