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병실로 돌아온 서지안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무슨 일 있었어?"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강도현이,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서지안은 애써 옅게 웃어 보였다.
"아뇨. …복도에서, 고모님을 만났어요."
강도현의 눈빛이 굳었다. 서지안은 의자에 앉으며, 나직이 말을 이었다.
"걱정 마세요. 한마디도 지지 않았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릎 위에 올린 그녀의 손끝은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도현은 말없이, 그 떨리는 손 위에 제 손을 가만히 포갰다. 따뜻한 온기가, 차갑게 식은 손끝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혼자 다 짊어지려 하지 마. 이젠, 나도 있으니까."
그 한마디에, 서지안의 마음 한구석이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15살 이후 그녀는 그녀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삶을 살아왔다. 지안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오래 묻어 두
화면에 뜬 이름을 한 번 더 봤다.하루 종일 밖에서 전화로만 연결되던 사람이었다. 한 실장 계정으로 조회가 들어온 지 3분이 지나 있었다.비상계단 문을 밀면서 받았다."실장님.""회장님. 저 지금 회사 정문 앞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서지안의 발이 계단 한 칸에서 멈췄다.아침에 회사에 오지 말라고 한 사람이었다. 김선호가 한 실장 이름을 안다고 해서 하루 종일 밖에 두었다."제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오셨어요.""조금 전에 회장님 이름으로 문자가 왔습니다. 『지금 회사로 들어오세요. 회장실로 올라오세요.』"서지안은 그런 문자를 보낸 적이 없었다."몇 시에 왔어요.""8시 12분입니다."8시 7분에 형사가 왔고, 정혜린의 휴대전화는 그 자리에서 봉인됐다.8시 12분에 그 휴대전화로 보낸 문자가 아니었다."실장님. 들어오지 마세요.""…예?""문자 화면 캡쳐하셔서 저한테 보내시고, 정문 앞 편의점처럼 카메라 있는 데로 가세요. 제가 다시 걸 때까지 거기 서 계세요.""오늘 회사 근처에 오신 적 있어요?""없습니다. 지금이 처음입니다. 낮에는 남부지사에 있었고, 저녁에는 거기 주차장 차 안에 있었습니다.조성달 씨 방 정리한 서류만 봤습니다. 지사 출입 기록 보시면 나옵니다.""무슨 일입니까, 회장님.""실장님 계정으로 회사 안에서 조회가 들어왔어요. 지금 실장님이 들어오시면, 그 조회를 실장님이 한 게 돼요."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가 짧게 답했다."…알겠습니다."전화를 끊자마자 사진이 왔다.문자 화면이었다. 보낸 번호가 회사 대표번호였다.급여일이며 소방 점검이며 회사가
서지안은 책상을 돌아 문 옆으로 갔다.한무현의 손에서 수화기를 받았다."팀장님. 서지안입니다.""예, 회장님. 모르는 번호라서…""회사 전화예요. 이 전화로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끊고 제 휴대전화로 드릴게요."서지안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통화는 10초도 안 됐다. 그래도 번호는 이미 교환 기록에 남았다.서지안은 휴대전화를 들었다.키로거는 회장실 키보드에 끼워져 있었다. 휴대전화로 치는 글자는 거기로 가지 않는다.『방금 회사 전화 제가 건 거 맞습니다. 팀장님 번호가 회사 기록에 남았습니다.오늘 밤 팀장님 휴대전화로 모르는 번호가 걸려 오면 받지 마시고, 건 번호만 남겨 주세요.수요일 시간은 누구에게도 확인해 주지 마세요. 제 이름을 대도요.』20초 만에 답이 왔다.『알겠습니다. 가까운 형사 둘 먼저 회사로 보냅니다. 10분.』서지안은 당직 과장을 돌아봤다."과장님. 교환 기록을 뽑아도 기록이 남죠.""예. 어느 컴퓨터에서, 누구 계정으로 뽑았는지 남습니다.""오늘 밤 교환 기록 조회가 들어오면 바로 알려 주세요. 막지는 말고요."당직 과장이 노트북을 끌어당겨 무언가를 쳤다.미끼 한 줄은 들켰다. 대신 방금 회사 기록에 진짜가 하나 남았다. 팀장 번호였다.문자를 보낸 사람이 그 번호를 찾으려면 교환 기록을 열어야 한다. 열면 어느 컴퓨터, 누구 계정인지가 남는다.찾은 번호로 전화를 걸면, 건 번호가 팀장 휴대전화에 남는다.들킨 미끼가 두 번째 덫이 됐다.바닥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실장님』정혜린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두 번째예요."서지안은 정혜린 앞에 무릎을 굽혀 앉
발소리는 서두르지 않았다.서지안은 한 뼘 열린 문틈에 서서 숨을 참았다. 구두는 벗어 문 옆에 두었다. 복도 바닥에 굽 소리가 울리지 않게 하려고.등 뒤의 한무현과 당직 과장도 움직이지 않았다.보안팀을 부르면 무전 소리가 복도에 먼저 닿을 것이다. 그러면 발소리는 비상계단으로 돌아선다.누구인지 보기 전에는 아무도 부르지 않기로 했다.발소리가 비서실 문 앞에서 한 번 멈췄다.비서실 안에서 강도현이 소파에서 일어나는 기척이 났다. 잠든 서아와 문 사이로 몸을 옮겨 서는 소리였다.발소리가 다시 움직였다.비서실 앞 복도 조명 아래로 사람 하나가 들어왔다.서류철 두 개를 가슴에 안고, 그 위에 휴대전화를 얹은 여자였다. 비서실 정혜린 대리였다.오전에 서아 학교 전화를 서지안에게 전해 준 사람이었다.정혜린이 회장실 문틈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회장님? 아직 계셨어요?"서지안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서아는 저녁 내내 비서실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정혜린의 책상에서 두 걸음 떨어진 자리였다. 비서실 직원이 그걸 모를 수는 없었다."네. 아직 있어요. 정혜린 씨는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요?""복도 끝 자료실에요. 내일 아침 이사회 자료 챙기느라고요."정혜린이 서류철을 조금 들어 보였다."나오다 보니까 문 실장님 방에 모니터가 켜져 있길래 끄고 나왔어요. 방도 열려 있고 해서요."모니터 불빛이 꺼진 것은 조금 전이 맞다. 그걸 본 사람은 문틈에 선 서지안과 등 뒤의 당직 과장뿐이었다.정혜린은 아무도 묻지 않은 불빛 얘기를 먼저 꺼냈다.서지안은 목소리를 평소대로 냈다."늦게까지 고생했네요. 자료실 불은 켜고 있었어요?""네. 켜 놓고 있었어요. 방금 끄고 나왔어
한무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서지안은 열람 기록을 책상에 내려놓았다."3시 4분에 한무현 씨는 어디 계셨어요.""비서실 공용 컴퓨터 앞에 있었습니다. 교환 기록하고 지하 출입 기록을 뽑고 있었습니다."전산 앞이었다. 그 시각에, 서지안의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전산 앞에 있었다."하나 더 있어요. 서아 학교 방문자 칸에 적힌 이름도 한무현 씨였어요."한무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회장님. 제가 열었으면 이 기록을 회장님께 가져오지 않았습니다."한무현이 봉투를 쥐었던 손을 등 뒤로 감췄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맞는 말을 골라서 하는 사람한테 오늘 하루 종일 당했다.한무현의 이름이 걸린 게 두 번째였다. 학교 방문자 칸에 한 번,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으로 한 번.한 번이면 누가 걸어 놓은 것일 수 있었다. 두 번이면, 걸어 놓았든 아니든 서지안이 확인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서지안은 대답 대신 의자를 돌려 모니터를 켰다.그룹웨어 비밀번호 변경 화면을 띄우고, 키보드를 몸 쪽으로 당겨 손을 가렸다."거기 계세요. 이번엔 제가 혼자 칠게요."새 비밀번호를 두 번 치고 저장했다."한무현 씨. 지금부터 제 눈앞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전화도 제 앞에서만 쓰시고요.아까 한 수요일 얘기는 이 방 밖으로 한 글자도 나가면 안 돼요.""…예.""전산팀 당직 불러 주세요. 3시 4분 열람이 어느 컴퓨터에서 들어왔는지 봐야 해요. 스피커로 거세요."한무현이 책상 전화를 스피커로 돌려 전산팀을 불렀다.그 사이 서지안은 휴대전화를 무릎 아래로 내렸다.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받아 둔, 조성달을 태워 간 경찰차 팀장의 번호였다.『수요일 출발 시각과 길을 바꿔 주세요. 바꾼 내용은 저한테도 알리지 마세요. 서지안.』소리 내서 말한 계획은 이 방에서 이미 한 번 입 밖에 나왔다. 새 계획은 한 글자도 소리 내지 않았다.답이 20초 만에 왔다. 『알겠습니다.』비서실 쪽 문틈으로 강도현이 보였다. 잠든 서아 옆에 앉아
서지안은 답을 보내지 않았다.한 글자를 보내면 그 한 글자를 읽힌다.오전에는 서지안이 그걸로 알아냈고, 방금은 서지안이 그걸로 들켰다.화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문경석이 보낸 줄, 온 답, 마지막 한 줄까지 전부였다.그리고 복도에 서 있던 경찰에게 문경석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이 방문을 열게 하려고 보낸 문자가 이 안에 있어요. 문경석 실장 전화고, 본인은 지금 우리 회사 지하에서 경찰 기다리고 있어요."경찰은 임의제출서에 서지안의 서명을 받고, 휴대전화를 증거물 봉투에 담아 봉인했다.조성달은 방을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여기서 이틀 있으면 됩니다. 문만 안 열면요.""아니요. 이미 거처가 탄로 났으니, 오늘 밤부터 문제예요. 옷 갈아입을 것만 챙기세요. 경찰하고 같이 나가시는 거예요.""…어디로 갑니까.""경찰이 정해요. 저는 안 들을게요.""…경찰은 믿어도 됩니까.""다 믿지는 않아요. 그런데 오늘 새어 나간 길에 경찰은 한 번도 없었어요.셔터 말은 문경석 실장이 옆에서 엿들어서 샜고, 접수 사본은 우리 법무팀에서 샜어요. 게스트하우스 방은 TK 비서실에서 샜고요.전부 회사 사람 손이었어요. 제가 알면 제가 쓰는 회사 서류나 회사 전화에 또 남아요."조성달의 손이 문고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지난번에 묘지에서, 증인 보호로 나가면 기록에 남는다고 하셨습니다.""기록은 남아요. 이번엔 경찰이 보호를 직접 맡으니까 경찰서에 남아요. 회사로도, 저한테도 안 와요."조성달이 그제야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쌌다.서지안은 그 사이에 전화 두 통을 걸었다.법무팀장에게는 짧게 말했다."팀장님. 조성달 씨 건에서 법무팀은 오늘부로 손 떼세요. 팀장님이 오후에 받아 온 접수 사본이, 방금 조성달 씨 문틈으로 들어왔어요.""…제가 무슨 실수를 했습니까.""아니요. 법무팀을 거치면 임원 열람이 걸린다고 먼저 알려 준 게 팀장님이에요.그 말 듣고 조성달 씨 신변 보호 요청은 안 넣었어요. 그런데 서아 종이는 제가 팀장님한테 넣으라고
신호가 여섯 번째로 가다가 끊겼다.서지안은 전화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든 문경석의 휴대전화를 봤다.『출발했습니다.』강도현이 기둥 뒤에서 나와 그 화면을 봤다. 문경석이 보낸 윗줄까지 읽고 얼굴이 굳었다."…지금 가자.""가는 데 15분이에요. 문 앞은 지금이고요."오전에 서영애 쪽은 강도현의 전화로 서지안을 속이려 했다. 이번에는 문경석의 전화가 서지안 손에 있었다.들켰다는 걸 알면 문 앞의 남자는 셔터 말로 밀어붙인다. 모르면 새 말을 기다린다.기다리게 해야 했다. 서지안은 답을 썼다.『정정합니다. 회장님이 방금 말을 바꾸셨습니다. 셔터 말 아닙니다. 새 말 확인되면 드리겠습니다.』답이 20초 만에 왔다.『3층 앞입니다. 빨리 주십시오.』서지안의 손끝이 굳었다.3분 전에 관리실은 3층 복도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출입도 막았다.그런데 벌써 문 앞이었다. 막힌 문을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서지안의 전화에 문자가 떴다. 조성달이었다.『누가 문을 두드립니다. 셔터 말을 했습니다. 안 열었습니다.』『회장님이 오신다고 한 지 몇 분 안 됐는데 너무 빨라서요. 전화 소리 날까 봐 못 받았습니다.』서지안은 숨을 한 번에 내쉬었다.가게를 넘긴 뒤에도 아침마다 셔터를 반쯤 올렸다 내리던 사람이었다. 서두르는 발소리는 그런 사람이 먼저 알아들었다.서지안은 조성달에게 답을 썼다. 이번에는 소리 내지 않았다.『셔터 말은 새어 나갔어요. 이제 그 말 하는 사람은 열지 마세요.제가 가면 묘지에서 드린 약속을 말할게요.』공원묘지 두 비석 앞에서, 둘만 있을 때 한 약속이었다.강도현이 관리실을 다시 불렀다."3층에 누구 올려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