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까는 왜 그렇게 말했어요?”“장난친 건데, 정말 몰랐어?”소여정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그 순간, 나는 이 여자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자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정부가 대놓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건, 죽고 싶다는 뜻이나 다름없다.그런데 방금 여자가 나를 놀리던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어떻게 그런 장난을 칠 수 있지?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그러면 정말 마사지를 부탁하려고 부른 거예요?”나는 이곳에 계속 남아 있을 핑계를 댔다.‘나를 그렇게 희롱했겠다? 이따가 제대로 혼내주지.’소여정은 다시 침대에 누우며 매혹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맞아. 그게 아니면 내가 왜 당신을 불러들였겠어?”나는 여자에게 다가가며 또 물었다.“그럼 방금 전에 모여든 사람들도 한의사예요?”“아마도. 그중 일부는 한의대생이고, 일부는 갓 졸업한 병원 인턴일 거야. 물론 상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모두 그쪽처럼 나한테 접근하기 위해 온 사랍들이야.”“그럼 왜 나를 선택했어요?”이건 나도 궁금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그 사람들보다 특별한 게 뭐였는지 알고 싶었다.“진동성 씨 말로는, 수호 씨가 시골에서 와서 사람이 점잖다고 하더라고.”소여정의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게 대체 무슨 이유야? 물어보지나 말걸.’나는 불만조로 말했다.“한의사를 찾는다면 점잖고 말고 뭔 상관이에요? 애인 찾는 것도 아니고.”“당연히 상관있지. 점잖아야 함부로 하지 않을 거잖아. 만약 가벼운 사람이라면 분명 미색으로 나를 유혹했을 거야.”“나는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와 같은 신세거든. 밖에서 함부로 할 수 없어. 그런데 솔직히 그런 게 싫어, 나도 다른 남자를 만나보고 싶어.”나는 들을수록 멍하기만 했다.“본인이 카나리아와 같은 신세라면서요? 여정 씨의 그분이 여정 씨가 다른 남자를 못 만나게 한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만나려는 거예요?”“먹지도 만지지도 못한다
자기만 편해지려 하고 내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소여정을 보자 나는 화가 치밀었다.‘어떻게 할 수 없다면 마구 만지면 그만이지.’‘이렇게 말랑한 허리, 이렇게 향긋한 몸은 만지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테니까.’나는 조용히 여자의 나른한 몸을 느끼기 시작했다.그때, 갑자기 소여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힘 좀 팍팍 써. 하나도 못 느끼겠잖아.”나는 소여정의 말대로 손에 힘을 주었다.그랬더니 소여정은 더 높은 소리로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남주 누나랑 겨뤄도 되겠어.’하지만 이 여자가 나한테는 조금 더 매력적이었다.얻기 어려운 것일수록 손에 넣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이런 쪽에서도 마찬가지다.나는 일부러 질문했다.“지금 엄청 굶주린 것 같은데, 맞죠?”소여정은 엉덩이를 살살 흔들었다.동그랗게 탐스러운 엉덩이는 드레스에 가려져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소여정의 눈 역시 너무 매혹적이라서 사람의 혼을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내가 굶주렸는지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지? 날 건드릴 배짱이나 있고 말하는 거야?”소여정의 말투에는 경멸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걸 들으니 나는 상처도 받고 자존심도 상했다.전에 나를 불러들인 게 분명 내가 점잖아서라고 했는데, 아까는 일부러 놀려대며 내가 당황한 모습을 비웃기나 하고.이 여자 안중에 나는 고작 장난감에 불과했다.그런데 주제도 모르고 농락했으니 모욕을 들어도 싸다.“못 들은 거로 해요.”나는 너무 후회되어 더 이상 이 여자와 상종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맹세했다.하지만 소여정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그쪽이 못 들은 거로 하란다고 내가 그래야 해?”“그럼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그쪽이 먼저 야한 소리를 냈고 자꾸만 몸을 배배 꼬며 야한 자세를 취하며 오해하게 했잖아요.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물어본 건데, 그것도 안 되나요?”나는 또 이 여자한테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랬더니 소여정은 빙그레 웃으며 나를 봤다.“방금 심장 떨렸지?”‘역시
‘내가 정말 점잖은 줄 알아?’‘내가 지금은 이렇게 당하고 있지만, 나도 한 성깔 한다고. 절대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 않아.’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여자를 훑으며 비아냥거렸다.“대체 정부는 어떻게 된 거예요? 성격도 나쁘고 남을 놀려먹기 좋아하고, 내가 만약 부자라면 절대 그쪽 같은 사람 정부로 두지 않을 거예요.”소여정은 순간 더 요염하게 자세를 바꾸었다. 그 순간 가느다란 허리와 탐스러운 엉덩이가 더 돋보여 나는 너무 괴로웠다.그때 소여정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이 얼굴과 몸매면 말 다한 거 아니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내 얼굴과 몸매를 보고도 반응하지 않았는지?”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기도 싫고, 거짓말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어떤 말을 해도 이 여자에게 나를 놀릴 거리만 더해주는 셈이었다.소여정은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듯 눈치를 줬다.“이봐, 얼른 여기 똑바로 앉아.”“난 이봐가 아니에요. 정수호예요. 이름 불러요.”나는 화를 냈다.하지만 소여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 피식 웃었다.“내가 어떻게 부르든 내 마음이지. 얼른 앉아서 여주인 다리 좀 주물러 봐.”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성큼성큼 걸어가 여자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힘껏 내리쳤다.그 순간 소여정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응. 나빴어. 어떻게 여주인의 엉덩이를 함부로 때릴 수 있어?”나는 제멋대로 하는 여자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났는데, 여자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순간 그 화가 모두 사라졌다.‘대체 뭐 하자는 거지? 설마 나를 화나게 해서 일부러 자기를 때도록 유도한 건가?’‘딱 봐도 즐기는 듯한 표정인데?’나는 소여정의 행동에 어리둥절해졌다.“대,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마요. 와요, 얼른 내 다리나 주물러 줘요.”소여정은 가늘고도 긴 다리를 나에게 쭉 뻗었다.소여정의 다리는 희고도 가늘며 향기롭기까지 했다.게다가 흰색 레이스 스타킹을 신고 있어 청순하면서도 섹시했다.‘흰색 스타킹도 이렇
“지, 지금 나 놀리는 거죠? 도대체 너 같은 여자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말하는 것마다 어떻게 다 거짓말일 수가 있어요?”나는 소여정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또 나를 놀리는 거라고 판단했다.이 여자는 나를 놀리는데 재미라도 붙었는지 자꾸만 놀려댔다. 심지어 시종일관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그래, 그럼 내가 거짓말했다고 생각하던가. 나를 마음대로 건드려 보던가.”소여정은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내 가슴에다 발을 비볐다.고개를 숙여 보니 소여정의 발은 뽀얗고 부드러웠으며,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 있어 너무 요염했다.게다가 아름답고 예쁘기까지 했다.그걸 보고 있었더니 나는 가슴이 간질거리는 한편 두렵고 불안했다. 하지만 여자의 신분이 떠오른 순간 나는 이내 괜한 일 만들지 말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나는 아예 눈을 감고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소여정의 족삼리혈을 꾹 눌렀다.다음 순간, 소여정은 ‘아’하는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나 앉았다.여자의 비명소리를 듣자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하지만 곧이어 폭풍우 같은 복수가 찾아왔다.소여정은 자기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나를 향해 사진 찍기 시작했다.‘뭐 하는 거야?’여자의 행동에 내가 어리둥절해 있을 때, 소여정이 말했다.“그쪽이 내 발을 끌어안고 있는 사진 다 찍어뒀어. 지금 기회를 줄게, 나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이사진들 고대로 그분한테 보낼 거야.”나는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이럴 목적이었어?’“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악독해요?”나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었다.‘나를 그렇게 놀려대더니, 내가 장난 한번 쳤다고 이렇게 복수한다고?’‘본인 남자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 사람인 줄 알면서, 이 사진을 보내겠다는 건 날 죽이겠다는 뜻이잖아?’소여정은 의기양양한 듯 말했다.“그러게 누가 그러랬어? 이건 벌이야. 사과할 거야 말 거야? 안 하면 사진 보낸다?”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
형수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수호 씨, 괜찮아요? 소여정 씨가 무슨 짓 하지 않았죠?”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그 여자는 변태처럼 저를 놀리기만 해댔어요. 그런 여자랑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갰어요.”형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토닥였다.“그럼 됐어요. 수호 씨, 기억해요. 그 여자는 임천호의 여자예요, 그러니 절대 손 대면 안 돼요. 그 여자가 옷을 벗고 수호 씨 앞에 서 있어도 절대 건드리면 안 돼요. 알았죠?”형수의 엄숙한 표정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을 봤다.그러자 형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수호야, 미안해. 형이 잘못했어. 너한테 그런 여자를 소개해 주면 안 되는데.”나는 임천호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물었다.“형, 그 임천호라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엄청 대단해요?”“임천호는 LJ 건설 사장이야. 임 사장의 산업은 강남 일대에 집중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강남 구역의 토지왕이라고 불러.”토지왕이라는 말에 내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방금까지만 해도 그 여자가 한 말에 대해 별생각 없었는데, 토지왕이라는 단어로 남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우리가 평소 보는 것은 아마 임천호가 보여준 모습이고, 보여주지 않는 건 영원히 볼 수 없을 거다.이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다른 점이다.지금 아무리 평화 시대라지만, 아직도 억울한 일은 수도 없이 많을 거다.소여정이 말했던 것처럼 나 같이 권력도 백도 없는 사람은 영원히 권력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형수에게 말했다.“알았어요.”형을 보지 않은 건 마음이 식어서다.임천호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분명 알면서 나를 소여정한테 소개해 준 건 내 생사조차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 아닌가?만약 형수가 미리 귀띔해 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영원히 그 여자의 뒤에 있는 남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거다.그 여자와 실질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자주 왕래하다 보면 분명 그 임천호라는 남자가
나는 얼른 모든 옷을 벗고 팬티 한 장만 남겼다. 이 상태로 욕실에 몰래 들어가 애교 누나를 놀래켜줄 생각이었다.하지만 욕실 문을 열었더니 희뿌연 수증기만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더니 갑자기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선영아, 어쩜 몸매가 이렇게 좋아? 피부도 탱탱하고, 너무 부러워.”애교 누나의 목소리였다.곧이어 부끄러운 듯한 선영의 목소리가 들렸다.“언니, 샤워하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미안해요.”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지릴 뻔했다.안에 애교 누나만 있는 게 아니라 누나의 사촌 동생 주선영도 있을 줄이야.‘그런데 내가 이렇게 들어갔다가 발각되면 너무 민망하잖아.’나는 다급히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갑자기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있는 대야에 발이 닿는 바람에 큰 소리가 났다.선영은 바로 경계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언니, 이게 무슨 소리예요?”마침 고개를 든 애교 누나는 마침 나를 봐버렸다.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이 상황에서 들키면 너무 민망하니까.애교 누나도 내가 옷을 벗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바로 내 의도를 눈치챘다. 심지어 벌거벗은 채로 선영의 선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대야를 발로 찼어.”“그래요? 그런데 방금 분명 사람 그림자가 보였어요.”선영은 말하면서 일어나려 했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다급히 선영을 막아섰다.나는 그 틈에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재수 없게도 문을 열려고 힘을 주는 바람에 문고리가 끊어져 버렸다.‘젠장.’나는 뇌가 다운되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이러면 어떻게 나가지?’나는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애교 누나를 바라봤다. 애교 누나도 너무 놀랐는지 멍해졌다.그때, 선영이 애교 누나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일어나 내 쪽을 바라봤다.나는 너무 놀라 얼른 몸을 웅크렸고, 애교 누나는 재빠르게 선영의 손을 잡아당겨 다시 욕조에 앉았다.“선영아, 너 발도 다친 애가 함부
정말 안되면 이대로 문을 부숴버릴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것 역시 애교 누나의 도움이 필요하다.애교 누나는 나에게 그렇게 하라는 눈빛을 보내며 선영의 주의를 돌렸다.나는 얼른 화장대에서 벽돌처럼 무거운 물병 하나를 들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하지만 그 물병으로 문을 부수려는 순간, 밖에서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그것도 남자 실루엣.그 실루엣의 주인은 덩치가 크고 심지어 눈에 익었다.“이애교, 감히 나 몰래 집에 다른 남자를 끌어들이고 내 재산까지 노려? 이 여편네가!”그 실루엣은 다름 아닌 왕정민이었다.나와 애교 누나는 동시에 당황했다.이 시간에 왕정민이 갑자기 쳐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선영은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섰고, 자연스레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선영은 내가 벌거벗은 채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채로 갑자기 욕실에 나타난 걸 보자 곧바로 소리 질렀다.“아!”“쉿, 선영아, 조용히 해.”애교 누나는 선영의 입을 막으며 귀띔했다.“왕정민이 밖에 있어. 그런데 우리 셋이 이 꼴로 욕실에 있다면 분명 이 기회를 이용하려 들 거야. 언니 좀 도와줘.”그 말에 선영은 멍해졌다. 게다가 단순한 얼굴에 혼란과 공포가 가득했다. 하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내가 뭘 하면 되는데요?”애교 누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사실 수호 씨는 내가 부른 거야. 왕정민이 오늘 찾아올 줄 알고. 왕정민이 계속 나랑 수호 씨 관계 의심해. 그래서 무조건 단념시켜야 해. 그러니 이따가 왕정민이 물으면 수호 씨가 네 남자 친구라고 해.”애교 누나가 이렇게 대단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위기에서 벗어난 것도 모자라 자기를 도울 방법을 생각하다니.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물론 방법이 조금 터무니없지만.이 욕실 안에 나와 선영 둘뿐이라면 말이 된다. 하지만 지금 욕실 안에는 우리 셋이 함께 있다.왕정민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게 통할 리가.“누나, 형부가 안 믿을 것 같은데요?”
왕정민은 밖에서 아직도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특히 침대에 있는 애교 누나의 옷 옆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 옷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왕정민이 문을 부수고 욕실로 쳐들어가려 할 때,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안에서 열렸다.유리 파편은 사방으로 튀면서 왕정민의 얼굴을 긁어버렸다.이건 가뜩이나 화가 난 왕정민의 분노를 더 끌어올렸다. 하지만 안에서 내가 나오는 걸 보자, 왕정민의 얼굴은 잿빛이 되었다.“정수호, 너였어? 어쩐지 이애교처럼 예쁜 여자를 보고 어떻게 덮치고 싶어 하지 않는가 했더니. 진작 뒤에서 붙어먹으며 나한테 미안한 짓을 했었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애교 누나와 선영이 곧이어 욕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우리 셋은 나란히 서서 왕정민을 바라봤다.왕정민은 우리 셋을 멍하니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젠장, 이건 무슨 상황이지?’ 왜 여자가 둘이야? 설마 혼자서 여자 둘이랑 그 짓을 했다고?’왕정민이 나를 보는 눈빛에 순간 부러움과 질투가 더해졌다.‘나도 이렇게 문란하게 못 놀아봤는데, 나보다도 더하네?’“정수호, 점잖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이런 사람이었어? 내 아내도 모자라 사촌 동생까지 건드리다니.”애교 누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왕정민, 헛소리하지 마. 내가 너처럼 그렇게 역겨운 줄 알아? 선영의 발이 다쳐 수호 씨가 치료해 주러 들어간 거야. 나는 약 가져다주러 들어갔다가 문손잡이가 고장 나서 안에 함께 갇혔던 거고.”애교 누나는 침착하게 말했다.그러자 선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언니 오해하지 말아요.”“됐거든. 어디서 연기야? 내가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약을 가져다주려면 밖에서 건네면 되지 안까지 들어갈 필요 있어?”왕정민은 역시 바보는 아니라 쉽게 속지 않았다. 심지어 애교 누나의 말에 있는 허점을 바로 캐치했다.애교 누나는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분간 말을 잇지 못했다.그때 내가 싸늘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내가 애교 누나를 불렀어. 바닥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