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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Author: 진해랑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9 21:06:08

결혼한 지 일주일 째였다.

계약 결혼이라 어색하고 불편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우리는 생각보다 잘 맞았다.

아침 햇살이 커튼 틈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높은 천장이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는 낯설다고 느꼈던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잠시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깊게 잠들었던 모양인지, 피곤한 기색 없이 개운했다.

침실 문을 열자 펜트하우스 특유의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현관에서 이어지는 긴 복도에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끝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시야가 탁 트였다.

거실은 한 면이 전부 유리였다. 서울의 빌딩 숲과 한강이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아침 햇빛이 유리를 타고 들어와 바닥 위로 길게 번졌다.

그 풍경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생각했었다.

‘호텔 같네.’

호텔 체인을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는 꽤 익숙한 인테리어였다.

높은 층고, 밝은 벽지, 고급스러운 유화 액자와 은은한 간접조명.

내 손을 타지 않았는데도 처음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이 집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거실 한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있었다. 아일랜드 조리대 뒤쪽으로는 넓은 펜트리 공간이 이어져 있었고, 주방에 서 있으면 거실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 구조를 봤을 때 나는 차도영에게 이렇게 말했다.

“감시하기 좋네요.”

그는 잠깐 주방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동선이 효율적인 거라고 해두죠.”

딱 그 남자다운 설명이었다.

나는 거실 중앙에 잠시 멈춰 섰다.

이 집은 거실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좌우가 나뉘어 있었다.

오른쪽은 내 공간, 왼쪽은 차도영의 공간.

마치 자로 정확하게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대칭 구조였다.

내 쪽 복도를 지나면 먼저 서재가 나온다. 그 다음이 침실, 그리고 드레스룸과 작은 응접실이 이어진다.

도영의 공간도 똑같은 구조였다. 다만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내 방은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왔다. 대신 저녁이 되면 놀랄 만큼 어두워진다. 해가 넘어가면 빛이 거의 닿지 않아 차분하고 조용하게 사색을 즐기기에 좋았다.

반대로 도영의 방은 아침에는 건조할 정도로 차갑고, 저녁이 되면 노을이 정면으로 들어와 방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빛의 방향까지 계산해서 집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거실로 나오는데, 커피 향이 먼저 나를 반겼다.

나는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도영이 커피 머신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출근 준비를 마친 후였는지 이미 정장을 입고 있었다.

결혼 후 그는 고수해오던 올블랙 정장 스타일에서 벗어나 밝은 의상을 입기 시작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어두운색 바지에 흰 셔츠.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시계도 커프스도 하지 않았다.

소매를 한 번 접어 올린 팔뚝에 잔근육이 보기 좋게 드러났다.

그는 번듯하게 잘생긴 외모 못지않게 체형도 아름다웠는데,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허리 라인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평소 자기 관리에 얼마나 열심히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침 일곱 시.

출근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출근하세요?”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아뇨. 그냥 일찍 눈이 떠져서요.”

“전 오늘 오전 일정 없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도영은 컵을 하나 더 꺼내더니 물었다.

“설탕 두 스푼 맞습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네?”

“대표님 커피 취향.”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설탕 두 스푼을 넣어 마시는 걸 선호하시는 것 같던데, 아닙니까?”

나는 팔짱을 꼈다.

“…혹시 조사했어요?”

“조사랄 것까지야.”

그가 커피잔을 내밀었다.

“이 정도는 눈썰미라고 해두죠.”

잠깐 그를 보다가 웃음이 나왔다.

“또 있나요?”

“뭐가요?”

“대표님 눈썰미.”

그는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말했다.

“음... 딸기 디저트를 좋아하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하이힐보다는 단화를 자주 신더군요.”

...그건 맞았다.

“악세서리는 거의 안 하지만 목걸이는 꼭 하고 다니더군요. 특히 그 에메랄드 목걸이.”

그가 눈짓으로 내 목을 가리켰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선물했다던 목걸이는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이었다. 특별한 행사에는 물론 협찬을 받은 악세서리를 해야 했지만, 그 외에는 항상 이 목걸이를 걸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나를 좋아해서 알아낸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누군가 내 사소한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쉽게 마음의 빈틈을 건드렸다.

나는 그 감각이 불편해서 일부러 웃었다.

“뭐 그 정도입니다.”

그는 덤덤하게 말을 마치고는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보다 관찰력이 좋네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부부라는 이름을 쓰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죠.”

부부.

계약서에 적힌 단어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자 이상하게 다른 무게를 가졌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수면 위로 내 얼굴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결혼에서 가장 위험한 건, 차도영의 무심함이 아니라 이런 식의 다정함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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