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 누나와 유미 사모님은 상냥하고 내성적이지만, 두 사람도 대화에 잘 끼어들었다.여섯 명은 가위바위보로 진 사람이 술을 마시는 벌칙을 했는데, 애교 누나와 유미 사모님은 운이 나빠 연속 몇 번이나 졌다.이대로 더 마시다가 일어나지도 못할까 봐, 나는 얼른 일어나서 말했다.“지금부터 애교 누나와 유미 사모님 술은 제가 마실게요.”“얼씨구, 이 정도로 마음 아파? 그럼 내 것까지 마실래?”백연우는 나를 보며 놀려댔다.나는 가슴팍을 팍팍 두드리며 말했다.“그래요, 술은 다 제가 마실게요.”윤지은은 나를 한번 째려봤다.“좋은 생각 하네. 흥 돋우려고 술 마시는 건데, 네가 다 마시면 우린 뭘 하고 놀아?”하정현도 옆에서 맞장구쳤다.“맞아. 이 술 한 병에 몇백만 원인데, 혼자 다 마시려고? 좋은 생각 하네.”‘이 둘은 참, 어쩜 내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쪼잔한 사람으로 몰아? 내가 그렇게 잔 욕심 채우는 사람으로 보이나?”‘난 애교 누나와 유미 사모님이 마음 아파서 그런 거라고.’“두 사람은 마시고 싶으면 마셔요. 두 사람은 대신 안 마셔줄 테니까.”다들 하하호호 웃으며 얘기하느라 분위기는 전례 없이 좋았다.나는 애교 누나와 유미 사장님한테 끌려 가운데 앉았다.두 사람 주량은 모두 보통인데, 연속 몇 번 져서 술을 연달아 마셔서 그런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내가 나타난 건 두 사람에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수호 씨, 아예 수호 씨가 가위바위보까지 해요. 우리가 가위바위보도 못해서요.”애교 누나가 말했다.나는 유미 사모님을 바라봤다.“사모님은요? 제가 대신 가위바위보까지 할까요?”사모님은 얼굴이 발그스름해서 살짝 눈이 풀려 있었다.“그래요. 나 가위바위보 못해요.”애교 누나와 유미 사모님의 말에 나는 마치 성지를 바른 것처럼 아예 소매까지 걷어 올렸다.“좋아요. 그럼 제가 대신 이겨줄게요.”나는 가위바위보는 자신 있었다.그러니 누나들과 하면 꼭 이겨서 술을 먹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그러자 백연우가 언짢았는지 바로 나
“흥, 나를 취하게 해서 뭐 하려고? 엉큼하네, 아주.”나는 계속해서 형수와 가위바위보를 했다.형수가 또 연속 두 번 지니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때문에 다음 몇 판은 조금 봐줬다.하지만 이미 적지 않게 취한 형수는 머리가 어지러웠는지 헤롱헤롱하더니 아예 테이블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백연우가 몇 번이고 불렀지만 형수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안돼. 나 머리 어지러워. 조금만 쉴게.”“너도 참, 할 줄 아는 게 뭐야? 내가 할게.”백연우는 계속해서 나를 상대하려고 앞장섰다.그때 윤지은이 앞에 막아섰다.“너도 쉬어. 내가 할게.”윤지은은 여전히 말만 사납게 했지 마음은 순두부나 다름없었다.겉으로는 백연우의 주량이 별로면서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고 투덜댔지만, 속으로는 친구를 걱정했다.백연우는 연약하게 윤지은한테 기댔다.“역시 우리 지은이가 제일 좋아. 네가 저 자식 이기면, 내가 너 더 사랑해 줄게.”하정현이 얼른 옆에서 맞장구쳤다.“그러면 걱정 붙들어 메. 우리 지은이 주량은 아무도 못 따라오니까. 심지어 쟤 의술보다 더 세.”“그래? 그건 몰랐네. 그럼 어디 한번 보여줘 봐.”백연우는 참지 못하고 부추겼다.백연우는 그걸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일전에 안철수의 신분으로 몇 번 술을 마셔 봤으니.그때는 그저 그랬던 것 같은데, 하정현은 대체 뭘 보고 윤지은이 술이 세다고 하는지 모르겠다.윤지은의 가위바위보 실력은 확실히 다른 사람보다 한 수 위였다.때문에 우리는 엎치락뒤치락 한 잔씩 마시며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술 한 병을 비웠다.하정현이 옆에서 얼른 새 술을 따면서 소리쳤다.“자, 계속 해. 두 사람 오늘 반드시 승부를 갈라야 해.”나도 이제는 머리가 어지러워 났다. 어쨌든 방금 애교 누나와 유미 사모님 대신 많이 마셨으니까.그때 조금 정신을 차린 애교 누나와 유미 사모님이 나를 도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윤지은도 하정현이 옆에서 도와주고 있었고, 백연우가 가끔 거들어 주었다
‘내가 누구랑 뭘 한 거지?’‘대체 누구야?’나는 정신이 혼미해 아무 일도 기억 나지 않았다. 심지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예 몰랐다.나는 머리까지 내리치며 떠올리려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젠장.”순간 어이가 없었다.‘내가 가장 늦게 깨어났으니, 누나들이 내 부끄러운 모습을 모두 봤다는 거 아닌가?’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순간 민망해서 얼굴이 시뻘겋게 닳아 올랐다.전에 나랑 몸을 섞은 여자들과 그랬다면 모를까, 룸에는 유미 사모님과 하정현도 있었다.특히 사모님처럼 우아하고 기품 있는 분이 일어나자마자 내가 벌거벗고 있는 걸 봤으면 분명 나를 경멸할 거다.‘젠장, 사모님 마음속 내 이미지가 망가져 버렸네.’나는 후회가 밀려왔다.‘왜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가지고.’게다가 문제는 정신이 몽롱해 상대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나는 자신을 탓하며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그러다가 결국 애교 누나한테 전화하기로 했다.전화를 건 지 한참 뒤 애교 누나가 전화를 받았다.누나가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다급히 물었다.“누나, 다들 어디 있어요? 왜 룸에 저밖에 없어요?”애교 누나의 목소리는 조금 이상했다.[수호 씨, 우리 술에 취한 뒤 대체 뭘 했어요?]“저, 저도 기억 안 나요. 저도 취했어요. 애교 누나는 일찍 깨어났어요? 아니면 늦게 깨어났어요? 혹시 제 추태를 봤어요?”애교 누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조금 늦게 깨어났어요. 내가 깨어났을 때, 나머지 사람들이 다 수호 씨를 둘러싸고 보고 있었어요.]“네?”‘이건 뭔 망신이래?’‘나를 둘러싼 채 보고 있었다고? 바지도 안 입고 있는 모습을?’‘젱장...’그 장면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못 볼 꼴 봤다고 생각하겠지?’나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싶었다.“누나, 다들 무슨 반응이었어요?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상대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 후회돼 미치겠어요.”[모르겠어요. 다들 반응은 정상이었어요. 윤지은
나는 너무 어이없어서 벼랑 끝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애교 누나가 나를 위로했다.[수호 씨, 너무 난처해하지 마요. 이미 벌어진 일인데, 이제 와서 그런다고 소용없잖아요. 그리고 우리 정말 신경 안 써요. 이제 다 친해져서 서로 잘 알잖아요.]말은 그렇다지만, 난처한 건 나다. 게다가 그런 장면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이제 20대인데, 그렇게 망신당하면 앞으로 누나들을 어떻게 봐야하지?’“애교 누나, 여기 와서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 저 지금 너무 괴로워요.”애교 누나는 나를 무척 안쓰러워했다.[그래요, 기다려요. 바로 갈게요...][정수호, 깨어났어?]애교 누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 건너편에서 백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핸드폰을 던질 뻔했다.[내 전화 끊으려고 했지? 경호하는데, 전화 끊으면 아까 룸안에서 있었던 일 올릴 거야.]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뭐라고요? 설마 사진도 찍었어요?”나는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내가 그렇게 벗고 있는 걸 찍었다고?’백연우는 아주 으쓱한 듯 말했다.[맞아. 그것도 여러 장. 보겠다면 보내줄 게.]“미쳤어요? 그런 사진은 왜 찍어요?”나는 너무 화가 나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백연우는 여전히 큰 소리로 웃어댔다.[재밌으니까. 그런 모습 처음 보는데, 바로 사진 찍어 저장해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이렇게 빨리 쓸모가 있을 줄 몰랐네. 난 역시 선견지명이 있다니까.]‘당시는 선견지명이 있는지 몰라도 나는? 내 기분은 생각해 봤냐고?’나는 화가 났지만 감히 그 화를 표출하지 못하고 전화에 대고 아부했다.“백 쌤, 대체 왜 그래요? 제 목소리 좀 들어봐요. 저 지금 울 것 같다고요, 제발 사진 좀 지워줘요.”[에이, 그럴 필요 없어. 그 사진은 내가 혼자 감상할 거야. 절대 외부에 노출하지 않아. 앞으로 내 말 잘 들어. 참, 누나들 지금 노래방에 있는데, 올래?]“싫어요!”나는 바로 거절했다.이 순간 나
나는 그 사진을 모두 삭제하고 싶었지만 권한이 없었다.하지만 그대로 두자니 또 너무 괴로웠다.게다가 백연우는 한번 당해보라는 듯 계속해서 사진을 전송했다.그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더 괴로웠다.이런 느낌은 마치 벌거벗은 채 길거리를 활보하는 느낌이었다.나는 아까 전 내 뺨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왜 술은 그렇게 많이 마셔가지고 이런 흑역사를 남겼는지?나는 얼른 백연우에게 전화해 애원하듯 말했다.“누나, 잘못했어요. 바로 갈게요.”[흥, 진작 그럴 것이지. 늦었어.]백연우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나는 결국 아부하듯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또 뭘 원해요?”[이따가 오면, 우리 앞에서 스트립쇼 보여줘.]백연우는 아예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옆에서 하정현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건너편 상황을 볼 수 없었지만, 모두 나를 웃음거리로 삼고 있을 모습이 상상되었다.결국 나는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좋아요. 하라는 대로 할 게요. 약점 잡혔는데 제가 별 수 있겠어요?”전화를 끊은 나는 얼른 용모를 정리하고 큰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별수 없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이런 상황에서 내가 손해 본 게 한두 번도 아니다. 때문에 나는 가는 내내 다시는 약점 잡히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이러고도 또 약점 잡히면 그때는 당해도 싸.’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노래방에 도착했다.누나들은 아주 큰 룸을 예약했다. 게다가 지금은 유미 사모님과 형수가 노래하고 있었다.백연우와 하성현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내가 들어오자마자 싱긋 웃으며 바로 다가왔다.그러더니 나를 놀려대며 스킨십했다.그 순간 나쁜 짓을 강요당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껴버렸다. 내가 너무 나약하고 작아진 기분이었다.“백 쌤, 하성현 씨, 그만 좀 하면 안 돼요? 다른 사람도 있는데.”나는 말하면서 애교 누나 쪽으로 달려갔다. 누나가 나를 구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애교 누나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나를 등 뒤에 숨기며 감싸주었다.“됐어요. 수호
나는 제 발이 저려 백연우의 눈을 피한 채 거짓말했다.“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저도 취해서 아무 기억도 안 나요.”“정말 기억 안 나? 아니면 안 나는 척 연기하는 거야?”백연우는 나를 꿰뚫어 볼 것 같은 눈빛으로 바라봤다.나는 시종일관 백연우의 눈을 피했다.사람이 잘못을 하면 정말 남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게 맞는 듯하다.그렇지 않고서야 상대가 거짓말하는지 알고 싶으면 눈을 보라고 하겠는가?눈은 정말 신기한 인체 기관인 것 같다. 사람 마음을 그대로 팔아버리니까.“정말이에요.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나는 극구 부인했다.그때 백연우가 윤지은을 끌고 왔다.“지은아, 네가 말해 봐.”‘윤지은은 왜 끌어왔지? 대체 뭘 말하라는 거지?’내가 의아해할 때, 윤지은이 폭탄을 던져 버렸다.“내가 깨어났을 때, 몸 위에 진득한 액체가 있던데. 그 짓을 했다는 증거지. 남자는 술에 취했을 때 자극을 받지 않고는 절대 뺄 수 없는데, 그랬다는 건 여기 있는 누군가와 했다는 거고.”윤지은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공개 처형했다.나는 당장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이건 어쩔 수 없다. 원래 부끄러움 많이 타는 성격인데, 누나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으니 너무 괴로웠다.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하지만 백연우가 강제로 내 손을 떼어내며 사납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라니까 얼굴은 왜 가려? 그곳도 봤는데, 부끄러울 거 뭐 있어? 설마 얼굴 보이는 게 그곳 노출한 것보다 더 부끄러워?”“그만 말해요, 제발.”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계속 말할 건데? 묻고 있잖아. 대체 누구랑 했냐고?”“정말 몰라요. 그때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했어요. 그저 누군가 제 위에 올라타 입 맞춘 것밖에는...”내 말에 모든 누나들이 내 주위에 둘러싸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는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갑자기 누나들이 몰려들자 나는 깜짝 놀랐다.이대로 도망치고 싶었으나, 어디로 도망칠지 몰랐다.그때 형수가 물었다.“수호 씨, 정말 누구랑 한
“그때 우리가 다 과음했잖아. 그 사이 레스토랑 직원이 들어왔고, 그 직원과 붙어먹었을 수 있잖아?”‘정말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말만 하네?’‘레스토랑 직원이 남친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나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이 이 여섯 명 중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 한사코 부정하고 있다고.“됐어요. 수호 씨 그만 놔줘요. 우선 물부터 마시고 좀 휴식하게 해줘요.”역시 나를 생각하는 건 애교 누나뿐이었다.심지어 나에게 물까지 따라주는 누나를 보니 무한한 감동이 밀려오면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 났다.애교 누나의 보호 아래 나는 겨우 소파에 앉았다.하지만 나머지 여자들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또 언제 나를 공격할지 몰랐다.나는 몰래 애교 누나한테 말했다.“누나, 저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도와줘요.”애교 누나는 내가 안쓰러운 듯 손을 꼭 잡아 주었다.“수호 씨가 고생이네요. 누나들한테 계속 공격당하다니. 그런데 나도 도와줄 수 없어요.”누나의 말에 나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형수를 봤더니 아직도 화가 났는지 나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내가 다른 여자와 그 짓을 했다는 게 화가 난 모양이었다.‘큰일이네, 형수가 아예 날 상대하고 싶어 하지도 않잖아. 도움받는 건 더 불가능하겠네.’‘윤지은과 하성현, 그리고 백연우는 됐어. 나를 못살게 구는 게 이 세 명인데.’나는 결국 모든 희망을 유미 사모님한테 걸어야 했다.나는 뻔뻔하게 사모님 곁에 앉았다.“사모님, 저 밖에 나온 지도 며칠 되는데, 이제 출근하러 돌아가야 하지 않나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으면 정 사장님이 불만 가질까 봐 걱정이에요.”사모님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요. 내가 남편한테 이미 말해뒀어요. 수호 씨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요.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요. 내가 끌고 나왔는데, 그런 일이 있었고, 구경거리까지 됐으니 나도 마음이 불
누나들은 한 줄로 쭉 앉아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절대 사진 안 찍어.”“얼른 춰 봐. 나 스트립쇼는 처음 보거든.”이미 수없이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진짜 스트립쇼를 해야 한다고 하니 도저히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문제는 너무 어색했다.내가 이런 걸 해봤어야지, 한다 한들 꼴불견일 게 뻔했다.나는 결국 마지막까지 희망의 끊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안 하면 안 돼요? 노래하면 안 될까요?”“안 돼. 남자라면 뱉은 말은 이행해야지.”백연우는 계속해서 나를 부추겼다.하정현도 옆에서 계속 맞장구쳤다.이 두 사람이 반응이 가장 격렬했고 애교 누나와 사모님은 아예 뭐라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백연우가 또 강조했다.”“이애교, 임유미, 두 사람 더 이상 정수호 편 들지 마. 안 그러면 두 사람 의심할 거니까.”그 말에 애교 누나와 사모님은 더 이상 내 편을 들지 못했다.이제 나는 스스로 행운을 빌 수밖에 없었다.‘거기까지 보였는데 이대로 그냥 해버리자는 게 뭐 어때서? 두려울 거 뭐 있어?’‘스트립쇼, 까짓거 하면 되지.’“음악 좀 틀어줘요.”나는 호기롭게 얘기했고, 백연우는 곧바로 리듬감 있는 음악으로 틀어주었다.음악의 리듬에 맞춰 나는 몸을 흔들며 옷을 벗었다.춤을 잘 추든 못 추든, 예쁘든 추하든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 이대로 밀어붙일 생각이었으니까.이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니 어색함도 어느새 사라졌다.심지어 뻔뻔하게 구나 무서울 것도 없었다.내가 옷 한 벌 벗을 때마다 누나들은 옆에서 호응해 줬다.“어머, 어머...”리드미컬한 음악과 현장 분위기에 나는 저도 모르게 흥분해 버렸다.심지어 미친 듯 스트립쇼에 빠져버렸다.나는 윤지은까지 잡아 일으켜 세웠다.윤지은을 선택한 건, 그녀가 나를 구경하면서 또 현장 수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너 친구들앞에서 난처하게 한다.’윤지은은 내가 저를 끌어당기자 황급히 내 손을 뿌리쳤다.하지만 윤지은이 원하는 대로 해줄 내가 아니었다.백연우와 하정현은 아예 환호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