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26세 강시우는 헌터이면서도 전투 능력은 사실상 없는 F급이다. 몬스터를 베는 검술도, 육체 강화도, 압도적인 마력도 없다. 그가 할 줄 아는 건 요리하고, 청소하고, 집안일을 챙기는 것. SSS급 헌터 채유나의 집에서 입주 가사 도우미—‘식모’—로 살아가며, 가족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이 그의 현실이다. 그러나 늘어나는 병원비 때문에 몰래 게이트 일을 시작한 시우에게 어느 날 이상한 능력이 드러난다. 〈콜로세움의 주인〉. 문제는 이름과 달리 시우 자신은 전혀 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능력은 자신이 싸우는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전장의 조건을 설계하고, 합의된 작전 안에서 그들의 힘을 지휘하는 능력이다. 시우의 본체 강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0이다.
عرض المزيد새벽 여섯 시.
서울 한복판의 펜트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뜨는 사람은 집주인이 아니었다.
강시우는 알람이 울리기 직전에 눈을 떴다. 반쯤 감긴 눈으로 천장을 확인하고, 몸에 밴 순서대로 침구를 정리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밤새 돌아간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확인하고, 욕실 바닥에 떨어진 긴 머리카락을 주웠다.
그의 것은 아니었다.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장미 향이 났다.
시우는 그것을 휴지에 싸 버린 뒤 주방으로 향했다.
쌀을 씻고, 멸치 육수를 올리고, 계란을 풀었다. 냉장고에는 일반 가정이라면 특별한 날에나 꺼낼 법한 한우가 날짜별로 소분되어 있었다. 그중 유통기한이 가장 가까운 팩을 골라 팬 위에 올렸다.
치익.
고기 익는 냄새가 넓은 거실로 번졌다.
어디선가 로봇 청소기가 기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삼백만 원짜리 기계였다. 저 기계가 있는데도 시우는 매일 걸레질을 했다.
채유나가 바닥은 사람 손으로 닦아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기 때문이다.
“으음…….”
복도 끝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뒤, 헐렁한 셔츠 하나만 걸친 여자가 맨발로 걸어왔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인데도 연예인보다 예뻤다. 길게 흐트러진 검은 머리, 희고 매끄러운 다리, 그리고 셔츠 자락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허벅지.
채유나.
대한민국에서 스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최상위 헌터이자, 시우가 사는 집의 주인이었다.
“시우야.”
유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그의 등에 이마를 기대었다.
“배고파.”
“손부터 씻어.”
“안아 주면 씻을게.”
“애냐?”
“응. 아침에는.”
등에 닿은 체온이 얇은 면 티를 뚫고 들어왔다. 시우는 팬을 든 채 굳어 있다가 팔꿈치로 유나를 슬쩍 밀어냈다.
“기름 튄다.”
“나 방어력 높아.”
“셔츠에는 방어력 없거든. 그리고 바지 좀 입어.”
“우리 집인데?”
유나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잠기운이 묻은 눈동자 안에 시우의 얼굴이 담겼다.
“보는 사람도 너밖에 없고.”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시우는 대답 대신 불을 줄였다. 괜히 반응하면 놀림만 길어졌다. 유나와 한집에서 산 지도 벌써 삼 년이었다. 이 정도 공격은 모른 척 넘기는 법을 배운 지 오래였다.
“십 분 뒤에 먹어.”
“네, 식모님.”
유나는 웃으며 욕실로 사라졌다.
식모.
그것이 이 집에서 시우가 맡은 역할이었다.
정식 명칭은 입주 가사 도우미. 계약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월급은 웬만한 중소기업 대리보다 많았고 숙식은 무료였다. 사대 보험도 들었고 명절 상여금까지 나왔다.
유나가 장난처럼 식모라고 부르기 시작한 뒤로는 시우도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잠시 뒤 말끔하게 씻고 나온 유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회색 슬랙스에 흰 블라우스를 갖춰 입고 있었다. 불과 십 분 전의 흐트러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길드의 간판.
대중이 아는 채유나는 지금의 모습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유나는 두 손을 모아 인사한 뒤 국을 한 숟갈 떴다.
시우는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 주방 조리대에 기대 서서 유나가 먹는 모습을 살폈다.
“왜 안 먹어?”
“나중에.”
“같이 먹자.”
“시간 없어. 너 여덟 시까지 협회 가야 하잖아.”
“그러니까 같이 먹어.”
유나는 빈 의자를 발끝으로 툭 밀었다.
“고용주 명령.”
결국 시우는 자리에 앉았다.
둘 사이에는 고작 식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몇 차례 오갔다. 유나는 고기를 집어 자기 밥 위에 올리지 않고 시우의 밥그릇 위에 놓았다.
“나 먹으라고 구운 거야.”
“나는 체중 관리해야 해.”
“어제 레이드에서 칠천 칼로리는 썼을 텐데.”
“내가 많이 먹으면 네 몫이 줄잖아.”
시우의 젓가락이 잠깐 멈췄다.
별 뜻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유나는 항상 다정했다. 식당 직원에게도, 기자에게도, 처음 보는 팬에게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웃고 똑같이 배려했다.
그런데 가끔.
정말 가끔은 그 친절이 목에 감긴 끈처럼 느껴졌다.
“오늘 늦어?”
“저녁 전에는 와. 길드에서 회식하자고 해도 빠질 거야.”
“사람들이 서운해하겠다.”
“상관없어.”
유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가 해 준 저녁을 먹는 게 더 중요하니까.”
시우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입에 넣었다. 따뜻한 흰쌀밥이 이상하게 잘 넘어가지 않았다.
유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길드장의 이름이 떠 있었다. 유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목소리를 바꿨다.
“네, 팀장님. 준비 끝났어요. ……괜찮아요. 민간인 대피가 먼저죠. 현장에서 뵐게요.”
부드럽고 믿음직스러운 목소리.
통화를 끝낸 유나는 다시 시우를 보며 턱을 괴었다.
“다녀올게.”
“응.”
“집 잘 지키고.”
“내가 개냐?”
“개는 그렇게 맛있는 국 못 끓여.”
“칭찬 고맙다.”
“그리고.”
현관까지 걸어간 유나가 구두를 신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웃고 있던 얼굴에서 잠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게이트 근처에는 가지 마.”
시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안 가.”
“용병 게시판도 보지 말고.”
“안 본다니까.”
“네 스킬로 누굴 고용해 볼 생각도 하지 마.”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했다.
말의 내용만 상냥하지 않았다.
시우는 식탁 위 물컵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해?”
“그냥 불안해서.”
“뭐가?”
“네가.”
유나는 잠시 시우를 바라봤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다.
“또 사기당할까 봐.”
현관문이 닫혔다.
넓은 집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시우는 한동안 닫힌 문을 바라보다 허공에 손을 뻗었다.
“상태창.”
반투명한 푸른 창이 떠올랐다.
각성자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진다는 스킬 창.
하지만 시우의 것은 지나치게 단출했다.
```
[콜로세움의 주인]검투사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승리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끝.
접혀 있는 항목도, 상세 설명을 여는 버튼도 없었다.
처음 이것을 봤을 때는 이름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콜로세움의 주인.
이름만 들으면 거대한 경기장을 소환하거나, 몬스터를 노예로 부리거나, 수많은 전사를 지휘할 것 같았다. 못해도 소환 계열 B급은 되리라 기대했다.
검사 결과는 F급.
헌터 협회 검사관은 창을 몇 번이나 살펴본 뒤 난처하게 웃었다.
‘비전투형 고용 스킬 같네요. 계약직 소개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소개업 스킬.
그날부터 시우의 별명은 인력사무소가 되었다.
그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돈을 주고 저급 헌터를 고용해 보기도 했다. 계약서를 쓰고 같이 게이트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강해지지 않았고, 승리 보상 같은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정작 시우 자신은 고블린 한 마리를 잡는 데도 숨이 턱 끝까지 찼다.
몇 차례 실패 끝에 남은 것은 빚과 조롱뿐이었다.
그리고 유나의 경고.
‘그러니까 하지 마. 내가 먹여 살려 줄게.’
우습게도 시우가 각성하고 일주일 뒤, 유나도 각성했다.
유나는 달랐다.
시작부터 A급.
반년 만에 S급.
지금은 측정 장비의 상한을 두 번이나 뚫은 대한민국 최고의 유망주.
같은 시기에 각성한 소꿉친구 하나는 하늘 위로 올라갔고, 다른 하나는 그 집에서 바닥을 닦았다.
시우는 손을 휘저어 창을 닫았다.
“주인은 무슨.”
싱크대에 그릇을 넣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을 닦고, 유나가 벗어 둔 셔츠를 세탁기에 넣었다. 건조기까지 돌아가기 시작하자 할 일이 사라졌다.
시우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켰다.
은행 앱을 열었다.
잔액은 127만 4천 원.
오늘은 월급날이었다. 유나가 주는 돈은 많았지만,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최근 이체 내역 맨 위에는 낯선 계좌가 하나 있었다.
`한빛중앙병원`
보낸 금액 90만 원.
그 아래에도 같은 병원 이름이 세 번 더 있었다.
40만 원.
70만 원.
55만 원.
모두 시우가 보낸 돈이었다.
병원에서는 시우가 누군지 모른다. 입금자명도 매번 아버지 이름으로 바꿨다. 누나에게 들키면 전화가 올 테고, 본가에서 알게 되면 돈을 돌려보낼지도 몰랐다.
시우는 문자함을 열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한빛중앙병원] 강정호 님 7월 입원 진료비 중 미납액 4,823,610원이 확인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시우는 숫자를 한참 바라봤다.
482만 원.
한 달 식모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아도 모자랐다.
형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런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강태욱.
강 씨 집안 최초이자 유일한 각성자.
아버지가 동네 사람만 만나면 자랑하던 장남. 어머니가 새벽마다 보약을 달여 주던 기대주. 막내들이 서로 업어 달라고 달라붙던 커다란 등.
그 형이 4년 4개월 전 게이트에 들어갔다.
공략대 열두 명 중 열한 명의 시신이 돌아왔다.
형의 시신만 없었다.
협회 기록에는 사망도, 생존도 아닌 단어가 적혔다.
`행방불명.`
아버지는 그 통보를 받은 뒤 한 달 만에 처음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첫 수술 뒤에는 불완전하게나마 의식을 되찾았다. 말이 느려지고 한쪽 손이 불편해졌는데도 아버지는 4년 가까이 형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보험 기록과 협회 문서, 폐업한 복원 공방까지 쫓았다.
그리고 넉 달 전, 두 번째 뇌출혈이 왔다.
이번 수술 뒤에는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형이 벌어 오던 돈은 오래전에 끊겼고, 두 번의 수술비와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누나는 직장을 그만두다시피 하며 집을 떠받쳤다.
그동안 시우는.
시우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봤다.
이탈리아산 가죽 소파.
대리석 바닥.
강이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창.
한 끼에 십만 원이 넘는 고기를 먹고, 월세가 얼마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 집에서 잤다.
그 대가로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을 했다.
정당한 노동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유나는 그렇게 말했다.
‘네가 없으면 나 아무것도 못 해. 그러니까 당당하게 받아.’
하지만 형의 시신도 찾지 못한 누나가 병원 복도에서 새우잠을 잘 때, 자신은 유나의 침대 시트를 갈며 섬유유연제 향을 골랐다.
그 사실이 때때로 목구멍을 막았다.
“나만 여기서 처먹고 있네.”
입 밖으로 내뱉자 더 비참했다.
시우는 은행 앱을 닫고 헌터 협회 앱을 열었다.
붉은 알림이 여러 개 떠 있었다.
`[긴급] 마포 7번 균열 공략대 모집`
`[E급 이하 가능] 운반·해체 보조 3명`
`[일당 320,000원 / 위험수당 별도]`
삼십이만 원.
다섯 번이면 백육십만 원.
열다섯 번이면 병원비를 거의 메울 수 있었다.
F급인 시우도 보조 인력으로는 들어갈 수 있었다. 몬스터와 직접 싸우지만 않으면 된다. 짐을 나르고, 마석을 캐고, 시체를 해체하는 일.
위험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지난달에도 두 번 들어갔다.
첫 번째에는 고블린의 칼에 팔이 찢어졌고, 두 번째에는 독침쥐에게 종아리를 물렸다. 유나에게는 주방에서 다쳤다고 둘러댔다.
삼십이만 원짜리 거짓말이었다.
시우의 엄지가 지원 버튼 위에서 멈췄다.
유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게이트 근처에는 가지 마.
용병 게시판도 보지 마.
누굴 고용하려 하지 마.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건 안다. 유나는 언제나 자신보다 시우를 더 걱정했다. 사기당해 길거리에 나앉은 자신을 찾아내 집으로 데려온 사람도 유나였다.
그 은혜를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병원 침대에 누운 아버지를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시우는 결국 화면을 껐다.
지원하지 않았다.
대신 북마크만 눌렀다.
그 정도는 배신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
오후 세 시.
거실 텔레비전에서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다.
검은 장벽 같은 게이트 앞에서 헌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카메라는 대열 가장 앞에 선 여자를 비췄다.
채유나였다.
전투복 위에 흰색 코트를 걸친 유나가 기자의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내부 조사 결과 최초 측정보다 마력 농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시민 여러분께서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채유나 헌터가 단독으로 선봉을 맡는다는 게 사실입니까?
―단독은 아니에요. 훌륭한 동료들이 함께해 주시니까요.
겸손한 대답이었다.
화면 아래 자막에는 전혀 겸손하지 않은 문장이 지나갔다.
`최연소 SSS급 채유나, 또다시 재측정 게이트 선봉`
`전문가 “현 국내 20대 헌터 중 독보적”`
시우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다.
다른 채널에서도 유나가 나왔다.
또 돌렸다.
이번에는 형이 사라진 게이트의 후속 보도였다.
`4년 넘게 미궁에 빠진 청람 4팀 전멸 사고`
화면에 사망자 열한 명의 사진이 차례로 떴다. 마지막 칸은 사진 대신 물음표로 비어 있었다.
`강태욱, 생사 확인 불가.`
시우는 텔레비전을 껐다.
조용해진 거실에서 협회 앱 알림음만 울렸다.
북마크해 둔 공고의 조건이 수정되었다.
`[일당 상향] 320,000원 → 450,000원`
`균열 불안정에 따른 위험수당 포함`
사십오만 원.
시우는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모집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세 시간.
*
저녁 일곱 시가 조금 넘어 현관문이 열렸다.
“다녀왔어.”
뉴스 속에서 마력 폭풍을 뚫고 걷던 유나는 너무나 멀쩡한 얼굴로 돌아왔다. 전투복에는 먼지 한 점 없었다.
시우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안 다쳤어?”
“응.”
“재측정이라며.”
“별거 아니었어.”
유나는 구두를 벗고 곧장 시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충전.”
“땀 냄새 나.”
“거짓말. 나 냄새 안 나.”
“그러니까 씻고 와.”
유나는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을 시우의 가슴에 더 깊이 묻었다. 전장에 다녀온 사람의 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따뜻했다. 단단한 팔이 허리를 감아 도망갈 틈을 없앴다.
“오늘 밖에 안 나갔지?”
“장 보러.”
“어디로?”
“앞 마트.”
“그게 다야?”
“왜 취조해?”
“걱정했으니까.”
유나는 고개를 들어 시우를 올려다봤다.
가까웠다.
숨결이 입술에 닿을 만큼.
“정말 그게 다야?”
시우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응.”
북마크는 외출이 아니었다.
아직은.
유나는 몇 초 더 그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만족한 듯 웃었다.
“잘했어.”
그녀가 떨어져 욕실로 들어간 뒤, 시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식탁 위에는 유나가 두고 간 봉투가 있었다.
`7월 급여 및 특별 상여.`
안에는 계약된 월급보다 오십만 원이 더 들어 있었다.
시우는 욕실 쪽을 돌아봤다.
샤워기 물소리가 들렸다.
그는 봉투 속 돈을 세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병원 계좌를 열고 백만 원을 송금했다.
입금자명은 아버지 이름으로 바꿨다.
잔액이 다시 줄었다.
그 순간 협회 앱이 진동했다.
`[주의] 인근 균열 불안정. 등급 상향 가능성.`
곧이어 모집 공고가 한 번 더 수정되었다.
`일당 650,000원.`
지원자는 아직 부족했다.
시우는 지원 버튼을 눌렀다가 손을 뗐다.
눌렀다가, 또 뗐다.
욕실 문 너머에서 유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우야.”
시우는 화들짝 화면을 껐다.
“왜?”
“수건.”
“앞에 있잖아.”
“없는데?”
분명 새 수건을 걸어 뒀다.
시우가 욕실 앞으로 가자 문이 손바닥만큼 열렸다. 하얀 팔이 틈으로 뻗어 나왔다.
“줘.”
시우는 선반의 수건을 집어 손 위에 올렸다.
그런데 유나는 수건 대신 그의 손목을 잡았다.
물기 어린 손가락이 맥박 위를 눌렀다.
“……빨리 씻고 나와.”
“응.”
유나는 손을 놓지 않은 채 속삭였다.
“내일은 정말 집에 있어.”
시우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왜?”
“그냥.”
문틈 너머로 한쪽 눈만 보였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
그러나 손목을 감은 손에는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네가 밖에 나가면,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
그날 밤.
유나가 잠든 것을 확인한 시우는 소파에 앉아 다시 휴대폰을 켰다.
공고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십 분.
병원 미납액은 삼백팔십만 원.
일당은 육십오만 원.
시우는 오랫동안 두 숫자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마침내 지원 버튼을 눌렀다.
`참가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곧 파티장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일 22시. 마포 7번 게이트. 늦으면 버리고 갑니다.`
시우는 메시지를 지우려다 멈췄다.
내일 아침이 오면 취소할 수도 있었다.
유나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약을 지우지 않았다.
침실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채유나는 잠들지 않은 눈으로 소파의 푸른 불빛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우의 허공에는, 그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문장이 잠깐 떠올랐다.
```
[검투 경기 후보가 감지되었습니다.] [연결 감지 이후 주인의 첫 번째 권역 외출을 기록합니다.] ```식모는 주인의 명령을 어겼다.
콜로세움은 그제야 문을 열 준비를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채유나의 하루는 늘 승리로 시작했다.
아침 여덟 시 뉴스.
화면 속 유나는 무너진 게이트 앞에 서 있었다. 등 뒤로는 보랏빛 불길이 치솟았고,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옮겼다. 현장 기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포 3번 균열이 예측보다 두 단계 높은 A급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채유나 헌터가 보스를 단독으로 처치하면서 사상자 없이 공략이 종료됐습니다!
카메라가 줌을 당겼다.
전투복 곳곳이 찢기고 뺨에는 피가 묻었지만 유나는 웃고 있었다.
―채유나 헌터, 괜찮으십니까?
―네. 동료들이 잘 도와준 덕분이에요.
―혼자 보스룸에 진입했다는 증언이 있는데요.
―제가 조금 빨랐을 뿐이에요. 승리는 모두의 것이죠.
자막이 화려하게 떠올랐다.
`또 한 번의 기적.`
`대한민국 최연소 SSS급, 한계는 어디인가.`
시우는 계란 프라이를 뒤집으며 텔레비전을 흘겨봤다.
“저렇게 다쳤었나.”
어젯밤 돌아온 유나는 상처 하나 없었다. 전투복도 깨끗했다. 텔레비전 속 영상은 하루 전 것이었고, 아마 길드가 홍보를 위해 뒤늦게 공개한 모양이었다.
고속 회복 능력이라도 새로 얻은 걸까.
시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유나는 늘 그랬다.
오늘의 유나는 어제보다 강했다.
반대로 시우는 삼 년 전과 똑같았다.
“시우야.”
졸린 목소리가 들렸다.
유나는 오늘도 셔츠만 입고 나왔다. 다만 어제와 달리 시우의 셔츠였다. 몇 년이나 입어 목이 늘어난 검은 티셔츠가 유나의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왔다.
“그거 내 건데.”
“알아.”
“네 옷 많잖아.”
“네 냄새 나서 좋아.”
“빨래 안 했어?”
“분위기 깨지 마.”
유나가 시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뜨거운 팬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너무 자연스럽게 달라붙었다.
“뉴스 봤어?”
“지금 보고 있잖아.”
“나 멋있지?”
“다친 사람이 웃고 있는 게 멋있냐.”
“걱정했어?”
“직장 동료가 다치면 집안일 늘어나니까.”
“직장 동료?”
유나가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고용주.”
“네, 고용주님. 식사하십시오.”
시우는 접시를 식탁에 놓았다.
유나는 맞은편이 아니라 시우 옆자리에 앉았다. 넓은 식탁을 두고 굳이 어깨가 닿는 자리를 골랐다.
“오늘은 출근 안 해?”
“오후에.”
“그럼 더 자지.”
“너랑 밥 먹어야지.”
“밥은 혼자서도 먹을 수 있어.”
“싫어.”
유나는 시우의 접시에서 베이컨을 하나 훔쳐 먹었다.
“혼자 먹는 거 싫어.”
시우는 문득 어젯밤 지원한 게이트를 떠올렸다.
출발 시각은 밤 열 시.
유나는 오후 출근이라고 했다. 평소대로라면 저녁 일곱 시쯤 돌아올 것이다. 빠져나갈 시간이 없었다.
“오늘 늦게 와?”
무심한 척 묻자 유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저녁 메뉴 정하려고.”
“몇 시에 왔으면 좋겠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원하는 시간에 오려고.”
시우는 우유를 마시며 시선을 피했다.
“아무 때나.”
“그러면 안 나갈래.”
“뭐?”
“오늘 쉬지 뭐.”
유나가 휴대폰을 집었다. 정말 길드에 전화를 걸 기세였다.
시우는 다급하게 손목을 붙잡았다.
“미쳤어? 네가 빠지면 팀 일정 다 꼬이잖아.”
“네가 집에 있으라고 하면 빠질 수 있어.”
“누가 있으래? 가. 열심히 일해서 세금도 내고.”
유나는 붙잡힌 손목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웃었다.
“그럼 오늘 늦을 거야.”
“얼마나?”
“자정 넘어서.”
너무 완벽한 대답이었다.
시우는 안도하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컵을 들었다.
“저녁은?”
“길드에서 먹을게.”
“그래.”
“섭섭하지 않아?”
“전혀.”
“너무하네.”
유나는 입술을 삐죽였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그날 오전, 유나는 좀처럼 시우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파에서 보고서를 읽으면서도 다리를 시우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시우가 빨래를 개면 바로 옆에서 옷을 뒤섞었다. 장을 보러 나가려 하자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먹자며 가로막았다.
마치 시우가 잠깐이라도 시야 밖으로 사라지면 안 되는 사람처럼 굴었다.
평소에도 스킨십이 많은 편이었지만 오늘은 유난했다.
“너 오늘 이상해.”
시우가 결국 말했다.
“뭐가?”
“왜 이렇게 붙어 있어.”
“쉬는 날이니까.”
“오후에 출근한다며.”
“그 전까지 쉬는 날.”
유나는 소파에 누운 채 시우의 손을 가져다 자기 머리 위에 올렸다.
“쓰다듬어.”
“개냐?”
“네 고용주.”
“고용주면 직원을 쓰다듬어 줘야지.”
“좋아.”
유나가 벌떡 일어나자 시우가 손을 거뒀다.
“됐어. 내가 할게.”
시우의 손가락이 검은 머리카락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결 좋은 머리카락은 손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미끄러졌다.
유나는 눈을 감았다.
행복해 보였다.
“시우야.”
“왜.”
“이렇게 계속 살자.”
뜬금없는 말이었다.
“갑자기?”
“나는 돈 벌고, 너는 집에 있고.”
“평생 식모 하라고?”
“싫어?”
시우의 손이 멈췄다.
싫다고 말해야 했다.
남자가 젊은 나이에 부잣집 소꿉친구 집에 얹혀살며 청소나 하고 있는 삶. 꿈도 목표도 없이 남이 주는 월급을 받아 병원비에 보태는 삶.
그런 것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집을 나가면 갈 곳이 없었다.
본가에는 죽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사기당한 사실도, F급 각성자가 되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실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유나는 그런 시우에게 따뜻한 방과 밥을 줬다.
“지금은…… 괜찮아.”
비겁한 대답이었다.
유나가 눈을 떴다.
“지금은?”
“말꼬리 잡지 마.”
“평생이라고 해 줘.”
“싫어.”
“왜?”
“그건 좀 무섭잖아.”
시우가 웃어넘기자 유나도 따라서 웃었다.
다만 시우는 보지 못했다.
눈을 감은 유나의 손가락이 소파 가죽을 깊게 누르고 있다는 것을.
*
오후 두 시.
검은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유나는 현관 앞에 섰다.
“정말 늦어?”
“응.”
“자정 넘어서?”
“아마도.”
“알았어.”
시우의 대답이 너무 빨랐다.
유나는 구두를 신다 말고 그를 봤다.
“왜 좋아 보여?”
“혼자 있으면 편하니까.”
“내가 불편해?”
“너 있으면 계속 뭘 시키잖아.”
“월급 받잖아.”
“그러니까 출근하셔야 제가 월급값을 하죠, 고용주님.”
유나는 한 걸음 다가왔다.
시우의 옷깃을 정리하는 척 손가락으로 목선을 쓸었다. 손끝이 쇄골에 닿았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다녀오면 확인할 거야.”
“뭘?”
“집 잘 지켰는지.”
“CCTV라도 달게?”
“달아도 돼?”
시우는 농담인 줄 알고 피식 웃었다.
“다녀와.”
“응.”
문이 닫혔다.
시우는 곧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두 시 십 분.
게이트 집결은 밤 아홉 시 반.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는 먼저 침실로 들어가 옷장 깊숙한 곳의 배낭을 꺼냈다. 유나가 보지 못하도록 겨울 이불 아래 숨겨 둔 낡은 장비들이 나왔다.
협회 보급용 가죽 흉갑.
날이 조금 나간 단검.
해독 포션 하나.
붕대와 진통제.
F급 보조 헌터가 갖출 수 있는 전부였다.
배낭을 싸던 시우의 손이 멈췄다.
가죽 흉갑 안쪽에는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있었다. 지난번 게이트에서 고블린 창에 긁혔을 때 묻은 피였다.
죽을 수도 있다.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형도 저급 게이트부터 시작했다. 수백 번을 무사히 돌아온 뒤 어느 날 사라졌다.
시우 같은 F급은 이름조차 기사에 나오지 못한 채 죽는다.
그는 배낭을 다시 옷장에 넣었다.
십 분쯤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꺼냈다.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다녀오면 된다고 중얼거렸다.
육십오만 원.
그 돈이면 아버지의 재활 치료비 일주일 치를 낼 수 있었다.
시우는 오후 내내 집안일을 평소보다 꼼꼼히 했다. 욕실의 물때를 닦고, 유나의 옷을 다림질하고, 냉장고에 사흘 치 반찬을 만들어 넣었다.
혹시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는 사람처럼.
그 생각이 들자 손끝이 떨렸다.
“재수 없는 소리.”
시우는 혼잣말로 불안을 밀어냈다.
저녁 여덟 시.
검은 후드티로 장비를 가린 시우는 현관 앞에 섰다.
휴대폰에는 유나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잘 있어?`
`저녁 먹었어?`
`사진 보내 줘.`
시우는 미리 찍어 둔 식탁 사진을 전송했다.
`먹었어. 일이나 해.`
답장은 곧바로 왔다.
`착하네. 집에만 있어.`
시우는 화면을 끄고 문을 열었다.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간 뒤에야 숨이 쉬어졌다.
택시를 부르려는데 은행 앱 알림이 떠올랐다.
`[입금] 500,000원`
보낸 사람은 채유나였다.
메모에는 짧게 적혀 있었다.
`얌전히 있는 값.`
시우는 한참 그 문장을 봤다.
지금이라도 올라갈까.
유나가 준 돈을 병원에 보내면 오늘 게이트에 갈 이유가 절반은 사라진다.
하지만 엄지손가락은 환불 버튼이 아니라 택시 호출 버튼을 눌렀다.
그 돈까지 받으면 정말로 평생 이 집을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
택시가 떠난 지 오 분 뒤.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렸다.
전투복 차림의 채유나가 내렸다.
그녀는 자정이 아니라 오후 여덟 시 십오 분에 돌아왔다.
길드에는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제 A급 게이트를 끝낸 에이스가 하루 쉰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유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시우야.”
대답이 없었다.
거실 불은 켜져 있었고 식탁에는 저녁을 먹은 흔적도 있었다.
그러나 집 안에는 시우의 기척이 없었다.
유나는 침실과 욕실, 베란다까지 차례로 확인했다.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
마지막으로 시우의 방에 들어갔다.
옷장을 열었다.
겨울 이불 아래가 비어 있었다.
낡은 흉갑과 단검이 사라졌다.
유나는 한동안 빈자리를 내려다봤다.
휴대폰을 꺼내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시우는 받지 않았다.
그 시각 시우는 택시 뒷좌석에서 진동하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채유나라는 이름이 반짝였다.
받으면 돌아오라고 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는 작게 중얼거리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렸다.
창밖으로 게이트 경보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유나가 네 번째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친절한 미소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약속했잖아.”
빈집에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유나는 시우의 방 안에 서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시우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창이 떠올랐다.
```
[제1 검투사 채유나] [주인과의 연결 거리가 멀어집니다.] ```유나는 그 문장을 지우듯 허공을 움켜쥐었다.
“집에만 있겠다고.”
손등 위로 푸른 마력이 핏줄처럼 번졌다.
하지만 잠시 뒤, 유나는 다시 웃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평소와 다름없는 상냥한 채유나로 보일 만큼 완벽한 미소였다.
“괜찮아.”
그녀는 시우의 위치가 사라져 가는 창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데리러 가면 되니까.”
그날 밤, 천재 헌터 채유나는 예정된 레이드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식모를 찾으러 나섰다.
---
“손님, 도착했습니다.”
기사의 말에 시우는 잠에서 깼다.
택시 창밖으로 통제선이 보였다. 붉은 경광봉을 든 협회 직원들이 차량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밤공기를 일그러뜨리는 검은 타원이 서 있었다.
게이트.
인류가 이계의 괴물과 처음 마주친 지 이십 년이 지났지만, 시우는 저것을 볼 때마다 거대한 입처럼 느꼈다.
한번 삼킨 사람을 반드시 돌려보내지는 않는 입.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리자 휴대폰이 또 진동했다.
부재중 전화 일곱 통.
전부 채유나였다.
그 아래로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어디야?`
`전화 받아.`
`강시우.`
마지막 메시지는 불과 일 분 전에 왔다.
`지금 돌아오면 화 안 낼게.`
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외박하다 들킨 고등학생 같았다.
`친구 만나러 왔어. 늦어.`
거짓말을 보냈다.
읽음 표시는 즉시 떴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시우는 휴대폰을 주머니 깊숙이 넣고 집결지로 걸어갔다.
“강시우 씨?”
임시 천막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명단을 확인했다. 구레나룻이 짙고 체격이 큰 중년이었다.
“네.”
“F급, 비전투계. 해체 보조 맞죠?”
“맞습니다.”
“일당 오른 건 봤고?”
“예.”
남자는 시우의 낡은 흉갑을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뒈져도 산재 처리 어렵습니다. 계약서 읽어 봤죠?”
“읽었습니다.”
“위험하면 앞사람만 보고 뛰어요. 영웅 놀이 하지 말고.”
영웅.
시우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남자는 전자 계약서를 내밀었다. 시우가 서명하자 참가자용 팔찌가 손목에 채워졌다.
`마포 7번 균열 임시 공략대`
`공략 등급 E`
`역할: 운반 및 해체`
“저쪽에서 대기해요.”
천막 옆에는 이미 여덟 명이 모여 있었다. 장비만 봐도 역할이 나뉘었다. 방패를 든 탱커 둘, 검과 창을 든 공격수 셋, 활을 멘 정찰수 하나, 치유사 하나.
그리고 시우와 같은 보조 인력.
주황 조끼를 입은 왜소한 청년이 먼저 말을 걸었다.
“형씨도 일당 보고 왔어요?”
“네.”
“나도. 원래 삼십이였는데 육십오라잖아. 두 배면 좀 구르지 뭐.”
청년이 손을 내밀었다.
“박동석. E급. 운반.”
“강시우. F급.”
“스킬은?”
시우는 잠시 망설였다.
“고용 계열.”
“고용?”
옆에서 듣고 있던 창잡이가 피식 웃었다.
“어이, 설마 그 인력사무소냐?”
시우의 얼굴이 굳었다.
“아는 사람입니까?”
“유명하잖아. 콜로세움인가 뭔가. 사람 고용하면 보상 준다고 입 털다가 몇 군데서 돈만 날린 놈.”
“제가 돈을 떼먹은 건 아닙니다.”
“결과가 없으면 사기지.”
창잡이 옆에 있던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왜 직접 왔대? 소개할 인력 없어서 본인이 뛰나?”
“시끄럽습니다.”
파티장이 다가오자 웃음이 잦아들었다.
시우는 주먹을 쥐었다가 놓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각성 초기에는 더 심했다. 스킬 이름이 거창했던 탓에 기대한 사람도 많았고, 시우 자신도 허풍을 떨었다.
내가 고용하면 강해진다.
내가 보상을 준다.
곧 거대한 길드를 만들 거다.
스물세 살의 시우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결과는 실패.
계약에 동의한 헌터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동 레이드에서 승리해도 보상은 없었다. 시스템 창은 고장 난 광고판처럼 같은 두 줄만 되풀이했다.
돈을 돌려줬어도 평판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용 사기꾼.’
‘인력사무소.’
‘각성 등급 뻥튀기.’
그때마다 유나는 시우 대신 화를 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시우가 헌터를 고용하지 못하게 막았다.
사기꾼들과 엮이지 말라는 이유였다.
시우는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다.
“입장합니다!”
협회 직원의 외침이 들렸다.
파티원들이 차례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시우는 입구 앞에서 잠깐 멈췄다.
검은 표면에 자기 얼굴이 일그러져 비쳤다.
그러자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
강 씨 집안의 식탁에는 늘 여섯 개의 반찬이 올라왔다.
아버지가 하나.
형이 좋아하는 멸치볶음 하나.
누나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하나.
여동생이 좋아하는 소시지 하나.
막내가 좋아하는 김 하나.
그리고 모두가 먹는 김치.
시우가 좋아하는 반찬은 없었다.
그렇다고 가족이 시우를 미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 씨 가족은 동네에서 소문난 화목한 집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셔도 폭력을 쓰지 않았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굶긴 적이 없었다. 형제끼리 크게 싸운 적도 드물었다.
문제는 시우가 너무 얌전했다는 것이다.
형은 집안 최초의 각성자였다.
누나는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밝히는 재주가 있었다.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예뻤다.
막내는 존재 자체가 사랑을 받았다.
시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밥을 차리면 조용히 먹었고, 새 옷이 없어도 형 것을 물려받았다. 학원에 보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에도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사람들은 점점 덜 물었다.
그 식탁에 채유나가 자주 놀러 왔다.
유나의 부모와 시우의 부모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외동딸인 유나는 북적이는 강 씨 집을 좋아했다.
“유나 왔니? 우리 막내랑 놀아 줘.”
“유나야, 누나 방에 새 인형 있어.”
“형이 게이트 장비 보여 줄까?”
모두가 유나를 반겼다.
그런데 유나는 언제나 시우 옆에 앉았다.
시우가 소시지를 집으려다 여동생 눈치를 보면 자기 것을 건넸다.
시우가 형에게 방을 빼앗겨 거실에서 공부하면 그 옆에 앉아 책을 읽었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왜 자꾸 나만 따라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시우가 물었다.
유나는 그의 침대도 없는 작은 방 한쪽에 앉아 있었다.
“네가 제일 조용해서.”
“조용한 게 좋아?”
“응.”
“재미없잖아.”
“다른 사람들은 시끄러워.”
유나는 시우가 풀던 문제집 위에 턱을 괴었다.
“너는 나만 보잖아.”
“네가 내 앞에 있으니까 보지.”
“그러니까 좋아.”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유나는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시우네 가족에게서도.
하지만 시우만은 유나를 특별 취급하지 않았다. 예쁘다고 쩔쩔매지도 않았고 부잣집 딸이라고 비위를 맞추지도 않았다.
유나가 다가오면 자리를 조금 내줬다.
그것뿐이었다.
그 작은 자리가 외동딸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시우는 몰랐다.
*
스무 살 봄.
시우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가족들은 기뻐했다.
아버지는 등록금 고지서를 보고 잠깐 표정이 굳었지만 곧 등을 두드렸다.
“우리 셋째도 서울 사람이 되는구나.”
형은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방값은 네가 알아서 해라. 나도 장비 맞춰야 해서 돈 없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진심이었다.
시우는 괜찮다고 했다.
늘 그랬듯이.
인터넷에서 싼 방을 구했다. 보증금 삼백만 원에 월세 이십만 원. 서울에서 믿기 어려울 만큼 좋은 조건이었다.
집주인은 계약금을 먼저 보내면 열쇠를 주겠다고 했다.
시우는 아버지가 어렵게 마련해 준 삼백만 원을 보냈다.
다음 날 부동산도, 집주인도, 방도 사라졌다.
주소에는 철거 예정인 빈 건물만 있었다.
경찰은 흔한 허위 매물 사기라고 했다. 범인을 잡아도 돈을 돌려받기는 어렵다고 했다.
시우는 본가에 전화하지 않았다.
사흘 동안 찜질방에서 잤다.
남은 돈이 떨어진 뒤에는 지하철역과 학교 건물을 전전했다. 수업이 끝난 빈 강의실에서 자다가 경비원에게 쫓겨났다.
그 모습을 유나에게 들켰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유나는 서울 반대편 학교에 다녔고, 그 건물에 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너 왜 여기서 자?”
밤 열한 시, 빈 강의실.
문 앞에 선 유나의 얼굴은 창백했다.
시우는 책가방을 베개 삼아 누운 채 웃었다.
“팀플하다가.”
“거짓말.”
“막차 끊겼어.”
“네 방은?”
“있어.”
“주소 말해.”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유나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바닥에 떨어진 편의점 영수증과 구겨진 옷을 봤다. 사흘째 갈아입지 못한 셔츠, 충전기, 세면도구.
모든 것을 본 뒤에도 유나는 화내지 않았다.
그저 시우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싫어.”
“왜?”
“불쌍해서 데려가는 거면 싫어.”
“안 불쌍해.”
유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필요해서 데려가는 거야.”
“내가 왜 필요한데.”
“우리 집 너무 커. 청소할 사람이 필요해.”
“업체 불러.”
“남은 해 준 밥 맛없어.”
“나 요리 못해.”
“배우면 되지.”
“돈 없어.”
“내가 월급 줄게.”
모든 대답이 준비되어 있었다.
시우는 결국 물었다.
“왜 나야?”
유나는 웃었다.
“싸니까.”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날의 시우에게는 거절할 힘이 없었다.
유나의 집에 들어간 첫날, 그는 따뜻한 물로 삼십 분을 씻었다. 유나가 끓인 라면 두 봉지를 먹고 손님방 침대에 누웠다.
울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베개가 젖어 있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시우는 식모가 되었다.
*
“안 들어가요?”
앞에 있던 박동석이 물었다.
시우는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게이트 입구가 검은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갑니다.”
한 걸음 내디디자 세상이 뒤집혔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찔렀다.
내부는 습한 동굴이었다. 천장에 붙은 푸른 이끼가 희미한 빛을 냈다. 통로 곳곳에 고블린의 발자국과 짐승 뼈가 흩어져 있었다.
파티장이 손을 들었다.
“진형 유지! 보조는 중앙!”
헌터들이 익숙하게 움직였다.
시우는 박동석과 함께 가운데 섰다.
그 순간 허공에 익숙한 창이 떠올랐다.
```
[콜로세움의 주인]검투사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승리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여전히 두 줄뿐이었다.
시우는 헛웃음을 흘리며 창을 닫았다.
“여기서도 쓸모없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략대가 전진했다.
첫 전투는 십 분 뒤에 벌어졌다.
고블린 여섯 마리가 모퉁이에서 튀어나왔다. 탱커가 방패로 막고, 창잡이가 목을 꿰뚫었다. 전투는 삼십 초 만에 끝났다.
시우의 역할은 시체에서 마석을 꺼내는 것이었다.
칼끝을 가슴뼈 사이에 넣고 비틀었다.
역한 냄새와 함께 검푸른 피가 쏟아졌다.
박동석이 코를 막았다.
“육십오만 원, 육십오만 원.”
주문처럼 일당을 외웠다.
시우도 속으로 숫자를 되뇌었다.
아버지의 병원비.
육십오만 원.
조금만 참으면 된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 고블린 스물두 마리를 잡았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등급 상향 경보가 과장이었다는 농담이 돌기 시작했다.
파티장이 말했다.
“이 속도면 자정 전에 끝납니다.”
분위기가 풀렸다.
그때 시우가 멈춰 섰다.
“잠깐만요.”
앞서 가던 창잡이가 돌아봤다.
“뭐?”
시우는 벽에 손을 댔다.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쿵.
쿵.
쿵.
무언가 아주 무거운 것이 동굴 깊은 곳에서 걷고 있었다.
“아까도 이런 소리 났습니까?”
파티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진동은 곧 사라졌다.
파티장이 마력 측정기를 꺼냈다. 수치는 E급 범위 안이었다.
“낙석이겠지.”
“규칙적인데요.”
“겁먹었으면 입구로 돌아가요. 대신 일당은 없습니다.”
시우는 벽에서 손을 뗐다.
돈이 필요했다.
그 말 하나로 모든 불길함을 삼켰다.
“계속 가겠습니다.”
공략대가 다시 움직였다.
아무도 보지 못한 벽 너머.
두꺼운 암석 사이로 붉은 눈 하나가 뜨였다.
그리고 게이트 밖에서는 채유나가 통제선 앞에 도착하고 있었다.
“내부 참가자 명단 보여 주세요.”
협회 직원이 당황해 물었다.
“채유나 헌터님? 오늘 작전에는 배정되지 않으셨는데…….”
유나는 상냥하게 웃었다.
“사람을 찾고 있어서요.”
그녀의 손에는 시우가 서명한 전자 계약서 사본이 떠 있었다.
`강시우 / F급 / 비전투 보조.`
유나는 그 이름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었다.
“제 물건이 안에 들어갔거든요.”
직원은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
유나는 곧바로 말을 고쳤다.
“제 사람이요.”
그러나 웃는 얼굴과 달리 그녀의 눈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게이트 안쪽에서 다시 진동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훨씬 가까웠다.
쿵.진동이 발바닥을 때렸다.공략대의 웃음이 사라졌다.방패를 든 탱커가 가장 먼저 자세를 낮췄다. 정찰수는 화살을 시위에 걸었고, 치유사는 주문을 외울 준비를 했다.파티장이 마력 측정기를 벽에 갖다 댔다.E.숫자는 변하지 않았다.“낙석입니다.”“낙석이 걸어와요?”시우의 말에 창잡이가 혀를 찼다.“F급이 괜히 분위기 잡네.”“진동 간격이 일정합니다.”“그래서? 네 고용 스킬로 땅이라도 고용하게?”몇 사람이 웃었다.시우는 더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자신의 말에는 무게가 없었다. F급, 비전투계, 고용 사기꾼. 이 세 단어면 어떤 경고도 겁먹은 사람의 헛소리가 됐다.파티장이 손을 들었다.“진형 유지하고 전진. 이상 개체 확인 시 즉시 후퇴합니다.”그나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공략대는 속도를 낮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시우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푸른 이끼가 밝히는 통로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등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형씨.”옆에서 걷던 박동석이 작게 불렀다.“진짜 뭐 느껴져요?”“모르겠습니다.”“나도 아까부터 소름 돋아서.”동석이 팔뚝을 문질렀다.“돈이고 뭐고 그냥 나갈까요?”시우도 같은 생각을 했다.육십오만 원은 큰돈이었다.하지만 목숨보다 크지는 않았다.&ldq
새벽 여섯 시.서울 한복판의 펜트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뜨는 사람은 집주인이 아니었다.강시우는 알람이 울리기 직전에 눈을 떴다. 반쯤 감긴 눈으로 천장을 확인하고, 몸에 밴 순서대로 침구를 정리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밤새 돌아간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확인하고, 욕실 바닥에 떨어진 긴 머리카락을 주웠다.그의 것은 아니었다.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장미 향이 났다.시우는 그것을 휴지에 싸 버린 뒤 주방으로 향했다.쌀을 씻고, 멸치 육수를 올리고, 계란을 풀었다. 냉장고에는 일반 가정이라면 특별한 날에나 꺼낼 법한 한우가 날짜별로 소분되어 있었다. 그중 유통기한이 가장 가까운 팩을 골라 팬 위에 올렸다.치익.고기 익는 냄새가 넓은 거실로 번졌다.어디선가 로봇 청소기가 기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삼백만 원짜리 기계였다. 저 기계가 있는데도 시우는 매일 걸레질을 했다.채유나가 바닥은 사람 손으로 닦아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기 때문이다.“으음…….”복도 끝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잠시 뒤, 헐렁한 셔츠 하나만 걸친 여자가 맨발로 걸어왔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인데도 연예인보다 예뻤다. 길게 흐트러진 검은 머리, 희고 매끄러운 다리, 그리고 셔츠 자락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허벅지.채유나.대한민국에서 스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최상위 헌터이자, 시우가 사는 집의 주인이었다.“시우야.”유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그의 등에 이마를 기대었다.“배고파.”“손부터 씻어.”“안아 주면 씻을게.”“애냐?”“응. 아침에는.”등에 닿은 체온이 얇은 면 티를 뚫고 들어왔다. 시우는 팬을 든 채 굳어 있다가 팔꿈치로 유나를 슬쩍 밀어냈다.“기름 튄다.”“나 방어력 높아.”“셔츠에는 방어력 없거든. 그리고 바지 좀 입어.”“우리 집인데?”유나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잠기운이 묻은 눈동자 안에 시우의 얼굴이 담겼다.“보는 사람도 너밖에 없고.”의미심장한 말이었다.시우는 대답 대신 불을 줄였다. 괜히 반응하면 놀림만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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