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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달빛
다음 날, 승오는 출근하지 않았다. 일정을 모두 비우고 하니와 함께 주얼리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

‘요즘 내가 서운했을까 봐? 아니면 양심에 찔리는 일이 너무 많아서?’

‘이유가 뭐든 상관없어.’

하니는 별말 없이 따라나섰지만, 속은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았다.

한 달 안이다.

승오가 무엇을 사주든, 어떤 걸 주든, 하니는 다 받을 생각이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건 다 받아야 해.’

‘이제 와서 거절할 이유도 없고, 미련 따윈 더 이상 남기지 않기로 했으니까.’

두 사람은 시내 중심에 있는 고급 주얼리 매장에 도착했다.

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브랜드.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 한정판 세트 주얼리였다.

하니는 승오와 함께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단번에, 매장 한가운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금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족두리, 붉은빛 옥이 달린 유려한 디자인의 떨잠 귀걸이.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전통 혼례 장신구.

누가 봐도, 새신부를 위한 예물이었다.

그 밑에 선명하게 적혀 있는 가격표.

5억 원.

하니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왜냐하면 며칠 전, 사설탐정이 보내온 자료 중에 바로 이 매장에서 결제된 5억짜리 내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땐 몰랐는데... 그 돈이 이거였구나.’

예전에 결혼식에 관해 이야기할 때, 승오는 이렇게 말했었다.

“전통 혼례로 거하게 하자. 네가 가장 고운 전통 혼례복을 입고, 세상에서 제일 값진 장신구를 걸고, 당당하게 우리 집으로 들어오게 해줄게.”

달콤했던 말들.

꿈처럼 아름답던 약속.

‘그 말들... 강승오는... 아무에게나 해줄 수 있었던 거였네.’

하니는 숨이 조금 가빠졌다. 가슴이 조여오는 듯했다.

그리고 시선이 머문 곳을 본 직원이 말을 걸었다.

“고객님, 이 세트는 이미 판매된 제품입니다. 3일 전에 전액 결제로 예약되었어요. 지금은 잠깐 전시만 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니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승오를 바라봤다.

그 순간, 승오의 표정이 아주 잠깐, 어색하게 흐트러졌다.

다른 직원이 웃으며 말을 보탰다.

“들으셨죠? 어떤 재벌 남자분이 여자 친구 주려고 샀대요. 결혼 얘기도 안 나왔는데, 이 정도 스케일이면 진짜 사랑 아니에요?”

“정말 부럽다니까요. 그 여자 진짜 사랑받는 거죠.”

“그러니까요. 어디서 들었는데, 그 여자분이 이거 보자마자 바로 전화했대요. 근데 통화 끝나기도 전에 돈이 매장으로 들어왔대요.”

“사랑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완전히 미쳐 있는 거죠, 여자한테.”

“...”

하니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 말들을 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조여들었다.

밝은 조명 아래, 하니는 승오의 눈가에 스치듯 흐르는 만족스러운 빛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도.

‘이 사람... 내 앞인데도, 백권아한테 한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어.’

하니는 떨리는 손끝을 모았다. 입술을 꼭 다물고, 창백한 얼굴을 감췄다.

그제야 승오가 눈치를 챈 듯 하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자기야, 어디 아파? 얼굴이 왜 그래? 저혈당 또 온 거야?”

승오는 급히 정장을 뒤져 초콜릿 하나를 꺼냈다. 포장을 벗기고, 하니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얼른 이거 좀 먹어봐. 당 떨어졌나 봐.”

승오의 눈빛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건 연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날 바에 가지 않았다면...’

‘그 장면을 보지도, 그 말을 듣지도 못했다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고 나서야 알게 되었을까?’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었겠지.’

하니는 갑자기 메스꺼움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는 느낌.

급히 승오의 손을 밀치고 입을 틀어막은 채 옆 휴게실 안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가 마구 토해냈다.

문밖에선 승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하니는 가글을 하고, 찬물로 얼굴을 여러 번 적시고 나서야 간신히 숨을 고르며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승오가 손수건을 내밀며 다급히 말했다.

“괜찮아? 병원 가자, 응?”

하니는 말할 힘조차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승오가 조심스레 하니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올라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승오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두 글자인데, ‘비서'였다.

승오는 직장생활 하면서 비서를 여럿 두고 바꾸어왔다.

하지만 하니는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메모나 연락처 정리에 강박이 있어.’

‘비서가 아무리 하나뿐이라도, 꼭 성까지 붙여서 저장하던 사람인데...’

‘그런데 오늘은 그냥, 비서?’

승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려 조용한 곳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하니는 조수석에 기대어 가만히 기다리며, 손끝에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2분쯤 지난 후, 승오가 다시 차에 올라탔다.

“여보... 내가 일단 택시 불러서 병원에 데려다줄게. 회사 쪽에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바로 가봐야 해.”

‘연기 잘하네. 얼굴엔 죄책감 하나 없고, 목소리는 또 그럴싸하게 흔들리고...’

하니는 손바닥 안쪽으로 손톱을 깊숙이 박았다.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

하니는 차에서 내려 승오가 불러준 택시에 몸을 실었다.

승오는 아무 미련도 없이 자신의 차로 빠르게 사라졌다.

택시 기사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고객님, 어디로 모실까요?”

하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차 따라가 주세요.”

기사가 놀란 듯했지만 곧바로 액셀을 밟았다.

승오의 차는 빠르게 달렸다.

아주 급하게.

보통 30분은 걸리는 거리였는데, 불과 20분 만에 주얼리 매장에서 강오그룹 본사까지 도착했다.

기사는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와... 저 속도로 운전하는 사람 처음 봐요. 신호등마다 딱딱 걸리는데도 간신히 따라왔네요. 제가 이 동네 길 잘 몰랐으면 절대 못 쫓았을 거예요.”

하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옷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가자. 끝까지, 다 보자.’

...

회사 맞은편 도로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니는 차창 너머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강승오와 백권아가 회사 정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승오는 여느 때처럼 말끔한 정장 차림.

그 옆, 권아는 짧은 타이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청순한 얼굴과는 다르게, 과감하게 드러낸 몸매.

두 사람은 주변을 살피듯 두리번거리다, 바로 옆 건물 2층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하니는 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그저 조용히 둘이 창가 자리에 앉는 모습을 바라봤다.

‘숨길 생각도 없네.’

이윽고 테이블 위에 딸기 케이크 두 조각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 놓였다.

승오는 평소 생딸기 케이크를 싫어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권아는 포크로 케이크 한 입을 잘라 승오에게 들이밀었다.

승오는 못 이기는 척 입을 벌렸고, 권아는 또 아메리카노를 권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입을 가리며 웃는 권아.

투정 섞인 눈으로 받아주는 승오.

그 장면 하나하나가, 하니의 눈을 찌르듯 아프게 했다.

‘처음 사귈 때... 강승오는 생크림 알레르기가 있었지.’

‘그래도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라고, 끝까지 다 먹고...’

‘그날 밤, 강승오... 온몸이 부어올라 병원에 실려 갔었는데...’

그날, 하니는 병원 침대 옆에서 엉엉 울었고, 승오는 침대에 누워 손을 꼭 쥔 채 말했다.

“하니가 해준 거라면, 독이라도 삼킬 수 있어.”

‘이젠, 그 말을... 다른 여자에게 하고 있겠지.’

하니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고, 손으로 문손잡이를 밀었다.

지금이라도 저 두 사람 얼굴에 아메리카노를 확 끼얹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기사 아저씨가 하니의 팔을 붙잡았다.

그는 무겁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은, 한쪽 눈은 감고 살아야 해요. 사람이란 게 다 똑같아요. 결혼만 하면 끝이에요. 믿지 말고, 챙길 수 있을 때 돈부터 챙겨요. 그게 세상 사는 이치예요.”

하니는 움켜쥐던 소매를 더 세게 잡았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니야. 세상이 다 그래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배신이 익숙한 사람은 많아도, 끝까지 한 사람만 보는 사람도...’

‘분명 어딘가엔 있어.’

‘강승오는 이미 썩었어.’

‘그런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는 게... 진짜 지옥이지.’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니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더는 카페 쪽을 보지 않았다.

“출발해 주세요.”

하니는 눈을 감은 채 말하면서 생각했다.

‘참자.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끝까지, 견디고 떠나자.’

...

집에 돌아온 하니는 불과 두 시간 만에 다시 승오를 마주했다.

승오는 뭔가 급해 보이는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하니가 저녁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본 승오는 이마를 찌푸리며 다가왔다.

“우리 결혼식장 왜 취소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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