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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약혼녀의 화려한 재출발
버려진 약혼녀의 화려한 재출발
Author: 달빛

제1화

Author: 달빛
“정말로 약혼을 파기하겠다고?”

테이블 맞은편, 곱게 차려입은 중년 여인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이하니는 선명한 붉은색의 청혼서와 허혼서를 들었다.

그대로 반으로 찢은 후, 강승오의 어머니 심주영을 바라봤다.

“이제 믿으시겠어요?”

심주영은 순간 멍해졌다. 놀란 기색이 눈에 선명했다.

그러더니 이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좋아. 새로운 신분은 내가 정리해 둘게. 한 달 안에, B시에서 완전히 사라져.”

하니는 물컵을 꽉 쥐며,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니가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던 찰나, 심주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약속한 거, 꼭 지켜. 소란 피우지 말고, 승오 아빠한테는 절대 승오 바람피운 일 알리지 마. 알리기만 해 봐, 승오 아빠가 정말 승오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 거야!”

발걸음을 떼던 하니가 멈칫했다.

그리고 그 일이... 떠올랐다.

예전, 사람들 눈에 비친 하니와 승오는 딱 전형적인 동화 속 커플이었다.

가난한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

대학 시절, 하니는 성적도 좋고 모범적인 학생.

반면 승오는 말 한마디에 학교가 떠들썩해질 정도의 재벌 2세.

도무지 엮일 일이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승오는 하니를 첫눈에 사랑하게 됐다.

사람들 말로는, 승오는 하니에게 홀린 거라고 했다.

그는 하니를 얻기 위해서라면 미친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부엔 관심 없던 승오가, 하니가 원하는 참고서를 구하려고 눈 내리는 겨울밤 도시를 헤맸다.

그리고 하니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해뜨기 전부터 낚시하러 나가다 강에 빠져 죽을 뻔도 했다.

처음엔, 둘의 격차가 너무 커서... 하니는 감동하면서도 계속 거절했다.

하지만, 승오는 하니와 약혼하기 위해 집안에 무릎 꿇고 매달렸고, 아버지에게 진짜 다리가 부러질 뻔했다.

병원으로 실려 가던 길, 승오는 하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니야, 나랑 결혼해 줄래?”

그날 밤, 하니는 확신했다.

‘이 사람이구나. 내 인생은 이 사람과 함께겠구나...’

대학교에서 만난 후, 졸업하고, 약혼까지.

무려 6년.

두 사람은 여섯 번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결혼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

하니의 마음속엔 단 한 사람, 강승오뿐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 게...’

그 질문이 하니 머릿속을 맴돌았다.

끝도 없이, 조용히, 되풀이되었다.

...

그날 밤, 하니는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가 딱 열한 시를 가리켰지만, 승오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니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벨이 울리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자기야, 나 지금 접대 중이야. 왜? 무슨 일 있어?]

승오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달콤하고 다정하게 하니를 감쌌다.

하지만 하니는 들었다.

전화기 너머, 시끄러운 클럽 음악 소리.

“술집이야?”

하니가 물었다.

[응, 접대 때문에 나왔어. 바빠서 좀 늦을 거 같아.]

승오는 지친 듯하지만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숨가쁜 호흡,

그리고 입술이 스치는 듯한 미세한 소리.

‘방금, 키스 소리였어...’

작고 희미한 소리.

하지만 하니는 정확히 들었다.

귀가 예민한 편이라 그런지, 숨기려 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니는 숨을 삼켰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침내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 잠깐이라도 집에 다녀갈 수 있어?”

승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숨소리 너머로 미묘한 신음 같은 떨림이 섞였다.

[아직 거래처 사람들이 안 갔어. 지금은 좀 곤란할 것 같아. 근데 약속할게. 술자리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 응?]

‘거짓말...’

하니는 미소 지었다.

‘정말 능청스럽네...’

“그래, 그럼 끊을게.”

전화를 끊고, 하니는 핸드폰을 꼭 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만큼.

...

사흘 전이었다.

하니는 승오 셔츠의 깃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봤다.

그날, 그녀는 친구 소라연과 함께 승오를 찾으러 갔다.

승오가 있다는 곳은 시끄러운 바.

거기서 승오는 백권아를 품에 안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얼굴엔 싫증이 묻어 있었고, 말투는 건조했다.

“진짜 질렸어. 활기도 없고, 개성도 없고... 그냥 딱딱하고 답답한 여자야. 어떻게 만져도 그대로 있어. 노잼이야.”

그 말에 하니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질렸다고...’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 움직일 수 없었고, 가슴 어딘가가 ‘탁’하고 금 가는 소리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하게 들렸다.

뒤에서 라연이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저게 정말 강승오가 한 말 맞아?”

하니는 가볍게 웃었다.

‘어떻게 대답하지...’

그녀는 진작 알고 있었다.

승오는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

보름 전이었다.

하니는 직접 봤다.

승오가 작고 예쁜 여자를 품에 안고 한 고급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날 이후, 하니는 사설탐정을 고용했다.

사설탐정은 자료를 금세 모았다.

사진 수십 장, 명확한 동선, 그리고 여자에 대한 정보.

그 여자의 이름은 백권아.

대학을 갓 졸업하고, 강오그룹에 인턴으로 들어온 신입이었다.

첫 출근 날부터, 권아와 승오는 엮이기 시작했다.

호텔, 레스토랑, 고급 라운지까지.

어딜 가도 두 사람은 웃으며 붙어 다녔다.

둘의 눈빛엔 숨김이 없었고, 행동엔 거리낌이 없었다.

그 시간, 하니는 집에서 결혼 준비로 바빴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예식을 위해, 밤새워 업체들과 연락하고 일정을 조율했다.

승오는 책임감을 내려놓고, 다른 여자와 연애 중이었다.

그런 승오는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얼굴을 했다.

“하니야, 수고했어.”

“우리 여보, 어깨 안 뭉쳤어?”

“발 좀 담가, 내가 씻겨줄게.”

“...”

그렇게 다정한 말투로 하니를 쓰다듬고, 웃으며 안아주던 승오인데...

‘전부... 거짓이었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썩은 말들이었어.’

‘...’

하니는 많은 것을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서랍 속 보석함을 꺼내, 하나하나 정리해서 상자에 담았다.

“여보세요. 그때 말한 보석 몇 개 처분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예약한 결혼식장, 그거 취소해 주세요.”

하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전화를 받은 유담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사모님... 혹시 강 대표님이랑 무슨 일 있어요? 싸우셨어요?]

“아니요. 결혼식장은... 제가 다시 정하려고 해요.”

그 순간, 창밖으로 강한 헤드라이트가 스쳤다.

하니는 전화를 끊고 창가로 다가갔다.

승오가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키가 크고 잘생겼다.

정장에 구두까지, 그 자체로 잡지 화보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승오의 셔츠 깃이 구겨져 있었고, 살짝 풀린 단추 사이로 쇄골이 보였다.

게다가 급히 옷깃을 고치고, 평소 쓰는 향수를 뿌리고서야 집으로 들어섰다.

‘봤어... 전부 다...’

하니의 심장이 조용히, 차갑게 웅크려졌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승오가 들어왔다.

그는 뒤에서 하니를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살갑게 떨렸다.

“여보, 나 왔어. 요즘 술자리가 많아서 좀 늦긴 했지? 혹시 나 때문에 삐졌어?”

하니는 조용히 남자의 팔을 뿌리친 후, 돌아서며 물었다.

“오늘은 거래처 미팅 아니었어? 왜 이렇게 빨리 끝났어?”

승오는 미소 지으며 하니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깊고 부드러운 눈빛을 띠었다.

“우리 여보가 오라니까, 무슨 약속이든 다 미루고 달려왔지. 거래처? 프로젝트? 그게 여보보다 중요하겠어?”

그러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선물 상자를 꺼냈다.

검은 벨벳 상자.

바로 하니에게 건넸다.

“선물이야. 열어봐.”

하니는 상자를 받아서 들었다.

그 안엔 다이아몬드가 박힌 브로치 하나.

값이 꽤 나가 보였다.

‘이걸로 덮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구나.’

하지만 하니는 그 선물을 보는 순간, 딱 사흘 전, 탐정이 보내온 사진이 떠올랐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백권아.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딱 그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이젠...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예전에 승오의 사랑은 오직 하니만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뉘었다.

하니와 권아, 둘로.

‘웃기지... 같은 선물을... 딴 여자한테 먼저 주고...’

‘사흘 뒤에야 날 위해 준비했다는 게...’

‘나는... 그냥 남는 걸로 달래는 사람인 거구나.’

하니의 가슴 안쪽이 조용히 쑤시듯 아팠다.

그리고 핏기가 스르르 빠지는 얼굴.

게다가 몸이 차가워졌다.

그때, 승오가 이상함을 느낀 듯 눈썹을 찌푸렸다.

“여보,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하니는 감정을 누르며 억지로 웃었다.

“아니야, 괜찮아. 선물, 정말 마음에 들어. 근데 내가 자기를 부른 건, 선물 때문이 아니라... 사인받고 싶은 계약서가 있어서야.”

하니는 돌아서서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탁자 위에 펼치고, 서명란을 가리켰다.

“전에 자기가 서구 쪽에 계약했던 별장 기억나? 그 집이 난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 그거... 내 앞으로 돌려줘.”

승오는 별생각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펜을 들어 단번에 사인했다.

“우리 여보가 마음에 드는 집 있으면 그냥 유 비서한테 말해서 등기 넘기라 그래. 내가 가진 건 다 여보 거잖아. 굳이 내 허락받을 필요 없어.”

승오는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익숙한 필체로 이름을 써 내려갔다.

하니는 말없이 그 서류를 서랍에 넣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무척 조용했다.

‘아마도... 이 사람은 평생 알 리 없겠지.’

‘지금 본인이 넘긴 그 문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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