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모르겠어.”
내 말이 떨어진 순간,
강태준 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
아주 잠깐.
하지만 나는 봤다.
그 짧은 흔들림 안에,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방 안이 조용했다.
빗소리도 어느새 약해져 있었다.
태준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낮게 물었다.
“정말 몰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왜 자꾸 그런 걸 물어.”
“중요하니까.”
“….”
“나한텐.”
숨이 막혔다.
태준 목소리는 조용했는데,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너무 선명했다.
나는 애써 손끝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태준 시선이 다시 그쪽으로 떨어졌다.
그 짧은 시선 하나에도 심장이 흔들렸다.
정말 미친 것 같았다.
헤어진 지 3년이나 됐는데.
왜 아직도 저 사람 앞에만 서면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걸까.
태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또 가까워질까 봐.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태준은 그대로 소파 앞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물컵을 집어 들었다.
“…긴장한 얼굴 하지 마.”
등 돌린 채 들려온 목소리.
나는 괜히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안 했거든.”
태준이 작게 웃었다.
“거짓말.”
낮고 느린 웃음.
예전에도 저런 식이었다.
내가 숨기려 할수록,
강태준은 더 쉽게 알아챘다.
태준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컵을 내려놨다.
그리고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서윤아.”
“…왜.”
“너 지금도 나 피하려고 하잖아.”
심장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태준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내 쪽으로 다시 걸어왔다.
탁.
무릎이 소파 끝에 닿았다.
순간 숨이 막혔다.
가까웠다.
아까보다 조금 멀어졌을 뿐인데,
오히려 더 긴장됐다.
태준은 몸을 숙이지도,
손을 잡지도 않았다.
그냥 가까이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그게 더 위험했다.
“왜 피하는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나는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
태준 시선이 다시 그쪽으로 내려왔다.
아.
또 저 눈이다.
참고 있는데,
전혀 숨겨지지 않는 눈.
나는 결국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무서우니까.”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태준 눈빛이 아주 천천히 흔들렸다.
“…내가?”
나는 대답 대신 손끝만 움켜쥐었다.
태준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주 낮게 웃었다.
근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 아팠다.
“이제 와서?”
숨이 턱 막혔다.
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네가 먼저 시작했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결이 가까웠다.
나는 본능처럼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소파 끝이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태준 손이 아주 천천히 소파 등받이 위로 올라왔다.
내 어깨 뒤쪽.
완전히 가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숨이 막혔다.
“태준아…”
내 목소리가 떨렸다.
태준은 대답 대신 나를 바라봤다.
아주 오래.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계속 참으면.”
“….”
“너 진짜 후회하게 만들 거 같아.”
심장이 무너졌다.
그 말이 너무 위험해서.
그리고 동시에,
너무 흔들려서.
나는 결국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자 태준 손끝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내 턱 아래 가까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띠링.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정적이 깨졌다.
나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태준도 그대로 멈췄다.
몇 초간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정우진]
— 내일 끝나고 잠깐 볼 수 있어요?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앞 공기는 더 위험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강태준은 이미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그런데 이상했다.
화난 얼굴보다,
저렇게 조용한 얼굴이 더 무서웠다.
태준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정말 숨 막힐 정도로 조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아주 천천히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을 가져갔다.
“강태준…”
나는 놀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하지만 태준은 시선조차 내리지 않은 채
그대로 화면을 꺼버렸다.
툭.
어두워진 화면이 손안에서 식어갔다.
태준은 그대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숨이 멎었다.
아까보다 더 가까운 거리.
이번엔 정말 도망칠 수 없었다.
태준 손끝이 내 턱을 가볍게 붙잡았다.
억지로 힘 준 것도 아닌데,
몸이 굳었다.
“이번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태준 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
참고,
억누르고,
겨우 버티던 눈.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는 사람의 눈이었다.
“진짜 못 참겠어.”
숨이 멎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태준 얼굴이 그대로 가까워졌다.
⸻
[작가후기]
가장 위험한 순간은
마음을 들킨 순간이 아니라,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미열주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 들어와가방을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옷을 갈아입고 냉장고를 열어봤다.계란이 있었고,며칠 전에 사둔 반찬도 조금 남아 있었다.간단하게 밥을 데우고계란 하나를 부쳤다.식탁에 앉아 몇 숟갈 먹다가문득 태준이 생각났다.뭐라도 챙겨 먹으라고는 했는데.태준도 지금쯤뭔가 먹고 있으려나.잠깐 그런 생각을 하다가나는 남은 밥을 마저 먹었다.밥을 다 먹고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물을 틀고 접시를 씻고 있는데거실 쪽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손에 묻은 물을 털고수건에 대충 닦은 뒤 화면을 봤다.태준이었다.[저녁 먹었어.]나는 메시지를 보고 웃었다.[편의점?]답장은 금방 왔다.[아니.][그럼 뭐 먹었어?]조금 있다가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뚝배기에 담긴 순두부찌개였다.밥그릇은 이미 반쯤 비어 있었다.사진을 한동안 보다가 답장을 썼다.[제대로 먹었네.][그러는 너는?]나는 싱크대 쪽을 한번 봤다.아직 씻지 않은 프라이팬이 남아 있었다.[나도 먹었어.][뭐 먹었는데?][계란.]잠시 뒤 답장이 왔다.[그게 다야?]나는 웃었다.[밥이랑 반찬도 먹었거든.][그럼 됐네.]아까 내가 했던 말이랑 비슷해서조금 웃음이 났다.[너 지금 내 말 따라 하지.][아닌데.][맞는데.]이번에는 답장이 조금 늦었다.[들켰네.]나는 화면을 보다가작게 웃었다.별것 아닌 이야기를 몇 마디 더 나누고휴대폰을 내려놓았다.남은 설거지를 마저 하고샤워를 했다.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누우니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그제야 느껴졌다.알람을 맞추려고 휴대폰을 들었다.태준과 나눈 대화창이 그대로 열려 있었다.마지막 메시지는내가 보낸 웃는 이모티콘이었다.화면을 끄려다가아까 엘리베이터 앞이 다시 떠올랐다.“뭐라도 챙겨 먹어.”그 말을 듣고 돌아봤던 태준.오늘은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그런데도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돌아봤다.나는 잠깐 화면을 바라보다가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았다.불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도조
아침에 눈을 떴을 때어젯밤 일이 먼저 떠올랐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태준을 불러 세웠던 순간.태준아.그리고 그 뒤에 어렵게 꺼낸 말.나는 베개 옆에 놓인 휴대폰을 집었다.새 메시지는 없었다.화면을 끄려다가한 번 더 봤다.없네.화면을 보다가어젯밤 태준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나도 좋았어.그 말을 듣고조금 늦게 웃던 얼굴.문이 닫히기 직전까지그 자리에 서 있던 태준의 모습도.어젯밤에는 내가 먼저 올라와 놓고도한동안 그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그 생각까지 하고 나니괜히 웃음이 났다.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이불을 걷었다.그리고 다시 한 번휴대폰을 바라보다가침대에서 일어났다.세수를 하고 나와건조대 위에 펼쳐 둔 검은 니트를 만져봤다.다 말라 있었다.나는 니트를 걷어옷걸이에 걸었다.어제부터 거실 한쪽에 있던 옷이다시 옷장으로 들어갔다.나는 잠깐 옷장 안을 바라보다가문을 닫았다.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정리하고가방을 챙겼다.⸻오전에는 휴대폰을 볼 틈이 거의 없었다.회의가 하나 길어졌고,자리로 돌아오자 바로 수정 요청이 들어왔다.한동안 모니터만 보고 있다가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휴대폰을 챙기려고 화면을 켰다.메시지가 몇 개 와 있었다.회사 단체방 하나,광고 두 개.알림을 지우다가태준과의 대화창이 눈에 들어왔다.마지막 메시지는 어제 그대로였다.그런데 이상하게화면보다 먼저 떠오른 건어젯밤 내가 직접 했던 말이었다.나도 좋았어.그리고 그 말을 듣던 태준의 얼굴.나는 잠깐 화면을 보다가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밥 먹으러 안 가요?”옆자리에서 부르는 소리에고개를 들었다.“가요.”휴대폰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점심을 먹고 돌아온 뒤에는다시 일이 몰렸다.오후가 지나면서는아침부터 자꾸 눈에 들어오던 휴대폰도한동안 잊고 있었다.그러다 퇴근 직전,파일을 전송하고 의자에 등을 기대는 순간문득 생각났다.오늘은 연락이 없네.아침부터 몇 번이나
그 뒤로는잠깐 말이 없었다.어색하지는 않았다.조금 전까지 했던 얘기가그냥 우리 사이에 남아 있었다.엘리베이터가 멈췄다.태준이 먼저 내릴 층이었다.문이 열리자태준이 한 걸음 나갔다.“들어가.”“응.”태준이 돌아서려 했다.그 순간어젯밤부터 계속 남아 있던 말이 떠올랐다.생각할 틈도 없이입이 먼저 열렸다.“태준아.”태준이 멈췄다.뒤를 돌아봤다.“응?”막상 불러놓고 나니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문이 닫히기 전까지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나는 열림 버튼을 눌렀다.태준이 그걸 보고가만히 기다렸다.“그날.”“응.”“분리수거하고.”태준의 표정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 같았다.나는 버튼을 누른 손에조금 힘을 줬다.“나도 좋았어.”말하고 나니생각보다 별것 아닌 문장처럼 들렸다.어젯밤에는몇 번이나 쓰고 지웠는데.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입술이 조금 벌어졌다가다시 닫혔다.짧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그리고 조금 늦게 말했다.“응.”나는 태준을 봤다.태준도 나를 보고 있었다.“그 말 하려고 불렀어?”“응.”이번에는 내가 먼저 대답했다.태준의 입가가아주 조금 올라갔다.“알았어.”나는 열림 버튼에서 손을 뗐다.“가.”“응.”문이 천천히 닫혔다.마지막까지태준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집에 들어오자마자거실에 있는 건조대부터 봤다.검은 니트는거의 다 말라 있었다.소매 끝을 만져봤다.아침의 축축한 느낌은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나는 니트를 조금 더 펴놓고손을 뗐다.씻고 나와 침대에 앉았다.휴대폰은 조용했다.나는 화면을 켜지 않았다.어젯밤에는입력창에 썼다가 지웠던 말이었다.[어제 나도 좋았어.]오늘은 문자로 보내지 않았다.그냥 말해버렸다.태준이 잠깐 숨을 삼키던 얼굴이뒤늦게 떠올랐다.나도 좋았어.입 밖으로 나온 말이생각보다 오래 남았다.⸻【태준의 속마음 43】문이 닫힌 뒤에도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엘리
오후 3시 17분.휴대폰 화면이 켜졌다.[강태준]하던 일을 멈추고메시지를 열었다.[니트는 다 말랐어?]검은 니트.어젯밤 손빨래를 하고건조대 위에 펼쳐둔 채 나왔다.아침에 만져봤을 때도소매 끝은 아직 조금 축축했다.[아침엔 아직 좀 축축했어.]잠시 뒤 답장이 왔다.[저녁이면 마르겠다.][아마.]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짧은 대화였다.다시 모니터를 보려다가어젯밤 쓰다 지운 문장이 잠깐 떠올랐다.[어제 나도 좋았어.]나는 화면을 끄고다시 하던 일을 했다.⸻퇴근하고 역을 나왔을 때는이미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비는 오지 않았지만공기가 조금 눅눅했다.나는 가방끈을 고쳐 잡고오피스텔 쪽으로 걸었다.하루 종일 앉아 있었더니어깨가 뻐근했다.횡단보도를 건너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였다.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멀리서는 몰랐는데가까워지자 태준이었다.태준도 나를 봤다.“이제 와?”“응. 조금 늦었어.”우리는 자연스럽게같은 방향으로 걸었다.“어디 갔다 와?”“저녁 먹고. 집에 먹을 게 없어서.”“장 봐.”“귀찮아.”“그러다 또 편의점 가지.”태준이 웃었다.“오늘은 안 갔어.”“잘했네.”말하고 나서둘 다 잠깐 웃었다.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그 말 이제 네 거 됐네.”“원래 내 말 아니었어?”“아닌데. 내 건데.”“언제부터?”“몰라.”그런 얘기를 하면서골목을 천천히 걸었다.별것 아닌 말들이었다.그래서 편했다.오피스텔 건물이 보일 때쯤태준이 나를 한번 봤다.“피곤해?”나는 그를 돌아봤다.“티 나?”“조금. 많이 피곤해 보이는 건 아니고.”나는 앞을 보며 걸었다.“너는 그런 거 진짜 잘 본다.”태준이 나를 한번 봤다.“사람 피곤한 거.”“얼굴 보면 보이잖아.”“나는 잘 모르겠던데.”“너는 네 얼굴을 못 보니까.”“그런가.”몇 걸음 더 갔다.그러다 문득예전 생각이 났다.“예전에도 그랬잖아. 내가 피곤한 거 먼저 알고, 기분 안 좋은 것도 알아보고
옷을 갈아입고검은 니트를 들고 욕실로 갔다.세면대에 미지근한 물을 받고세제를 조금 풀었다.니트를 물에 담갔다가손바닥으로 천천히 눌렀다.세탁기에 넣지 않은 건괜히 늘어날까 봐서였다.몇 번 헹군 뒤마른 수건 사이에 넣고 눌러 물기를 뺐다.젖은 니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나는 거실에 작은 건조대를 펴고그 위에 니트를 평평하게 올려두었다.소매를 펴고,목 부분도 한번 만졌다.아까까지 세탁실에 놓여 있던 옷이이제 내 집 안에 있었다.별일 아닌데하루가 조금 길게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씻고 나오다욕실에 걸린 수건이 눈에 들어왔다.태준이 접었던 수건.이미 한번 펼쳐 썼으니모양은 더 흐트러져 있었다.나는 그걸 보다가조금 웃었다.수건 하나가 뭐라고.그런데도 태준이 접던 손이 떠올랐다.모서리가 조금 안 맞던 것까지.나는 수건을 욕실에 걸어두고식탁으로 돌아왔다.휴대폰이 놓여 있었다.태준과의 대화창을 열었다.[찾았어.][다행이네.]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나는 입력창을 눌렀다.한참 빈칸만 보고 있다가문장을 썼다.[어제 나도 좋았어.]손가락이 보내기 버튼 가까이 갔다가 멈췄다.문장을 다시 읽었다.틀린 말은 아니었다.오히려 너무 맞는 말이었다.그래서 쉽게 보내지 못했다.나는 화면을 그대로 둔 채잠깐 식탁에 앉아 있었다.어제 태준이 했던 말은이미 내 쪽으로 왔다.나도 좋았어.나는 그걸 들었고,오늘까지 몇 번이나 떠올렸다.내 대답은 아직내 안에만 있었다.그렇다고 없는 말은 아니었다.나는 결국 문장을 지웠다.휴대폰을 내려놓고거실 쪽을 봤다.건조대 위의 검은 니트가조용히 펼쳐져 있었다.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내일 아침에도덜 말라 있을 것 같았다.나는 소매 끝을 한번 만져보고손을 뗐다.조금 더 두면 된다.다 마를 때까지.말도 그랬다.나도 좋았어.오늘은 보내지 않았다.그렇다고모른 척하지도 않았다.그 말은 여전히내 안에 남아 있었다.⸻【서윤의 기억 30】예전에
다음 날 아침,세수를 하고 욕실 선반에 손을 뻗었다.수건 몇 장이 쌓여 있었다.그중 하나가 덜 반듯했다.조금.손이 먼저 그쪽으로 갔다.어젯밤 태준이 접었던 수건이었다.집에 와서 다시 펴지 않고그대로 올려둔 것.나는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눌러 닦았다.평소 쓰던 것과 다를 것도 없었다.그런데 어젯밤의 세탁실이잠깐 같이 떠올랐다.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따뜻한 세제 냄새.나란히 서서 수건을 접던 손.그리고,나도 좋았어.나는 수건을 얼굴에서 내렸다.태준이 그렇게 말했을 때나는 겨우 한마디 했다.응.그때는 그게 전부였다.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나도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분리수거가 끝난 뒤에도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던 것도 나였고,그 몇 분이 다음 날까지 남아 있었던 것도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그런데 입 밖으로 나온 건응, 하나였다.지금 와서 생각하니조금 아쉬웠다.나는 수건을 다시 걸어두고가방을 챙겼다.옷장을 열었다가손이 잠깐 멈췄다.검은 니트.나는 옷장 안을 한번 더 봤다.없었다.의자 위에도,세탁 바구니 안에도 없었다.그제야 어젯밤 세탁실이 떠올랐다.셔츠와 수건을 세탁기에 넣으면서따로 빼두었던 검은 니트.접이식 테이블 한쪽.그리고 그대로 나왔다.“아.”시간을 확인했다.다시 내려가기에는 조금 애매했다.퇴근하고 찾으면 되겠지.태준이 접어준 수건은 챙겨왔으면서정작 내 옷을 두고 왔다.나는 옷장 문을 닫았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강태준]화면을 열었다.[나 어제 세탁실에 세탁망 두고 온 것 같아서 내려왔는데.]잠시 뒤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검은 니트 하나 있더라.][네 거 맞지?]나는 화면을 보다가아침부터 찾던 니트를 떠올렸다.[맞아.][나도 방금 생각났어.]태준의 답장이 왔다.[챙겨둘까?]잠깐 고민하다 답했다.[아니. 그냥 둬.][퇴근하고 찾아서 집에서 빨게.][응.]거기서 대화는 끝났다.나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려다가다시 한번 화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