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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식는 속도

作者: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8:28

방어 마법 교관은 짝을 제비로 뽑지 않았다.

“하르트. 페르난.”

실습장이 조용해졌다. 루엔과 디트마르는 서로를 보지 않았다. 둘 다 교관을 보았다.

“과제는 같다. 불덩이를 막는 방법 하나. 마나를 쓰지 않는 방법이면 더 좋다. 그리고 그게 몇 박자 버티는지 미리 셈해서 적어 내라. 셈과 실제가 얼마나 맞는지로 점수를 준다.”

교관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한 사람은 불을 잘 던지고, 한 사람은 셈을 잘한다. 둘이 하면 과제가 되겠지.”

디트마르가 턱을 들었다. “셈도 제가 합니다.”

“그럼 둘이 따로 셈해서 맞대 봐라.” 교관이 말했다. “하르트가 늘 하는 방식이다.”

*

루엔은 방법을 이미 정해 두고 있었다.

물에 적신 천. 두꺼운 삼베를 여러 겹 겹쳐 나무틀에 걸고, 물을 흠뻑 먹인다. 불이 닿으면 천 속의 물이 끓어 날아간다. 물이 날아가며 뜨거움을 가져간다. 물이 남아 있는 동안은 천 뒤가 끓는 물보다 뜨거워지지 않는다.

“천 쪼가리로 내 불을 막겠다고.” 디트마르가 말했다.

“막는 게 아니라 늦춥니다. 불덩이는 터지고 몇 박자면 꺼집니다. 그동안만 버티면 됩니다.”

“몇 겹.”

“그걸 셈합니다.”

실습장 구석 돌 탁자에 둘이 마주 앉았다. 루엔은 밀랍판을 폈다. 디트마르는 종이를 폈다. 적색탑 사람은 밀랍판을 쓰지 않았다. 불 옆에서 녹으니까.

루엔은 첫 줄을 적고 잠깐 손을 멈췄다.

익숙했다.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열이 흘러 들어간다. 흘러 들어가는 빠르기는 두 쪽의 차이에 달려 있다. 차이가 크면 빨리, 작으면 천천히. 들어간 만큼 차이가 줄고, 줄어든 만큼 다시 느려진다. 빠르기가 지금 모양에 달려 있고, 지금 모양은 빠르기가 만든다.

전생에 서재현이 십 년을 들여다본 식이었다. 연구소 화면 위에서, 격자 한 칸 한 칸. 벽에 닿은 모서리 칸에서 열이 조금씩 샜던 그 밤까지.

여기서는 화면 대신 밀랍판이었다. 격자 대신 삼베 한 겹 한 겹.

루엔은 천 한 겹을 한 칸으로 삼았다. 박자마다 칸에서 칸으로 넘어가는 열을 셈했다. 앞 칸이 뜨거워지면 다음 칸으로 넘기고, 물이 남은 칸은 끓는 데서 멈추고, 물이 다 날아간 칸은 다시 달아오르고.

한 박자, 한 칸씩. 밀랍판이 빼곡해졌다.

디트마르가 종이에서 눈을 들어 루엔의 밀랍판을 넘겨다보았다. 한참 보았다.

“그게 뭐냐. 그물이냐.”

“겹마다 한 줄, 박자마다 한 칸입니다. 칸마다 뜨거움이 얼마인지 적습니다. 앞 칸과 뒤 칸의 차이만큼 다음 박자에 넘어갑니다.”

“칸마다 다?”

“예.”

“몇 칸인데.”

“세 겹에 다섯 박자면 열다섯 칸. 여섯 겹에 열네 박자면 여든넷 칸. 아홉 겹은 이백 칸이 넘을 겁니다.”

디트마르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적색탑에선 그냥 ‘두껍게 적셔라’라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너는 이백 칸을 셈하고.”

“얼마나 두껍게인지 알려고 합니다. 두껍게만 하면 천을 너무 많이 들고 가야 합니다. 싸움터에서 삼베 아홉 겹을 들고 뛰는 병사는 없습니다.”

디트마르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제 종이를 끌어당겨, 한쪽 귀퉁이에 작은 칸을 몇 개 그려 보았다. 세 칸 그리고 멈췄다. 그러고는 그 칸들에 빗금을 그어 지웠다.

전생의 연구실에서도 누군가 늘 그렇게 말했다. 두껍게 해, 대충 해. 그 말이 틀린 적은 드물었다. 다만 얼마나인지는 늘 서재현이 셈해야 했다.

*

해가 기울 무렵 둘은 셈을 맞댔다.

“세 겹.” 루엔이 말했다. “천 뒤에 댄 밀랍이 녹을 때까지 넷에서 다섯 박자.”

“다섯.” 디트마르가 말했다. “비슷하군.”

“여섯 겹.”

“열.” 디트마르가 종이를 짚었다. “세 겹이 다섯이니 두 배.”

“열셋에서 열넷입니다.”

디트마르가 고개를 들었다.

“두 배로 두껍게 했는데 왜 세 배 가깝게 버티냐.”

“열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느려지기 때문입니다. 겹이 두꺼우면 열이 뒤까지 가는 길도 길어지고, 가는 동안 차이가 줄어서 더 느려집니다. 두껍게 한 것보다 더 오래 버팁니다.”

디트마르는 제 종이를 오래 보았다. 그는 여섯 겹을 세 겹 두 개로 쪼개어 더했다. 틀린 셈은 아니었다. 다만 천 한가운데서 열이 머뭇거리는 것을 넣지 않았다.

“내일 던져 보면 알겠지.” 디트마르가 종이를 접었다.

*

이튿날 실습장 한가운데에 나무틀 셋을 세웠다. 삼베 세 겹, 여섯 겹, 아홉 겹. 모두 물통에 담갔다가 건져 걸었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틀마다 천 바로 뒤에 밀랍 조각을 붙였다. 밀랍은 뜨거움이 일정한 데 닿으면 녹는다. 루엔이 가진 가장 싼 눈금이었다.

구경꾼이 모였다. 디트마르가 불덩이를 던진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테오가 맨 앞에 섰다. 교관은 모래시계를 들고 있었다. 루엔은 제 맥박을 짚었다.

디트마르가 스무 걸음 뒤로 섰다.

영창은 길었다. 적색탑식이었다. 불덩이가 그의 손바닥 위에서 부풀어 올랐다. 번쩍였다. 윙 하는 소리. 구경꾼들이 한 걸음씩 물러났다.

첫 틀, 세 겹.

불덩이가 날아가 천에 부딪혔다. 퍽. 불길이 천 앞에서 부챗살처럼 퍼졌다. 흰 김이 한꺼번에 솟았다.

루엔은 셌다. 하나, 둘, 셋, 넷.

“녹았다!” 틀 뒤에서 테오가 외쳤다. 밀랍 조각이 흘러내렸다.

넷 하고 반.

디트마르가 다음 틀 앞에 섰다. 여섯 겹. 다시 영창. 불덩이. 퍽. 김.

하나, 둘… 여덟, 아홉, 열.

밀랍은 그대로였다.

열하나. 열둘. 불길이 잦아들었다. 불덩이는 이미 꺼지고 천 겉만 까맣게 그을려 연기를 뿜었다.

열셋.

“녹… 녹는다.” 테오가 틀 뒤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제 녹아.”

열세 박자 반.

구경꾼들 사이에서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

아홉 겹은 불덩이가 꺼진 뒤에도 밀랍이 녹지 않았다. 교관이 모래시계를 한 번 뒤집을 동안 그대로였다. 천 뒤에 손을 대 본 테오가 「미지근해」라고 했다.

교관이 아홉 겹 틀을 들어 보려다 손을 뗐다.

“이건 무게가 얼마냐.”

“물을 먹은 채로 스물두 근 조금 넘습니다. 여섯 겹은 열다섯 근입니다. 불덩이 하나가 꺼지는 데 열 박자 남짓이니, 여섯 겹이면 모자라지 않습니다.”

교관은 그을린 여섯 겹을 보고, 스물두 근짜리를 보고, 루엔을 보았다.

“여섯이군.”

그 한 마디가 실습장 방패 창고의 규칙이 되었다는 걸 루엔은 다음 학기에야 알았다.

*

교관이 두 사람의 셈을 나란히 보았다.

“세 겹, 둘 다 맞음. 여섯 겹—”

“제가 틀렸습니다.”

디트마르였다.

교관이 말을 멈췄다. 루엔도 고개를 들었다. 디트마르는 교관을 보고 있었다. 루엔 쪽은 보지 않았다.

“여섯 겹을 열 박자로 셈했습니다. 세 겹 둘을 더했습니다. 천 가운데서 열이 느려지는 걸 빼먹었습니다. 하르트 셈이 맞습니다. 제 건 세 박자 반 틀렸습니다.”

실습장이 조용해졌다. 적색탑 후계가 제 입으로 틀렸다고 하는 걸 들어 본 사람은 없었다.

교관이 한참 디트마르를 보다가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틀린 걸 먼저 말한 몫도 점수에 넣겠다.”

구경꾼들이 흩어졌다. 디트마르는 그을린 나무틀을 혼자 치우기 시작했다. 루엔이 반대쪽 끝을 들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틀을 옮겼다.

창고 앞에서 디트마르가 틀을 내려놓았다. 손을 털었다.

“네 버릇 옮았다.”

“어느 버릇입니까.”

“틀린 거 남보다 먼저 말하는 거.” 디트마르가 얼굴을 찌푸렸다. “말하기 전엔 목구멍이 뜨거웠는데. 말하고 나니까.”

그는 적당한 말을 찾는 것 같았다.

“기분 나쁘게 좋다.”

루엔은 그 말을 셈해 보았다. 나쁘다와 좋다가 한 문장에 있었다. 부호가 반대인 두 값. 더하면 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디트마르의 얼굴은 영이 아니었다.

“더한 값이 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아닙니다.”

*

루엔은 그날 저녁 의무실에 갔다.

의무실엔 붕대를 삶는 솥이 있었다. 루엔이 들를 때면 열탕으로 붕대를 데웠다. 속으로만 부르는 숫자, 일흔둘. 거기서 열다섯 박자. 그러면 붕대 속 작은 것들이 죽었다. 봄에 강물 한 방울 속에서 본 그것들이.

문제는 루엔이 없는 날이었다.

의무실 아주머니는 솥에서 끓는 물을 퍼서 대야에 붓고 붕대를 담갔다. 끓는 물이니 된다고 생각했다. 루엔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대야가 얇은 구리였다. 젖은 붕대 한 아름을 넣으면 물이 뚝 떨어졌다. 루엔은 열탕을 부를 때처럼 물에 손끝을 대고 뜨거움을 읽었다. 박자마다 한 번씩.

붕대를 넣은 순간 일흔둘 아래로 떨어졌다.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루엔은 밀랍판에 가로줄을 그었다. 가로로 박자, 세로로 뜨거움. 박자마다 읽은 값을 점으로 찍고 이었다. 가파르게 떨어지다가 점점 눕는 줄이었다. 둘레와의 차이가 줄수록 식는 빠르기도 줄었다. 천 방패와 같은 식이었다. 방향만 거꾸로.

다음엔 흙으로 구운 두꺼운 대야로 했다. 손가락 한 마디 두께. 줄이 훨씬 천천히 누웠다. 그래도 붕대를 넣으면 한 번 떨어졌다.

셋째는 두꺼운 흙 대야에 뚜껑을 덮고, 붕대를 넣기 전에 끓는 물로 대야부터 한 번 데웠다.

줄이 일흔둘 위에서 스물여섯 박자를 버텼다.

루엔은 밀랍판을 아주머니에게 보였다. 아주머니는 점과 줄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학생, 난 그런 거 못 읽어.”

루엔은 밀랍판을 내렸다.

“흙 대야를 쓰십시오. 끓는 물로 먼저 한 번 데우십시오. 뚜껑을 덮으십시오. 붕대는 한 번에 한 아름 말고 반 아름만.”

“그것만?”

“그것만입니다.”

아주머니는 그건 읽을 수 있다는 얼굴을 했다.

루엔은 밀랍판 위의 줄을 다시 보았다. 천 방패의 줄과 대야의 줄. 하나는 불이 들어오는 줄, 하나는 뜨거움이 빠져나가는 줄. 같은 식이 양쪽을 다 그렸다.

루엔은 그 식을 이 세계의 말로 부를 이름이 아직 없었다. 전생의 이름은 여기서 아무 뜻이 없었다. 그래서 밀랍판 귀퉁이에 이렇게만 적었다.

「빠르기가 차이에 달린 식. 불에도, 물에도.」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다음은 물이 차오르는 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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