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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 초대하지 않은 사람

Author: 유영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3 21:04:46

김 여사가 JL 로비에 온 것은 그 이틀 뒤였다.

혼자가 아니었다. 강민호가 반걸음 뒤에 서 있었다.

"회장님. 아래에서 손님이…"

"올려 보내세요."

한정우가 잠깐 멈칫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여기서 안 만나면 성당으로 갈 사람들이에요."

한정우가 더 말하지 않고 나갔다. 서지안은 책상 위 서류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은 채로 맞을 생각은 없었다.

회장실 문이 열렸다. 김 여사는 들어서면서부터 방을 한 바퀴 둘러봤다. 며느리가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눈으로 재는 얼굴이었다.

십 년 동안 저 눈으로 자기 부엌을 봤던 사람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고, 반찬 그릇 수를 세고, 살림을 이렇게 하느냐고 묻던 눈이었다.

"…앉으세요."

"됐다."

김 여사가 선 채로 말했다.

"내가 여기 앉을 사람은 아니지."

"그럼 서서 말씀하세요."

서지안도 앉지 않았다.

"결혼한다더구나."

"네."

"성당에서 한다고."

"네."

"우리는 안 부르고?"

서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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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09화 — 초대하지 않은 사람

    김 여사가 JL 로비에 온 것은 그 이틀 뒤였다.혼자가 아니었다. 강민호가 반걸음 뒤에 서 있었다."회장님. 아래에서 손님이…""올려 보내세요."한정우가 잠깐 멈칫했다."괜찮으시겠습니까.""여기서 안 만나면 성당으로 갈 사람들이에요."한정우가 더 말하지 않고 나갔다. 서지안은 책상 위 서류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앉은 채로 맞을 생각은 없었다.회장실 문이 열렸다. 김 여사는 들어서면서부터 방을 한 바퀴 둘러봤다. 며느리가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눈으로 재는 얼굴이었다.십 년 동안 저 눈으로 자기 부엌을 봤던 사람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고, 반찬 그릇 수를 세고, 살림을 이렇게 하느냐고 묻던 눈이었다."…앉으세요.""됐다."김 여사가 선 채로 말했다."내가 여기 앉을 사람은 아니지.""그럼 서서 말씀하세요."서지안도 앉지 않았다."결혼한다더구나.""네.""성당에서 한다고.""네.""우리는 안 부르고?"서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답이었다.김 여사의 얼굴이 붉어졌다."내가 그 애 할미다. 십 년을 손주 기저귀 갈아 준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자리에도 안 넣는다는 게 사람이 할 짓이냐.""…""서아가 꽃 들고 앞장서서 걸어간다더구나. 그걸 내가 봐야지, 누가 봐.""…""그리고 너도 생각을 좀 해 봐. 그 애가 나중에 커서 우리 할머니는 왜 그때 안 왔느냐고 물으면, 너는 뭐라고 대답할 거야."서지안은 그 말을 끝까지 들었다.이 사람은 미안한 게 없었다. 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자기가 받을 것이 남아 있다고 믿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받을 것을 요구할 때 늘 아이를 앞에 세웠다."어머니."강민호가 낮게 불렀다. 김 여사가 아들을 노려봤다."너는 가만있어. 네가 물러서서 이 꼴이 된 거야."서지안은 그 광경을 잠깐 봤다. 십 년 동안 저 집에서 저 목소리가 나면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하면 하루가 길어졌고, 길어진 하루의 값은 늘 부엌에 있는 사람이 냈다.그게 이 집의 규칙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08화 — 연습

    아흐레 중 이틀은 다른 일에 쓰기로 했다."그날 준비는 제가 다 잡아 두겠습니다. 회장님은 이틀 비우십시오."한정우가 그렇게 말했을 때 서지안은 반대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흐레 동안 그 날짜만 보고 있으면, 그날 정작 제일 흐린 눈으로 서 있을 것 같았다.한정우는 그 이틀 동안 세 가지를 준비했다. 정비소가 보이는 골목의 주차 자리, 그날 하루 회장 일정을 통째로 비우는 명분,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도망갈 때 쫓지 말라는 서지안의 지시였다."쫓으면 잡을 수는 있습니다.""잡으면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해요. 지금까지 십오 년을 그렇게 살았으니까요."드레스 가게는 조용한 골목에 있었다. 직원이 흰 드레스를 세 벌 걸어 놓았다.서지안은 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흰색은 좀.""왜요?""두 번째잖아요."말해 놓고 그녀는 자기 목소리가 작았다는 걸 알았다. 스무 명 앞에서 회사를 도려내겠다고 말할 때는 이렇게 작지 않았다.직원은 익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러시면 아이보리나 샴페인색으로 보여 드릴까요."직원이 조심스럽게 다른 색을 꺼내려는데, 서아가 먼저 손을 들었다."엄마. 나 이거."아이가 가리킨 것은 세 벌 중에 제일 흰 것이었다."…이게 왜 좋아?""엄마 좋아하는 색이잖아."서아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얼굴로 말했다."엄마 옷장에 흰 거 제일 많아."서지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그 옷장을 여덟 해 동안 봤다."…입어 볼게요."거울 앞에 섰을 때 서지안은 십 년 전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애쓰지 않아도 그날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그 옷의 감촉도 기억나지 않았다.거울 속 사람은 처음 이 옷을 입는 사람 같았다.십 년 전에는 이 옷이 남의 옷이었다. 시어머니가 골라주었고, 사진에도 시댁 사람들만 가득했다.이번 옷은 딸이 골랐다."엄마 예뻐."거울 앞에 선 엄마를 보고 서아가 말했다. 서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07화 — 십오 년을 받은 사람

    이름은 조성달이었다.십오 년 전 참고인 조사에서 그는 두 문장만 답했다. 정비는 정상적으로 했다. 브레이크 쪽은 손대지 않았다.조사관은 더 묻지 않았다. 차량 감정서에 이상 소견이 없었으므로 물을 이유가 없었다.서지안은 그 두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말이 길어진다. 묻지 않은 것까지 설명한다. 이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물어본 것만 답하고 입을 닫았다.말을 아끼는 법을 미리 배운 사람의 답이었다."찾았습니다."한정우가 회장실로 들어온 것은 사흘 뒤였다."사망했거나 종적이 없을 거라고 보셨는데, 아닙니다.""…어디 있죠.""같은 자리에 있습니다."서지안이 고개를 들었다."십오 년 전 그 정비소,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간판만 두 번 바뀌었습니다."한정우가 사진 한 장을 내려놓았다. 낡은 셔터, 기름때 묻은 시멘트 바닥, 벽에 붙은 정비 요금표. 어디에나 있는 동네 정비소였다."직원 둘, 매출은 근처 시세대로입니다. 세금도 밀린 적이 없습니다.""가족은요.""혼자 삽니다. 십사 년 전에 이혼했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연락이 없다고 합니다. 동네에서는 말수가 적고 일 잘한다는 평입니다.""…술은요.""거의 안 마신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많이 마셨는데 어느 해부터 끊었다고요."서지안은 그 사진을 오래 봤다.2,400만 원. 십오 년이면 3억 6천만 원이다. 큰돈이지만, 사람을 죽인 값으로는 이상하게 적었다.한 번에 받은 돈이라면 그 값이 목숨값이다. 나누어 받는 돈은 다르다. 그건 목숨값이 아니라 사료였다.사람을 죽인 사람이라면 도망갔을 것이다. 아니면 받은 돈을 쓰다가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십오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남의 차를 고치며 살았다. 매년 한 번씩 자문료를 받으면서.그게 더 무서웠다.한정우가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회장님. 정비소에는 직접 가 보셨습니까.""어제요."그가 놀란 얼굴을 했다."차를 맡기고 왔어요. 뒷유리 와이퍼가 안 움직인다고요.""…예?"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06화 — 명의자 없는 계좌

    강윤서가 나가고 사흘 동안, 서지안은 그 계좌 하나만 붙잡고 있었다.검찰은 셋을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중 둘은 강윤서 명의였고, 언론도 그 둘만 썼다. HW 대표 딸의 돈, 그 여자의 몰락.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세 번째는 아무도 쓰지 않았다. 쓸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법인 하나였다.법무팀장이 서류를 내려놓은 것은 이틀 뒤였다."등기는 살아 있습니다. 다만 그게 전부입니다."서지안이 첫 장을 넘겼다. 법인 이름이 세 번 바뀌어 있었다."주소지에 가 봤습니다. 상가 삼 층인데, 그 층에 사무실이 여섯 개 있고 그중 하나가 서류만 받아 주는 곳입니다. 직원은 없습니다.""설립이 언제죠.""…십오 년 전 봄입니다."서지안의 손이 멈췄다.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도 그해 봄이었다."자금 흐름은요.""돈이 들어오는 건 여러 군데인데, 나가는 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나간 몇 건이 이상합니다."법무팀장이 다음 장을 짚었다. 형광펜이 열다섯 줄에 그어져 있었다."자문료라는 이름으로 매년 한 번씩, 같은 날에 같은 금액이 빠져나갑니다. 십오 년 동안 하루도 어긋난 적이 없습니다.""금액은요.""이천사백만 원입니다. 십오 년 동안 한 번도 안 올랐습니다."서지안이 고개를 들었다."…한 번도요?""예. 물가가 오르든 말든 그대로입니다. 보통 이런 돈은 액수가 움직입니다. 더 달라고 하거나, 덜 주려고 하거나요."움직이지 않는 숫자는 두 가지 뜻이었다. 받는 쪽이 더 달라고 하지 못하거나, 주는 쪽이 액수를 바꾸는 순간 이게 무슨 돈인지 드러난다는 것을 아는 것."받는 사람은요.""개인 계좌입니다. 그런데 명의자 확인이 안 됩니다. 대리인이 만든 계좌로 보입니다."서지안은 서류를 덮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그 줄을 한 번 훑었다.돈을 숨기려면 굴려야 한다. 여러 군데로 나누고, 이름을 바꾸고, 나라를 옮긴다. 그런데 이 계좌는 그러지 않았다. 들어온 돈을 그냥 쥐고 있었고, 매년 한 번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05화 — 지는 법

    엘리베이터 앞에서 법무팀장이 한 번 더 만류했다."회장님. 지금 저쪽은 피의자입니다. 나눈 말이 조사에서 어떻게 옮겨질지 모릅니다.""녹음하세요. 제 방에서요.""…예?""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중에 제가 증명할 수 있게요."강윤서는 로비 구석 소파에 앉아 있었다.늘 입던 진홍빛은 아니었다. 어두운 회색 코트에 화장기 없는 얼굴,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다. 직원들이 힐끔거리며 지나갔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서지안이 다가서자 그제야 일어섰다."…회장님.""올라가시죠."지나가던 직원 둘이 걸음을 늦췄다. 서지안은 그쪽을 한 번 봤다. 두 사람이 곧 시선을 돌렸다.회장실 문이 닫히고도 강윤서는 한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서지안은 재촉하지 않았다. 물을 한 잔 따라 앞에 놓아 주었을 뿐이다."고발장에서 제 이름 좀 빼 주세요."서지안은 잔을 내려놓았다."저는 이름을 넣은 적이 없어요. 위조 문서 하나로 고발했고, 그 뒤는 수사기관이 따라간 거예요.""그러니까 회장님이 취하하시면…""취하해도 안 멈춰요. 제 손을 떠났어요."강윤서가 잔을 잡았다가 놓았다. 손끝이 떨렸다.이 사람이 이 방에 처음 온 날, 다리를 꼬고 앉아 회장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 그때 앉았던 자리와 지금 앉은 자리가 같았다."아버지가 오늘 아침에 저를 이사회에서 뺐어요. 지분은 남았는데 자리는.. 없어요. 백 선생 번호는 끊겼고, 그 여자는 접견을 거절했어요."그녀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여자가 검찰에 제 계좌를 넘겼어요. 자기는 감옥에 있었고, 제가 알아서 보낸 돈이라고 했다는군요."서지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밖에 있고, 회사가 있고,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손. 그 여자한테 필요했던 건 그거였어요. 그게 저였고요."강윤서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처음부터 제가.. 쓰인 거예요."말하고 나서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왜 저였는지도 알겠어요. 저는 아버지 이름으로 움직일 수 있고, 회장님을 이기고 싶어 했고, 물어보지 않을 사람이었어요.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04화 — 할머니의 성당

    "엄마, 바다 언제 나와?"서아가 뒷자리에서 세 번째로 물었다. 창문에 코를 붙인 채였다."아저씨. 아니, 아빠한테 물어봐."말해 놓고 서지안은 귀가 조금 달았다. 먼저 그렇게 부른 건 아이였다. 식도 올리기 전에 엄마가 앞장서서 아빠라고 부르는 건 어딘가 뻔뻔한 것 같아서, 그 말이 아직 입에 붙지 않았다.운전석의 강도현이 웃었다."삼십 분. 대신 세어 보면 더 안 와."수사가 검찰로 넘어가고 사흘째였다. 그 주말에 하루를 비웠다. 성당을 한 번 봐 두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먼저 서아를 데려가자고 한 사람은 서지안이었다. 자기가 결혼할 자리를 딸이 먼저 보는 게 순서 같았다."엄마.""응.""결혼하면 나는 이름 바뀌어?"서지안이 뒤를 돌아봤다. 아이는 창밖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물었지만, 며칠을 벼른 얼굴이었다."안 바뀌어. 서아는 그냥 서아야.""그럼 아빠 성은?"서지안의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안 바꿔도 돼.""왜?""도현 아빠 성이, 원래 서아 성이랑 같아."서아가 눈을 크게 떴다."진짜?""진짜."아이는 그게 굉장한 우연이라고 생각한 얼굴로 다시 창밖을 봤다. 이름표를 새로 쓸 일도, 친구에게 설명할 일도 없다는 뜻이었다. 아이한테는 그게 다행이었다.서지안은 그 다행이 조금 서늘했다. 십 년을 그 집 사람으로 살았던 흔적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대로 남아 버린 것 같아서.신호에 걸렸을 때, 강도현의 손이 운전대를 한 번 고쳐 잡는 것이 보였다. 그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마을은 그대로였다. 낡은 방파제와 그물이 널린 시멘트 바닥, 페인트가 벗겨진 민박집 간판. 차에서 내리자마자 서아가 바다 쪽으로 뛰어갔다."서아야, 뛰지 마!""아이고, 총각!"민박집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왔다. 물바가지를 그대로 든 채였다. 그 눈이 방파제로 달려가는 아이에게 가서 멈췄다."…애기가 있었어?""제 딸이에요."할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아이를 불렀다. 그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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