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의금부-평소보다 경계가 한층 삼엄해진 의금부.옥 안에 갇힌 죄수들마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이런, 제길. 하필이면 왜 저분이 우리 옥에 들어오셔서는 사람을 이리 불편하게만드는 게야.”“참게. 아직 판결도 나지 않았잖나. 혹시 아나? 운 좋게 풀려나실지.”“설마. 아무리 대군이라 해도 이번에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던데.”“그래도 왕실의 종친이시잖나.”“종친이면 뭐 하나. 듣자 하니 전하께 칼을 겨누다시피 했다는데.”“쉿! 목소리 낮추게. 그러다 옥졸이라도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나.”그 말이 떨어지자 죄수들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슬쩍 한쪽을 바라보았다.다른 죄수들과 떨어진 가장 안쪽 옥사.그곳에는 수양대군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리고는 백윤이 자신이 붙잡힐 때 건낸 쪽지를 바라보았다.‘대군마마 계획대로 마마께서 옥에 갖쳐 있는 동안 전 그동안 숨겨놓은 군사들을 한데 모으겠습니다.“쪽지내용을 훝터 본 수양대군은 희미하게 웃으며 쪽지를 품 안으로 넣고는 눈을 감았다.’뚜벅뚜벅‘갑자스럽게 발소리가 들리자 수양대군은 옥졸이라도 왔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세을 유지했다.그러나 무언가 죄수들이 아까와는 다르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커 눈을 떠보니 앞에 금성대군이서 있었다.“형님.”수양대군이 벽에 기대던 자세를 고치고는 천천히 입을열었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왔습니다.”“마지막이라…… 벌써 내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나.”금성대군의 표정이 굳어졌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신 겁니까?”“…….”“전하의 자리가 그리도 탐나셨습니까? 조카의 목숨을 빼앗고, 중전마마를 겁박하고, 제 목에 칼까지 겨누실 만큼 말입니다.”수양대군은 한동안 금성대군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너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무엇을 말입니까?”“왕좌란 말이다.”금성대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결국 왕좌 때문이었다는 말씀입니까?”“아니.”예상 밖의
지우의 질문에 단종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자, 지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읽던 서책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럴 줄 알았습니다.”“……무엇을 말이오?”“저와 전하는 아직 거기까지의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지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며 책장을 한 장 넘겼다.사락—하지만 말과 달리 어딘가 뚱해진 표정까지 감추지는 못했다.단종은 그런 지우를 자신도 모르게 곁눈질했다.‘왜 저리 서운한 표정을 짓는 것이지?’아니,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보길 바라는 것인지도 몰랐다.단종이 계속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 지우가 결국 서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전하.”“……왜 그러시오?”“계속 그렇게 보고만 계실 겁니까?”그제야 단종이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읽던 서책을 보러 오셨다면서요.”“아…… 그렇소.”단종은 황급히 아무 서책이나 한 권 집어 들었다.그런데 책을 펼치고도 글자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조금 전 지우가 한 말만 계속 맴“돌았다.‘아직 거기까지의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아직……이라.’탁—지우가 읽고 있던 서책을 덮었다.“아무래도 저는 이만 가봐야겠네요. 전하께서는 읽던 책 마저 보고 가세요.”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단종은 당황한 듯 그녀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덥석—지우의 손목이 아닌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지우가 놀란 눈으로 단종을 바라봤다.“전하?”단종 역시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듯 순간 당황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손을 곧바로 놓지 않았다.“저기…….”단종이 조심스럽게 지우의 표정을 살폈다.“혹시 내가 아까 중전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서 기분이 상한 것이오?”지우는 잠시 단종을 바라보았다.그러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을 천천히 풀어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솔직히…… 아니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전하.”“중전…….”단종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지우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조금 전보다 목소리가
편전을 나선 단종은 편전을 지나자 마자 굳은 표정을 하며 상선을 바라보았다.“상선이 보기에 내가 대신들을 잘 중재하건 같소?”“예, 전하. 신이 보기에는 충분히 잘 중재하셨사옵니다.”상선에 말에 안심이 된 표정을 한 단종이 편전에서의 일을 중전에게 얘기할 겸 중궁전쪽으로걸음을 옮겼다.“전하 저 중전마마를 뵙기 전에 아뢰것이 하나 있습니다.”“말해 보시오.”상선에 말에 단종이 고개를 돌려 대답하자 상선은 약간 조심스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전하, 종친들께서 연명하여 장계를 올렸사옵니다.”“무슨 내용이오?”“전하와 중전마마의…… 합방에 관한 것이옵니다.”“…….”단종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뭐라?”“왕실의 안정을 위해 더는 합방을 미루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옵니다.”이내 얼굴이 살짝 붉어진 단종이 당황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그... 그게, 중전이 이번에 여러 일을 겪지 않았소. 아직 몸과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었을 텐데 합방은 조금 이르지 않겠소?”“허나 종친들께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하옵니다.”“그게 무슨 말이오?”“오히려 지금과 같은 난국일수록 왕실에 경사가 있어야 한다고 여기시는 듯하옵니다. 더구나 전하께서는 아직 후사가 없으시니, 하루라도 빨리 원자를 보시는 것이 왕실을 안정시키는 길이라 생각하시는 것이지요.”단종은 더욱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아무리 그래도 중전의 몸이 먼저 아니겠소.”“소신 역시 그리 생각하옵니다. 허나 종친들의 재촉이 워낙 거세어 그냥 넘기기도 어려운 상황이옵니다.”“…….”단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괜스레 시선을 돌렸다.합방이라는 말만 들어도 지우의 얼굴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아무튼... 중전에게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예?”“괜히 그 말을 듣고 부담이라도 느끼면 어쩌겠소.”단종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붉어진 귀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그리고 단종은 중궁전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슬며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상선이 의아한 표정으
한양은 며칠째 온갖 소문으로 시끌벅적했다.한명회의 탈출 사건부터 단종과 중전의 실종까지.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저잣거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말들이 오갔다.그리고 이상하리만큼 그 모든 소문의 끝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따라붙었다.수양대군.“이번 일도 수양대군이 벌인 일이라던데?”“전하와 중전마마까지 해하려 했다는 말도 있더군.”처음에는 그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했다.하지만 수양대군이 임금과 중전을 압박하고 역모를 꾀하다 적발되었다는 내용의 벽보까지한양 곳곳에 붙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이제 백성들의 관심은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과연 전하는 수양대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그리고 앞으로 전하가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에도 모두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이른 아침부터 조정에서도 그 문제를 두고 대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해서, 수양대군을 어찌하면 좋겠소?”단종의 물음이 떨어지자 대신들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이내 한 대신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무엇을 더 고민하시옵니까. 전하와 중전마마를 겁박하고 왕위를 넘본 자이옵니다.”대신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마땅히 조선의 법도에 따라 엄히 다스리셔야 하옵니다.”“허나 전하, 수양대군은 왕실의 종친이자 전하의 숙부이옵니다. 극형에 처하신다면 조정과민심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이옵니다.”또 다른 대신이 신중론을 내놓자, 조금 전 엄벌을 주장했던 대신이 날 선 목소리로 응수했다.“하 대신께서는 지금 다른 일도 아닌 역모를 논하는 자리에서, 왕실의 종친이라는 이유로죄를 눈감아 주기라도 하자는 말씀이오?”“누가 죄를 눈감아 주자 했소?”하 대신 역시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생각해 보시오. 이 일이 온전히 백성들에게 알려지고, 전하께서 친숙부를 극형에 처하신다면 백성들이 왕실을 두고 무어라 말하겠소?”“그럼 역모를 저지른 자를 살려두면 백성들이 전하를 뭐라 생각하겠소!”“그래서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오!”두 대신
수양대군은 자신의 약조를 모두 적은 뒤 붓을 내려놓고 지우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마마께서도 쓰시지요.” “무엇을 말입니까?” “전하와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더는 나와 맞서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지우는 잠시 수양대군을 바라보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지우는 수양대군이 건넨 붓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약조를 종이 위에 써 내려갔다. 잠시 후 수양대군은 지우가 작성한 내용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이 정도면 되셨습니까?” “예.” 지우 역시 수양대군이 작성한 문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빠진 내용은 없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서로 수결을 하지요.” 수양대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수결까지 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래야 서로 약조를 어기지 않겠다는 증표가 되지 않겠습니까?” 수양대군은 잠시 지우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참으로 철저하시군요.” “목숨이 걸린 약조니까요.” “좋습니다.” 수양대군은 다시 붓을 들어 자신의 약조 아래에 수결을 두었다. 그리고 붓을 지우에게 내밀었다. “이제 마마 차례입니다.” 지우는 잠시 붓을 바라보다 천천히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약조 아래에 수결을 두었다. 붓이 종이에서 떨어지는 순간, 수양대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이제 서로 물릴 수 없게 되었군요.” 지우도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게요.” 하지만 지우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약조가 아니었다. 수양대군의 수결이 남겨진 문서였다. 그 순간이었다. 밖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비켜라!” “전하를 뫼시어라!” 수양대군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소란이냐?” 쾅! 대답 대신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군사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뭐 하는 짓이냐!” 수양대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뒤이어 김종서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수양대군은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게 다 무슨 짓이오?” 그러나
“칼부터 거두세요.”떨리던 지우의 목소리가 방 안의 침묵을 갈랐다.수양대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뭐라 하셨습니까?”“대군마마의 목에서 그 칼부터 거두시라고 했습니다.”조금 전까지 흔들리던 지우의 눈빛은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수양대군은 그런 지우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아직 중전마마께서 제게 명을 내리실 처지는 아닌 듯합니다만.”“협상을 원하신 건 숙부님 아닙니까?”수양대군의 미소가 아주 조금 옅어졌다.지우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협상은 서로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하는 겁니다.”“…….”“숙부님은 제게 원하는 것이 있고, 저는 숙부님이 가진 청명초가 필요합니다.”지우의 시선이 수양대군의 손에 들린 자루로 향했다.“그러니 협상을 하려면 적어도 제가 말을 할 수 있게는 해주셔야죠.”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러다 수양대군이 낮게 웃었다.“하하…….”그는 천천히 금성대군의 목에서 칼을 거두었다.“좋습니다.”스릉—칼날이 칼집으로 돌아갔다.금성대군이 굳은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마마.”“괜찮습니다.”지우가 짧게 대답했다.“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하지만…….”“대군마마.”지우가 금성대군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그리고 지우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금성대군은 이를 악물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양대군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자, 이제 말씀해 보시지요.”그는 청명초 자루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툭.“중전마마께서는 무엇을 원하십니까?”지우는 잠시 청명초를 바라보았다.저것만 있으면 단종을 살릴 수 있었다.하지만 수양대군이 아무 대가 없이 그것을 내놓을 리 없었다.“먼저 숙부님의 조건부터 듣겠습니다.”“제 조건은 이미 말씀드렸을 텐데요.”“제가 궁금한 건 그런 애매한 말이 아닙니다.”지우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제가 정해 드린 자리에서, 제가 허락한 대로 살면 된다고 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