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2026년 대한민국. 우리가 사는 곳. 우리 옆에 누군가 뱀파이어라면? 그들도 일에 치이고 힘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뱀파이어지만 쉽게 자신들의 정체를 밝힐 수 없다. 사냥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인간을 사냥하는 대신 혈청 커피를 마시며 일에 치여 사는 뱀파이어들의 이야기....
Voir plus이솔은 감았던 눈을 떴다.지율에게 할 말을 정리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인지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이솔은 기지개를 켜며 소파에서 일어나 다시 매장으로 나오니 어둠이 골목 위로 내려앉기 시작하고, 밤이 시작되는 지금 건물마다 하나둘 네온사인이 켜지고, 인간들은 퇴근길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루비 아워도 마감 시간이었다.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알바생들이 바쁘게 뒷정리를 시작했다.“매니저님, 오늘도 최고 매출이에요! 이 정도면 보너스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한 알바생의 볼멘소리에 이솔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요. 오늘 사장님 오시면 한번 말씀드려볼게요.”그의 말에 알바생들은 “진짜요?” 하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이솔은 인간 직원들의 들뜬 표정을 보며 웃어보였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직원들과 마감 청소를 하며 밤에 찾아 올 뱀파이어 손님들을 위해 최대한 인간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환기와 탈취제를 뿌리며 돌아다녔다.다른 인간 직원들은 그런 이솔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들은 뱀파이어의 존재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표정이었다.마감 청소를 마무리 한 후 이솔은 매장을 한 번 돌아보았다.그런 이솔을 바라보던 알바생 한 명이 이솔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매니저님, 저희 카페 커피 냄새로 향기로운데 환기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알바생을 바라보며 이솔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음..... 비밀??”비밀이라는 이솔의 답변에 알바생은 놀란 표정을 해보였다.“네???? 매니저님.... 비밀이라뇨... 너무해
해일은 보온병에 담은 혈청 커피를 들고, 자신의 바로 아랫집에 위치한 은재의 집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필요도 없는 몇 걸음만 내려가면 되는 거리였다.해일은 마치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비밀 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마자, 거실 한가운데에 대자로 뻗어 있는 은재가 눈에 들어왔다.은재는 눈을 감고 있었고 살짝 거친 숨을 쌕쌕거리고 있었다.해일이 본 은재의 집은 딱 ‘IT 개발자’의 그것이었다. 책상 위에는 듀얼 모니터와 노트북이 켜져 있었고, 벽에는 코드가 빼곡한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었다.온기가 없어 차갑기만 한 자신의 집과는 정 반대의 집이었다.해일은 어지럽다고 생각하며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커튼은 닫혀 있었지만, 방 안에는 모니터 불빛이 새벽을 대신하고 있었다.해일은 한숨을 쉬며 은재 옆으로 가서 발로 툭툭 차며 말을 걸었다.“야, 하은재. 너는 인간이었으면 이미 과로로 죽었을 거다.”은재는 대자로 누운 채 눈만 굴렸다.“형, 왔어? 커피.... 커피 가져 왔어?”은재는 해일을 보자마자 혈청 커피부터 찾았고,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응. 근데 그 꼴로 내가 정성스럽게 탄 혈청 커피를 마실 자격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이 형이.... 지금 뭐라는거야? 정성?? 하 참!! 나 오늘 열마나 열심히 버그를 쫓아 사냥했는지 알면 그런 소리는 못할걸?”해일은 자신의 말에 일일이 반박하는 은재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혈청 커피가 담긴 보온병을 식탁 위에 내려 놓으며 머그잔을 찾았다.“그래~~ 어련하시겠습니까~~ 어서 일어나서 이리 와! 커피 먹어!”은재는 겨우 팔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눈 밑에는 새벽을 통째로 지새운 흔적이 고스란히 드리워져 있었다. 아까 봤을 때보다 다크서클이 한층 더 내려와 있었다.“형... 내... 커피....”은재는 좀비 마냥 온 몸에 힘을 빼고 휘적거리며 식탁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해일은 그 모습을
아침 8시가 넘은 시간 세 뱀파이어는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흩어졌다. 같은 건물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각자 사는 집은 층이 다 달랐다.해일은 자신의 집 현관문 앞에 서서 비밀 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의 집 안은 굉장히 온기가 없는 차가운 공기만 맴돌았다. 필요한 가구들만 배치가 된 거실과 먼지 한톨 보이지 않는 바닥...... 공기조차 정제된 느낌이었다.모델하우스라기보다, 인간의 냄새가 지워진 공간에 가까웠다.깔끔하고, 냉정하고, 어딘가 외로웠다.“하....... 내 집이지만 온기라고는 없구만.....”해일은 차가운 자신의 집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해일이 뱀파이어가 된 것은 1665년, 현종 시대였다. 그때 그는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이미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자식들은 모두 장성하여 각자의 가정을 꾸렸으며 손주까지 있었다.조선시대의 서른이면 이미 인생의 중반을 지난 노년이었다.그는 병에 걸려, 조용히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세상은 어딘가 어그러지고 있었다.해일은 병상에 누운채 일어나지 못했고 몸은 점점 말라가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자신은 죽음을 기다리며 천장을 바라보며 하루 하루를 보냈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서방님.... 제가 어떻게든 약을 구해볼게요.”약을 구해보겠다고 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해일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그래요....”해일은 자신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아내에게 자신을 보내달라는 말은 할 수 없었고, 슬픈 눈을 한 채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밝은 얼굴로 집의 문을 열고 들어와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의 앞에 앉았다.“서방님, 제가 약을 구했어요. 이 약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해일은 상기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와 약을 번갈아 보았다.“이... 콜록... 약은 어디서... 콜록... 구한거요....”연신 나오는 기침 때문에 말을 천천히 이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며 아내는 잠시 슬픈 눈빛이
모든 뱀파이어들이 그렇듯 밤에 힘이나고 낮에는 힘이 없다.하은재 역시 항상 밤에 힘이 났고, 밤이 깊어질수록 집중력은 날카로워지고, 모니터의 빛은 마치 달빛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그는 자신의 책상에 놓여있는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잔 속의 붉은 루비 블렌드가 마지막 남은 카페인처럼 은은히 흔들렸다.“역시 밤이 최고야. 피 대신 혈청커피, 사냥 대신 코딩.”그가 루비 블렌드를 한 모금 마실 때, 창문 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비쳤다.하늘이 점점 푸르스름하게 물들고 있었다.“자~! 여러분, 벌써 해가 뜨고 있네요. 퇴근합시다.”하은재가 손을 들어 팀원들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피로 대신 묘한 뿌듯함이 섞여 있었다.팀원들은 각자의 모니터에 떠 있는 코드를 저장하고, ‘업무 종료’ 버튼을 누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마우스 클릭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사무실의 불빛이 하나씩 꺼져갔다.누군가는 혈청 팩을 정리했고, 누군가는 머그잔을 씻으며 하품을 했다.“오늘도 순조로웠네요.”“버그 한 마리 안 물리고 끝났네.”짧은 농담이 오갔고, 모두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그들이 사무실을 나서자, 복도 끝 창문 밖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붉은 빛이 천천히 비쳤지만, 그들에게 그건 따뜻함이 아니라 퇴근 신호등이었다.하은재는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중얼거렸다.“해가 뜨면 인간들이 시작하고, 해가 지면 우리가 이어간다. 이게 진짜 24시간 근무지.”그는 웃으며 모니터를 껐다. 그리고 문을 나서며 덧붙였다.“오늘도 잘 버텼다, 나 자신.”은재는 오늘 밤도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짧은 칭찬을 건네며 가방을 챙겼다.팀원들 모두 힘들었던 밤을 보낸 후 비척이며 짐을 챙겨 서로에게 간단한 인사만 남긴 후 사무실을 급하게 떠나기 시작했다.은재 역시 어서 집으로 가서 쉬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고, 회사 밖으로 나와 새벽의 첫 햇살이 번지는 거리를 걸으며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인간들은 모른다.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가는 뱀파이어들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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