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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파이를 나누는 법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1:34

여섯 살 여름, 기사들이 내기를 걸었다.

성에서 가장 높은 것은 북쪽 망루였다. 돌로 쌓은 네모난 탑. 꼭대기에서 보면 로센령 쪽 고개까지 보인다고 했다.

그 망루가 몇 뼘이냐를 두고 기사들이 저녁마다 다퉜다.

“쉰 뼘은 넘지.”

“일흔은 될걸.”

“내가 저기서 떨어져 봐서 안다. 예순이다.”

“떨어졌는데 어떻게 살았어.”

“짚더미로 떨어졌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둘째 도련님한테 재 보라고 하자. 그 도련님은 뭐든 잰다던데.

그 말이 돌고 돌아 결국 내기가 되었다. 루엔이 재는 값과, 성의 늙은 석공 벤노가 말하는 값. 어느 쪽이 맞을지.

*

벤노는 일흔이 넘은 석공이었다. 손등이 돌처럼 거칠었다. 젊을 때 무너진 망루 윗부분을 다시 쌓은 사람이라고 했다.

“예순 뼘 반.”

벤노는 망루를 올려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어떻게 아십니까.” 루엔이 물었다.

“내가 쌓았으니까.” 벤노가 코를 풀었다. “밑에서부터 돌이 서른 켜. 켜마다 두 뼘. 맨 위 머릿돌이 반 뼘 더 높고.”

루엔은 망루를 올려다보았다. 돌 켜를 세었다. 서른 켜. 맞았다.

벤노는 어림한 게 아니었다. 쌓으면서 센 것이었다.

그래도 루엔은 자기 방법으로 재 보기로 했다. 망루 꼭대기에 올라가 끈을 늘어뜨리는 건 기사들이 금했다. 내기가 싱거워진다고.

재기 전에 루엔이 먼저 물었다.

“누구 뼘으로 잽니까.”

기사들이 서로를 보았다. 한 기사가 손을 쫙 폈다. 손이 컸다. 다른 기사가 자기 손을 폈다. 조금 작았다.

“내 뼘이지.”

“자네 손은 솥뚜껑이잖나.”

한참 다투다가 결국 벤노의 뼘으로 정했다. 망루를 그 손으로 쌓았으니, 그 손으로 재야 셈이 맞는다는 것이었다. 루엔이 보기에도 그게 옳았다. 같은 자로 재지 않으면 비교할 수가 없다.

루엔은 매듭 끈을 꺼냈다. 벤노가 손을 펴 끈 위에 대 주었다. 엄지 끝에서 새끼손가락 끝까지. 루엔은 그 자리마다 매듭을 지었다. 열 번.

“이제 이 끈이 석공님 손입니다.”

벤노가 끈을 들여다보았다. 자기 손이 끈이 되는 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한낮이 조금 지나 그림자가 뚜렷해졌을 때, 루엔은 모래 마당에 막대 하나를 똑바로 세웠다. 막대 길이는 여섯 뼘. 펠릭스가 곁에서 추를 매단 실로 막대가 곧게 섰는지 보았다.

막대의 그림자는 아홉 뼘이었다.

같은 순간, 코넬과 기사 하나가 망루 그림자의 끝으로 달려가 막대를 꽂았다. 루엔이 소리쳐 알린 바로 그때였다.

그다음은 망루 벽 밑에서 그 막대까지를 뼘으로 쟀다.

아흔한 뼘 반.

“여섯 뼘 막대가 아홉 뼘 그림자를 만듭니다.” 루엔이 말했다. “그림자는 키의 한 배 반입니다. 해가 같으니 망루도 같습니다. 그러면 망루는 그림자를 한 배 반으로 나눈 만큼입니다.”

기사들이 서로 쳐다봤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들었다. 펠릭스가 옆에서 한 번 더 풀어 말해 주었다. 그림자가 세 뼘이면 키가 두 뼘이라고.

“예순한 뼘입니다.”

벤노는 예순 뼘 반이었다.

반 뼘 차이.

*

기사들이 술렁였다. 어느 쪽에 걸었느냐로 두 패가 갈렸다. 루엔 쪽에 건 기사가 훨씬 많았다. 둘째 도련님이 가정교사를 서른 배로 이겼다는 소문은 이미 성 밖까지 나 있었다.

벤노 쪽에 건 사람은 몇 없었다. 그중 하나가 코넬이었다.

“너 맨날 이기잖아.” 코넬이 말했다. “한 번쯤은 지겠지 했어.”

벤노는 아무 말 없이 루엔을 보았다. 따지지 않았다. 내가 쌓았다는 말도 다시 하지 않았다.

루엔은 망루 그림자 끝에 꽂힌 막대로 갔다.

쪼그려 앉아 모래를 보았다.

그림자 끝이 흐렸다. 칼로 자른 것처럼 딱 끊기지 않았다. 진한 그림자가 옅어지다가 햇빛으로 넘어가는 띠가 있었다. 한 뼘 반 너비.

막대는 그 띠의 바깥 끝에 꽂혀 있었다.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자리. 코넬이 달려가 꽂은 자리였고, 루엔이 거기라고 소리친 자리였다.

막대 그림자는 짧아서 끝이 선명했다. 망루 그림자는 길어서 끝이 번졌다. 같은 자리를 잡으려면 띠의 가운데를 잡았어야 했다.

루엔은 속으로 다시 셈했다. 그림자를 번진 띠의 반만큼 줄이고, 한 배 반으로 나누었다.

일어났다.

“석공님이 맞습니다.”

기사들의 술렁임이 멈췄다.

“제 그림자 끝 표시가 흔들렸습니다. 번진 띠의 바깥 끝을 잡았습니다. 가운데를 잡았어야 했습니다. 그만큼 그림자가 길게 재졌고, 높이로 치면 반 뼘입니다.”

“그럼 반 뼘을 빼면 도련님 값도 예순 뼘 반이잖소.” 루엔 쪽에 건 기사가 매달렸다. “비긴 거지!”

“아닙니다.”

루엔이 고개를 저었다.

“고친 건 석공님 답을 들은 뒤입니다. 답을 알고 나서 고친 값은 잰 값이 아닙니다. 내기는 처음 값으로 해야 합니다. 석공님은 돌을 하나하나 쌓으며 세셨습니다. 저는 그림자를 한 번 봤습니다. 석공님이 이기셨습니다.”

루엔 쪽에 건 기사가 입을 벌린 채 굳었다. 돈을 잃는 쪽이 제 입으로 진 걸 확정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벤노가 턱을 쓸었다.

“서른 켜 두 뼘이 마흔 해 전 말이오. 그새 돌이 좀 내려앉았을지도 모르지.”

“그럼 그것도 언젠가 재 보겠습니다. 오늘은 석공님 값이 제 값보다 믿을 만합니다.”

벤노가 처음으로 웃었다. 이가 몇 개 빠진 웃음이었다.

“똑똑한 도련님이네. 지는 법도 알고.”

코넬은 기사들한테서 동화를 받아 챙겼다. 여섯 닢. 한 주 용돈 여섯 주 치였다. 그날 코넬은 루엔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

망루에서 내려오는 길, 펠릭스가 걸음을 늦췄다.

“도련님. 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예.”

“틀렸다고 말하는 게 쉬우십니까. 그렇게 여러 사람 앞에서.”

루엔은 생각했다. 전생의 연구실이 떠올랐다. 어디로 샜는지 모르면 안 맞은 겁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늘 그였다.

“쉽지는 않습니다. 해야 합니다.”

“왜요.”

“틀린 걸 두면, 그 위에 쌓은 게 다 틀립니다. 석공님 망루도 밑돌이 틀리면 위가 기웁니다.”

펠릭스는 한참 말이 없었다. 성문 그늘을 지날 때 입을 열었다.

“수도원에서는, 그 말을 하면 나가야 했습니다.”

루엔이 올려다보았다. 펠릭스는 앞만 보고 걸었다.

“무엇이 틀렸는지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아직은요. 저도 틀렸다고 말했다는 것까지만.”

“예.”

루엔은 셈판 뒷면의 지운 자국을 떠올렸다. 열한 번 그은 칼자국. 죄를 지은 건 아니라던 말.

묻지 않았다. 아직은, 이라고 했으니까.

*

그날 저녁, 베르타가 산딸기 파이를 구웠다.

동그란 파이 둘이 나왔다.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 김이 올랐다. 겉이 노릇했다. 베르타가 저녁에 파이를 굽는 건 기사들 내기가 끝난 날의 버릇이었다. 누가 이기든 먹는 건 성 사람들이었다.

큰 파이는 기사들 식탁으로 갔다. 식탁에 남은 작은 파이 하나가 형제 몫이었다.

“대충 반 갈라라.” 가렛이 말했다.

코넬이 칼을 잡았다. 루엔이 말했다.

“형이 자르고, 제가 고르겠습니다.”

코넬이 멈췄다.

“… 뭐?”

“형이 둘로 자릅니다. 제가 먼저 하나 고릅니다. 형은 남은 걸 가집니다.”

코넬의 눈이 칼끝과 파이와 동생을 오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충 자르면, 큰 쪽은 동생이 가져간다.

코넬은 칼을 내려놓았다. 다시 들었다. 파이 가장자리에 칼끝을 댔다가 뗐다. 반대편에 댔다가 뗐다. 고개를 기울여 파이를 옆에서 보았다. 무릎을 굽혀 식탁 높이에서 보았다.

“코넬, 파이 식겠다.” 엘리나가 말했다.

“잠깐만.”

코넬은 칼등으로 파이 지름을 재고, 손가락 마디로 반을 짚었다. 짚은 자리에 칼끝으로 살짝 점을 찍었다. 반대편에도 찍었다. 두 점을 이은 줄이 산딸기 하나를 가로지르자, 산딸기를 옆으로 옮겼다.

가렛이 수프를 다 먹었다. 엘리나가 수틀을 가져왔다. 루엔은 마르타의 서른을 속으로 셌다. 쉰일곱 번째 서른에서 칼이 내려갔다.

반 시간이 조금 안 되었다.

파이는 식어 있었다. 김이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

코넬이 칼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골라.”

루엔은 두 조각을 보았다. 한참 보았다.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고, 고개를 숙여 옆에서 보았다.

“… 고를 수가 없습니다.”

“왜.”

“같습니다.”

코넬의 얼굴에 천천히 웃음이 번졌다. 동생을 이긴 얼굴이었다. 조약돌 무더기 이후 처음이었다.

루엔은 왼쪽을 집었다. 까닭은 없었다. 까닭 없이 고른 건 처음이었다. 그게 조금 불편했지만, 파이는 맛있었다. 식었어도.

부엌 문간에서 베르타가 식은 파이를 보고 국자를 쥐었다. 가렛이 손을 들어 막았다.

“오늘부터 이 집에선 나눌 때 그렇게 한다. 자르는 쪽이 나중에 고른다.”

엘리나가 웃었다. “그럼 파이는 늘 식겠네요.”

“코넬이 빨리 자르는 법을 배우겠지.”

코넬은 대답하지 않았다. 식은 파이를 입에 가득 넣고 있었다.

*

밤이 깊었을 때, 펠릭스가 루엔 방 문을 두드렸다.

숲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늘 오후 오스윈에게 텃밭 씨앗을 전해 주고 왔다고 했다. 손에 접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마로 공께서 도련님께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루엔은 종이를 폈다. 짧은 글이었다. 글씨가 곧았다. 줄 간격이 고르게 맞춰져 있었다.

— 가을 첫 보름. 그릇을 잰다. 영주도 오라고 전하게.

루엔은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그릇.

셀빈이 말한 것. 부을 수 있는 마나의 양. 두 번째 불을 작게 만든 것. 말로 억지로 짜내면 떨리고 번쩍이게 되는 것.

“나리께도 전해 드렸습니다.” 펠릭스가 말했다.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펠릭스는 잠깐 머뭇거렸다. “종이를 읽으시고, 창가에 서서 한참 대장간 쪽을 보고 계셨습니다. 불도 꺼진 대장간을요.”

루엔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가 무슨 셈을 하는지는 아버지 얼굴을 봐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었다.

펠릭스가 문을 닫고 나갔다.

루엔은 종이를 접어 수첩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의 서까래를 셌다. 스물셋.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것을 셌다.

둘. 셋. 다섯. 일곱.

… 백일곱. 백아홉.

백열셋.

네 살 때 마르타 앞에서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잠들었던 서른 번째 수였다.

오늘은 그 수를 넘었다. 백스물일곱. 백서른하나.

루엔은 계속 셌다. 창밖이 밝아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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