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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5 23:20:29

수업이 시작되자 양로원 강당의 분위기가 금세 달라졌다.

테이블마다 꽃이 놓였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여름이 나눠준 앞치마를 두르거나 소매를 걷었다.

여름은 가장 앞에 섰다.

“오늘은 작은 꽃바구니 만들 거예요.”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들었다.

“저번보다 어려워?”

“아뇨. 오늘은 도와줄 사람이 많아서 더 쉬워요.”

여름이 뒤를 가리켰다.

사라와 지나가 이미 꽃을 나눠주고 있었다.

강수와 정민은 남은 상자를 정리했고, 덕배는 여름이 시킨 대로 물이 든 통을 테이블마다 옮겼다.

“아저씨.”

“왜.”

“거기 말고 이쪽이요.”

덕배가 방향을 바꿨다.

“여기?”

“네.”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총각이 여름이 말은 잘 듣네.”

덕배의 손이 멈췄다.

여름이 바로 웃었다.

“요즘 좀 들어요.”

“요즘?”

할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덕배가 여름을 봤다.

“너 말 잘해라.”

“제가 틀린 말 했어요?”

“아니.”

할머니가 손뼉을 쳤다.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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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덕한 여름   220

    며칠간의 괌 여행이 끝났다.귀국하는 날.여섯 사람은 아침부터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올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캐리어의 무게였다.특히 덕배가 끌고 있는 캐리어는 하나가 더 늘어 있었다.정민이 그걸 보고 물었다.“야. 너 올 때 저거 없지 않았냐?”덕배의 얼굴이 구겨졌다.“없었지.”“뭘 그렇게 샀어?”덕배는 대답 대신 앞에서 걷고 있는 여름을 봤다.여름은 작은 크로스백 하나만 멘 채 사라와 지나 사이에서 세상 가볍게 걷고 있었다.정민이 바로 알아들었다.“아.”“뭘 아야.”“고생한다.”“닥쳐.”조금 앞에서 여름이 뒤를 돌아봤다.“오빠!”“왜.”“빨리 와.”“네 짐 끌고 있잖아.”“힘내!”덕배가 헛웃음을 흘렸다.정민은 옆에서 어깨를 들썩였다.“힘내래.”“너도 웃지 마.”여름은 다시 사라와 지나에게 붙었다.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아쉬운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아, 가기 싫다.”지나가 웃었다.“며칠 전에는 그렇게 신나게 왔으면서.”“그러니까 더 가기 싫어.”사라가 말했다.“다음에 또 오면 되지.”여름의 얼굴이 바로 밝아졌다.“언니, 또 올 거야?”“기회 되면.”“같이?”“그래.”여름이 덕배를 돌아봤다.“오빠, 들었지?”덕배는 캐리어를 끌며 대답했다.“들었어.”“우리 또 와.”“그래.”“진짜?”“다음에.”여름은 금세 만족했다.체크인부터 수하물 처리까지는 사라가 익숙하게 앞에서 챙겼다.여름은 그런 사라 옆에 붙어 계속 질문했고, 지나는 웃으며 둘을 따라다녔다.정민이 덕배에게 작게 말했다.“이번 여행에서 제일 피곤한 사람은 너겠다.”덕배가 봤다.“왜.”“몰라서 물어?”“뭘.”그때 여름이 귀신같이 끼어들었다.“왜요? 우리 오빠 여행 엄청 재밌어했는데요?”정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렇긴 하겠지.”덕배의 눈빛이 험악해졌다.“한정민.”“왜.”여름은 둘을 번갈아봤다.“뭔데요?”“아무것도 아니야.”“또 나만 모르는 거예요?”“어.”“정민 아저씨 진짜

  • 배덕한 여름   219

    바닷물이 발목을 스치고 빠져나갔다.여름은 덕배의 손을 잡은 채 물가를 천천히 걸었다.조금 전까지 여섯 사람이 한데 모여 떠들고 있었지만 어느새 간격이 조금씩 벌어져 있었다.앞쪽에는 사라와 강수.반대편에는 지나와 정민.덕배와 여름은 가장 뒤에서 느릿하게 걷고 있었다.여름은 신발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덕배의 손을 잡았다.파도가 들어올 때마다 괜히 덕배 쪽으로 붙었다.“오빠.”“왜.”“여기 물 되게 따뜻하다.”“어.”“아까 수영장보다 좋아.”“그럼 내일 여기서 놀든가.”여름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진짜?”“어.”“아침부터?”덕배의 눈이 가늘어졌다.“네가 일어나면.”여름의 얼굴이 바로 구겨졌다.“나 원래 일찍 일어나거든?”“오늘 열두 시 넘어서 일어난 사람이?”“그건 누구 때문인데.”덕배가 피식 웃었다.여름이 그의 손을 찰싹 때렸다.“웃지 마.”“안 웃어.”“웃었잖아.”“조금.”여름은 입술을 삐죽였다가 금세 다시 앞을 봤다.멀리 수평선 위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낮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랗던 바다가 조금씩 다른 빛으로 변했다.여름이 걸음을 멈췄다.덕배도 자연스럽게 멈췄다.“왜.”“예뻐.”덕배는 바다를 한번 봤다.“어.”여름은 잠깐 말없이 서 있었다.바람이 불어 긴 갈색 머리가 얼굴 앞으로 흩어졌다.덕배가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줬다.여름은 그 손길을 받으면서 덕배를 올려다봤다.오늘도 손목에는 빨간 실 팔찌가 있었다.서로를 지켜주는 사이.아이에게 받은 말을 듣고 좋아했던 게 생각났다.여름이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을 들어 올렸다.“오빠.”“왜.”“이거 안 뺄 거야?”“왜 빼.”“물에 젖었잖아.”“말리면 되지.”여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나도.”“그래.”다시 걷기 시작했다.이번에는 여름이 손가락을 더 깊게 맞물렸다.몇 걸음 가지 않아 갑자기 덕배를 불렀다.“배덕배.”“왜.”여름이 걸음을 멈췄다.덕배가 돌아봤다.여름은 아무 이유 없이 싱글싱글 웃고

  • 배덕한 여름   218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에게서 위치가 왔다.해변에서 멀지 않은 쇼핑거리였다.여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오빠, 빨리 씻어.”덕배가 황당한 얼굴로 봤다.“나 아까 씻었어.”“그럼 옷 입어.”“누가 아까 못 입게 했는데.”여름이 잠깐 멈췄다.“그건 어제고.”“편하네.”“빨리.”덕배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품에 붙어 나가기 싫게 만들던 여자가 이제는 자기를 재촉하고 있었다.준비를 마친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햇빛이 한창 강했다.여름은 짧은 반바지에 가벼운 상의를 입고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렸다.한 손은 자연스럽게 덕배의 손을 잡았다.“오빠.”“왜.”“나 이제 완전 괜찮아.”덕배가 여름의 걸음을 한번 봤다.“그래 보이네.”“그러니까 오늘 많이 놀 거야.”“적당히 해.”“싫어.”덕배는 예상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얼마 지나지 않아 네 사람이 보였다.가장 먼저 발견한 건 여름이었다.“언니!”사라와 지나가 동시에 돌아봤다.사라가 여름을 보자마자 웃었다.“여름, 이제 일어났어?”여름이 덕배를 한번 노려봤다.“응. 누구 때문에.”덕배는 모르는 척했다.지나도 웃으며 물었다.“몸은 괜찮아?”“응, 언니. 밥도 먹고 왔어.”정민의 입꼬리가 벌써 올라가 있었다.“잘 잤냐, 여름아?”여름의 눈이 가늘어졌다.“왜 웃으세요, 정민 아저씨.”“내가 언제.”“지금 웃잖아요.”정민이 덕배를 힐끗 봤다.“그냥 네가 오늘 못 나올 줄 알았거든.”“왜요?”“그냥.”이번에는 여름이 덕배를 봤다.“둘이 뭔 얘기했어?”덕배가 짧게 말했다.“없어.”정민도 고개를 끄덕였다.“없어.”“수상한데.”사라가 피식 웃었다.“그냥 넘어가, 여름.”“언니도 알아?”“응.”여름의 눈이 커졌다.“뭔데?”“비밀.”여름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조금 떨어져 있던 강수가 이쪽으로 왔다.여름이 바로 불렀다.“강수 아저씨.”강수가 여름을 봤다.“왜, 여름 씨.”

  • 배덕한 여름   217

    여름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환한 햇빛이었다.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침대 끝까지 길게 번져 있었다.몇 번 눈을 깜빡이던 여름이 협탁 위 시계를 확인했다.열두 시가 넘었다.“……뭐야.”벌써 점심시간이었다.여름이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베개에 털썩 기대었다.온몸이 노곤했다.옆에는 덕배가 잠들어 있었다.여름의 시선이 가늘어졌다.자기는 괌까지 와서 오전을 통째로 날렸는데 원인 제공자는 세상 편하게 자고 있었다.“배덕배.”반응이 없었다.여름이 덕배의 팔을 흔들었다.“배덕배! 일어나.”덕배가 미간을 찌푸렸다.눈도 뜨지 않은 채 여름의 허리를 잡아 다시 자기 쪽으로 끌었다.“더 자.”“뭘 더 자!”여름이 가슴팍을 밀었다.꿈쩍도 하지 않았다.“지금 열두 시 넘었어!”“그래서.”“그래서?”여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배덕배, 나 괌에 잠자러 왔어?”덕배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너 때문에 바다도 못 보고 맛있는 것도 못 먹었잖아!!”덕배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까불래?”여름의 입이 벌어졌다.어제 정민이 예상했던 대사가 정확하게 튀어나온 순간이었다.물론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몰랐다.“내가 언제 까불었어!”덕배가 여름을 빤히 봤다.“옷 입지 말라며.”여름의 입이 다물렸다.잠깐.정말 잠깐이었다.“그거랑 이거랑 다르지!”덕배가 피식 웃었다.“똑같아.”“안 똑같아.”“네가 먼저 그랬잖아.”“그래도 적당히 해야지!”“알았어.”너무 쉽게 인정하자 여름이 더 할 말을 잃었다.덕배가 다시 눈을 감으려 했다.여름이 바로 볼을 잡았다.“자지 마.”“왜.”“배고파.”그 말에는 덕배가 눈을 떴다.“많이?”“응.”“뭐 먹을래.”여름은 잠깐 생각했다.“나가기에는 배고파서 힘없어.”“룸서비스 시켜.”“고기.”덕배가 침대 옆 전화기를 집었다.“스테이크?”“응. 오빠 좋아하잖아.”여름은 메뉴판을 가져와 펼쳤다.“감자 크림수프도.”“어.”“나 새우볶음밥.”“어.”

  • 배덕한 여름   216

    덕배와 통화가 끊기자 정민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그러다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다.“미쳤네, 이 새끼.”지나가 고개를 들었다.“왜?”정민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이 새끼 아주 짐승 새끼야.”“뭔데 그래.”“오늘 둘이 방에 있겠대.”“왜? 여름이 어디 아파?”“아픈 건 아닌 것 같은데.”정민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좀 전에 잠들었대.”그 말을 듣던 사라가 그대로 터졌다.“풉.”정민이 사라를 봤다.눈이 마주쳤다.사라는 이미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아들은 얼굴이었다.“알아들었지?”“응.”지나가 두 사람을 번갈아봤다.“뭘 알아들어?”정민은 대답 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강수에게 말했다.“형님.”강수가 봤다.“왜.”“덕배 오늘 못 나온대요.”“그래서.”끝이었다.강수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 다시 시선을 돌렸다.정민의 얼굴이 구겨졌다.“아니, 여름이가 좀 전에야 잠들었다고요.”강수가 다시 봤다.“그래서.”사라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정민은 결국 포기했다.“됐습니다.”지나만 답답해졌다.“아니, 뭔데? 왜 나만 몰라?”사라가 지나를 보며 웃었다.“언니.”“응.”“여름이 오늘 잠만 자겠네.”지나의 미간이 좁아졌다.“왜?”정민이 기다렸다는 듯 덕배의 낮은 말투를 흉내 냈다.“오늘은 우리 안 나가. 여름이 좀 전에 잠들었어.”그리고 곧바로 표정을 바꿨다.이번에는 여름이었다.“배덕배! 너 때문에 바다도 못 보고 맛있는 것도 못 먹었잖아!!”사라가 웃음을 터뜨렸다.정민은 멈추지 않았다.다시 덕배처럼 무뚝뚝한 얼굴을 만들었다.“누가 까불래?”“딱이다.”사라가 손뼉까지 쳤다.지나도 피식 웃다가 갑자기 표정이 멈췄다.좀 전에 잠들었다.오늘은 안 나온다.밤새.그제야 의미가 하나로 연결됐다.“……아.”지나가 입을 손으로 가렸다.정민이 바로 웃었다.“이제 알았어?”“잠깐만.”지나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진짜 밤새?”사라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 배덕한 여름   215

    아침 햇살이 커튼 틈으로 들어올 때까지 여름은 눈을 뜨지 못했다.밤새 몇 번이나 잠들려다 다시 덕배에게 붙잡혔는지 이제는 기억도 흐릿했다.결국 먼저 지친 건 여름이었다.침대 위에는 이불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고, 두 사람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한 이불 아래 붙어 있었다.덕배는 진작 잠에서 깨어 있었다.팔 안에는 여름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한쪽 팔을 덕배의 허리에 걸친 채 가슴팍에 얼굴을 붙이고, 입술까지 살짝 벌린 모습이었다.평소라면 먼저 일어나 아침부터 배고프다거나 오늘 뭐 할 거냐며 쉴 새 없이 물었을 시간이었다.오늘은 미동도 없었다.덕배가 내려다봤다.“……뻗었네.”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여름은 새근새근 숨만 쉬었다.흐트러진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덮고 있었다.덕배가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치워줬다.여름이 미간을 아주 조금 찌푸렸다.“으응…….”덕배의 손이 멈췄다.깨나 싶었지만 아니었다.오히려 얼굴을 그의 가슴에 더 깊숙이 묻었다.덕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피곤하긴 한가 보네.”어젯밤 자기가 원인이면서 남 일처럼 중얼거렸다.그때 협탁 위 휴대전화가 진동했다.우웅―.덕배가 화면을 확인했다.한정민.받지 않으려다가 진동이 계속되자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목소리를 낮췄다.“왜.”- 뭐 해?“자.”- 자긴 뭘 자. 지금 몇 신데.덕배가 시간을 확인했다.생각보다 늦었다.- 우리 다 내려왔어. 너희는 왜 안 나와?덕배는 품 안의 여름을 한번 내려다봤다.여전히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오늘은 우리 안 나가.”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왜?“여름이 자.”- 깨워.“안 깨워.”정민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여행 와서 하루를 방에서 보낼 거야?“어.”- 서여름이 그걸 가만히—“좀 전에 잠들었어.”정민의 말이 뚝 끊겼다.잠시 뒤.- ……좀 전에?덕배가 눈을 가늘게 떴다.“끊어.”- 야, 잠깐만. 설마 너희—뚝.덕배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휴대전화도 무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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