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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31 14:49:50

연회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여름도 덕배와 함께 안쪽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사라와 지나 사이에서 신이 나 떠들던 모습과 달리 서희가 가까이 있을 때는 묘하게 얌전했다.

싫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서희는 처음 봤는데도 편하게 웃어줬고, 말투도 부드러웠다.

문제는 여름이 알아버린 사실이었다.

강수의 아내.

그리고 사라는 서희의 친구.

그런데 강수와 사라는 연인 관계였다.

여름은 그 관계를 떠올릴 때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자기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괜히 친해져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입이라도 잘못 놀리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간단했다.

조금 떨어져 있자.

서희가 싫은 게 아니라 자신을 못 믿어서였다.

“여름아.”

사라가 부르자 여름은 바로 돌아봤다.

“응, 언니.”

“이거 네가 한 거 맞지?”

사라가 테이블 위 꽃을 가리켰다.

여름은 금세 가까이 갔다.

“응. 이것도 내가 디자인했어.”

지나도 옆으로 왔다.

“색 진짜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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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덕한 여름   225

    아침 식사는 그대로 끝났다. 덕배가 구워놓은 삼겹살은 손도 못 댄 채 식탁 한쪽으로 밀렸고, 여름은 식빵만 겨우 두 장 먹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여름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덕배가 재킷을 챙기다 봤다. “안 가?” “어디?” “사러 간다며.” 여름의 손가락이 멈췄다. “……지금?” 덕배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애 다 키워놓고 확인하게?” 여름이 홱 돌아봤다. “말을 왜 그렇게 해!” “아까는 당장 큰일 난 것처럼 하더니.” “막상 사러 가려니까 이상하잖아.” “뭐가.” 여름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걸 내가 어떻게 들고 계산해.” 덕배가 잠깐 쳐다봤다. “쪽팔려?” “조금.” “사람 손목은 잘도 물면서.” 여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거랑 이거랑 같아?” “뭐가 달라.” “완전 다르지.” 덕배가 차키를 집었다. “그럼 내가 산다.” 여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가?” “어.” “안 부끄러워?” “내가 임신테스트기 산다고 누가 잡아가냐?” 여름이 덕배를 위아래로 훑었다. “오빠가 들고 있으면 좀 이상하긴 하겠다.” “뭐가.” “오빠가 쓸 것도 아닌데.” 덕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쓰면 두 줄 나오겠냐?” 여름이 상상했는지 갑자기 깔깔 웃었다. “오빠 두 줄 나오면 어떡해?” “그럼 병원부터 가야지. 다른 과로.” 여름은 웃으면서 소파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굳어 있던 분위기가 금세 풀렸다. 둘은 집 근처 약국으로 향했다. 여름은 들어가기 직전까지 잘 걷더니 문 앞에서 갑자기 덕배 뒤로 붙었다. “오빠 먼저 들어가.” “왜.” “그냥.” “쫄았네.” “안 쫄았어.” “그럼 네가 사.” “싫어.” 덕배가 웃었다. “봐. 쫄았잖아.” “배덕배.” “알았어. 들어와.” 약국 안으로 들어간 덕배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름이 뒤에서 괜히 선반만 구경했다. 덕배가 직원을 향해 물었다. “임신테스트기 어디 있습

  • 배덕한 여름   224

    다음 날 아침. 덕배는 평소처럼 식탁에 앉아 있었다. 주방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여름이 아침부터 삼겹살을 굽겠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었다. “오빠, 오늘 현장 가?” “오전에.” “그럼 많이 먹어.” “어.” 여름은 고기를 뒤집었다. 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에서 기름이 지글거리며 올라왔다. 평소라면 여름도 옆에서 하나 집어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움직임이 멈췄다. “……어?” 덕배가 물을 마시다 봤다. “왜.” 여름의 미간이 좁아졌다. “냄새가…….” “뭐.” “잠깐만.” 여름이 집게를 내려놨다. 입을 손으로 막았다. “우욱.” 덕배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여름은 그대로 싱크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우욱…….” “서여름.” 덕배가 다가가 등을 잡았다. “왜 그래.” “몰라.” 여름의 얼굴이 구겨졌다. “갑자기 고기 냄새가 너무 이상해.” 덕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체했어?” “어제 잘 먹었는데?” “배 아파?” “아니.” “토할 것 같아?” 여름은 잠깐 자기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 덕배가 바로 가스 불부터 껐다. “병원 가.” “뭘 이걸로 병원을 가.” “아프잖아.” “안 아파.” 여름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지나자 울렁거림도 금세 가라앉았다. “괜찮아졌어.” 덕배는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다. “진짜?” “응.” 여름은 다시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삼겹살 접시를 보자 얼굴이 또 구겨졌다. “저거 치워줘.” 덕배의 눈썹이 올라갔다. “고기?” “응.” “네가 구웠잖아.” “근데 지금은 싫어.” 덕배는 말없이 접시를 멀리 치웠다. 여름은 식빵 하나를 가져와 조금씩 뜯어먹었다. “이건 괜찮네.” 덕배는 맞은편에서 계속 여름을 보고 있었다. “병원 가자.” “싫어.” “왜.” “진짜 괜찮다니까.” “그럼 왜 갑자기 토할 것 같아.” “나도 모르지.” 여름은 식빵을 씹다가 멈췄다. 뭔가 생각난

  • 배덕한 여름   223

    오후 출근을 마친 여름이 꽃집에서 나온 건 저녁 일곱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자 익숙한 차가 길 건너에 세워져 있었다. 여름의 얼굴이 바로 밝아졌다.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오빠, 언제 왔어?” “방금.” “거짓말.” 덕배가 봤다. “왜.” “차 보닛 식었는데?” “그걸 만져봤어?” “아니.” 여름이 안전벨트를 매며 웃었다. “그냥 해본 말이야.” 덕배의 얼굴이 구겨졌다. “장난하냐.” “응.” 차가 출발했다. 여름은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덕배를 힐끗 봤다. “카드지갑은?” 덕배가 한숨부터 쉬었다. “있어.” “확인해봐.” “서여름.” “아침에 잃어버린 사람이 누구더라.” 덕배는 결국 한 손으로 주머니를 두드렸다. “됐다?” “응.” 여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장 보러 가자.” “뭐 해 먹게.” “아직 안 정했어.” “그럼 뭘 사.” “가서 정하지.” 덕배는 별말 없이 차를 마트 쪽으로 돌렸다. 평일 저녁이라 사람이 제법 많았다. 카트를 꺼낸 덕배가 밀기 시작하자 여름은 자연스럽게 그 옆에 붙었다. “오빠 뭐 먹고 싶어?” “고기.” “그건 맨날 먹잖아.” “그래서.” “다른 거.” “고기.” 여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삼겹살?” “어.” “김치찌개?” “어.” “계란말이?” 덕배가 여름을 봤다. “그거 다 해줄 거야?” “오빠가 계란말이 해.” “내가?” “응. 나 김치찌개 할게.” “귀찮은 건 나 시키네.” “계란말이가 왜 귀찮아.” 덕배가 대답하지 않았다. 여름은 이미 고기 코너로 향하고 있었다. 삼겹살을 고르고 두부와 대파도 담았다. 덕배가 카트를 밀다 여름을 불렀다. “야.” “왜.” “김치 집에 있잖아.” “별로 없어.” “냉장고에 통 하나 있던데.” “그거 어머니가 주신 거라 아껴 먹는 거야.” “김치를 뭘 아껴.” “맛있으니까.” 덕배가 피식 웃었다. “먹으라고 준 거야.” “알아.”

  • 배덕한 여름   222

    덕배가 카드지갑을 두고 간 걸 알아차린 건 이미 회사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뒤였다.여름이 보낸 사진을 한참 내려다보다 얼굴을 쓸었다.아침부터 여름에게 밥 챙겨 먹어라.끝나면 연락해라.혼자 장 보러 가지 마라.온갖 잔소리를 해놓고 정작 자기 카드지갑을 현관에 흘리고 왔다.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서여름: 2인자님 정신은 챙겨서 출근하셨어요?]덕배의 관자놀이가 꿈틀했다.[배덕배: 갖고 있어.]바로 답이 왔다.[서여름: 싫은데][배덕배: 장난하지 마.][서여름: 이미 출발했는데~]덕배가 화면을 보다가 멈췄다.[배덕배: 어디를.][서여름: 오빠회사]덕배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여름은 금방 받았다.- 왜~“너 오후 출근이라며.”- 응.“집에서 쉬지 왜 나와.”- 카드지갑 가져다주려고.“그냥 집에 두라니까.”- 이미 버스 탔어.덕배가 한숨을 내쉬었다.“택시 타지.”- 버스가 왜.“귀찮게.”- 하나도 안 귀찮아.여름은 오히려 신이 난 목소리였다.- 나 오빠 회사 가는 길 이제 알아.“그게 자랑이냐.”- 응.덕배가 피식 웃었다.“도착하면 전화해.”- 네, 2인자님~“그거 그만해.”- 끊어요, 2인자님~뚝.덕배가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진짜…….”욕을 하려다 웃음부터 나왔다.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여름에게서 전화가 왔다.덕배는 직접 1층으로 내려갔다.로비에 도착하자 여름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긴 머리를 느슨하게 묶고 편한 옷차림이었다.덕배를 발견하자 손부터 흔들었다.“오빠!”주변 직원 몇 명의 시선이 동시에 향했다.덕배가 여름 앞으로 갔다.“목소리 좀 줄여.”“왜. 오빠 맞잖아.”“회사잖아.”“알아.”여름은 가방을 열었다.검은 카드지갑을 꺼내 덕배에게 내밀었다.“자.”덕배가 받으려는데 여름이 손을 뒤로 뺐다.“뭐야.”“뭐라고 해야 되는데?”덕배가 어이없는 얼굴로 봤다.괌에서 커피를 사다 줬을 때와 똑같았다.“고맙다.”여름이 고개를 저었다.“성의 없어.”“고마워

  • 배덕한 여름   221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덕배가 먼저 눈을 떴다.익숙한 천장이 보였다.괌의 호텔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자기 집이 편했다.덕배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여름은 아직 자고 있었다.긴 머리를 베개 위에 잔뜩 흩뜨린 채 이불을 끌어안고 엎드려 있었다.덕배가 시간을 확인했다.출근하려면 슬슬 일어나야 했다.조심스럽게 몸을 빼려는데 여름의 팔이 허리를 감았다.“……어디 가.”눈도 안 떴다.“출근.”“가지 마.”“일해야지.”“오늘까지만 여행하자.”덕배가 피식 웃었다.“한국 왔어.”“마음은 아직 괌이야.”“몸은 한국이고.”여름이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덕배에게 더 붙었다.“연차 써.”“이미 썼어.”“회장님한테 더 달라고 해.”“네가 말해.”그제야 여름이 눈을 살짝 떴다.“강수 아저씨한테?”“어.”잠깐 고민하던 여름이 다시 눈을 감았다.“그건 좀 그래.”“왜.”“회사 일은 회사 일이잖아.”덕배가 어이없는 얼굴로 내려다봤다.“그런 건 또 구분하냐.”“응.”덕배는 여름의 팔을 떼고 침대에서 일어났다.“더 자.”“오빠 밥은?”“내가 먹을게.”그 말에는 여름의 눈이 다시 떠졌다.“뭐 먹게.”“아무거나.”“아무거나가 뭔데.”“있는 거.”여름은 결국 몸을 일으켰다.머리는 산발이었다.“내가 해줄게.”“자라니까.”“나도 오늘 출근이야.”“너 오후 출근이잖아.”“그래도.”하품을 크게 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왔다.덕배는 그런 여름을 한번 보고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주방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났다.덕배가 머리를 털며 걸어가자 여름이 프라이팬 앞에 서 있었다.“오늘은 간단하게 먹자.”“뭔데.”“김치볶음밥.”“어.”여름이 뒤를 돌아봤다가 잠깐 멈췄다.수건을 허리에 두른 덕배.젖은 머리.“…….”덕배가 바로 알아챘다.“또 시작이냐.”여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잠깐만.”“싫어.”“씨익.”“안 해.”“배덕배 시그니처.”덕배는 그대로 방으

  • 배덕한 여름   220

    며칠간의 괌 여행이 끝났다.귀국하는 날.여섯 사람은 아침부터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올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캐리어의 무게였다.특히 덕배가 끌고 있는 캐리어는 하나가 더 늘어 있었다.정민이 그걸 보고 물었다.“야. 너 올 때 저거 없지 않았냐?”덕배의 얼굴이 구겨졌다.“없었지.”“뭘 그렇게 샀어?”덕배는 대답 대신 앞에서 걷고 있는 여름을 봤다.여름은 작은 크로스백 하나만 멘 채 사라와 지나 사이에서 세상 가볍게 걷고 있었다.정민이 바로 알아들었다.“아.”“뭘 아야.”“고생한다.”“닥쳐.”조금 앞에서 여름이 뒤를 돌아봤다.“오빠!”“왜.”“빨리 와.”“네 짐 끌고 있잖아.”“힘내!”덕배가 헛웃음을 흘렸다.정민은 옆에서 어깨를 들썩였다.“힘내래.”“너도 웃지 마.”여름은 다시 사라와 지나에게 붙었다.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아쉬운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아, 가기 싫다.”지나가 웃었다.“며칠 전에는 그렇게 신나게 왔으면서.”“그러니까 더 가기 싫어.”사라가 말했다.“다음에 또 오면 되지.”여름의 얼굴이 바로 밝아졌다.“언니, 또 올 거야?”“기회 되면.”“같이?”“그래.”여름이 덕배를 돌아봤다.“오빠, 들었지?”덕배는 캐리어를 끌며 대답했다.“들었어.”“우리 또 와.”“그래.”“진짜?”“다음에.”여름은 금세 만족했다.체크인부터 수하물 처리까지는 사라가 익숙하게 앞에서 챙겼다.여름은 그런 사라 옆에 붙어 계속 질문했고, 지나는 웃으며 둘을 따라다녔다.정민이 덕배에게 작게 말했다.“이번 여행에서 제일 피곤한 사람은 너겠다.”덕배가 봤다.“왜.”“몰라서 물어?”“뭘.”그때 여름이 귀신같이 끼어들었다.“왜요? 우리 오빠 여행 엄청 재밌어했는데요?”정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렇긴 하겠지.”덕배의 눈빛이 험악해졌다.“한정민.”“왜.”여름은 둘을 번갈아봤다.“뭔데요?”“아무것도 아니야.”“또 나만 모르는 거예요?”“어.”“정민 아저씨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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