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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30 21:48:17

여름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민우의 말을 몇 번이나 떠올렸다.

혹시 그분이 여름 씨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창밖으로 지나가는 불빛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니겠지~.”

작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안 됐다.

처음 만난 날부터 싸웠다. 차 좀 빼달라고 했더니 아저씨라는 호칭에 발끈했고, 그 뒤로도 마주칠 때마다 시비인지 장난인지 모를 말을 걸었다.

무엇보다 여름은 호텔에서 덕배를 두 번이나 봤다.

그것도 서로 다른 여자와.

여자친구는 없다면서 여자관계는 복잡한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에이.”

이번에는 조금 더 확실하게 고개를 저었다.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여름은 원피스 자락을 정리하며 내렸다.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불편했던 구두부터 벗어던지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발이 살 것 같았다.

잠시 뒤 시선이 식탁으로 향했다.

민우에게 받은 꽃다발이 꽃병에 꽂혀 있었다. 시골에서 가져온 작은 들꽃과 함께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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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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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sdid1004
빨리 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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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덕한 여름   63

    같은 시각, 차강수의 집무실에서는 서쪽 건에 대한 회의가 막 끝난 참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계좌 내역과 사진, 정민이 정리한 인물 관계도가 널려 있었다. 윗선으로 의심되는 인물까지 어느 정도 좁혀졌고, 당장 움직이기보다 며칠 더 지켜보자는 강수의 결정으로 회의가 마무리됐다. “오늘은 여기까지.” 강수가 서류를 덮었다. “예, 형님.” 덕배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정민도 태블릿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야.” 덕배가 불렀다. 정민이 돌아봤다. “왜.” 덕배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묻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고 혼자 생각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가방. 구두. 팔찌. 다이아 반지. 전부 실패했다. “너 여자친구 있지.” 정민의 표정이 묘해졌다. “갑자기?” “있냐고.” “있지.” “뭐 사주냐.” 정민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뭘?” “여자들이 뭘 좋아하냐고.” 이번에는 강수도 덕배를 봤다. 덕배가 그 시선을 알아채고 얼굴을 구겼다. “형님은 왜 그렇게 보십니까.” “듣고 있어.” “사라 씨랑 한참 연애 중이시잖습니까.” 강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래서.” “사라 씨한테 뭐 해주십니까.” 집무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정민은 벌써 입꼬리를 누르고 있었다. 강수는 덕배를 한동안 보다가 짧게 물었다. “왜.” 덕배가 결국 몸을 앞으로 숙였다. “가방도 안 받습니다.” 정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구두도.” 강수가 말없이 들었다. “팔찌도 안 받고.” 덕배의 얼굴이 점점 더 억울해졌다. “다이아 반지도 안 받아요.” 정민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마, 이 새끼야.” “잠깐만.” 정민이 고개를 숙였다. “그걸 며칠 동안 하나씩 다 사갔어?” “어.” “다 거절당했고?” “그렇다니까.” 정민의 어깨가 다시 흔들렸다. 덕배가 쿠션을 집어 던졌다. 정민이 옆으로 피했다. “씨발, 물어보잖아. 여자들은 뭘 좋아하냐

  • 배덕한 여름   62

    여름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민우의 말을 몇 번이나 떠올렸다. 혹시 그분이 여름 씨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창밖으로 지나가는 불빛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니겠지~.” 작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안 됐다. 처음 만난 날부터 싸웠다. 차 좀 빼달라고 했더니 아저씨라는 호칭에 발끈했고, 그 뒤로도 마주칠 때마다 시비인지 장난인지 모를 말을 걸었다. 무엇보다 여름은 호텔에서 덕배를 두 번이나 봤다. 그것도 서로 다른 여자와. 여자친구는 없다면서 여자관계는 복잡한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에이.” 이번에는 조금 더 확실하게 고개를 저었다.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여름은 원피스 자락을 정리하며 내렸다.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불편했던 구두부터 벗어던지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발이 살 것 같았다. 잠시 뒤 시선이 식탁으로 향했다. 민우에게 받은 꽃다발이 꽃병에 꽂혀 있었다. 시골에서 가져온 작은 들꽃과 함께 있으니 제법 잘 어울렸다. 여름은 소파에서 일어나 꽃병 앞에 섰다. 민우는 좋은 사람이었다. 오늘도 즐거웠다. 뮤지컬도 재미있었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나눈 대화도 편했다. 며칠 동안 퇴근 시간이 기다려진 것도 사실이었다. 좋아지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다가 다시 덕배가 끼어들었다. 오늘 꽃집에서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얼굴. 잘 어울린다는 말 한마디를 끝까지 못 하다가 민우가 온 뒤에야 퉁명스럽게 내뱉던 목소리. 그리고 다이아 반지. “……왜 반지를 사온 거야.” 가방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구두도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팔찌도. 그런데 반지는 조금 이상했다. 여름은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설마. 민우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여름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이번에는 말끝이 조금 짧았다. 다음 날 오전, 여름은 평소처럼 J&J에 출근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꽃을 정리하는 동안에는 전날 생각도 거의 나지 않았다. 오전

  • 배덕한 여름   61

    덕배는 여름과 민우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J&J 안에 서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두 사람의 뒷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또 거절당한 다이아 반지가 든 쇼핑백이 남아 있었다. “배 이사님.” 재희의 목소리에 덕배가 돌아봤다. “왜요.” “안 가세요?” “갑니다.” 대답은 했지만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재희는 작업대 위 꽃을 정리하며 슬쩍 그를 봤다. 가방부터 시작해서 구두, 팔찌, 오늘은 다이아 반지까지. 가격을 몰라도 비싼 물건이라는 건 포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여름은 단 한 번도 상자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고 덕배는 거절당하면서도 다음 날 또 뭔가를 사왔다. “하나 물어봐도 돼요?” 덕배의 눈썹이 올라갔다. “뭡니까.” “여름이가 왜 안 받는지 아직도 모르세요?” 덕배의 얼굴이 구겨졌다. “비싼 거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재희의 손이 멈췄다. 잠시 뒤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모르시네.” “뭘요.” “비싼 게 싫은 게 아니라 이유 없이 받는 게 싫은 거예요.” 덕배가 쇼핑백을 한번 내려다봤다. “내가 주고 싶다는데.” “그게 배 이사님 이유고요.” 재희는 꽃 줄기를 정리하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여름이는 자기 이유가 없잖아요.” 덕배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선물 받는 데 걔 이유까지 있어야 합니까?” “여름이는 그래요.” 재희가 웃었다. “그러니까 그만 사오세요. 저러다 진짜 화내요.” 덕배가 코웃음을 쳤다. “이미 맨날 화내는데요.” “그건 그렇네요.” 재희도 웃었다. 덕배는 결국 쇼핑백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차에 올라타 뒷좌석 문을 열자 기가 막힌 광경이 보였다. 가방. 구두. 팔찌. 그리고 반지. 나란히 쌓인 쇼핑백을 보던 덕배가 혀를 찼다. “씨발, 매장 하나 차리겠네.” 운전석에 올라탔지만 바로 시동을 걸지는 않았다. 재희가 한 말이 걸렸다. 여름이 왜 안 받는지는 알았다. 이제는.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바로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 배덕한 여름   60

    덕배가 현장에서 빠져나온 건 저녁 일곱 시가 가까워진 뒤였다. 예정보다 일이 길어졌다. 오전부터 붙잡고 있던 협력업체 문제가 오후까지 이어졌고, 마지막 확인을 끝내고 나서야 현장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차에 올라탄 덕배는 안전모를 뒷좌석에 던졌다. 그 옆에는 작은 쇼핑백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번에는 반지였다. 가방도 안 받았다. 구두도 안 받았다. 팔찌도 안 받았다. 그런데 덕배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어디까지 안 받나 보자는 오기가 붙었다. 오늘 고른 건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였다. 매장 직원이 선물 받는 사람과 무슨 관계냐고 물었을 때는 대충 얼버무렸다. 손가락 사이즈를 몰라 조절과 교환이 가능한 제품으로 골랐고, 이번에도 가격은 가장 높은 쪽이었다. 덕배는 시계를 확인했다. J&J 영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아직 있겠지.” 차를 출발시켰다. 꽃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일곱 시 이십 분이 넘어 있었다. 가게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덕배는 쇼핑백을 집어 들고 차에서 내렸다.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아저씨?” 여름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덕배는 안으로 들어서다 걸음을 멈췄다. 평소와 달랐다. 앞치마도 없었다. 무릎 아래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밝은색 원피스를 입었고, 늘 풀어놓거나 낮게 묶던 긴 갈색 머리는 깔끔하게 올려 묶었다. 목선과 작은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옅게 화장까지 한 것 같았다. 덕배의 시선이 말없이 위에서 아래로 한번 내려갔다. 여름이 자기 옷을 내려다봤다. “왜요?” 덕배는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 전 민우와 첫 데이트를 한다던 날에는 선크림만 바르고 갔다고 했다. 오늘은 누가 봐도 달랐다. “너 어디 가냐.” 여름이 거울을 보며 귀 옆 잔머리를 정리했다. “데이트요.” 덕배의 턱이 바로 굳었다. 알면서 물은 셈이었다. “그 새끼랑?” 여름이 돌아봤다. “민우 씨요?” “어.” “네.” 대답도 시원했다. 덕배는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려

  • 배덕한 여름   59

    다음 날 아침, 덕배는 침실 한쪽에 놓인 쇼핑백 두 개를 보며 셔츠 단추를 채웠다. 가방. 구두. 둘 다 실패였다. 어젯밤 검색창에 "스무 살 여자 선물"을 쳐본 뒤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결과는 죄다 비슷했다. 가방, 향수, 주얼리, 화장품. 향수는 마음에 안 들었다. 여름에게서는 원래 꽃향기가 났다. 굳이 다른 냄새를 덮을 이유가 없었다. 덕배는 시계를 채우다 손을 멈췄다. 주얼리. “그래.” 가방도 아니고 구두도 아니다. 몸에 하고 다니는 건 다를 수 있었다. 어제 분명 아무것도 사오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은 머릿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밀어냈다. 점심 무렵 덕배는 주얼리 매장에 들어섰다. “선물 찾으세요?” “예.” “연령대가 어떻게 되실까요?” “스물.” 직원은 익숙하게 몇 가지 제품을 꺼냈다. 가느다란 목걸이와 귀걸이, 작은 펜던트가 달린 팔찌까지 차례로 놓였다. 덕배의 시선은 팔찌에서 멈췄다. 여름의 손목이 떠올랐다. 자기 팔에 붕대를 감아주던 작은 손. 꽃 줄기를 잡고 가위를 움직이던 가느다란 손목. 덕배는 팔찌 하나를 들어봤다. “이건 얼마입니까.” 직원이 가격을 설명했다. 덕배는 고개를 저었다. “더 좋은 거.” “조금 더 높은 라인으로 보여드릴까요?” “제일 좋은 걸로.” 잠시 뒤 다이아몬드가 작게 세팅된 팔찌가 나왔다. 화려하게 크지는 않았지만 가격은 앞서 본 것들과 확연히 달랐다. 덕배는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손목 사이즈는 아실까요?” 이번에는 덕배도 멈췄다. 발 사이즈는 물어봤다. 손목 둘레까지 물어보면 여름이 바로 눈치챌 게 뻔했다. “제일 작은 걸로 하면 안 됩니까?” “조절 가능한 제품이라 크게 문제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그럼 그걸로.” 결제는 또 빨랐다. 오후 세 시. J&J 문이 열렸다. 여름은 꽃바구니를 만들다가 고개를 들었다. 덕배를 발견했다. 그다음 그의 손을 봤다. 작은 쇼핑백. 여름의 표정이 천천히 굳었다. 덕배는 아무

  • 배덕한 여름   58

    다음 날 오전, 덕배는 현장으로 향하다 백화점 앞에서 차를 돌렸다. 어제 산 가방은 여전히 뒷좌석에 있었다. 상자조차 열어보지 않고 거절당한 물건이었다. 보통이라면 다시 매장에 보내든 누구에게 줘버리든 했겠지만 아직 그대로였다. 덕배는 가방이 아니라 다른 게 문제였다고 결론 내렸다. 취향. 서여름이 가방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걸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걸 사면 됐다. 덕배에게는 단순한 문제였다. 백화점에 들어선 그는 어제와 다른 층으로 올라갔다. 여성 구두 매장이 이어진 곳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문제는 이번에도 아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덕배는 매장 직원에게 곧장 물었다. “스무 살 여자들이 뭐 신습니까?” 직원이 잠시 당황했다가 웃었다. “찾으시는 스타일이 있으실까요?” “예쁜 거.” “평소 스타일은요?” 덕배의 미간이 좁아졌다. 여름이 뭘 입었더라. 청바지. 운동화. 꽃집 앞치마. 양로원에 갔던 날도 운동화였다. “편하게 입습니다.” “그럼 로퍼나 플랫도 괜찮고요. 조금 꾸밀 때 신을 거라면 이런 펌프스도—” 덕배는 직원이 보여주는 구두를 훑었다. 그러다 가장 비싼 쪽에 시선이 멈췄다. “이건.” “시그니처 라인입니다.” “이걸로.” “사이즈는 어떻게 되세요?” 덕배가 멈췄다. “……사이즈?” “네.”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덕배는 잠시 서 있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배덕배: 야.] 답장은 잠시 뒤 왔다. [서여름: 왜요?] [배덕배: 발 몇이냐.] 이번에는 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서여름: 제 발이요?] [배덕배: 그럼 내 발 물어봤겠냐.] [서여름: 235요. 근데 왜요?] 덕배는 화면을 확인하고 직원에게 말했다. “235.” 결제까지 끝낸 뒤에야 여름의 마지막 질문에 답했다. [배덕배: 그냥.] 쇼핑백을 들고 나온 덕배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번에는 가방이 아니었다. 신발은 누구나 신는다. 게다가 예뻤다. 가격도 충분히 비쌌다. 이 정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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