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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화살표를 더하다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4:22

셋째 고리는 조용히 닫혔다.

학교에 온 지 스무하루째 새벽이었다. 테오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쓰고 자고 있었다. 창밖이 막 잿빛으로 밝아 올 때였다.

여섯 살 첫 고리 때처럼 원을 떠올렸다. 여덟 살 둘째 때처럼 둘레를 셈했다. 이번 고리는 앞의 둘을 감싸야 했다. 그만큼 둘레가 길고, 매듭 자리를 닫을 때 틀릴 곳도 많았다. 강배에서 밤마다 조금씩 셈해 둔 것이 있었다.

끝이 처음을 만났다.

번쩍임은 없었다.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딸깍, 하고 제자리에 끼워지는 느낌만 있었다.

테오가 돌아누웠다. 깨지 않았다.

루엔은 수첩에 적었다. 셋째 고리. 열한 살 가을. 스무하루째 새벽. 그리고 쇠잔을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

그날 오후 첫 실습이 있었다.

실습장은 학교 언덕 서쪽 비탈의 풀밭이었다. 과녁은 짚을 묶어 세운 사람 모양. 쉰 걸음 떨어져 있었다. 언덕 아래 강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늘 서쪽에서 동쪽으로, 과녁을 옆에서 치는 바람이었다.

실습 교관은 뵈르너였다. 서른 후반. 목소리가 쉬었고, 왼쪽 귀가 반쯤 없었다. 전쟁터에 다녀온 사람이라고들 했다.

“고리 검사부터.”

교관이 한 줄로 선 신입생들 등에 차례로 손바닥을 댔다. 하나. 하나. 하나. 디트마르 차례에서 「둘」. 교관이 루엔 등에 손을 댔다.

손이 오래 머물렀다.

“… 셋?”

줄 선 아이들이 돌아보았다. 디트마르가 제일 먼저 돌아보았다.

“입학할 땐 둘이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셋째를 닫았습니다.”

뵈르너가 손을 떼고 루엔 얼굴을 보았다. 한참.

“번쩍임은.”

“없었습니다.”

“같은 방 아이가 깼나.”

“안 깼습니다.”

교관은 아무 말 없이 줄 끝으로 갔다. 디트마르는 입을 꾹 다물고 앞만 보았다.

*

매직 미사일. 첫 고리 마법이었다. 입학생 대부분이 집에서 한 번쯤 쏴 보고 온 것.

“오늘은 곧게 쏜다. 따라가게 하지 마라. 맞히는 건 손이 아니라 눈이다.”

한 명씩 쏘았다. 푸르스름한 마나 화살이 번쩍이며 날아갔다. 날아가는 동안 조금씩 동쪽으로 밀렸다. 과녁 오른쪽 어깨를 스치는 게 많았다. 아예 빗나가 풀밭에 박히는 것도 있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쪽으로 조금 겨눠라.” 뵈르너가 말했다. “얼마나냐고 묻지 마라. 몸이 안다. 백 번 쏘면 안다.”

디트마르가 쏘았다. 영창이 짧고 셌다. 화살이 다른 아이들 것보다 두 배는 빨랐다. 빨라서 덜 밀렸다. 과녁 가슴 오른쪽에 박혔다. 아이들이 탄성을 냈다.

루엔 차례였다.

루엔은 과녁 한가운데를 겨누고 쏘았다. 한 번은 그대로 쏴 봐야 얼마나 밀리는지 알 수 있었다.

화살이 번쩍이지 않고 날아갔다. 과녁 가슴 한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두 뼘 반. 짚 팔에 박혔다.

누군가 킥킥 웃었다.

“영창이 안 들렸다.” 뵈르너가 말했다.

“속으로 합니다.”

“소리 내서 해라. 틀린 데를 짚어 주려면 들려야 한다.”

“예.”

루엔은 대답했다. 그러고는 쭈그려 앉아 분필을 꺼냈다.

*

알아야 할 것은 둘이었다.

화살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바람이 얼마나 빨리 미는지.

화살은 쉰 걸음을 가는 동안 맥박 다섯이 조금 안 걸렸다. 한 맥박에 열 걸음 남짓. 북부에서 쏘던 때와 같았다. 자기 화살이 과녁에 닿을 때까지 맥박을 세었다. 두 번 쏘아 두 번 같은 값.

바람은 분필 가루로 쟀다. 손바닥에 가루를 쥐고 가슴 높이에서 놓았다. 가루가 옆으로 흩어지며 날아갔다. 맥박 하나 동안 몇 뼘 가는지. 세 번 놓아 가운데 값을 골랐다.

그다음은 그림이었다.

풀을 뜯어 낸 맨땅에 분필로 화살표를 그렸다. 먼저 과녁 쪽으로 긴 화살표 하나. 길이는 화살이 맥박 하나 동안 가는 거리. 그 화살표 끝에서, 옆으로 짧은 화살표 하나. 바람이 같은 동안 미는 거리.

둘을 이어 붙였다. 처음 화살표의 꼬리에서 둘째 화살표의 머리까지 선을 그었다.

그 선이 화살이 실제로 간 길이었다.

과녁을 향해 겨눠도 화살은 그 선을 따라 비껴 간다. 그러니 거꾸로 하면 된다. 바람 화살표를 먼저 빼 두고 겨누면, 이어 붙였을 때 과녁 한가운데로 간다.

두 뼘 반을 빼면 되는 게 아니었다. 과녁까지 가는 동안의 바람 몫을, 화살이 가는 쪽과 섞어서 빼야 했다. 선을 그어 보니 왼쪽으로 두 뼘 반에 조금 못 미치는 자리였다.

뒤에서 아이들이 들여다보았다. 땅바닥 화살표를 보고 서로 어깨를 으쓱했다.

루엔은 일어나 과녁 왼쪽, 짚 팔 바깥 허공 한 점을 겨누었다. 이번엔 영창을 소리 내어 했다. 탑의 열한 마디. 말은 입으로 하고 셈은 머리로 했다.

화살이 날아갔다. 날아가는 동안 동쪽으로 휘었다.

가슴 한가운데.

풀밭이 조용해졌다.

“한 번 더.” 뵈르너가 말했다.

한가운데.

“한 번 더.”

한가운데. 앞의 두 화살 사이, 손가락 한 마디 안.

뵈르너는 과녁까지 걸어가 화살 자국 셋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돌아와서 땅바닥의 분필 화살표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쉰 목소리가 낮았다.

“이게 뭐냐.”

“화살표 둘을 이어 붙인 겁니다. 하나는 화살이 가는 것, 하나는 바람이 미는 것. 둘을 이으면 실제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백 번 쏴서 몸이 아는 걸 그림으로 그렸다는 거냐.”

“백 번 쏘실 때 몸이 셈하는 걸 땅에 적은 겁니다. 교관님 몸은 이미 압니다. 저는 아직 백 번을 못 쐈습니다.”

뵈르너가 루엔을 보았다. 반쯤 없는 귀가 바람에 붉어져 있었다.

*

맨 마지막으로 쏜 건 클라리사 보움이었다.

클라리사는 루엔이 분필을 꺼낼 때쯤 풀밭 한쪽에 앉아 길쭉한 주머니를 열었다. 가느다란 나무 막대가 한 줌 나왔다. 손가락 길이였다. 그걸 땅에 가로세로로 늘어놓았다. 줄마다 몇 개씩. 한 줄은 비워 두었다. 옮기고, 빼고, 다시 늘어놓았다.

그리고 일어나 쏘았다.

가슴 한가운데에서 손가락 두 마디 오른쪽.

루엔의 세 번째 화살과 거의 같은 때였다. 뵈르너가 과녁까지 가서 두 번 짚었다.

루엔은 클라리사에게 걸어갔다. 땅바닥의 막대를 보았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클라리사가 루엔을 올려다보았다. 뭘 묻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가, 루엔이 정말 모른다는 걸 알고 눈을 가늘게 떴다.

“강 건너는 배.”

“배요.”

“우리 상단 짐배는 강을 가로질러 건너. 물살이 옆에서 밀어. 그래서 사공들은 뱃머리를 물살 오는 쪽으로 튼다. 얼마나 트는지는 사공 셈이 있어. 물살 빠르기를 배 빠르기로 나눈 만큼. 그걸 산가지로 놓는 거야. 여기 바람이 물살이고, 화살이 배고.”

루엔은 땅바닥을 보았다. 막대가 줄지어 있었다. 맨 아랫줄은 하나씩, 그 윗줄은 다섯씩. 셈판과 같았다. 판 대신 땅을 쓸 뿐이었다. 그리고 비워 둔 줄.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적지 않을 뿐, 빈자리를 이미 쓰고 있었다.

“셈판을 들고 다닐 수 없으니까.” 클라리사가 막대를 쓸어 모았다. “배 위에서, 장터에서. 막대 한 줌이면 어디서든 셈해.”

“저보다 조금 늦게 쏘셨지만, 셈은 저보다 먼저 끝나셨습니다.”

“… 그걸 어떻게 알아.”

“제가 분필로 두 번째 화살표를 그릴 때 막대를 쓸어 모으셨습니다.”

클라리사가 막대 주머니를 쥔 채 루엔을 한참 보았다.

“너는 그 화살표를 어디서 배웠어.”

“그렸습니다.”

“그림은 셈이 아니잖아.”

“셈입니다. 길이와 방향이 같이 있는 셈입니다.”

클라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를 다시 열어 막대 몇 개를 루엔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놓는 법 가르쳐 줄게. 너는 그 화살표 가르쳐 줘.”

루엔은 손바닥의 막대를 보았다. 매끈한 나무였다. 끝이 닳아 둥글었다. 오래 쓴 것이었다.

“적어도 되겠습니까.”

“뭘.”

“상단 산가지 셈법을. 제 수첩에.”

클라리사가 처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적어. 대신 틀리게 적으면 내가 고칠 거야.”

*

그날 저녁, 실습장 풀밭 여기저기에 분필 화살표가 생겼다.

신입생 대여섯이 해 질 녘까지 남아 땅바닥에 화살표를 그리고 쏘았다. 루엔이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니 과녁 둘레 풀밭이 화살 자국투성이였다.

“이거 왜 안 맞아?” 한 아이가 루엔을 불러 세웠다. 땅바닥에 화살표 둘이 그려져 있었다. 꽤 반듯했다. “너랑 똑같이 그렸는데.”

루엔은 화살표를 내려다보았다.

“길이는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 길이?”

“바람 화살표가 제 것보다 두 배 깁니다. 지금 바람은 낮보다 약합니다.”

아이가 제 화살표를 보았다. 그러고는 옆 아이 화살표를 보았다. 옆 아이 것은 세 배 길었다.

“그럼 길이는 어떻게 재는데.”

루엔은 주머니에서 분필 가루를 한 줌 꺼내 아이 손바닥에 부어 주었다.

“놓아 보십시오. 가슴 높이에서. 그리고 맥박을 세십시오.”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분필 가루를 놓기 시작했다. 흰 가루가 저녁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흩어졌다. 누군가 기침을 했다. 누군가 「내 맥박이 네 맥박보다 빠르잖아」 하고 다퉜다.

루엔은 그 다툼이 반가웠다. 무엇으로 재느냐를 두고 다투기 시작하면, 다음엔 같은 것으로 재자는 말이 나온다.

화살표 그림은 모양을 흉내 내기는 쉬웠다. 길이를 재는 게 어려웠다. 길이를 재지 않은 화살표는 그림이었다. 잰 화살표만 셈이었다.

*

이튿날 새벽, 바람이 없었다.

뵈르너가 기숙사로 사람을 보냈다. 루엔 혼자 실습장으로 오라고.

풀밭은 고요했다. 분필 가루를 놓아도 곧게 떨어졌다.

“쏴 봐라.”

어제 왼쪽으로 두 뼘 반 가까이 겨누던 걸 손이 기억했다면, 오늘은 빗나갈 것이었다. 교관은 그걸 보려는 것이었다.

루엔은 분필 가루를 한 번 더 놓았다. 곧게 떨어졌다. 바람 화살표의 길이는 없었다.

과녁 한가운데를 겨누었다. 소리 내어 열한 마디.

한가운데.

뵈르너는 과녁까지 가지 않았다. 멀리서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어제는 운이 아니었군.”

“어제 운이었으면 오늘 틀렸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렀다.” 뵈르너가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 멈췄다. “그 화살표. 바람 말고 다른 것도 이어 붙일 수 있나.”

루엔은 잠깐 생각했다.

“미는 것이면 무엇이든 붙일 수 있습니다.”

뵈르너는 대답 없이 언덕을 내려갔다. 그날 오후, 교관 방에서 분필 화살표를 그리는 소리가 늦게까지 났다고 테오가 말했다. 테오는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엔 대답하지 않았다. 지붕으로 가는 길이 교관 방 창 위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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