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역시나 여자 셜록 홈즈가 따로 없네.’‘이렇게 중요한 증거도 바로잡아낸다고?’내가 마침 어떻게 답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을 때 형수가 끼어들었다.“수호 씨 몸에 있는 향은 제가 묻힌 거예요. 믿지 못하겠으면 맡아봐요.”형수는 말하면서 제 팔을 내밀었지만 지은은 동성과의 접촉을 싫어하는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다.그러자 형수가 웃으며 말했다.“윤 선생님, 수호 씨 정말 여자 친구 없어요, 이성과 성행위를 할 가능성도 없고요. 너무 얌전해서 여자 꼬시는 법을 내가 직접 가르쳤는데 아직도 몰라요. 그런데 여자와 그런 짓이라니요.”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핸드폰으로 목발 사진을 꺼내 들며 말했다.“이것 봐요. 이거 정수호 환자분 거 맞나요?”나는 당황한 나머지 형수의 눈치를 살폈다.지금 걱정되는 건 지은한테 들키는 게 아니라 형수가 나와 지은 사이에 벌어진 일을 알까 봐 두려웠다.지은의 기분 따위는 아무렴 상관없지만 형수의 기분은 상관있었다.형수의 앞에서 나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으니까.그런데 의외로 형수는 사진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이건 수호 씨 거 아니에요. 우리 수호 씨 건 화장실에 있거든요.”“그걸 화장실에 왜 두나요?”지은이 퉁명스럽게 묻자 형수가 대답했다.“목발이 더러워져서 방금 옷 씻을 때 씻었거든요. 내가 좀 깔끔 떨어서. 무슨 문제 있어요? 혹시 잃어버렸을까 봐 배상하라고 꺼낸 얘기인가요?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잃어버려도 배상할 돈은 충분히 있어요.”“그런 뜻이 아니에요.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쉬세요.”지은은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떠나갔다.하지만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형수를 바라봤다.형수는 방금 분명 나를 도와 거짓말을 한 거다.지은이 떠나면 반드시 나한테 심문할 텐데, 나는 더 이상 형수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다.때문에 형수가 물어보면 사실대로 대답할 생각이었다.“수호 씨, 수호 씨와 윤 선생님 간단한 사이 아니죠?”형수가 침대 옆에 앉으며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태연의 마음도 복잡했다.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수호가 다른 여자와 친밀한 관계를 가졌다니.저도 모르게 수호와 지은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마음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하지만 수호는 남편의 동생이니 밖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든 태연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질투할 자격은 더더욱 없고.이러한 복잡한 마음 때문에 태연은 너무 괴로웠다.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나는 형수가 진실을 알고 나를 모른 체한다고만 생각했다.“형수, 말 좀 해봐요, 네?”나는 형수의 팔을 잡고 애원하듯 말했지만 형수는 깊은숨을 들이켜더니 핸드폰을 나에게 돌려주었다.“늦었는데 일찍 자요.”형수가 말을 마친 뒤 바로 떠나버리자 나는 너무 불안해 났다.이 상태로 뒤쫓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한편, 태연은 복도를 나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한시 빨리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사실 이건 수호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애초에 수호가 자기 집에 얹혀살기 시작했을 때 겁 많은 남자였는데, 본인이 나서서 개발했으니.매번 화끈하고 섹시한 형수와 다정하고 우아한 애교를 만나는데 아무도 손대게 하지 않으니 수호는 그저 혼자 풀 방법을 찾은 것뿐이다.이제 고작 20대라 한창 혈기 왕성할 때니까.한참 동안 생각한 태연은 마침내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깊이 자책했다.애초에 저와 남편이 이런 일에 수호를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아직도 다른 대학생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했을 테니까.애교는 결국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형수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자지 않았다.형수가 돌아오지 않으면 잠들 수가 없었으니까.“형수.”그러다 형수가 돌아오자 벌떡 일어났다.형수는 얼른 나더러 다시 누우라며 입을 열었다.“다리도 불편한데 누워요.”“형수, 아직도 화 났어요?”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형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왜 화내겠어요? 수호 씨도 성인이고 사생활이 있는데 내가 화낼 권리는
난 형수 알기를 바란다. 내가 형수의 몸과 마음을 원한다는 걸.그러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 형수를 보자 나는 가슴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형수도 이 순간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참지 못하고 형수를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형수는 두려웠는지 다급히 말했다.“이거 놔요, 누가 보면 어떡해요.”“안 놓을 거예요. 형수가 제 물음에 대답하기 전까지는.”나는 일부러 이런 거다.내가 일부러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형수는 절대 내 질문에 답하지 않을 테니.“내 마음속에도 수호 씨가 있어요. 됐죠? 이거 놔요.”형수는 황급히 대답했지만 나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집요하게 물었다.“안 돼요. 방금 대답은 너무 성의 없었어요. 진지하게 대답해요.”그때 옆 침대에 누운 어르신이 깨어날 것처럼 굴자 형수는 더 겁이 나 끝내 입을 열었다.“그래요, 인정할게요. 내 마음속에도 수호 씨가 있어요.”만족스러운 답변에 나는 겨우 손을 풀었다.옆 병상의 어르신은 화장실에 깨어나자마자 화장실로 향했고, 아내 되는 분이 어르신을 부축했다.그걸 본 형수는 나를 매섭게 쏘아보았다.하지만 나는 오히려 헤실 웃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솔직히 형수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게 지은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가진 것보다 더 만족스럽다.그도 그럴 게, 형수는 내가 마음에 둔 여자니까.나는 슬그머니 형수의 손을 잡았다.“오늘 형수를 안고 자도 돼요?”“안 돼요. 질문에 답도 했는데 어디서 은근슬쩍 더 요구해요?”“형수의 마음을 알았으니 이러는 거잖아요. 형수의 마음속에도 제가 있고, 제 마음속에도 형수가 있는데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게 너무 답답하지 않아요?”“그럼 수호 씨도 내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해요. 만약 내가 정말 수호 씨한테 몸을 내어주면 나 책임질 수 있어요?”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할 수 있어요.”“그럼 어떻게 책임질 건데요? 직접 수호 씨 형한테 나랑 잤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말할 거예요?”“그건...”나는
“그러다가 변하지 않으면요? 왕정민처럼 되지 않으면요? 그때는 어떻게 할 건데요?”형수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솔직히 내가 지금 색안경을 끼고 형을 보고 있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형수가 이렇게 귀띔하는 것도 내가 일시적인 쾌락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서일 거다.나는 점점 더 망설여지고 모순되었다.형수를 내 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우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벽이 있으니까 너무 괴로웠다.그때 형수가 웃으며 내 볼을 꼬집었다.“수호 씨는 누구랑 만나든 다 되지만 유독 나와는 안 돼요. 내가 수호 씨 형수니까.”형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마치 내 누나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형수의 이런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오히려 나를 더 반하게 한다는 걸 형수는 모르는 듯하다.사실 나도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이에 나는 머리를 형수의 품에 파묻고 풀이 죽어 말했다.“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안고 자면 안 돼요?”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건 형수도 망설이고 있다는 뜻이기에 나는 더 이상 형수를 강요하지 않았다.만약 여전히 거절하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요구를 제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의외로 형수는 나를 거절하지 않고 이불을 들춘 뒤 안으로 들어왔다.나는 일순 마음이 따뜻해졌다.이 순간 형수도 분명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나는 형수의 등 뒤에서 형수를 백허그 하고는 머리를 형수의 어깨에 파묻었다. 그러니 오히려 더 떨어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 오늘이 지나면 나와 형수 사이에는 이런 상황조차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그날 저녁 형수의 마음도 싱숭생숭했는지 우리는 한참 동안 제 고민을 안고 잠들지 못했다....오늘 밤은 평범하지 않은 밤임이 틀림없다.한편, 애교의 집.애교와 남주는 왕정민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낚을지 궁리하고 있었다.결국 애교는 특별히 술
그때 남주가 일부러 화난 듯 말했다.“요 며칠 애교가 몸이 불편해요. 그날이라서 술 못 마신다고요. 그것도 몰랐어요?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애교 취하게 하려는 거예요?”“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일부러 내 아내를 취하게 하려 하다니? 나는 그저 우리 부부가 오랫동안 술 마시면 얘기 나눈 적이 없어 함께 분위기 좀 만들려는 거지.”왕정민이 다급히 설명하자 남주는 아예 애교 앞에 놓인 술잔을 가져가 버렸다.“그래도 안 돼요. 얘기할 시간은 앞으로도 많잖아요. 이런저런 핑계로 집에 안 들어오지만 않으면. 정 술이 마시고 싶으면 내가 같이 마셔줄게요.”남주의 말에 답답해하던 왕정민은 마지막 한마디에 바로 흥분했다.남주를 취하게 하면 더 재밌을 테니까.왕정민은 남주를 처음 본 순간 섹시하고 농염한 남주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남주가 애교의 절친이라 그동안 남주한테 아무 짓도 하지 못했을 뿐.하지만 지금은 지위도 권력도 있으니 남주와 하룻밤 보낼 능력쯤은 얼마든 있다고 자부했다.정말 무슨 일이라도 나면 뒷수습할 능력도 있고.이에 왕정민은 헤실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요, 남주 씨와도 안 지 몇 년이 되는데 함께 술 마시며 얘기한 적이 없네요. 오늘 제대로 마셔보자고요.”남주 곧바로 마음속으로 왕정민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이 개 같은 쓰레기 자식, 역시 꿍꿍이가 있었잖아.’왕정민의 눈에는 욕망이 가득했다. 그때 남주는 애교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남주는 그동안 정계 인사들을 만나며 주량은 많이 단련되었다.이에 곧바로 술잔을 들고 왕정민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그 결과 남주를 거뜬히 이길 거라고 생각한 왕정민은 오히려 두 시간 뒤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버렸다.애교는 그 틈에 미리 준비해 둔 계약서를 가져와서는 작은 소리로 남주에게 말했다.“어떡해? 너무 많이 먹어서 사인도 어려울 것 같은데?”남주는 힘껏 왕정민을 밀쳐 왕정민이 아예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이 개자식은 무슨 주량
왕정민은 너무 화나고 열 받았다.자기가 애교를 모해하는 건 괜찮지만 애교가 저를 모해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애교와 결혼한 7년 동안 왕정민은 비굴한 구애자에서 고고한 위치에 섰다.사실 애초에 왕정민이 애교한테 구애한 것도 애교가 예뻐 제 체면을 살려줄 거라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애교의 가정 형편이 좋아 제 사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다.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왕정민은 애교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걸 얻었고,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심지어 졸업한 뒤에도 시행착오를 줄여 줄곧 성공의 길을 걸어왔기에 이미 저를 구애자가 아닌 통치자라고 생각했다.대학 때 여신도 더 이상 그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없이 이번 이혼 계획을 세웠던 거다.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고 귀엽기만 하던 아내가 자기를 상대로 계략을 꾸미다니.왕정민은 그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점차 애교가 밖에 내연남을 두고 있다고 확신했다.‘분명 그럴 거야. 안 그러면 이렇게 똑똑해질 리 없어. 어쩐지 이번에 털끝 하나도 대지 못 하게 하더라니.’“이 여편네가!”왕정민은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이윽고 뭔가 생각난 듯 동성에게 문자를 보냈다.[네 동생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마누라랑 관계는 맺었대?]그 시각 동성은 혼자 집에서 야한 영화를 보며 혼자 해결하고 있었다.왠지 요즘 동성은 점점 이런 느낌에 빠져들고 있었다.분명 영화 속 여주인공이 태연보다 예쁘지도 않고 몸매도 별로지만 오히려 흥분했다.“아...”동성은 신음을 뱉으며 소파에 완전히 드러누웠다.그러다 한참 이 지난 뒤에야 핸드폰을 켜고 왕정민의 문자를 확인했다.동성은 다급히 소파에서 일어나 앉고는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내가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어제 내 동생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 그 일은 좀만 뒤로 미룰 수 없을까?][미루기는 개뿔! 애교가 나를 상대로 계략을 꾸미고 있어. 시간 끌면 나한테 불리하다고. 네 동생이 안 되면 네가 직접 하던가
하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로 그러겠다고 하면 왕정민이 분명 그가 애교를 오랫동안 마음에 푸고 있었다고 생각할 테니까.동성은 왕정민에게 밀당하듯 대답했다.[네가 내 마누라를 좋아하는 거면 내가 기회를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마누라는 됐어. 내가 어떻게 감히 그래.]심지어 본인은 자세를 낮추어 왕정민을 마치 윗사람인 것처럼 떠받들었다.그러면서 제 아내를 바치면서 왕정민의 욕망을 일부러 건드렸다.동성은 왕정민이 그동안 엄청 더럽고 다양하게 놀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자기 아내 태연처럼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와 분명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다.때문에 초반에 재미 좀 보게 한다면 왕정민도 애교를 저에게 넘겨줄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다.심지어 왕정민의 의심도 사지 않은 채로 말이다.아니나 다를까 왕정민은 동성의 대답을 보고 입꼬리를 비틀었다.태연은 너무 괜찮은 여자다. 게다가 몸매는 그가 지금껏 본 여자 중에서 가장 좋고.‘그런 여자와 몸을 섞는 건 어떤 기분일까?’왕정민은 당장 시도해 보고 시었다.‘진동성이 내 기분을 꽤 잘 맞춰주네. 아내를 나한테 바치겠단.’[그건 네가 원하는 거지, 네 마누라는 원해?]동성은 왕정민의 대답에서 희망을 가졌다.‘걸려들었네.’[솔직히 말하자면 나랑 태연 오랫동안 하지 못했어. 태연은 아이를 원하는데, 너도 알잖아 내가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거. 만약 네가 그걸 도와준다면 우리 부부도 너한테 무척 고마워할 거야.][조금 미덥지 못한데? 내 아내더러 내 아이를 갖게 하라고? 그리고 둘이 내 아이를 키워주겠다는 거야? 너는 괜찮고?]동성은 당연히 괜찮지 않아. 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고 계속 말했다.[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네 아이면 내 아이인 거지, 그렇게 나눌 필요 뭐 있어?]왕정민은 동성의 대답을 보자 크게 웃었다.두 사람이 친구라고는 하지만 사실 왕정민은 항상 동성을 무시해 왔다.그런데 오늘 동성이 바닥에 바싹 엎드려 개처
“젠장, 개 같은 자식, 공짜로 내 마누라를 먹으려고? 맛보겠으면 미리 나한테 성의 표시라도 해야지.”동성은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동성이 화가 난 건 왕정민이 자기 아내와 자겠다는 게 아니라 자기 아내와 자겠다면서 애교를 저한테 주지 않는 거다.마침 혼자 집에 있는 지금, 왕정민은 애교를 꼬드겨 여기로 보낼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그러니 애교와 자라고 처음에 얘기했던 말이 그저 말뿐일 지 아닐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동성은 이 일을 진짜로 밀어붙이고 싶었다.‘태연을 잘 설득해서 왕정민한테 협조하라고 해야겠네.’다음 날.형은 아침 일찍 병원에 찾아왔다. 나는 당연히 나를 보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형수를 불러내 뭔 대화를 하는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그걸 보니 나는 조마조마했다.그도 그럴 게, 형이 병실에 들어왔을 때 형수가 내 몸을 닦아주고 있었으니까.형이 나와 형수 사이를 의심할까 봐 두려웠다.때문에 자꾸만 목을 빼 들고 밖을 내다봤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그 시각, 동성은 태연을 아무도 없는 복도 끝으로 끌어가서는 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수호 케어하느라 그동안 고생 많았어. 오늘부터 내가 수호를 돌볼 테니 돌아가서 휴식해.”“괜찮아, 힘들지 않아. 당신은 출근해야 하잖아. 남아서 수호 씨 보살피면 일은 어떡해?”동성은 진작 계획해 둔 대로 말했다.“요즘 회사에 일이 별로 없어서 부하직원더러 하라고 하면 돼. 자기가 힘들까 봐 마음 아파서 그러지.”“수호는 내 동생인데 형수인 너더러 매일 보살피라고 하는 게 좀 아닌 것 같아서, 돌아가서 휴식해. 하루만이라도 잘 휴식하고 내일 다시 와.”태연은 떠나기 매우 아쉬웠지만 동성의 의심을 살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할게.”태연이 떠난 뒤, 동성은 바로 왕정민한테 문자를 보냈다.[정민아, 내가 병원에 와서 태연이랑 교대했어. 오늘부터 내일 아침까지 계속 혼자 집에 있을 테니까 기회 잘 잡아.]왕정민이
“됐어. 이제 말해.”서윤기는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우선 이거 풀어줘. 이렇게 외진 산에서 나 혼자 도망도 못 쳐.”나는 두말없이 서윤기의 뺨을 때렸다.“적당히 해. 넌 우리 손에 잡힌 상황이야. 흥정할 자격 없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모님은 아예 서윤기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말해. 말 안 하면 가만 안 둬!”“알았어. 말할게. 정호섭 일은 나랑 상관없어.”나는 또다시 서윤기의 뺨을 때렸다.“상관없다고? 내가 룸 밖에서 똑똑히 들었어. 네가 이동민 지시해서 조금희를 협박해 대신 일을 저지르게 했다고 했잖아.”“그리고 사고 직전에 조금희 계좌로 2억이 뜬금없이 입금된 거 이미 확인했어.”“나랑 이동민이 협력하는 건 사업적으로 왕래가 있기 때문이야. 조금희는 아예 몰라. 2억은 더더욱 모르고.”“정말 모르는 거야? 거짓말하는 거야? 서윤기,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 날 자꾸 몰아붙이지 마!”서윤기는 공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나 정말 모른다고. 이렇게 잡혀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나처럼 돈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죽는 걸 두려워해. 어렵게 Y시 시장을 뚫었고 떼돈 벌 기회가 생겼는데 이대로 죽기 싫다고.”서윤기의 눈빛과 도는 꾸며낸 것이 아닌 듯했다. 그건 조금 의외였다.‘설마 서윤기가 정말 정 사장님 일과 관련이 없나?’‘아니야. 분명 관련이 있어. 내가 룸에서 들었던 게 분명한데 틀릴 리 없어.’나는 사모님과 윤지은에게 서윤기를 며칠 더 가두었다가 다시 물어보자고 건의했다.사모님은 이미 힘이 쫙 빠져 우리 부축 없이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호섭 씨, 제발 진실을 빨리 알 수 있게 지켜줘.”사모님은 결국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나와 윤지은은 그런 사모님한테 더 힘내라고 위로할 수박에 없었다.“지금 서윤기가 우리 손에 있으니 도망치지 않은 이상 언젠가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어요.”“유미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 이러다 화병 와.”위로의 말은 누구나 할
게다가 집에는 여든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계시는데 다리도 불편하고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침침했다.노랑머리가 그 할머니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기에 우리는 곧바로 서윤기를 차에서 끌어냈다. 서윤기는 내리지 않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나는 그의 다리를 잡고 강제로 끄집어냈다.강하게 나오는 내 모습에 놀란 서윤기는 소변까지 지리고 말았다.“대체 뭐 하자는 거야? 왜 날 이런 곳에 끌고 온 건데? 여기 어디야?”“나도 몰라.”나는 솔직히 말했다.그 말에 서윤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정수호, 너 정말 미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너도 정 사장님 죽이는데, 난 왜 너한테 이러면 안 돼?”내가 반박했다.그러자 서윤기가 바로 말했다.“난 아니야. 정호섭 일 나랑 상관없어. 나 억울해.”“억울한데 Y시에는 왜 나타난 건데?”“우연이야. 다 우연이야. 난 여기 약재 구입하러 왔어. 나 정말 정호섭 일 몰라...”사실 나도 지금까지 직접적인 증거를 입수하지 못한 탓에 서윤기가 진짜 범인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문제는 서윤기의 입이 너무 무거워 입을 열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나는 서윤기를 방에 끌고 가 꽁꽁 묶고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서윤기 잘 좀 감시해요. 난 약초 찾으러 나갔다 올게요.”윤지은은 의아한 듯 물었다.“무슨 약초?”“Y시에 사실 심마라는 풀이 잘 나거든요. 다른 말로 쐐기풀. 사람이 그 풀에 닿으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요.”나는 일부러 서윤기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서윤기도 한약재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당연히 쐐기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내 말에 바로 겁을 먹었다.“뭐 하는 거야? 쐐기풀로 어쩌려고 그래? 나 쐐기풀에 알레르기 있어. 이러나 나 진짜 죽어.”나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나 한의사야. 그런 말에 내가 속을 것 같아?”“정수호, 내가 돈 줄게. 아주 많이 줄게. 나 풀어줘.”서윤기는 애원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나는 서윤기의
나는 또 서윤기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랬더니 서윤기의 코에서 또 피 두 줄기가 흘려내렸다.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불법이면 어때? 난 너 죽을 거야!”“정수호. 이렇게 할 필요까지 있을까? 정호섭은 이미 죽었어. 네가 날 죽여도 정호섭은 돌아오지 않아...”서윤기는 버둥거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우리는 아예 서윤기를 엘리베이터 안에 밀어 넣었다. 심지어 서윤기가 세게 반항해 데리고 나가기 어려울까 봐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그의 뒷목을 후려쳐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취한 서윤기를 부축하는 것처럼 홀을 지나 가게를 나갔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곧장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그때 윤지은이 물었다.“어디 가려는 거야?”“호텔은 돌아갈 수 없어요. 사람 적은 곳으로 가야 해요. 인터넷으로 이 부근에 민박집 있는지 검색해 봐요. 아예 그곳을 임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윤지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그 사이, 사모님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나는 그런 사모님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그때 마침 장소 검색을 마친 윤지은이 말했다.“안 돼. 민박집은 너무 밀집되어 있어 발각되기 쉬워.”나는 순간 사람 한 명이 떠올라 차를 길옆에 세우고 윤지은한테 말했다.“지은 씨가 운전해요. 연락은 제가 할게요.”우리는 이내 자리를 바꾸었다.사실 내가 떠올린 사람은 노랑머리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혹시 도박해요? 솔직히 말해요. 거짓말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요. 경찰에 신고하려는 게 아니에요. 나 대신 한적하고 은밀한 곳 알아봐 주면 돼요.]그 시각 노랑머리는 불법 도박장에서 한창 놀음에 푹 빠져 있었다. 오늘 그는 운이 좋아 이미 수십만 원을 벌어 마침 그만두려던 참이었다.그때 마침 내 문자를 본 노랑머리는 잠깐 고민하다가 답장했다.[형님, 제가 한적하고 비밀스러운 곳 하나 아는데, 그곳은 내 구역이 아니라 친구 구역이라 돈을 내야 해요.]나는 바로 답장했
사실 이동민 외 다른 사람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나는 재빨리 영감들을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도 그럴 게, 때리는 족족 쓰러졌으니까.곧바로 룸 안에서 처벌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이동민은 한나둘씩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더니 다시 주먹을 움켜쥐고 나에게 걸어왔다.서윤기를 잡으려면 우선 이동민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나는 옆에 있던 노인을 발로 차버리고 악에 받쳐 이동민의 시선을 마주 봤다.“이 자식, 죽어!”이동민은 주먹을 쥐더니 화려한 동작 없이 바로 내 얼굴을 향해 날렸다.하지만 나는 그걸 재빨리 피한 뒤 이동민 뒤에 숨어 공격 기회를 노렸다.이동민은 속도가 느렸지만 힘이 강해 내가 손을 뻗을 때 내 손을 단번에 다리 사이로 잡았다. 그 순간 나는 팔이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하지만 나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 이동민의 허벅지 안쪽 살을 잡았다.남자의 약점은 그곳만이 아니다. 허벅지 안쪽 살을 꼬집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제압할 수 있다.이동민은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다리에 힘을 풀었다. 그사이 나는 다시 놈의 가장 나약한 곳을 덥석 잡았다.그 순간 이동민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 꿇고 말았다.옆에 잇던 서윤기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 발견하고 곧장 밖으로 도망칠 준비를 했다.하지만 나는 의자로 이동민을 쓰러뜨린 뒤 신속히 서윤기를 잡았다.“거기 서! 서윤기. 넌 도망 못 쳐!”“정 사장님 죽음 네가 조작한 거지?”서윤기는 도망치면서 말했다.“어디서 생사람 잡아? 내가 했다면 증거를 내놔. 증거도 없이 모함하면 무고죄로 고소할 거야.”“고소는 무슨.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나는 속도를 올리며 말했다.서윤기는 내가 거의 따라붙자 곧장 엘리베이터 안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놈이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사모님과 윤지은이 달려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문을 닫아버렸다.이윽고 윤지은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나와. 폭력 쓰게 하지 마.”순식간에 3대 1인 상황이 되니 더 승산 없어진 서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