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10년 차 베테랑 스턴트우먼 강채원은 사극 촬영 중 낙마 사고로 죽고, 역모로 몰려 가문이 도륙된 세자빈 윤서아의 몸에서 눈을 뜬다. 배후는 늙은 왕을 등에 업고 권력을 노리는 귀비. 채원은 애원 대신 압도적 무력과 냉정한 계산으로 정면 승부에 나서고, 아무도 믿지 않던 냉혹한 세자 이운은 그런 그녀에게 서서히 무너진다. 누명을 벗기고 복수하는 여정 끝에 왕좌 곁에 서는, 액션과 로맨스가 함께 가는 궁중 복수극.
View More화약이 세 걸음 빨리 터졌다.
쾅― 하는 폭음과 함께 붉은 불꽃이 말의 오른쪽에서 솟구쳤고, 놀란 말이 날카롭게 울며 앞발을 치켜드는 순간 강채원은 고삐를 짧게 당기면서 반사적으로 앞을 확인했다.
안전 매트까지 세 걸음.
정확히는 말이 세 걸음을 더 달린 뒤, 낙마 지점에 진입하는 순간 터져야 할 화약이었다.
‘젠장.’
몇 분 전 채원은 안장과 복대, 말이 달릴 동선과 낙마 지점에 깔린 매트까지 직접 확인했고, 화약이 터지는 순서와 타이밍도 스태프에게 재차 물었다.
“선배, 저 화약 타이밍 진짜 괜찮겠죠? 말 놀라면 위험할 것 같은데.”
후배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을 때도 제작진은 몇 번이나 점검했다며 문제없다고 장담했지만, 채원은 그 말을 믿는 대신 현장을 자기 눈으로 다시 확인했다.
스턴트 대역으로 십 년을 버티면서 배운 게 있다면, 촬영장에서 누군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정말 괜찮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확인했다.
안장도, 복대도, 매트도 이상이 없었다.
화약만 제시간에 터졌다면.
쾅―!
두 번째 폭발이 터지자 말이 머리를 거칠게 흔들며 옆으로 몸을 틀었고, 채원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까지 있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말을 진정시키기엔 늦었다.
왼쪽.
고삐를 놓는다.
턱을 당기고, 어깨부터.
수백 번 반복한 동작을 몸이 생각보다 먼저 실행했다.
채원은 말이 다시 앞발을 드는 순간 고삐를 놓으며 안장에서 몸을 빼냈고, 허공으로 떠오른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된다.
낙법만 제대로 들어가면 된다.
그 순간 놀란 말이 반대쪽으로 몸을 거칠게 비틀었고, 발끝에 걸려 있던 등자가 빠지면서 채원의 몸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머리가 아래로 향했다.
눈앞으로 검은 흙바닥과 군데군데 튀어나온 돌멩이가 빠르게 가까워졌고, 그 너머에는 조금 전 자기 눈으로 확인했던 파란색 안전 매트가 보였다.
세 걸음.
고작 세 걸음이었지만 지금은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안 돼.’
채원은 본능적으로 어깨를 안쪽으로 말며 몸을 한 번 더 틀었다.
쾅!
머리 뒤쪽을 둔탁한 충격이 때렸다.
소리가 끊겼다.
눈앞이 새하얗게 번졌다가 천천히 색을 되찾았을 때는 새벽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하늘과 그 아래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 채원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지만 목소리는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뭉개졌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손가락과 발끝 어디에서도 감각이 따라오지 않았다.
채원은 움직이려던 힘을 즉시 풀었다.
‘목.’
움직이면 안 된다.
낙상 사고를 수도 없이 재현해 온 몸이 공포보다 먼저 위험을 알아챘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 채원의 목 양옆을 잡아 고정했고, 다른 사람이 맥을 확인하는 사이 조금 전 함께 촬영했던 후배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계속 무언가를 외쳤다.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채원은 눈동자만 움직여 자신이 달려온 길을 바라봤다.
파란 안전 매트는 세 걸음 앞에 그대로 있었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그제야 실감이 났다.
잘못된 것은 단 하나였다.
화약이 예정된 순간보다 세 걸음 빨리 터졌다.
그 세 걸음이 사람 하나의 목숨을 가를 줄은 몰랐다.
“산소마스크!”
“들것 가져와요! 빨리!”
목을 고정한 채 몸이 들것 위로 옮겨졌고, 산소마스크가 얼굴을 덮었지만 숨은 갈수록 얕아졌다.
눈꺼풀도 무거워졌다.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는 건 알았다.
그런데 그 순간, 사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생각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엄마한테 전화해야 하는데.
어제도 촬영이 늦게 끝나서 못 했고, 오늘은 꼭 전화하겠다고 했는데.
채원은 손가락이라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아무 감각이 없었다.
사람들의 손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사이 누군가 촬영용 가체와 장신구를 풀어냈고, 흐려지는 시야 끝으로 자기 몸을 덮은 붉은 비단옷이 스쳤다.
세자빈의 옷이었다.
오늘도 카메라 앞에서 남의 얼굴 대신 위험한 장면을 맡았고, 늘 그랬듯 무사히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맥박 떨어집니다!”
산소마스크 너머로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가슴이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 하늘도,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얼굴도 빠르게 흐려졌다.
“맥박 없습니다!”
누군가 급하게 자리를 비키라고 외쳤고, 곧이어 의료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선생님, 심정지입니다!”
“이 사람들을 모두 부르겠다고?”진원군이 명단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위에는 김태겸이 몰락하자 앞다투어 등을 돌렸던 집안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예.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아 주십시오.”“네 아비가 어려울 때 문전박대하던 자들이다. 혼례까지 찾아와 네 얼굴을 보는 것이 즐겁겠느냐?”“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그들도.”서령의 대답에 진원군의 눈썹이 꿈틀했다.“그런데도 부르겠다는 것이냐?”“그들이 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김씨 집안이 여전히 외면받는다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참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서령은 명단의 한 이름을 짚었다.“이 사람은 아버지께서 곤경에 처하셨을 때 가장 먼저 왕래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혼례에 와서 축하를 올린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김씨 집안이 다시 일어섰다고 생각하겠지.”“그리고 그 집안을 다시 일으킨 분이 누구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진원군은 서령을 빤히 바라봤다.“나를 치켜세우려고 찾아온 것이냐?”“대감께서 바라시는 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진원군은 얼마 전 이휘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왕실의 혼인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고. 서령은 그 뜻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그렇다면 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도 있겠구나.”진원군은 명단에서 이름 하나를 짚었다.“이자는 네 아비와 등을 진 뒤 내게 찾아와 충성을 맹세했다. 지금은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지. 그런데 네 혼례에 초대하면 그가 기꺼이 오겠느냐?”“오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김태겸의 딸 앞에서 지난 일을 떠올려야 할 텐데.”“그렇기에 와야 합니다.”서령은 물러서지 않았다.“그분이 참석하면 아버지를 버린 일을 모두가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참석하지 않으면 대감의 초대까지 거절한 사람이 되겠지요.”진원군의 웃음이 사라졌다.서령은 덧붙였다.“그분께 선택을 맡기십시오. 어느 쪽이든 제게 손해는 아닙니다.”진원군은 잠시 침묵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네가 사람을 제법 곤란
진원군이 이휘의 혼례를 앞당기겠다고 밝힌 것은 윤재경에 대한 조사가 조정의 입에 오르내리던 때였다. 세자의 측근을 둘러싼 의혹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진원군은 왕실에 경사가 필요한 시기라며 혼례 날짜를 다시 의논하자고 했다.이휘는 부친의 뜻을 전해 듣고 곧장 찾아갔다. 혼례를 치르는 데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해진 일정을 굳이 바꿀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아버님, 서령과의 혼인을 서두르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조정이 어수선하니 그러는 것이다. 나라에 근심이 있다고 왕실의 경사까지 미룰 필요는 없지 않으냐.”“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조용히 치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진원군은 아들의 말을 듣고도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너는 혼례를 그저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일로만 여기는구나. 왕실의 혼인은 그보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이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얼마 전까지 세자의 자리를 입에 올리던 사람이었다. 이 혼례에도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혼례를 빌미로 제게 다른 일을 바라시는 것은 아니겠지요?”진원군의 눈빛이 잠시 차가워졌다.“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혼례를 치르는 일까지 의심한다면 내가 네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이휘는 더 묻지 못했다. 부친은 날짜를 앞당기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혼례 준비를 돕겠다며 사람까지 붙여 주었다.서령에게도 곧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는 혼례가 빨라졌다는 말보다 진원군이 준비에 직접 관여한다는 사실에 더 신경이 쓰였다. 몰락한 김씨 집안의 딸인 자신에게 왕실 혼례를 치를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진원군에게 맡길 생각도 없었다.“혼례에 필요한 물목과 일을 맡을 집안들을 적어 오너라. 빠짐없이 살펴야겠다.”시녀가 가져온 목록에는 예물과 비단을 마련하는 상인들뿐 아니라 혼례 준비를 거들겠다고 나선 관리들의 집안도 적혀 있었다. 서령은 처음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읽었다. 왕실과 혼인하는 만큼 여러
“그날 밤, 자신을 살려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담당 관원이 쪽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자 윤재경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살아 돌아온 경위를 묻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질문이었다. 누군가 그날 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윤재경,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느냐?” 재경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행방불명되었던 동안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았다. 의식을 잃기 전후의 일도 분명하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쪽지를 보낸 자는 자신을 살려 준 사람이 있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소인도 그 뜻을 알지 못하옵니다.” “허면 어찌 그리 놀랐느냐?” “소인조차 알지 못하는 일을 누군가 알고 있는 듯하여 놀랐사옵니다.” 담당 관원은 쪽지를 다시 살폈다. 재경의 대답이 거짓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쪽지를 남긴 자가 실제로 그날의 일을 목격했다면 조사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었다. “증언을 거두겠다는 자를 다시 불러오라.” 잠시 뒤 사내가 끌려왔다. 이름은 박만수였다. 그는 처음 조사에 나섰을 때, 재경이 행방불명되었던 무렵 도성 밖에서 그에게 서찰 한 통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그날의 상황을 자세히 묻자 대답을 흐렸고, 끝내 증언을 거두겠다며 쪽지 한 장을 남겼다. 지금 담당 관원이 읽은 바로 그 쪽지였다. “네가 직접 쓴 것이냐?” “아니옵니다. 어떤 분이 전해 달라 하였사옵니다.” “그자가 누구냐?”“이름은 밝히지 않았사옵니다. 다만 윤재경 나리께 반드시 전하라 하였사옵니다.”담당 관원이 재경을 돌아봤다. 재경은 사내의 얼굴을 살폈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의식을 잃었던 시기가 있었으니 그를 만난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었다.“서찰을 전한 곳이 어디냐?”“도성 서쪽 산길이옵니다. 윤 나리께서 홀로 계셨사옵니다.”“그대가 나를 알아본 까닭은 무엇이오?”“서찰을 맡긴 분께서 용모와 차림새를 일러주셨사옵니다.”재경은 더 묻지 않았다. 사내가 자신을 알아본 것만으로는 거짓을 밝힐 수 없었다
윤재경이 의금부에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던 관리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윤재경. 그대의 생존 경위를 밝히라는 상소가 올라왔소.”“알고 있사옵니다.”“그렇다면 묻겠소.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사람이 어찌 살아 돌아왔소?”재경은 준비해 온 진술서를 내놓았다.“제가 직접 겪은 일은 모두 적었사옵니다. 다만 의식을 잃었던 동안의 일까지 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사옵니다.”담당 관원이 진술서를 훑었다.“그렇다면 이 기록에 빈 부분이 있다는 뜻이오?”“그렇사옵니다.”“그대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데?”“모르는 일을 안다고 하는 편이 더 큰 죄라 생각하옵니다.”관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재경은 고개를 숙인 채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그대가 살아 돌아온 뒤 세자 저하께서 여러모로 보살피셨다고 들었소.”“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옵니다.”“그뿐이오? 세자빈마마께서는 그대의 누이이기도 하지 않소?”“그렇사옵니다.”“그렇다면 세자 저하께서 그대의 진술을 보증하실 수 있겠구려?”재경이 고개를 들었다.“어찌 저하께서 제 진술을 보증하셔야 합니까?”“그대와 각별한 사이이니 묻는 것이오.”“각별한 사이인 것과 제가 겪은 일을 아시는 것은 다르옵니다.”관원의 눈썹이 꿈틀했다.“그대는 지금 세자 저하께서도 모르는 일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오?”“제가 의식을 잃었던 동안의 일은 저 자신도 모르옵니다. 저하께서 어찌 아시겠사옵니까?”옆에 앉아 있던 다른 관리가 끼어들었다.“허나 세자 저하께서 그대를 믿으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소?”재경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소인의 진술이 거짓이라면 소인을 벌하시면 됩니다. 어찌 저하의 이름을 물으십니까?”순간 조사장 안이 조용해졌다.재경이 말을 이었다.“저하께서 저를 믿으신다는 이유로 제 말이 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으신다는 이유로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옵니다.”“말은 잘하는군.”“저는 제 일로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다른 분의 이름을 빌릴 생각은 없사옵니다.”담당 관원이 진술서를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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