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기저귀 테이프에 손을 대자마자 해준이가 몸을 비틀었다.
“잠깐, 뒤집으면 안 돼!” 태윤은 아이의 다리를 붙들었지만 해준이는 손 사이로 빠져나갔다. 겨우 눕히면 두 발로 그의 손을 차 버렸다. 몇 분을 씨름한 뒤 기저귀를 열었을 때 태윤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깨끗한 기저귀를 먼저 펴 두고 물티슈 뚜껑도 열어 뒀다. 준비는 완벽했다. 다만 해준이가 그 준비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아이가 어깨를 돌릴 때마다 다른 손으로 받치고 다시 눕혀야 했다. 태윤의 팔뚝에 힘줄이 섰다.“……양이 예상치를 넘었군.” 물티슈를 여러 장 겹쳐 들고 아이의 허리를 받쳤다. 몸이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갈 때마다 러그가 마음에 걸렸다. 깨끗이 닦아 낸 뒤 새 기저귀를 재빨리 끼우고 테이프와 샘“대표님, 해준이가 태어난 뒤 두 분이 함께 외출한 적 없잖습니까. 저희가 잘 보겠습니다. 저녁은 편하게 드시고 오세요.” 박현석의 제안에 이동훈까지 거들었다. 쉬는 날에도 집에 와서 해준이와 놀아 주던 두 사람이라 믿을 수 있었다. 그래도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태윤은 몇 번이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우리는 번화가에서 한 골목 들어간 작은 프랑스 식당에 도착했다. 덩굴이 벽을 타고 올라간 주택을 고친 곳이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안뜰이 보이는 창가로 안내받았다. 흰 식탁보와 얇은 잔, 가지런한 식기가 놓여 있었다. 바깥 차 소리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멀어졌다. 식탁에 앉아 두꺼운 메뉴를 펼칠 때도 습관처럼 옆의 아이 자리를 확인했다. 의자는 둘뿐이었다. 태윤은 내가 그쪽을 보는 걸 알아챘는지 유리잔을 살짝 밀어 놓으며 웃었다.“조용하다.”“해준이를 데려왔으면 저 잔은 삼 초 만에 넘어졌겠지.”“식탁보도 금방 소스투성이가 됐을 거야.” 우리끼리 웃었다. 아이 얘기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조용한 공간에 앉자마자 해준이부터 떠올렸다. 태윤은 집안일과 육아를 잠시 잊고 좋아하는 걸 주문하라며, 자신에게 너무 맡겨 두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잔이 가볍게 부딪혔다. 식전 작은 요리로 차가운 옥수수 수프와 가리비 마리네가 나왔다. 나는 누구의 숟가락을 먼저 챙기지 않고 수프를 천천히 맛봤다. 평소에는 해준이를 먹이는 동안 내 음식이 식기 일쑤였다. 옥수수의 단맛이 입안에 남았다. 수저가 접시에 닿는 소리도 작았다. 음식을 서둘러 삼키지 않아도 되는 일이 낯설었다. 태윤과 마주 앉아 각자 한 숟가락씩 먹고 맛이 어
해준이가 두 살 반이 된 가을이었다. 그림책을 보다가 아이가 신부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엄마, 이거 뭐야?”“결혼식이야. 좋아하는 사람하고 앞으로도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는 날.” 해준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내 목을 껴안았다.“해준이 엄마랑 결혼할래!” 너무 진지한 선언에 나는 웃었다. 나도 해준이가 좋고 앞으로도 엄마일 거라고 했다. 그때 뒤에서 종이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재택근무를 하던 태윤이었다.“이의 있어. 그 결혼은 성립하지 않아.”“할 거야!”“서린은 내 아내야.”“엄마는 해준이 거야!” 태윤은 소파 앞에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나중에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 설명했지만 해준이는 필요 없다고 했다. 둘 다 고집이 세다는 내 말에 태윤이 억울한 얼굴을 했다. 저녁이 되자 해준이는 아빠와의 다툼을 잊고 햄버그스테이크만 먹었다. 태윤은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지 내가 해준이의 엄마이면서 그의 아내이기도 하다고 새삼 확인했다. 자기가 먼저였다는 말까지 덧붙였다.“사랑에 순번표가 있는 건 아니잖아.” 태윤은 내 얼굴을 보다가 숟가락을 든 아이를 봤다. 결혼한다던 선언을 정작 해준이는 잊어버렸다. 아이에게 내가 줄 사랑과 태윤에게 줄 사랑은 한 접시를 나눠 갖는 것처럼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나는 해준이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았다.“네가 커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스스로 선택하는 거야. 아빠도 엄마도 대신 정하지 못해.” 태윤의 젓가락이 멈췄다.
겨울밤이었다. 해준이를 재우고 부엌에 돌아오니 태윤이 찻잔 두 개를 앞에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늦었어. 두 시간 사십 분이나.”“그림책을 세 번 읽어 달래서.”“저녁엔 네가 해준이 입만 닦아 줬고, 목욕 뒤에는 몇 번이나 뺨에 입을 맞췄어. 나와는 사흘째 제대로 얘기도 못 했고.” 아들에게 질투하냐고 웃으려다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말한 내 목소리가 나도 놀랄 만큼 지쳐 있었다. 태윤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의자를 빼고 따뜻한 차를 내 앞에 놓았다.“저녁도 거의 못 먹었잖아.”“봤어?”“보고 있어. 네가 나를 못 보는 것보다, 네 상태를 돌볼 틈도 없는 게 더 걱정돼.” 태윤은 다음 날부터 자신이 재우겠다고 했다. 해준이가 싫어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래도 배우겠다고 했다. 그는 질투한 것은 부정하지 않았지만, 그 질투를 핑계로 내 시간을 더 빼앗으려는 게 아니었다. 아이 방으로 가는 일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찻잔을 쥐고 있던 내 손끝이 조금 따뜻해졌다. 다음 밤, 아이 방에서 태윤이 그림책 읽는 소리가 났다. 동화인데도 이사회 자료를 읽는 것처럼 반듯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두 번이나 읽은 끝에 해준이가 잠들었다. 태윤은 승리한 얼굴로 침실에 들어왔다. 내가 웃으며 대단하다고 하자 그가 다가왔다가 손을 멈췄다.“오늘은…… 안아도 될까?” 나는 잠시 그를 봤다. 예전에는 묻지 않던 사람이었다. 원하면 둘러싸고, 두려우면 내 도망갈 길까지 막았다. 나는 스스로 일어나 그의 가슴에
기저귀 테이프에 손을 대자마자 해준이가 몸을 비틀었다.“잠깐, 뒤집으면 안 돼!” 태윤은 아이의 다리를 붙들었지만 해준이는 손 사이로 빠져나갔다. 겨우 눕히면 두 발로 그의 손을 차 버렸다. 몇 분을 씨름한 뒤 기저귀를 열었을 때 태윤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깨끗한 기저귀를 먼저 펴 두고 물티슈 뚜껑도 열어 뒀다. 준비는 완벽했다. 다만 해준이가 그 준비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아이가 어깨를 돌릴 때마다 다른 손으로 받치고 다시 눕혀야 했다. 태윤의 팔뚝에 힘줄이 섰다.“……양이 예상치를 넘었군.” 물티슈를 여러 장 겹쳐 들고 아이의 허리를 받쳤다. 몸이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갈 때마다 러그가 마음에 걸렸다. 깨끗이 닦아 낸 뒤 새 기저귀를 재빨리 끼우고 테이프와 샘 방지 날개까지 확인했다. 해준이는 그것마저 놀이인 줄 아는지 웃으며 발을 찼다. 태윤은 아이의 배를 누르지 않으려 한 손으로 허리만 받치고 다른 손을 바삐 움직였다. 어느 순간 얼굴을 타고 땀이 흘렀다. 큰 거래를 마무리할 때보다 더 정신이 없었다.“끝났다.” 태윤은 그대로 러그에 드러누웠다. 숨이 거칠었다. 해준이가 그 얼굴을 들여다보다 웃으며 가슴 위에 엎드렸다. 아홉 킬로그램 남짓한 몸이 배를 눌렀다.“널 혼자 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 점심으로 아이에게 잘게 썬 국수를 먹일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알았지만, 둘 다 금방 움직이지 못했다. 해준이도 하품을 하고 태윤의 가슴에 몸을 말았다. 어질러진 디스크 케이스와 눈처럼 흩어진 티슈 한가운데서 두 사람은 그대로 잠들었다.◇
서린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태윤은 품 안의 해준이를 내려다봤다. 아내를 닮은 머리카락이 가을빛에 갈색으로 비쳤다.“이제 남자끼리 보내는 시간이군.” 해준이는 대답 대신 태윤의 니트 목을 움켜쥐었다. 태윤은 거실 러그 위에 아이를 내려놓고 블록을 가리켰다.“너는 저기서 놀아. 나는 잠깐 책을 읽을게.” 해준이가 알록달록한 블록 쪽으로 걸어갔다. 태윤은 소파에 앉아 두꺼운 경제 서적을 펼쳤다. 서린이 너무 걱정한 것 같았다. 아이가 노는 동안 지켜보면 될 일 아닌가. 조금 전까지 해준이는 엄마의 신발을 만지작거리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문이 닫히자 금세 블록에 정신을 빼앗겼다. 태윤은 그 뒷모습을 보며 긴장을 풀었다. 오늘은 점심도 제시간에 먹이고 낮잠도 재울 생각이었다. 사각, 사각. 뒤에서 종이 뽑히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해준이가 소파 뒤의 각티슈를 한 장씩 뽑고 있었다. 하얀 종이가 러그에 쌓일 때마다 아이가 웃었다.“해준아, 그건 장난감이 아니야.” 종이는 뽑힐 때마다 하얗게 펼쳐졌다. 해준이는 한 장이 나오면 또 한 장이 있는 게 신기한 듯 손을 멈추지 않았다. 태윤이 아이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상자 속 티슈가 거의 다 빠져나왔다. 태윤이 다가가자 해준이는 상자를 뒤집어 남은 것까지 쏟아 냈다. 종잇조각을 입에 넣기 전에 치워야 했다. 그가 허리를 굽힌 사이 아이가 빠르게 기어가 텔레비전 서랍을 열었다. 리모컨과 케이블, 디스크 케이스가 바닥에 떨어졌다.“그건 던지면 안 돼!” 그는 티슈를 주울지 케이블부터 치울지 잠깐 망설였다. 작은 발은 이미 화분 앞에 있었다
“돈을 쓰면 좋은 의사도 장비도 부를 수 있어. 사람을 움직이는 것도 어렵지 않지. 그런데 내 힘으론 해준이의 열을 단 1도도 내릴 수 없더라.” 태윤의 손이 이불 끝을 쥔 채 떨렸다.“몸이 그렇게 뜨거운데 옆에서 보기만 해야 했어. 그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나는 침대 반대편으로 돌아가 그의 곁에 앉았다. 등을 천천히 쓸어 주었다.“부모는 다 그래. 대신 아파 줄 수는 없어. 옆에 있으면서 물 먹이고 땀 닦아 주는 거지.”“그것뿐이라니.”“그게 해준이한텐 큰일이야. 네가 가까이 오고 말 걸었을 때 아이 표정이 조금 풀렸어.” 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불에서 손을 떼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허리에 둘린 팔에 힘이 들어왔다. 큰 몸이 기울어지자 나도 잠시 중심을 잃었다. 태윤은 팔로 내 허리를 받치고 있었다. 아침에 전화를 붙잡고 병원을 움직이려던 사람의 손이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듯 조용했다.“조금만 이러고 있자. 아까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났어.”“응.” 나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었다. 밤늦게까지 일한 뒤 이른 아침부터 해준이 일로 뛰어다녔으니 지칠 만했다. 한참 지나자 어깨를 누르는 머리의 무게가 일정해졌다. 태윤은 그대로 잠들었다. 깨우지 않도록 그를 침대에 기대게 하고 어깨에 담요를 덮었다. 침대 위의 작은 숨소리와 그 아래의 큰 숨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태윤의 손이 이불 위로 뻗어 해준이의 발끝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 봄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두 사람을 한동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