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려는데 흉부외과 교수가 집착합니다

퇴사하려는데 흉부외과 교수가 집착합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2
By:  노에빌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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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 이번엔 진짜 퇴사할 겁니다.” 성형외과 의사를 꿈꾸던 한채이. 어쩌다 흉부외과의 미친개, 강태혁 교수에게 낚여 4년째 죽도록 구르는 중이다. 이제는 정말 탈출하려는데, 이 남자가 자꾸 앞길을 막는다. “한채이. 누가 마음대로 그만두래?” 분명 지독하게 싫었던 교수님인데, 어째서 요즘은 자꾸 심장이 제멋대로 뛰는 걸까? 퇴사하고 싶은 전공의 한채이와, 그녀를 절대 놓치기 싫은 흉부외과 교수 강태혁의 아슬아슬하고 달콤살벌한 병원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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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미친개에게 낚여 흉부외과 레지가 되었습니다.

“한채이 선생. 너 미쳤어?”

아침 6시 12분.

한국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교수실에서 하루를 시작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문장은 없었다.

나는 손에 든 아메리카노를 내려다봤다. 얼음은 이미 다 녹았고, 출근한 지 겨우 12분 만에 인생의 의욕도 함께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인사 참 정겹게 하시네요, 교수님.”

“내가 지금 인사를 하는 것 같아?”

“아니요. 인성에 문제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정적.

‘아. 씨발.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흰 가운을 걸친 강태혁이 차트를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정하게 넘긴 검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 감정이라고는 한 톨도 없어 보이는 얼굴.

대한민국 흉부외과에서 수술 실력으로는 손꼽히는 천재. 그리고 성격으로는 단연 독보적인 개자식. 한국대병원 미친개 강태혁 교수님 되시겠다.

“한채이.”

“네.”

“너 오늘 당직이야?”

“아닙니다.”

“그럼 왜 벌써부터 정신이 나가 있어?”

“교수님을 뵈어서요.”

“…….”

“영광스러워서 그렇습니다.”

강태혁이 들고 있던 차트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탁.

그 작은 소리에 내 영혼이 한 번 더 사망했다.

“응급 수술 잡혔어. 준비해.”

“무슨 환자입니까?”

“대동맥 박리. 혈압 불안정하고 파열 위험 있어. 수술방 들어가기 전까지 영상 다시 보고 브리핑 준비해.”

나는 즉시 표정을 고쳤다.

대동맥 박리.

대동맥 내벽이 찢어지면서 혈액이 혈관벽 사이로 파고드는 질환. 진행이 빠르면 생명이 위험하다. 환자 상태가 불안정하다면 한순간도 허비할 수 없었다.

***

두시간 후 수술방 앞

“영상은 확인했습니다. 상행 대동맥까지 침범했고, 심낭삼출도 보여서 심장압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수술 준비하면서 혈역학적 상태 계속 확인하겠습니다.”

“수술 계획은?”

“병변 범위에 따라 상행 대동맥 치환술을 우선 고려하겠습니다. 정확한 범위는 수술 소견과 영상 다시 대조하겠습니다.”

“그걸 나한테 보고라고 해?”

“교수님께서 환자 상태부터 확인하라고 하실 것 같아서요.”

“내가 언제?”

“그야 매일 하시잖아요.”

강태혁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은 건가? 아니겠지. 저 인간이 웃으면 병원 전산망에 공지부터 올라와야 한다.

“좋아. 그럼 네가 수술해.”

“…네?”

“못 하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뭘 놀라. 너 레지던트 4년 차잖아.”

그렇다. 나는 흉부외과 레지던트 4년 차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도 한때는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한국대학교 의과대학 수석 졸업.

인턴 성적 우수.

수술 술기 평가 상위권.

부모님은 사업가였고, 친오빠는 같은 병원 신경외과 교수였다. 머리도 좋고 손도 좋고, 집안까지 든든한 내가 굳이 고생길을 택할 이유는 없었다.

내 인생 계획은 완벽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다.

강남에 개원한다.

병원을 확장한다.

건물주가 된다.

그리고 매년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통장에 쌓이는 돈을 확인한다.

인류애? 물론 있었다. 다만 인류애와 수익성이 공존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정도였다.

그런 나를 흉부외과로 끌고 온 인간이 바로 저 남자였다.

4년 전, 인턴 시절.

강태혁은 분명 지금과 달랐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

“한채이 선생 맞죠?”

인턴 첫 달, 흉부외과 회진을 따라가던 날이었다.

강태혁은 내 이름이 적힌 명찰을 확인하더니 차트를 넘겨 보았다.

“의대 수석이라던데.”

“운이 좋았습니다.”

“손도 빠르다면서.”

“그것도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겸손하네.”

그가 웃었다. 지금으로선 상상불가지만, 그땐 정말로 다정하게 웃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남자가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한 선생 같은 사람은 흉부외과에 와야 해요.”

“네?”

“수술하는 걸 봤는데 감각이 좋더군요. 손도 안정적이고, 상황 판단도 빠르고.”

칭찬이었다. 분명 칭찬이었다. 심지어 눈빛도 진지했다.

“흉부외과는 힘들어요. 대신 제대로 배우면 어디에서도 밀리지 않는 외과의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실력은 확실하게 만들어 줄게요.”

강태혁은 그날 내게 미래를 보여 주었다.

최고의 수술 실력을 갖춘 외과의.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의사.

그리고 그 끝에 있을 찬란한 커리어.

나는 감동했다. 아니, 정확히는 홀렸다.

‘와. 저 정도로 실력 있는 교수가 나를 키워 준다고?’

그날 밤, 나는 성형외과 지원 계획을 접고 흉부외과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뒤. 흉부외과 레지던트 지원서에 이름을 적었다.

그게 바로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

“한채이.”

현재로 돌아왔다.

강태혁이 내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자냐?”

“아닙니다.”

“그럼 왜 멍청하게 서 있어?”

“제 인생을 되돌아보느라 바빴습니다.”

“헛된 짓거리로 시간 낭비하지 마. 수술 준비나 해.”

그는 돌아서며 덧붙였다.

“그리고 오늘부터 네가 제1 보조 아니야.”

나는 눈을 깜빡였다.

“네?”

“네가 집도해.”

“…….”

“내가 옆에서 볼 거니까 실수할 생각은 하지 말고.”

“교수님.”

“왜.”

“제가 지난 4년 동안 교수님께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강태혁이 고개를 돌렸다.

“뭔데?”

“사람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겁니다.”

“그건 잘 배웠네.”

“특히 교수님 같은 사람은요.”

“한채이.”

“네.”

“수술 끝나고 보자.”

‘아. 오늘도 글렀다.’

나는 차트를 품에 안고 교수실을 나왔다.

복도를 걷는 동안 머릿속으로 수술 계획을 정리했다. 환자의 상태는 위중했다. 농담도, 투덜거림도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였다.

수술실에서는 달라져야 했다.

강태혁이 아무리 개자식이어도, 내가 아무리 그를 싫어해도. 환자 앞에서만큼은 예외가 없었다. 그게 내가 의사로서 지키는 유일한 원칙이었다.

그리고 그 원칙을 강태혁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 인간은 나를 갈궜다. 내가 버틸 수 있다는 걸 아니까. 내가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까.

…물론 가끔은 진짜로 도망치고 싶었다.

“채이 선생님!”

수술실 앞에서 타과 전공의 1년 차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교수님이 찾으세요!”

“뭐라고 하시던?”

“아, 그게….”

후배가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한 선생님 손이 오늘따라 유난히 느려 보인다고….”

나는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강태혁 이 개자식을 오늘은 꼭 죽이리라. 물론 의학적으로. 수술 결과가 좋으면 한 대쯤 때려도 되지 않을까?

“알았어. 가자.”

수술실 문이 열렸다.

차가운 공기, 기계음,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 그리고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 나는 손을 닦고 장갑을 끼며 생각했다.

성형외과에 갔으면 지금쯤 이 날쎄고 섬세한 손으로 예쁜 코를 만들고 있었을 텐데. 왜 내가 남의 대동맥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가.

“한채이.”

수술대 맞은편에서 강태혁이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집중해.”

그의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장난기도, 빈정거림도 없었다. 오직 수술에 필요한 판단과 확신만이 남아 있었다.

“환자 살리자.”

나는 짧게 대답했다.

“네, 교수님.”

메스가 건네졌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환자를 살린다. 그것만 생각한다.

그리고 세 시간 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술실을 나서려던 순간, 강태혁이 내 이름을 불렀다.

“한채이.”

“네.”

“오늘은 괜찮았어.”

“...”

“왜. 칭찬받으니까 감격스러워?”

“아니요. 혹시 열이 나시나 해서요.”

강태혁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한 사람처럼. 하지만 그 눈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일부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역시. 내가 미쳤지. 저 인간한테 인간적인 면모를 기대하다니.

“그건 굳이 예고 안 해 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한 선생.”

그가 한 발 다가왔다.

“내일 아침 여섯 시. 교수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입니까?”

“새로운 수술 들어갈 거야. 네가 맡아.”

“환자는요?”

“내일 알려 줄게.”

“교수님, 저 오늘 밤 당직인데요.”

“알아.”

“그런데 아침 여섯 시에요?”

“응.”

“잠은요?”

강태혁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알아서 자.”

“…….”

“대신 늦으면 죽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나는 수술실 복도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인간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나는 아직도 이 인간을 이길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흉부외과 레지던트 4년 차 한채이.

내 목표는 여전히 돈이었다. 내 꿈도 여전히 개원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강태혁 교수님. 내 인생에서 좀 꺼져 주시면 안 될까요?’

물론, 그 소원을 들어줄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내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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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jdduddlf535
wjdduddlf535
흥미진진하군요 ㅋㅋㅋ
2026-11-02 14: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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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에빌
노에빌
의학물은 처음이라 떨리네요ㅠㅠ 공부는 많이 하면서 쓰고 있지만 간혹 틀리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감사히 받을게요! 앞으로 매일 1-2편씩 연재 될 예정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2026-11-02 10: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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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미친개에게 낚여 흉부외과 레지가 되었습니다.
“한채이 선생. 너 미쳤어?”아침 6시 12분.한국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교수실에서 하루를 시작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문장은 없었다.나는 손에 든 아메리카노를 내려다봤다. 얼음은 이미 다 녹았고, 출근한 지 겨우 12분 만에 인생의 의욕도 함께 녹아내리는 중이었다.“아침부터 인사 참 정겹게 하시네요, 교수님.”“내가 지금 인사를 하는 것 같아?”“아니요. 인성에 문제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정적.‘아. 씨발.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흰 가운을 걸친 강태혁이 차트를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정하게 넘긴 검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 감정이라고는 한 톨도 없어 보이는 얼굴.대한민국 흉부외과에서 수술 실력으로는 손꼽히는 천재. 그리고 성격으로는 단연 독보적인 개자식. 한국대병원 미친개 강태혁 교수님 되시겠다.“한채이.”“네.”“너 오늘 당직이야?”“아닙니다.”“그럼 왜 벌써부터 정신이 나가 있어?”“교수님을 뵈어서요.”“…….”“영광스러워서 그렇습니다.”강태혁이 들고 있던 차트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탁.그 작은 소리에 내 영혼이 한 번 더 사망했다.“응급 수술 잡혔어. 준비해.”“무슨 환자입니까?”“대동맥 박리. 혈압 불안정하고 파열 위험 있어. 수술방 들어가기 전까지 영상 다시 보고 브리핑 준비해.”나는 즉시 표정을 고쳤다.대동맥 박리.대동맥 내벽이 찢어지면서 혈액이 혈관벽 사이로 파고드는 질환. 진행이 빠르면 생명이 위험하다. 환자 상태가 불안정하다면 한순간도 허비할 수 없었다.***두시간 후 수술방 앞“영상은 확인했습니다. 상행 대동맥까지 침범했고, 심낭삼출도 보여서 심장압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수술 준비하면서 혈역학적 상태 계속 확인하겠습니다.”“수술 계획은?”“병변 범위에 따라 상행 대동맥 치환술을 우선 고려하겠습니다. 정확한 범위는 수술 소견과 영상 다시 대조하겠습니다.”“그걸 나한테 보고라고 해?”“교수님께서 환자 상태부터 확인하라고 하실 것 같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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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흉부외과에는 사람이 없다
오전 5시 47분.나는 병원 화장실 거울 앞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오늘 퇴사할까. 아니, 잠깐. 퇴사만은 안 된다. 전문의 자격증은 따야지. 그래. 딱 일 년만 더 버티자. …아니, 아직 일 년이나 남았네.’“…씨발.”세수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 여자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대충 묶었고,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흰 가운 아래로 드러난 손목은 유난히 가늘었다.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 흉부외과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자고, 피부과도 다니고, 필라테스도 꾸준히 하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은? 밥 먹다가 콜 받는 건 기본이고, 화장실에서 양치하다가도 호출을 받았다. 잠을 자다가 깨는 횟수를 세는 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무엇보다 이 과에는 사람이 없었다. 정확히는, 사람이 들어왔다가 사라졌다.1년 차 때 함께 들어온 동기는 둘이었다. 한 명은 수련을 시작한 지 넉 달 만에 사직했다. 이유는 강태혁. 나머지 한 명은 1년 차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역시 강태혁.2년 차가 되었을 때는 다른 연차 선배 한 명이 수련을 포기했고, 그다음 해에는 전공의 한 명이 휴직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한국대학교병원 흉부외과 레지던트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교수는 수술실에서 살고, 펠로우는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오가고, 레지던트는 그 사이를 뛰어다녔다. 그중에서도 레지던트 4년 차인 나는 사실상 과의 인간 방패였다.응급실에서 연락이 오면 내가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갔다. 신규 환자가 입원하면 내가 확인했다. 수술이 잡히면 수술 준비를 했다. 후배가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 줬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최종 결재권자는.“한채이!”화장실 밖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침 5시 51분. 내가 오늘 퇴사할 가능성이 98퍼센트에서 99퍼센트로 상승하는 순간이었다.“넵!”“어디야!”“화장실입니다!”“당장 나와!”“교수님, 저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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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한채이의 사직서 보관함
오후 1시 42분.병원 식당에서 나는 국에 밥을 말아 급하게 먹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김민재가 내 얼굴을 살피더니 물었다.“선생님, 괜찮으세요?”“뭐가?”“교수님이요.”“괜찮아. 내가 오늘도 살아 있잖아.”“아니, 그게 아니라….”민재는 목소리를 낮췄다.“교수님이 선생님한테는 좀 다른 것 같아서요.”나는 숟가락을 멈췄다.“뭐가?”“저희한테는 칭찬을 거의 안 하시거든요. 그런데 선생님한테는 가끔 하시잖아요.”“그게 다른 거야?”“네. 그리고 선생님이 대들어도 안 자르시고요.”“…….”“다른 선생님들은 그 정도로 대들면 바로 불려 가셨는데.”나는 국을 한 숟가락 더 떠먹었다.“그건 내가 이미 다섯 번이나 사직서를 냈기 때문이야.”“다섯 번이요?”“응. 매번 반려당했어.”“왜요?”“몰라. 인력이 없어서 그런가 보지.”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 나도 궁금했다. 강태혁은 나를 갈궜다. 남들보다 더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작은 실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만두겠다고 하면, 이상하게도 허락하지 않았다.첫 번째 사직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수련을 지속하기 어려워 사직하고자 합니다.]강태혁은 그걸 읽고 물었다.“어려우면 쉬운 과로 가면 되겠네. 그런데 너처럼 정신이 썩어빠진 인간이 거기서도 잘할 수 있을까?”두 번째에는 이렇게 말했다.“네가 지금 도망가면, 네가 가진 재능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팔릴 거야.”세 번째에는 사직서를 찢지는 않았다. 그저 내 앞에 다시 놓으며 말했다.“이걸 내기 전에 수술 기록부터 마무리해.”네 번째에는 아예 읽지도 않았다.“한채이. 네가 정말 그만두고 싶으면 전문의 시험 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해.”그리고 다섯 번째는 무려 어제.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인간은 나를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는 거였다.“선생님.”민재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응?”“교수님 오셨어요.”나는 숟가락을 내려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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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뜻밖의 스카우트
오전 5시 58분.나는 교수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기필코 정시에 퇴근하리라. 아니, 그 전에 살아남으리라.어제 강태혁이 보낸 문자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다.[교수님, 혹시 제 사직서 보관함 만드셨습니까?][응. 네 이름으로 된 서랍 하나.]이 인간은 진짜 어디까지 갈 생각인 걸까. 나는 손에 들린 커피를 결연하게 한 모금 마셨다.문을 열자마자 강태혁의 목소리가 들렸다.“늦었네.”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켰다.“6시 2분 전인데요.”“문 앞에서 뭐 했어?”“교수님과의 만남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그럴 시간에 환자 상태나 한 번 더 확인하지.”“환자는 어제 확인했고, 교수님은 매일 봐도 적응이 안 되니까요.”강태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한채이.”“네.”“너 오늘 나한테 죽고 싶어?”“아뇨. 오래 살고 싶습니다.”“그럼 입 다물고 앉아.”“네.”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나의 패배였다. 아니, 정확히는 전략적 후퇴였다.“오늘 오전 회진 끝나고 성형외과에 가.”‘…응?’나는 눈을 깜빡였다.“네?”“못 들었어?”“아니, 들었는데요.”“그럼 왜 멍청하게 쳐다봐?”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교수님, 혹시 제가 어제 사직서 쓴 거 보셨어요?”“네가 사직서를 쓴 게 하루 이틀이야?”“그런데 왜 성형외과에 가라고 하세요?”강태혁이 서류를 내밀었다.“협진 의뢰야. 흉부외과 환자 수술 전 평가 때문에 성형외과에서 확인할 게 있어.”나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아….”“왜. 아쉬워?”“아니요. 순간 제 인생이 드디어 정상화되는 줄 알았습니다.”“꿈 깨.”“네.”“그리고 거기서 딴생각하지 마.”나는 서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딴생각? 성형외과에 가서 딴생각을 하지 말라고?그게 가능한 일인가?’내가 무려 4년 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원래 꿈이 성형외과였다.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고,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개원해서 돈을 벌고, 건물을 사고, 더 큰 병원을 운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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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네 진로는 네가 결정해
나는 흉부외과 교수실 문을 열었다. 강태혁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훨씬 더 험악했다.“왔어?”“네.”“앉아.”나는 앉았다. 강태혁이 물었다.“성형외과 과장이 뭐라고 했어?”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그걸 왜 궁금해하세요?”“질문에 대답해.”“좋게 봐 주셨다고 했습니다.”“뭘 좋게 봐 줘?”“제 실력이요.”강태혁의 턱이 미세하게 굳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아. 이거다. 이 인간 지금 기분 나쁘다. 그런데 왜 기분이 나쁜지는 모르겠다.“그래서?”“전문의 따고 나서 지원할 생각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셨습니다.”“네가 흉부외과 전문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나는 눈을 크게 떴다.“네?”“너 지금 4년 차야. 아직 전문의 시험도 안 봤어. 그런데 벌써 다른 과 교수한테 가서 자리 달라고 하고 다녀?”“제가 언제 자리를 달라고 했습니까?”“그럼?”“교수님이 먼저 물어보셨습니다.”“거절했어야지.”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왜요?”“뭐?”“제가 왜 거절해야 하는데요?”강태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한채이.”“네.”“너 지금까지 뭘 배웠어?”“흉부외과 수술이요.”“그런데 네 머릿속에는 아직도 성형외과밖에 없어?”“제 꿈이었으니까요.”말이 튀어나온 순간, 교수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아. 이건 조금 진심이었다.’강태혁은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꿈?”“…네.”“그럼 왜 여기 왔어?”나는 헛웃음을 지었다.“교수님이 저를 꼬셨잖아요.”“뭐?”“인턴 때요. 최고의 서전으로 만들어 주신다면서요.”“그래서?”“그래서 믿었죠.”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교수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제가 제 재능을 더 크게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잠깐 침묵이 흘렀다.“그런데 지금은요?”내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제가 왜 이 과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들어서가 아니에요. 힘든 건 4년 동안 충분히 견뎠어요. 그런데 교수님은 제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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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칭찬은 죽어도 안 해주는 인간
오전 5시 32분.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노려봤다. 알람이 울리기까지 28분. 그런데 잠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강태혁. 어제 그 인간이 내게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났다.‘이제부터 네가 직접 판단해야 할 상황을 더 많이 줄 거야.’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기회.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기회겠지만, 강태혁에게 기회란 대체로 이런 뜻이었다.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하면 죽도록 깨진다. 문제는 잘해도 편해지지 않는다는 거다. 잘하면 다음에는 더 어려운 걸 시킨다. 못하면 못했다고 갈군다. 결국 어느 쪽이든 내 노동 강도만 올라간다.“…이래서 내가 성형외과에 갔어야 했는데.”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6시까지 교수실.]나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아니. 이 인간은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는 거야?’[교수님, 혹시 주무시긴 합니까?]답장은 3초 만에 왔다.[네가 걱정할 일 아니야.][걱정이 아니라 신기해서요.][6시.][넵.]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불을 걷어차며 일어났다. 오늘도 내 인생은 강태혁을 중심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아주 재수 없게도.***오전 5시 59분.교수실 문을 열자 강태혁이 차트를 보고 있었다.“왔어?”“네.”“앉아.”나는 의자에 앉았다. 강태혁이 차트 한 장을 내 앞으로 밀었다.“오늘 수술 네가 맡아.”나는 차트를 내려다봤다. 52세 남성. 승모판 질환. 중증 승모판 역류로 수술이 필요한 환자였다. 심초음파와 심장 기능, 동반 질환, 수술 위험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케이스였다.나는 차트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교수님이 주 집도의로 들어가시는 거죠?”“당연하지.”“그런데 제가 맡으라고 하신 건….”“수술 계획부터 네가 세워. 수술 중에도 네 판단을 먼저 들을 거야.”나는 다시 차트를 내려다봤다.“수술 계획을 제가 발표하면 되는 겁니까?”“아니.”강태혁이 태연하게 말했다.“네가 설명하고, 네가 판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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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칭찬은 한채이를 춤추게 한다
수술실. 환자는 마취를 받고 있었고, 수술팀은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손을 씻고 수술 가운을 입었다. 강태혁이 내 옆에 섰다.“긴장돼?”“아뇨.”“거짓말하지 마.”“조금 됩니다.”“좋아.”나는 그를 돌아봤다.“긴장된다고 하니까 좋아요?”“긴장할 줄 안다는 건 네가 상황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니까.”강태혁은 마스크를 고쳐 썼다.“대신 긴장 때문에 판단을 놓치지는 마.”“네.”“그리고 네가 생각한 대로 안 되면?”“다시 평가하고, 필요한 정보를 확인한 뒤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좋아.”그가 수술대 쪽으로 돌아섰다.“시작하자.”수술이 시작됐다. 수술 부위가 노출되고, 수술팀은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나는 강태혁의 지시에 맞춰 필요한 단계를 수행하면서 수술 소견을 확인했다.초반에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그러나 판막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에서 예상과 다른 소견이 나타났다.나는 시야를 다시 확인했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판막의 변형이 복잡했다. 수선 가능성을 판단하려면 추가적인 평가가 필요했다.“교수님.”“말해.”“예상했던 소견과 차이가 있습니다. 판막의 변형이 더 복잡해 보여서 수선 가능성을 다시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강태혁이 시선을 옮겼다.“그래서 네 생각은?”나는 잠시 관찰한 내용을 정리했다.“현재 소견만으로 수선 가능하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추가 평가 후 판단하되, 수선이 어렵다면 치환술로 전환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수선이 가능하다면?”“가능한 범위와 예상되는 결과를 확인한 뒤 결정하겠습니다. 무리하게 수선을 고집하지 않겠습니다.”강태혁은 몇 초간 수술 부위를 살폈다.“좋아. 계속 확인해.”나는 다시 집중했다. 수술실에서는 시간 감각이 사라진다. 몇 분이 한 시간처럼 길어지기도 하고, 한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기도 한다. 머릿속에는 오직 환자의 상태와 수술 단계만 남는다.그때였다.“잠깐.”강태혁이 말했다. 나는 즉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수술 부위를 확인한 뒤 마취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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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저 인간. 진짜 왜 저래?
나는 중환자실에서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수술 후 환자는 집중적인 관찰이 필요했다. 활력징후와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수술팀 및 중환자실 의료진과 상태를 공유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환자 상태 보고해.]나는 현재 상태와 주요 검사 결과,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정리해 답장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네, 교수님.”“보고는 잘했어.”“감사합니다.”“그런데 한 가지 빠졌어.”…또 시작이다.“뭔데요?”“네 상태.”나는 눈을 깜빡였다.“제 상태요?”“밥 먹었어?”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아직요.”“왜?”“환자 보고가 먼저라서요.”“환자 보고 끝났잖아.”“네.”“그럼 밥 먹어.”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교수님, 요즘들어 왜 이렇게 제 끼니를 챙기세요?”“네가 쓰러지면 내일 수술 일정이 꼬이니까.”“그럼 인력 충원을 하세요.”“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지.”“그럼 밥도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한채이.”“네.”“내가 지금 너한테 밥 먹으라고 세 번 말하게 할 거야?”나는 입을 다물었다.“…아니요.”“그럼 먹어.”전화가 끊겼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정말 이상한 인간이었다. 환자 상태를 보고하라고 해 놓고 내 상태까지 확인한다. 칭찬을 해 놓고는 곧바로 부족한 점을 열두 개나 찾아낸다. 잘하면 더 어려운 일을 주고, 못하면 죽도록 갈군다.그러면서 정작 내가 정말로 떠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이상하게 표정이 굳는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나는 고개를 저었다.‘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나는 성형외과로 갈 여자다. 개원할 여자다. 돈을 쓸어 담을 여자다. 강태혁의 심리 분석을 하다가 평생 흉부외과에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일단…밥부터 먹자.”나는 중환자실을 나섰다. 그때 복도 끝에서 강태혁과 마주쳤다. 그는 차트를 들고 걸어오다가 나를 보더니 멈춰 섰다.“밥 먹으러 가?”“네.”“잘했네.”나는 그를 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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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교수님, 웃으신 건가요?
오후 다섯 시 삼십 분.채이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오랜만에 입은 사복이었다. 검은색 슬랙스에 단정한 블라우스, 허리선이 깔끔하게 잡힌 재킷. 평소보다 조금 신경 써서 화장도 했다.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응급수술에 들어가던 모습과는 제법 달랐다.“…한채이 아직 안 죽었네.”거울 속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제대로 꾸미고 외출한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개팅은커녕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것도 사치였고,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드물었다.흉부외과에 들어온 뒤로 그녀의 일정은 거의 세 가지로 나뉘었다. 수술, 당직, 수면. 가끔 식사가 추가되긴 했지만, 그것도 수술실에서 빵으로 때우는 수준이었다.채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전문의만 따면 진짜 나간다.’성형외과. 개원. 돈. 그리고 무엇보다 강태혁이 없는 일상.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웠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어디야.]채이는 화면을 보며 헛웃음을 쳤다.[화장실입니다.]답장은 십 초 만에 왔다.[장난하지 말고.][진짜인데요. 교수님이 화장실까지 확인하실 줄은 몰랐네요.][10분 안에 로비로 튀어와.][교수님은 어디 계신데요?][입구.]채이는 눈을 깜빡였다. 잠깐. 입구? 설마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인가?나는 급히 거울을 한 번 더 확인했다.‘아니지. 그냥 행사장에 같이 가려고 그러는 거겠지?’그런데 왜 하필 나랑 같이 가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한 생각은 금물이었다.강태혁이라는 인간에게 낭만적인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저 인간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유는 대체로 세 가지였다.첫째, 일을 시키려고. 둘째, 일을 더 시키려고. 셋째, 일을 제대로 안 했다고 혼내려고....생각해보니 전부 일이네. 나는 한숨을 내쉬고 탈의실을 나섰다.병원 정문 앞. 강태혁은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서 있었다.평소에는 흰 가운이나 수술복만 입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늘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고, 입만 열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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