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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세 번 센 불빛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7 11:10:00

첫 불은 해가 진 직후에 왔다.

강 건너 둑 위에서 붉은빛이 번쩍했다. 한 점. 그리고 둘, 셋. 빛이 먼저 오고, 한참 뒤에 소리가 왔다. 쿵. 둔덕 아래 밭에서 흙이 치솟았다. 불붙은 짚단이 사방으로 튀었다.

“파이어볼이다!”

앞줄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엎드렸다. 기사들이 말을 돌렸다. 둔덕 위 막료 자리에서 루엔은 엎드리지 않았다. 강 건너를 보고 있었다.

번쩍.

루엔은 셌다. 하나, 둘.

쿵.

“둘.” 루엔이 말했다. “구백 걸음 남짓.”

옆에 엎드린 테오가 고개만 들었다. “뭐가?”

“저 불을 쏜 사람까지.”

*

소리는 빛보다 느리다. 빛은 보는 즉시 오지만, 소리는 하나를 세는 동안 사백오십 걸음쯤을 온다. 루엔 걸음으로. 루엔은 이 셈을 요람에 누워 있을 때부터 했다. 번개가 치면 천둥까지 셌다.

속으로는 다른 숫자가 함께 돌았다. 1초에 343미터. 이 세계에서는 쓸 데가 없는 숫자였다. 쓸 데가 있는 건 걸음이었다.

적 마법사는 쏠 때마다 번쩍였다. 마나의 여덟 할이 빛과 소리와 열로 샜다. 이 세계에서 그걸 「마나의 위엄」이라 불렀다. 위엄은 멀리서도 보였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셀 수 있었다.

다만 한 사람이 세면 거리만 나왔다. 어느 쪽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테오. 둔덕 왼쪽 끝 참나무로 가십시오. 번쩍이면 세어서 적으십시오. 코넬 형은 오른쪽 끝 방앗간 터로.”

“나도 세?” 코넬이 방패 밑에서 말했다.

“형은 번개 셀 줄 압니다. 어릴 때 제가 가르쳤습니다.”

“대충 기억나.”

“대충이면 충분합니다. 틀리면 제가 압니다.”

*

세 사람이 세 자리에서 셌다.

번쩍일 때마다 셋이 각자 셈을 적었다. 테오는 밀랍판에, 코넬은 방패 안쪽에 숯으로, 루엔은 지도에.

같은 번쩍임이 세 자리에서 다르게 셈해졌다. 루엔 자리에서 둘이면, 테오 자리에서 둘 하고 반, 코넬 자리에서 하나 하고 반. 루엔은 지도 위 세 자리에 컴퍼스를 대고, 각자 센 거리만큼 원을 그렸다.

원 셋이 강 건너 한 점에서 만났다.

거기가 쏜 자리였다.

한 발, 두 발. 해가 완전히 지고 별이 뜰 때까지 적은 스물여섯 발을 쏘았다. 루엔 지도 위에 점이 찍혔다. 스물여섯 발에 점은 열한 개였다. 같은 자리에서 여러 번 쏜 마법사가 있었다.

“열한 명.” 루엔이 말했다. “한 사람이 두 번에서 네 번씩. 둑 위, 느릅나무 세 그루 둘레에 넷. 물레방아 터에 셋. 나머지는 흩어졌습니다.”

레오폴트가 등불을 들고 지도 위로 몸을 숙였다. 한참 점을 보았다.

“어두워서 적 얼굴도 안 보이는데.”

“얼굴은 안 보입니다. 빛은 보입니다.”

*

루엔이 센 건 쏜 자리만이 아니었다.

떨어진 자리도 셌다. 밤새 병사들을 시켜 밭에 불탄 자국마다 막대를 꽂게 했다. 새벽에 막대를 하나씩 따라 걸으며 강 건너 쏜 자리에서 몇 걸음인지 셌다.

스물여섯 발 가운데 가장 멀리 간 것이 둑에서 삼백십 걸음. 그 너머에는 한 발도 없었다. 파이어볼은 날아가다 힘이 빠지면 떨어졌다. 쏘는 사람이 세게 쏘면 더 날았지만, 더 세게 쏘려면 마나가 더 들었다. 더 들인 마나의 여덟 할은 또 빛으로 샜다.

루엔은 지도에 선을 그었다. 강 동쪽 둑에서 삼백십 걸음. 거기에 여유로 서른 걸음을 더해서.

“이 선 밖에 앞줄을 세우십시오.”

붉은 수염 기사단장이 선을 보았다. “여기서 물러나면 여울이 멀어지오.”

“여울은 선 안쪽이 아닙니다. 북쪽으로 비껴 있습니다. 파이어볼은 여울까지 못 옵니다.”

“다음엔 더 세게 쏘면.”

“세게 쏘려면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앞으로 나오면 둑을 내려와야 합니다.”

루엔은 궁수대장 쪽을 보았다.

“장궁은 둑에서 사백 걸음 넘게 닿습니다. 어제 아침 서른 명에게 쏘게 해서 셌습니다. 파이어볼보다 멉니다.”

궁수대장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는 지도에 그어진 두 선을 보았다. 파이어볼이 닿는 선, 장궁이 닿는 선. 그 사이에 칸이 하나 생겼다.

“그러니까 그 칸에 들어오는 마법사는—”

“예. 그 칸이 궁수대장님 몫입니다.”

*

그날 오후 루엔은 병참 뒤쪽 숯가마로 갔다.

본진에서 쓸 숯을 굽는 가마 셋이 참나무 숲 가장자리에 있었다. 숯쟁이 늙은이가 가마 입구를 흙으로 막고 있었다. 가마 바닥 구덩이에 손을 넣지 말라고 루엔에게 먼저 일렀다.

“거기 들어간 개가 안 나왔소. 불도 없는데 숨이 막혀 죽었지. 가마 김이 바닥에 고이오.”

“압니다. 그 김을 조금 얻으러 왔습니다.”

숯쟁이가 루엔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미친 사람을 보는 눈은 아니었다. 이상한 걸 사러 온 손님을 보는 눈이었다.

“뭐에 쓰오.”

“불을 끄는 데 씁니다.”

“그 김이 불을 끄는 건 우리도 아오.” 숯쟁이가 말했다. “가마 바닥에 등불을 내리면 꺼지거든. 그래서 등불을 먼저 내려 보고 사람이 내려가오. 그걸 어디에 쓰려고.”

“날아오는 불에 씌웁니다.”

숯쟁이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가마 옆에 놓인 빈 가죽 부대 세 개를 발로 밀어 주었다.

“입구를 끈으로 꽉 묶으시오. 새면 바닥으로 흐르오.”

루엔은 부대 셋을 가마 바닥에 대고 김을 받았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무게로만 알았다. 부대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마법으로 김을 모으는 건 쉬웠다. 어려운 건 모은 김을 쓸 때 얇고 고르게 펴는 일이었다. 이틀 밤 동안 등불 위에 씌워 보며 두께를 셌다. 너무 얇으면 불이 숨을 쉬었고, 너무 두꺼우면 그릇이 먼저 바닥났다.

*

사흘 동안 적은 선 앞에서 멈췄다.

첫날 밤, 파이어볼이 전부 빈 밭에 떨어졌다. 아군 앞줄 서른 걸음 앞에서 불이 픽픽 꺼졌다. 둘째 날 새벽, 마르케스 쪽 정찰병 하나가 여울 근처에서 잡혔다. 병사들이 끌고 왔다. 레오폴트 앞에서 그는 처음엔 입을 다물었다가, 밥을 먹이자 입을 열었다.

“우리 마법사님들이 성을 내고 계시오. 왜 딱 거기서 멈추는지 모르겠다고. 파이어볼이 꼭 벽에 부딪힌 것처럼 거기서 떨어진다고. 누가 결계를 쳤다고들 하오.”

“결계는 없다.” 레오폴트가 말했다. “셈이 있을 뿐이다.”

정찰병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셋째 날 해 질 녘, 적이 바꿨다.

붉은 망토 스무 명쯤이 한꺼번에 둑을 내려왔다. 방패병이 앞을 가렸다. 강가 모래톱까지 나와서 한꺼번에 쏘았다. 이번엔 선을 넘어왔다.

궁수대장이 외쳤다. 화살이 하늘을 덮었다. 모래톱 위 붉은 망토 여럿이 쓰러졌다. 그러나 이미 날아오른 불덩이가 여섯. 그중 셋이 앞줄 방패벽을 향해 곧게 떨어지고 있었다.

루엔은 둔덕 위에서 손을 들었다.

영창은 없었다. 번쩍임도 없었다.

첫 불덩이가 공중에서 멈칫했다. 불꽃이 쪼그라들었다. 촛불을 손으로 덮은 것처럼. 픽. 연기 한 줄만 남기고 꺼졌다. 검게 그을린 흙덩이가 방패 앞에 툭 떨어졌다.

두 번째도 그랬다.

세 번째. 루엔은 가슴 안쪽을 느꼈다. 그릇 바닥이 보였다. 세 번째 불덩이 둘레에 막이 얇게 섰다. 불이 반쯤 죽었다. 반쯤 산 채로 방패 위에 떨어졌다. 방패 둘이 그을렸고, 병사 하나가 팔을 데었다. 죽은 사람은 없었다.

나머지 세 발은 선 안쪽 빈 밭에 떨어졌다.

*

그 밤, 막료 천막에서 테오가 물었다.

“그거 뭐였어. 불이 꺼진 거.”

“무거운 김입니다.”

루엔이 대답했다. 숯가마 바닥에 고이는 김. 불을 끄는 공기. 낮게 깔리고, 공기보다 무겁다. 병참 뒤쪽 숯가마에서 사흘 동안 모아 두었다. 그걸 마법으로 얇게 펴서 불덩이에 씌웠을 뿐이었다. 불은 숨을 못 쉬면 꺼진다.

“그럼 계속 하면 되잖아. 전부 꺼 버리면.”

“세 발이 끝입니다.” 루엔이 말했다. “제 그릇이 그만큼입니다. 모아 둔 김도 반밖에 안 남았습니다.”

테오는 한참 루엔을 보았다. 여섯 해 같은 방을 쓴 사람이었다. 루엔의 그릇이 작다는 건 알았다. 전장에서 그 작음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럼 막는 건.”

“선입니다.” 루엔이 지도를 두드렸다. “선을 지키면 불이 안 닿습니다. 선을 넘어오면 궁수가 닿습니다. 제 마법은 그 틈에 떨어지는 몇 발뿐입니다. 막는 건 궁수와 방패와 삽입니다.”

천막 문이 열리고 레오폴트가 들어왔다. 모래톱에서 쓰러진 붉은 망토 수를 세고 오는 길이라 했다. 일곱.

“내일도 저렇게 나올까.”

“안 나옵니다.” 루엔이 말했다. “오늘 일곱을 잃었습니다. 적 마법사도 셀 줄 압니다. 내일은 다른 수를 씁니다.”

“어떤 수.”

“모릅니다. 다만 선을 알았으니, 선을 옮기려 할 겁니다. 자리를 바꾸거나, 쏘는 때를 바꾸거나.”

레오폴트는 지도 위 열한 개 점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네 점도 내일이면 헛것이군.”

“예. 그래서 날마다 다시 찍습니다.”

*

그 무렵 앞줄 병사들 사이에서 다툼이 났다.

적이 쏠 때마다 병사들이 루엔을 흉내 내 셈을 했다. 번쩍, 하나, 둘. 그런데 같은 번쩍임을 두고 한 사람은 둘, 한 사람은 셋을 외쳤다. 하나를 세는 빠르기가 사람마다 달랐다. 겁먹은 사람은 빨리 셌다.

“둘이라니까!”

“셋이야, 이 멍청아!”

멱살이 오가려는데, 취사 당번 병사 하나가 무언가를 들고 달려왔다. 주먹만 한 모래시계였다. 취사장에서 달걀 삶는 데 쓰던 것이었다.

“이걸로 세자! 모래는 겁을 안 먹잖아!”

병사들이 모래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달걀 삶는 모래시계는 너무 길었다. 번쩍임부터 소리까지 모래가 손톱만큼밖에 안 떨어졌다. 떨어진 게 얼마인지 아무도 읽지 못했다.

루엔이 모래시계를 받아 들었다.

그는 번개를 셀 때의 빠르기로 하나를 세며 유리 옆에 숯으로 금을 그었다. 하나에 한 금. 모래가 거기까지 떨어지면 하나. 다섯 금까지 긋고 돌려주었다.

“이제 싸우지 마십시오. 금 두 개면 구백 걸음입니다.”

취사 당번이 모래시계를 두 손으로 받았다. 금 다섯 줄이 그어진 유리를 등불에 비춰 보았다.

“도련님. 이거 달걀은 이제 못 삶겠는데요.”

“달걀은 넷째 금까지 삶으면 반숙입니다.”

앞줄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날 밤 그 모래시계는 앞줄 방패벽을 따라 돌았다. 번쩍일 때마다 누군가 뒤집었다. 소리가 오면 누군가 외쳤다. 금 둘! 금 둘 반!

루엔은 둔덕 위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지도에 점을 찍었다.

금 둘 반. 천백 걸음 남짓. 그 자리엔 이틀 전까지 점이 없었다.

적이 뒤로 물러나 새 자리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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