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호. 적당히 해. 너는 가게에서 마음대로 하면서 다른 사람은 하면 안 돼? 네가 뭔데?”나는 안준희가 나한테 불만을 품고 있고 그 외 다른 직원들도 안준희를 본받으려 한다는 걸 알고 있다.이런 풍기 문란한 짓은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단번에 싹을 잘라야 한다. 만약 내가 안준희한테 엄중한 벌을 내리지 않으면 이런 분위기는 가게 전체를 좀먹게 할 거다.이 모든 건 확실히 나 때문이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직원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다들 나한테 불만이 있는 거 알아요. 정 사장님이 나한테만 특별대우해 준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졍 사장님은 나한테만 특별대우해 준 적 없어요.”“사장님은 워낙 착한 분이고 가게 모든 직원에게 평소에도 잘해주세요. 심지어 직원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피차 보기 껄끄러울 정도로 일을 심각하게만 하지 않으면 항상 눈감아주셨어요.”“그리고... 평소에 예쁜 여자들이 자꾸만 나를 찾아온다고 내가 여성 고객들한테 뭘 했다고 생각하나 본데요. 나는 고객한테 암시를 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 여성분들이 왜 찾아왔는지는 말하기 곤란하지만.”“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가게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한약방이에요. 뒤에서 불법적인 장사를 하며 제 주머니를 챙기는 행위는 금물이에요.”안준희는 내 말에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말은 잘하네.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물어봐.”나는 사라들을 한 바퀴 빙 둘러봤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얻었다.다른 동료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안준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규칙을 어긴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아마 모두가 요행을 바랄 거다. 때문에 그 본보기를 보여줄 상대를 안준희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요. 가게 규칙을 위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반드시 처벌할 거니까.”“정수호.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설마 나를 쫓아내기라도 하겠다고?”“준희 씨 말이
민우가 되물었다.“수호가 그럴 자격이 왜 없는데요? 얼마 전에 가게에 일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나선 게 누군데요?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를 위기에서 구출한 건 또 누군데요? 본인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그때 왜 맨 앞에 나서지 않았어요? 왜 그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는데요?”“맞아요. 수호 씨가 아니면 화인당이 다시 평화를 되찾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는 착실히 일하고 싶고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은 것뿐이에요.”“수호 씨가 가게 규칙을 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들은 모두 주동적으로 수호 씨를 찾아온 거예요. 준희 씨처럼 특수 서비스니 뭐니 하면서 고객을 꼬신 적 없다고요.”“수호 씨는 정 사장님 목숨도 구해줬어요. 그런데 수호 씨가 가게 이인자가 되는 게 뭐 문제 있어요?”“진짜 문제 있는 건 준희 씨겠죠. 준희 씨는 수호 씨가 부럽고 질투 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수호 씨가 잘나가는 꼴이 보기 싫은 거잖아요. 하지만 너무 비겁한 거 아니에요?”안준희는 가게 식구들이 모두 내 편을 들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정말 잘못한 사람이 오직 본인이 된 것만 같았다.안준희는 뭐라고 더 변명하려 했지만 민우가 때마침 달려들었다.“당장 나가요. 여긴 당신 반기지 않으니까.”모태진과 오민혁을 포함한 다른 직원들도 한꺼번에 달려들어 안준희를 쫓아냈다. 그러고는 모두 나한테 다가와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고 위로했다.그 순간 나는 밀려오는 감동을 참을 수 없었다.비록 너무 오글거려 말은 하지 못했지만 모두가 나를 어떻게 도와줬는지만은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그날 저녁 나는 사모님 댁에 갔다.이번에는 사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간 거였기에 나는 윤지은의 당부를 신경 쓰지 않았다.내가 오지 않은 동안 사장님의 안색은 많이 좋아졌고 이제는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사모님은 사장님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걷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조금 걷다 지친 사장님은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수호 씨, 얼른 와서 앉아. 여기 앉아.”사장님은
나는 사장님의 생각이 이토록 깊고 이렇게 멀리까지 내다보실 줄은 몰랐다. 그 사실이 너무 놀랍고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나는 사장님 같은 혜안을 가지라면 멀었는데 말이다.나는 아직 평범한 사람이라 아직은 내 한 몸 건사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는 신세다. 하지만 정 사장님의 사상은 이미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평생 노력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이 순간 정 사장님에 대한 존경심은 더 깊어졌다.“수호 씨, 하고 싶은 일 마음 편히 해. 걱정할 거 없어. 사람이 걱정이 너무 많으면 이것저것 발목을 잡을 거고 겁을 먹어 결국엔 마음껏 뜻을 펼치지 못할 거야.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무서울 게 없다는 패기로 덤벼야 해. 그래야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고 용감하게 전진할 수 있어.”나는 정 사징님이 전수해 준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때, 사모님이 깨끗이 씻은 과일을 들고나왔다.“수호 씨, 과일 먹어요.”사모님의 새하얗고 늘씬한 다리를 보니 나는 순간 또 그날 본 춤추는 나비가 떠올라 얼른 시선을 피했다.그날 용천 호텔에서 몸을 섞은 상대가 사모님이 옳든 아니든 나는 반드시 사모님과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사모님은 부드럽고 다정하며 강남시 여자들한테만 있는 온화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심지어는 향긋하고 달콤한 밀크티 같아 기분이 우울할 때면 맛보고 싶어질 정도다.비록 사모님을 상대로 무례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내 몸과 마음은 자꾸만 저도 모르게 사모님께 끌려 나도 너무 곤혹이었다.“수호 씨, 우리 아내가 그동안 나 돌보느라 고생해서 이따 수호 씨가 마사지 좀 해줘.”“싫어!”사모님은 놀란 토끼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며 본능적으로 거절했다.나도 썩 내키지 않았는데 사모님 반응이 이토록 클 주은 생각지 못했다.그 모습을 본 사장님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여보, 수호 씨는 남 아니야. 우리 친동생이나 다름없다고.”“그, 그래도 안 돼. 내가 이성과 접촉하는 걸 싫어한다는 거 알잖아.”나도 얼른 끼
사모님은 바삐 움직이면서 가끔 어깨와 허리를 주물러댔다. 그 모습만 봐도 그동안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때문에 사장님이 다시 사모님을 설득할 때 나는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고 협조하며 말했다.“사모님, 보아하니 허리가 불편한 것 같은데.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아, 아니에요.”“유미야. 내 말 좀 들어 봐. 정 싫으면 내가 주물러줄게.”사장님은 마음이 아픈 듯 말했다.하지만 사모님 역시 사장님을 안쓰러워했다.“어떻게 그래? 자기 몸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닌데. 무리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나를 보더니 결국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럼 수호 씨가 주물러 줘요. 하지만 난 우리 남편 말고 다른 이성이 나한테 닿는 게 싫으니 이따가 담요 덮고 해줘요.”“물론이죠.”나는 흔쾌히 대답했다.사모님은 내가 함부로 하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사장님 옆에 있는 소파에 엎드렸다.사장님 앞에서 마사지를 받으면 내가 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한 모양이다.사실 나도 사모님한테 뭔 짓을 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사모님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피로를 풀어줄 생각이었다.나는 내 마음이 매우 순수하다고 맹세하라면 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내 손이 사모님 허리에 닿았을 때, 뻣뻣하게 굳은 사모님 몸이 손끝에서 느껴지자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내 손은 크고도 두꺼운 데다 힘이 있었다.때문에 가볍게 사모님 허리를 주무르는 순간, 사모님은 남성의 파워를 단번에 느꼈다.그래서인지 너무 오랫동안 남자의 손길을 받아본 적 없는 사모님은 이내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이에 사모님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자기 남편이 있는 앞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하지만 허튼 생각 하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했지만 내가 마사지하면 할수록 사모님은 점점 편안한 느낌에 매료되었다. 심지어는 은근히 내 손이 등을 타고 올라올 것을 기대했다.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사모님은 깜짝 놀랐다.‘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너무
하지만 사모님이 소파에서 일어나 막 내려왔을 때 나도 마침 사장님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 때문에 사모님 치마가 흠뻑 젖은 걸 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나는 순간 흠칫 놀랐다.하지만 경험 많은 내가 그 축축한 곳이 어디인지를 모를 리가 없었다.나는 사모님이 마사지 받은 거로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다만 사모님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고 예민한지라 대놓고 뭐라 얘기할 수 없었다.나는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고개를 돌렸다.그 순간 사모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것처럼 허둥댔다. 이 모습만큼은 절대로 나한테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하필 내가 그걸 봐버린 것이다.내가 떠나려 하자 사모님은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수호 씨, 잠깐만요.”“사모님, 사장님은 이미 주무셨어요. 사모님도 일찍 주무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나는 흠뻑 젖은 사모님의 치마에 자꾸 시선이 가 더 이상 이 곳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한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내가 허둥지둥 도망치려 하자 사모님은 더욱 조마조마했다.내가 당황한다는 건 봤다는 걸 설명하니까.사모님은 내가 자기를 나쁜 여자라고 오해할까 봐 더욱 불안했다. 때문에 그 길로 나를 쫓아 나왔다.나는 얼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다만 사모님 집은 20층인데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올라오려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그때 뒤에서 쫓아 나오는 사모님이 눈에 보이자 내 마음은 더욱 조마조마했다.‘왜 쫓아 나오는 거지?’‘설마 앞으로 오지 말라고 또 욕하려고 그러나?’나는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수호 씨, 난 수호 씨가 생각한 그런 여자 아니에요. 절대 날 오해하지 말아요. 난 그저... 너무 오랫동안 남편과 가까워지지 않아 몸이 예민했던 것뿐이에요.”사모님은 나를 나무라기는커녕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그 모습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나는 다급히 말했다.“사모
임유미는 그동안 밤이 깊어 날이 어두워지면 외로움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어 누군가에게 보살핌받고 싶다는 생각에 지배되곤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사람 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지 남편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임유미는 정호섭이 자기한테 미안해 이혼할 생각까지 했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정호섭이 자기 마음을 알면 또 그런 생각을 할까 봐 두려웠다.그 순간 든 생각은 현재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몰래 해결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하는 생각이었다.임유미는 집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몰래 욕구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호섭이 도중에 자기를 부르면 흥이 깨질까 봐 걱정되었다.그에 반해 복도는 오히려 사람이 아무도 없어 마음껏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임유미는 몰래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더 없이 벅차올랐다.지금껏 임유미는 이런 짓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너무 짜릿하고 두근거렸다.하지만 친구들을 떠올리니 자기도 이제는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는 자기 욕구를 너무 억누르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병이 올 수 있으니까.최근 들어 소여정과 백연우처럼 자유롭고 멋지게 사는 게 부럽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기에 임유미도 자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임유미의 핸드폰은 주인처럼 깨끗하다. 그동안 지저분한 사이트는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으니까. 때문에 한순간 어떤 사이트에서 영상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그러다가 문득 소여정한테서 받았던 노골적인 사진이 떠올라 그걸 찾아냈다. 그 사진은 너무 노골적이라 예전에는 너무 부끄러워 제대로 보지도 못했었다.임유미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자기와 남편이 예전에 잠자리를 가지던 모습을 떠올랐다. 그렇듯 점점 옛 추억에 빠지는 느낌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한편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사모님 집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나는 고수연을 집에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농담을 해요?”나는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하지만 백연우가 내 가슴을 꼬집으며 말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러는 건데? 호의를 무시하지 마.”“알았어요. 백 쌤 말 대로 됐으면 좋겠네요.”그러던 그때 백연우가 갑자기 내 품에 안겼다.“그동안 나 보고 싶지 않았어?”“저기, 백 쌤. 형수가 옆에 누워 있는데 좀 이러지 않으면 안 돼요?”“내가 보고 싶었냐고 물어본 것뿐이잖아. 내가 뭘 한 것도 아닌데 왜 겁을 먹고 그래?”“형수 앞에서 이러고 싶지 않아요.”“얼씨구. 지난번에 나 찾아왔을 때는 여자를 본 적 없는 남자처럼 달려들더니.”그 말에 나는 일순 난처했다.현재 형수가 의식이 없어 듣지 못하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분명 화부터 냈을 거다.나는 백연우를 내 다리 위에서 내려보내고는 무의식적으로 형수를 바라봤다. 그때 형수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나는 너무 기뻐 다급히 형수의 손을 잡았다.“형수, 형수. 내 말 들리는 거죠?”백연우도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뭐야? 반응했어?”백연우는 말하면서 고개를 숙여 형수를 살폈다.“아니잖아.”“제가 분명 봤어요. 형수의 속눈썹이 떨렸어요.”“잘못 본 거 아니야?”“아니에요. 잘못 볼 리 없어요. 똑똑히 봤어요.”이번만큼 나는 형수의 속눈썹이 떨리는 걸 분명히 봤다.백연우는 팔짱을 낀 채 나를 꿰뚫어 볼 듯 노려봤다.“정수호, 아주 소설을 써라.”“거짓말 아니라니까요. 진짜예요.”“헛것을 봤겠지. 그동안 너무 바쁜 데다 욕구가 쌓여 잘못 본 게 틀림없어. 내가 욕구 좀 풀어줄게. 어때?”백연우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그 순간 나는 놀랍게도 형수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나는 그제야 형수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충격을 받아 반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면 내가 이런 방식으로 형수한테 자극을 주면 형수가 깨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나는 설명할 새도 없이 백연우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백연우는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뭐야? 정말 네 형수 앞에서 하려고?”나는 백연우의 입을 막으며 작은 소리로 형수의 눈을 보라고 눈짓했다.내가 가리키는 대로 눈알을 데구루루 굴린 백연우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정말 반응하잖아?”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우리가 스킨십할 때마다 형수가 반응해요. 아마 우리가 한 말이 들리는 것 같아요. 이런 방식으로 자극하면 깨어날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이게 진짜.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를 이용했다는 거네?”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이용이라니요. 나도 너무 갑작스러워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그럼 어떡해? 나더러 계속 너한테 협조하라고?”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백연우는 그제야 목청을 가다듬고 톤을 한껏 높였다.“정수호, 네 입술 키스하기 너무 좋다. 더 할래.”나도 일부로 목소리를 높였다.“저쪽에 빈 침대가 있는데 그쪽으로 가요.”“아주 나빴어. 정말 여기서 하려고? 몰라.”백연우는 배우 하지 않은 게 아까울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목소리는 유혹적이었고 표정은 역시 농염했다.나는 계속해서 형수를 관찰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흥분한 듯 속눈썹을 파르르 떨던 형수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우리가 너무 지나쳤던 건 아니겠죠?”나는 백연우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그럴 어떻게 알아. 난 너한테 협조해 주기만 했어.”백연우는 이내 자기는 책임 없다는 듯 선을 그었다.나는 다급히 형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형수는 확실히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나는 의아함이 생겼다. 하지만 형수가 우리 대화를 들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좋은 현상이다.형수가 우리 대화를 들었다면 의식이 있다는 뜻이었으니 적당하게 자극하기만 하면 조만간 깨어날 수 있을 거다.그걸 생각하니 나는 여전히 기뻤다.나는 백연우를 끌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오늘 고마웠어요.”“우리 사이에 뭘 고맙긴. 나중에 태연이 깨어나면 나 만나러 학교로 와. 우리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