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지윤은 가슴속이 먹먹함으로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두 손으로 남편의 손을 꼭 쥐며, 힘을 전해주려는 듯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이후로, 그는 줄곧 침묵만 지키고 있었고, 그 모습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마마께서 말씀하시는 건…”지윤이 조심스레 물었다.“선왕비 마마께서는 출산 중 과다 출혈로 돌아가셨다는 뜻이신가요?”주실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아무도 선왕비가 해를 입었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임신 초기부터 여러 어의들이 줄곧 폐하께 선왕비의 몸이 허약하다고 아뢰었기 때문이지. 게다가 출산이란 본디 한 발은 저승에 들여놓는 일. 출혈이 많았다는 설명은 충분히 납득할 만했어.”“더구나…”주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날 출산을 도운 어의, 산파, 궁녀들… 모두 선왕비의 사람이었다. 외부에서 누군가가 손을 쓸 여지는 거의 없었지.”홍춘궁 안은 잠시 고요에 잠겼다. 모두가 제각기 생각에 잠긴 채, 이 완벽해 보이는 ‘사고’ 속에서 어디에 틈이 있었는지를 곱씹고 있었다.‘사인은 과다 출혈…’‘폐하께서 그토록 총애하셨던 선왕비를, 임신 전에 충분히 보양하지 않았을 리는 없는데…’‘그렇다면… 무엇이 과다 출혈을 불러왔던 걸까?’“왕비 마마.”지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출산 후에는 반드시 어혈을 빼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선왕비 마마께서 그 약을 과다 복용하셨을 가능성은 없을까요?”“어혈을 빼는 약?”주실이 그 말을 되뇌며, 곁에 선 진 시녀장을 바라보았다.“그때, 선왕비의 어혈약을 검사한 적이 있었느냐?”진 시녀장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고개를 저었다.“검사하지 않았습니다. 방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 선왕비 마마의 사람들이라 여겼고, 마마께서 승하하신 뒤로는 정리와 청소만 했을 뿐입니다.”“그렇다면…”이현이 마침내 낮은 목소리로 결론지었다.“어혈약이군.”지윤도 고개를 끄덕였다.“출산한 여인은 누구나 그 약을 마셔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절차
이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아 공손히 나섰다.“어머니, 아들 또한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지은 아가씨가 전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주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들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외부인의 편에 서는 모습이 달갑지 않았다.“왕비께서 제 말을 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지은이 다시 입을 열었다.“다만, 한 가지 더 아뢰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잠시 숨을 고른 뒤, 또렷이 말을 이었다.“그 네 여인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장 덕비께도, 선왕비 마마께 했던 것과 동일한 수법을 쓰겠다고요. 그리고 이번에는… 모든 죄를 왕비 마마께 뒤집어씌울 작정이라고 했습니다.”“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 계획을 논의했던 객실은 전부 왕비 마마의 존함으로 예약되어 있었습니다.”지은은 다시 한 박자 멈췄다.“조금만 조사해도, 왕비 마마의 존함이 청연각 기록에 남아 있고, 그곳에서 그러한 흉계가 논의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게다가 그날, 왕비 마마께서는 폐하께 후궁을 떠나 외출하고 싶다고 청하지 않으셨습니까?”“!!!”“이쯤 되면 분명하지 않습니까.”지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용은 날카로웠다.“그 부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죄를 왕비 마마께 뒤집어씌울 생각이었습니다.”“설령 일이 급박해졌을 경우에도, 그 세 부인은 한목소리로 ‘모두 왕비의 명이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비 마마께서는 눈앞의 죄를 어떻게 부인하시겠습니까?”“!!!”홍춘궁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모두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사태가 이미 통제 가능한 수준을 훌쩍 넘어서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노! 숙! 비!!”주실은 이를 갈며 그 이름을 토해냈다. 만약 지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반박조차 할 수 없는 대역죄를 뒤집어쓰게 될 터였다.“당장 불러오너라!”분노가 섞인 고함이 홍춘궁 울렸다.“잠시만요!”“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만류했고, 주실의 날 선 시선이 곧바로 그쪽으로 향했다.이정은 깊게 숨을 내쉬며
“왕비 마마께 문안 올립니다.”모두가 입을 모아 예를 올리며 홍춘궁 안으로 들어섰다.“자리에 앉거라.”주실은 눈을 감은 채, 대청 앞 커다란 나무 평상에 앉아 관자놀이를 가볍게 눌렀다.그 모습이 몹시 피곤해 보이자, 이현이 걱정스레 물었다.“왕비 마마, 혹시 편찮으십니까?”주실은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어제 친정에 다녀오느라 잠을 좀 설쳤을 뿐이란다.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태자.”지은은 속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친정을 다녀오신 걸까, 아니면… 돌아올 구실을 찾으신 걸까.’“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다 함께 찾아온 것이냐?”주실은 의아한 눈빛으로 모두를 훑어보다가, 모자를 벗어 옆에 내려둔 지은을 발견했다.‘어제… 청연각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그 아가씨가 아닌가?’‘설마… 내가 몰래 청연각에 다녀온 일을 알아채고, 저 아이를 증인으로 데려온 건 아니겠지?주실의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갔다. 그 불안한 기색을 눈치챈 지은은 곧장 앞으로 나서 공손히 예를 올리고, 최대한 간결하게 말을 꺼냈다.“아뢰옵니다, 왕비 마마. 소녀의 이름은 이지은이며, 청연각의 주인입니다.”‘이지은... 청연각의 주인?’주실의 시선이 한층 복잡해졌다. 이처럼 어린 여인이, 미색을 갖춘 종업원들을 거느리고 손님을 상대하는 찻집의 주인이라니… 어찌 단정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어제, 정 왕자께서 저희 청연각에서 식사를 하시던 중이었습니다.”지은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그때 저희가 한 객실 앞을 지나던 중, 부인 네 명이 모여 장 덕비께서 왕자를 출산하시는 순간을 노려 해를 가할 계획을 세우는 말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다른 이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것도요.”“그들이 말하길… 태자 저하께서 탄생하셨을 당시, 선왕비 마마께 행했던 것과 같은 수법을 쓰겠다고 했습니다.”지은의 시선이 태자에게 향했다.“그게 무슨 말인가?”“그렇다면… 내 어머니께서는 자연사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이현은 충격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고,
이현은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칭얼대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자, 낮게 웃음을 흘렸다. 충분히 만족할 만큼 아이를 놀려 준 뒤에야, 그는 마침내 손을 내려 아이를 지윤에게 돌려주었다.“음… 마…”시후는 곧장 따뜻한 품으로 파고들었다. 작은 두 손이 지윤의 가슴께 옷자락을 더듬으며 분명한 의사를 드러냈다.‘먹을 거! 젖! 나 많이 먹고 얼른 커서… 꼭 복수할 거야!’시후는 평소 지윤이 ‘젖을 많이 먹어야 빨리 큰다’라고 자주 달래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아들의 행동을 본 지윤은 아이가 배가 고프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순간, 여우 같은 눈매가 살짝 어두워졌다.‘어젯밤 서방님이 밤새 다 빨아가셨으니… 시후 몫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어머니의 망설임을 본 시후는 즉각 상황을 이해했다. 고개를 홱 돌아가며, 옆에서 능글맞게 웃고 있는 친부를 노려보았다.‘또 그랬지!’“맘… 음…”도움을 청하는 옹알이가 저절로 흘러나왔다.지윤이 데려온 유모가 급히 다가와 시후를 안아 데리고 물러났다. 정자에 아이가 사라지자, 이현은 갑작스레 주실을 만나러 온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다.“갑자기 왜 왕비 마마를 뵈러 온 거야?”복숭아꽃 같은 눈동자에 의문이 담겼다.지윤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남편에게도 이 무거운 이야기를 전해야 할 때였다.“선왕비에 관한 일입니다.”‘어머니?’칼날처럼 날카로운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가슴속에서 불안이 순간적으로 치솟았다.“무슨 일…”“형님!”이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정자 밖에서 급한 외침이 들려왔다.모두가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이정의 모습이 보였다.“형님, 형수님, 지은 아가씨.”지윤은 살짝 입술을 내밀었다.‘와… 지은을 바로 알아보네.’이현은 또다시 의아해졌다. ‘정 왕자가 언제부터 아내의 친구와 안면을 튼 거지?’“지은 아가씨, 이미 모든 걸 형님과 형수님께 말씀드렸나?”이정은 첫마디로 지은에게 물었다.지은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태자비 마마께만 말씀
조정에서 급히 걸어 나오던 큰 키의 남자는 효성으로부터 지윤과 시후가 주실의 홍춘궁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연못 중앙의 수상 정자에서는 아이의 기분 좋은 옹알이와, 애정을 듬뿍 담은 달콤한 장난 소리가 어우러져 울려 퍼지고 있었다.“아… 까꿍! 시후, 엄마가 보이니?”작은 손이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펼쳐지자 아이는 깔깔 웃으며 기뻐했고, 그와 동시에 통통한 손으로 지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정말 영리하군요.”지은이 웃으며 칭찬했다. 그녀는 사건의 현장이었던 청연각 찻집의 주인이자 증인의 자격으로 주실을 알현하러 함께 왔고, 얇은 면사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지윤은 누가 뭐래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그야 당연하지. 우리 아들이니까.”‘맞아 맞아! 엄마 아들이야!’작은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외치듯 울렸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에 친부인 이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날이 갈수록 이 모자는 서로를 그대로 빼닮아 가고 있었다.“태자비.”이현은 공적인 자리인 만큼, 공식적인 호칭으로 아내를 불렀다.태자의 음성이 울리자, 정자에 있던 모두가 급히 일어나 공손히 예를 올렸다.“태자 저하.”지윤 또한 정중히 호칭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왜 온 거야…’이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손을 흔들던 아이가, 순식간에 몸을 굳힌 채 그를 반기지 않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이 녀석이 정말…’복숭아꽃 같은 눈동자가 아내의 품에 안긴 아들을 바라보았고, 아이 역시 작고 까만 눈으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시후를 데리고 알현하러 온 건가?”“네. 왕비 마마를 뵙게 하려 데려왔습니다.”지윤의 대답에, 이현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의아해하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이리 다오. 내가 안아 보지.”‘싫어! 만지지 마!’작은 몸이 지윤의 품 안에서 버둥거렸지만, 마치 귀신처럼 빠른 손이 번쩍 내려와 아이를 순식간에 빼앗아 갔다.“조심하세요!”지윤이
“뭐라고? 아앗!”지윤이 지은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가냘픈 몸이 탁자를 쾅 치며 벌떡 일어섰다가, 허리에 몰려오는 극심한 뻐근함에 얼굴이 일그러지며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태자의 선왕비께서… 스스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해를 입으셨다는 말이야?”지은은 그 고통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지윤의 반응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그래. 나와 정 왕자는 그렇게 결론 내렸어.”“그들은 네 명이고, 둘째는 틀림없이 후궁이야.”지은은 차분히 정리했다.“이 부분과, 선왕비께서 출산하셨을 당시의 자세한 정황은 정 왕자가 왕비에게서 정보를 캐낼 거고.”“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머지 세 사람의 정체를 밝히는 거야. 만약 그 셋을 통해 둘째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다면, 정 왕자가 용의자를 좁히는 데 훨씬 수월해질 거야.”‘잠깐만… 왜 자꾸 정 왕자지? 이런 일은 당연히 우리 남편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원래는 아침에 너랑 태자에게 함께 말하려고 했어.”지은이 덧붙였다.“그런데 어젯밤 청연각에 손님이 너무 많아서 늦게 잠들었거든. 눈을 떠 보니 이미 태자는 정 왕자와 함께 조정 아침 회의에 나가 있었고. 정 왕자가 얼마나 알아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흠… 한마디 걸러 정 왕자네… 이거…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나는 말이야…”지윤은 더 캐묻지 않기로 마음먹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로 화제를 돌렸다.“시간이 너무 흘렀어. 미사 화장품 상점 곧 문 열어야 할 시간이야. 가게로 가서 그 여자들을 기다리자.”두 여인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지은은 곧바로 청연각의 두 관리인, 기연과 다빈에게 지시를 내렸고, 지윤은 생각 끝에 이현이 어제 아들을 궁으로 들여보냈다는 사실을 떠올려 애나에게 먼저 궁으로 가서 아들 시후를 데리러 갈 것이라 전하게 했다.지윤의 생각은 분명했다.미사 화장품 상점에서의 일이 어떻게 끝나든, 그 뒤에는 반드시 왕비를 알현해 모든 것을 직접 물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명분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