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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무는 금화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9 11:10:00

첫 롱 텔레포트는 눈 녹는 날 아침에 했다.

참호 뒤 빈터에 원진을 그렸다. 지름 열두 걸음. 테오가 말뚝과 끈으로 원을 잡고, 루엔이 안쪽 선을 그었다. 원진 가운데에 짐 상자 둘, 그 옆에 루엔과 테오.

도착지는 왕도 아스테른, 루엔 공방 뒷마당이었다. 거기엔 클라리사가 같은 크기의 원을 그려 두었다. 사흘 전 편지로 보낸 그림대로.

루엔은 보정표를 펼쳤다. 여기서 왕도까지의 거리, 두 곳의 위도, 오늘 해가 뜬 시각. 땅은 하루에 한 바퀴 돈다. 여기와 왕도는 도는 빠르기가 조금 다르다. 그 차이만큼 도착하는 몸을 미리 돌려 놓는다. 열여섯 살 겨울, 모래 자루 두 개로 보인 그 셈이었다.

그때는 교장과 파비오가 루엔 식으로 걸었다. 루엔은 옆에서 보기만 했다. 여섯째 고리가 없었다.

지금은 있었다.

“무섭냐?” 테오가 물었다.

“무섭지 않습니다. 셈을 세 번 했습니다.”

“나는 무서운데.”

“그럼 제 옷자락을 잡으십시오. 떨어지면 셈이 틀어집니다.”

테오가 루엔 옷자락을 꽉 쥐었다.

루엔은 걸었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발밑의 흙이 진창에서 마른 돌바닥으로 바뀌었다. 코끝의 냄새가 참호 연기에서 빵 굽는 냄새로 바뀌었다. 구스타프 분점이 두 골목 건너였다.

짐 상자 둘이 발치에 그대로 서 있었다. 기울지도, 밀리지도 않았다.

테오가 비틀거렸다. 루엔 옷자락을 놓지 않은 채 주저앉았다.

“어, 어…… 됐어?”

“됐습니다. 원 가운데서 손가락 한 마디 어긋났습니다.”

뒷마당 문간에서 클라리사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원 끝에 분필로 적어 둔 작은 표를 가리켰다.

“한 마디 어긋난 거, 이쪽 원 그림이 한 마디 컸어. 내가 그렸어. 네 탓 아냐.”

“그럼 원 그림 탓입니다. 적어 두겠습니다.”

“적지 말고 들어와. 장부 볼 게 산더미야.”

*

장부는 정말 산더미였다.

클라리사가 겨우내 혼자 채운 것이었다. 첫 장에 하르트 상단 창구 드나듦. 둘째 장에 조폐소와 주고받은 금과 은. 셋째 장, 루엔이 전장에 가기 전 비워 둔 그 칸.

「왕실 — 텔레포트 보정표 값.」

교장 마그누스와 파비오가 겨울 동안 왕실 짐과 사람을 옮겼다. 전장으로 가는 편지, 약초, 화살촉 쇠. 한 번도 사고가 없었다. 옮기는 삯의 열에 하나가 하르트 상단 몫이었다.

“금화 백여든 닢.” 클라리사가 말했다. “새 금화로. 왕실은 새 금화로 줬어.”

루엔은 숫자를 받아 적었다.

“이제 제가 직접 옮기면 열에 하나가 아니라 삯 전부입니다.”

“그래서 삯을 얼마로 할지 정해야 해.” 클라리사가 펜 끝으로 칸을 두드렸다. “황색탑은 짐 한 상자에 말 스무 필 값을 받았어. 사고가 열에 하나였으니까. 너는 사고가 없잖아. 그럼 더 받아도 돼.”

“덜 받습니다.”

“왜.”

“사고가 없으니 떼어 둘 몫이 없습니다. 황색탑 삯에는 열에 하나 부서지는 짐 값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걸 빼면 말 열여덟 필 값. 제 그릇은 작아서 하루에 두 번밖에 못 옮깁니다. 그러니 많이 옮겨서 벌 수도 없습니다. 삯을 낮춰서 가장 급한 짐부터 받습니다.”

클라리사는 한참 루엔을 보더니 칸에 적었다. 「사람 하나 금화 두 닢, 짐 한 상자 금화 한 닢 반. 하루 두 번.」 그리고 작게 덧붙였다. 「첫 손님: 우리 아버지. 내일 아침.」

루엔이 그 줄을 보았다.

“아버님이 타십니까.”

“물 잔을 들고 타겠대.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삯을 안 낸대.”

“그럼 가득 따라 드리십시오.”

그리고 루엔은 다음 장을 넘겼다.

「새 금화 — 국경 밖.」

클라리사가 새로 만든 칸이었다.

“이게 제일 이상해.” 클라리사가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새 금화를 제일 먼저 믿어 준 게 우리 왕도 사람들이 아니라 외지 사람들이야.”

칸에는 편지와 영수증이 끼워져 있었다.

서쪽 비르케 항에 배를 대는 살렌 상인의 편지. 「앞으로 비르케에서 사는 물건 값은 하르트 금화로만 받겠다. 옛 왕도 금화는 달아서 받겠다.」

북쪽 그라우벤에서 내려온 모피 상단의 영수증. 값이 하르트 금화로 적혀 있었다. 은화는 한 닢도 섞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장이 더 있었다. 전선에서 온 것이었다. 레오폴트 막료가 보낸 보고였다.

「가을 싸움 뒤 잡은 마르케스 포로 가운데 세 사람의 전대에서 하르트 금화가 나옴. 모두 합쳐 열한 닢. 마르케스 군 급료 담당이 은화 대신 이 금화를 달라고 했다 함. 마르케스 상인들 사이에서 「베스트리아 새 금화는 달 필요가 없다」는 말이 돈다 함.」

루엔은 그 보고를 오래 보았다.

“적군이 우리 금화를 급료로 받았습니다.”

“응.”

“이긴 건지 진 건지 셈이 안 됩니다.”

클라리사가 웃었다. “금화가 이겼지. 무늬와 무게를 안 바꾼 쪽이 이겨.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어. 사람들이 믿는 돈은, 오래 안 변한 돈이라고.”

*

그런데 왕도 창구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다들 금화를 깨물었다.

새 금화를 받으면 먼저 입에 넣었다. 금은 무르다. 가짜 금은 단단하다. 깨물어서 이가 박히면 진짜. 오래된 셈이었다. 누구도 그걸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새 금화 테두리에는 톱니가 있었다. 깨물면 톱니가 잇몸을 찔렀다.

“하르트 금화는 문다.”

장터에 그 말이 돌았다.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아무도 몰랐다. 창구 직원이 문 옆에 판을 붙였다. 「금화를 깨물지 마십시오. 저울은 문 옆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판을 읽고, 저울을 보고, 금화를 깨물었다.

클라리사가 한숨을 쉬었다. “저울을 문 옆에 둬도 입이 더 가까워.”

루엔은 이틀 동안 창구 옆에 서서 셌다. 금화를 받은 손님 백 사람 가운데 깨문 사람이 예순셋. 판을 읽은 사람이 마흔. 판을 읽고도 깨문 사람이 스물여덟.

셋째 날, 루엔은 저울 옆에 금화 한 닢을 쇠사슬로 묶어 두었다. 그 옆에 작은 판을 달았다.

「깨물기용.」

사람들이 멈칫했다. 판을 보고, 사슬에 묶인 금화를 보고, 자기 손에 든 금화를 보았다. 그러고는 사슬에 묶인 쪽을 깨물었다. 이가 박혔다. 진짜였다. 그들은 만족한 얼굴로 제 금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한 달 뒤, 깨물기용 금화에는 이 자국이 삼백 개 넘게 나 있었다. 무게가 보리알 한 알만큼 줄어 있었다.

루엔은 그걸 장부에 적었다. 「깨물기용 금화 한 닢, 한 달에 보리알 한 알. 금 값이 아니라 믿음 값.」

*

루카스 벤은 그 무렵 공방에 왔다.

코의 안경은 그대로였다. 외투 단추도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다만 외투 소매 끝이 조금 해져 있었다.

“창구 손님이 셋에 하나로 줄었소.” 루카스가 말했다. 인사도 없이. “옛 동전 무게를 다는 일이 줄었소. 새 동전은 달 필요가 없다고들 하니까.”

“달 필요가 있습니다.”

루카스가 안경 너머로 루엔을 보았다.

“새 금화에도 가짜가 나옵니다.” 루엔이 말했다. “벌써 둘 잡았습니다. 겉에 금을 입히고 속에 납을 넣은 것. 톱니도 흉내 냈습니다. 깨물면 겉은 금이라 이가 박힙니다.”

루엔은 서랍에서 가짜 금화 두 닢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이걸 가려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금석으로 긁어 보고, 물에 달아 보고. 하르트 상단 검정 창구를 맡아 주십시오.”

루카스는 한참 가짜 금화를 보았다. 하나를 집어 손바닥에 올렸다. 무게를 손으로 가늠했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지난여름엔 나를 굶기는 포고를 청하더니.”

“예. 그 말은 수첩에 적어 두었습니다. 셈할 재료가 생기면 셈하겠다고 했습니다. 생겼습니다.”

루카스가 코로 짧게 웃었다. 그러고는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소매를 걷었다.

“시금석은 내 걸 쓰겠소. 당신 공방 것보다 내 것이 오래 닳았소.”

그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검은 돌을 꺼냈다. 윗면이 거울처럼 매끈했다. 거기에 가짜 금화 테두리를 한 번 긋고, 옆에 진짜 새 금화를 한 번 그었다. 두 줄이 나란히 났다. 색이 같았다.

“겉은 금이라 돌로는 못 가리오.” 루카스가 말했다. “물을 주시오. 대야에.”

테오가 물 대야를 가져왔다. 루카스는 창구 저울 한쪽 접시 밑에 가는 실을 매달고, 실 끝에 가짜 금화를 묶었다. 먼저 공기 중에서 달았다. 진짜와 똑같았다. 가짜 만든 놈이 무게는 맞춘 것이었다.

그다음 금화를 실째 물에 담갔다. 다시 달았다.

진짜 금화는 물에 넣어도 거의 가벼워지지 않았다. 가짜는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속에 든 납이 금보다 부피를 많이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무게라도 덩치가 크면 물이 더 많이 떠받쳤다.

“무게는 속여도 덩치는 못 속이오.” 루카스가 실을 풀었다. “할아버지한테 배운 거요. 우리 집은 사 대째 다오.”

루엔은 그 손을 보았다. 실 매는 손, 물에 담그는 손, 저울 팔을 읽는 눈. 전생에서 읽은 옛 목욕탕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기서는 그걸 목욕탕이 아니라 환전상 집안이 사 대 동안 손으로 물려 왔다.

“사 대 동안 몇 닢이나 다셨습니까.”

“그걸 누가 세오.”

“세어 두면 좋습니다.”

루카스가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

루카스는 일을 너무 잘했다.

첫 주에 가짜 금화 다섯을 더 잡았다. 둘째 주엔 하르트 창구로 들어온 옛 은화 가운데 무게를 속인 자루 하나를 잡았다. 셋째 주, 조폐소에서 막 찍어 온 금화 자루가 창구에 들어왔다.

루카스가 자루를 풀었다. 금화를 한 닢씩 저울에 올리기 시작했다.

클라리사가 창구 뒤에서 말했다. “루카스 님, 그건 조폐소에서 바로 온 거예요. 루엔이 찍은 거.”

“알고 있소.”

“그럼 왜 달아요.”

“누가 찍었든 금은 금이오.” 루카스가 다음 금화를 올렸다. “찍은 사람을 믿는 게 아니라 저울을 믿소. 그게 검정이오.”

클라리사가 루엔을 돌아보았다. 루엔이 화를 낼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루엔은 화를 내지 않았다.

루엔은 조용히 창고로 갔다. 그리고 조폐소 금화 자루를 하나 더 들고 나왔다. 루카스 옆에 내려놓았다.

“이것도 달아 주십시오.”

루카스가 손을 멈췄다. “이건 또 뭐요.”

“제가 찍은 금화입니다. 한 자루 더 있습니다.”

루카스는 한참 루엔을 보았다. 루엔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것이 떠 있었다. 루엔을 오래 본 사람만 아는 얼굴. 열여덟 해 동안 가장 드물게 나온 얼굴.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당신, 지금 좋아하는 거요?”

“예.” 루엔이 말했다. “제 금화를 저보다 더 깐깐하게 다는 사람을 처음 만났습니다.”

루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경을 벗어 외투 자락에 닦았다. 도로 썼다. 그리고 새 자루를 풀었다.

한 닢씩. 끝까지.

그날 두 자루에서 모자란 금화는 한 닢도 없었다. 루카스는 장부에 그렇게 적고, 그 아래 제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한 줄을 더 적었다.

「내일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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