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전화기 너머가 완전히 조용해지자 연지아는 휴대전화를 쥔 손에 계속 힘을 주었다.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현 하나가 걸린 듯했다. 연지아가 휴대전화를 내려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서리가 내려앉은 듯 차가운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한 달여 만에 다시 듣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예전에 보여 줬던 다정함은 이미 연기처럼 흩어진 듯했다.한동안 침묵한 뒤 연지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지금 무사하면 됐어.”평온하고 아무런 동요도 없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남자는 갑자기 웃었다. 비웃음에는 차갑고 사나운 기색이 묻어 있었다.“보아하니 꽤 실망했나 보네.”연지아는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입술을 세게 깨물고 내서는 안 될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참았다.한참이 지나도록 여자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성유원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대답하지 않을 거야?”연지아는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말했다.“할 말 없어.”말을 마친 뒤 연지아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휴대전화를 쥔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고 온 힘을 다 써 버린 사람처럼 갑자기 기진맥진해졌다.그녀는 그대로 소파에 기대어 먹물처럼 새까만 창밖의 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반대편에서는 성유원이 손을 내렸다. 그의 얼굴은 더욱 어둡게 가라앉았다....도우미가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알려 주러 왔을 때까지 연지아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도우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연지아 씨, 어디가 불편하세요? 병원에 가 볼까요?”연지아는 정신을 차리고 감정을 추스른 뒤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갔다. 정신을 차리려고 세수한 뒤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얼마 먹지도 못하고 입덧을 하기 시작했다.결국 묽은 죽 한 그릇만 먹고 영양제 몇 알을 복용한 뒤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쉬었다.다음 날은 주말이었다.거의 일주일 동안 흐렸던 날씨가 마침내
새로 이사한 집은 헤릴팰리스였다. 9층은 엘리베이터 한 대에 두 세대가 사는 구조였다.마침 두 집이 모두 임대로 나와 있어 설민성은 연지아의 옆집에 살기로 했다. 그는 연지아의 짐을 집 안으로 옮기며 말했다.“에블린, 내일 입주 도우미를 구하겠습니다.”연지아가 말했다.“내일 내가 연락할게요. 그때 네가 사람을 이쪽으로 데려오면 돼요.”설민성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그럼 에블린은 오늘 일찍 쉬세요.”“그래요.”설민성은 몸을 돌려 집을 나갔다.연지아는 여행 가방을 밀어 침실로 갔다. 방은 모두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가방을 열어 옷을 하나씩 옷장에 걸고 스킨케어 제품은 욕실에 정리했다.정리를 마친 뒤 연지아는 유난히 피곤해 침대에 누웠다. 낯선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두 눈에 조명이 번져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는 듯했다.그날 밤 연지아는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낯선 환경과 낯선 침구 때문에 밤새 뒤척였다.다음 날 연지아는 쇼핑몰에 가서 상잠사로 만든 새 침대 커버와 여름 이불을 샀다. 그리고 다른 병원의 권위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예약했다.검사를 마친 뒤 의사는 손에 든 검사 결과를 살펴보다가 연지아를 바라보았다. 이어 맥을 짚은 뒤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간기가 울체되어 비장을 상한 상태가 심하고 심신도 몹시 지쳐 있습니다. 무슨 고민이든 마음속에만 담아 두지 마세요. 일이든 생활이든 우선 내려놓고 자신의 몸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아무리 약을 많이 먹어도 소용없습니다.”연지아가 말했다.“지금 열심히 조절하고 있어요. 복용하던 약도 모두 끊었고요.”의사는 손에 든 검사 결과를 다시 살펴보았다.“현재 몸의 각종 수치가 모두 기준에 미달합니다. 그래도 아이를 꼭 지키고 싶다면 우선 보충제를 처방해 드릴 테니 일주일 동안 복용하며 몸을 조절해 봅시다. 각종 수치에 호전될 기미가 없다면 임신중절을 권합니다.”연지아는 손가락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의사는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
연지아는 그날 퇴근한 뒤 새집으로 이사할 준비를 했다. 마침 전에 자신을 돌봐 주던 도우미 두 명과 마주쳤다.“사모님, 언제 돌아오셨어요? 왜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어요?”두 도우미는 집 안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청소하러 왔을 뿐이었다. 연지아가 이미 이곳에서 지내고 있을 줄은 몰랐다.연지아가 말했다.“이틀만 지내려고 왔어요. 오늘 이사할 거예요.”두 도우미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사모님께서 갑자기 왜 이사하세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연지아는 웃기만 할 뿐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위층으로 올라가 짐을 정리하자 설민성도 따라 올라가 여행 가방을 들었다.두 도우미는 거실에 서서 연지아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이 떠난 뒤 도우미 한 명이 물었다.“사장님에게 연락해야 할까요?”다른 도우미가 대답했다.“상황을 보니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도 성유원 씨가 미리 말씀하신 것도 없으니 한번 여쭤보는 게 좋겠어요.”“그럼 그렇게 해요.”도우미는 성유원에게 전화했다.전화는 금세 연결되었다.“여보세요.”“사장님, 사모님께서 오늘 이사하셨습니다.”그 말을 듣자 성유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도우미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휴대전화 너머로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언제 주성시로 돌아왔죠?”도우미가 대답했다.“모르겠습니다. 오늘 청소하러 왔다가 우연히 사모님을 만났는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니 이곳에서 이미 이틀 동안 지내신 것 같습니다.”성유원은 더 묻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도우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의아해했다. 우선 집부터 깨끗하게 정리하기로 했다.두 사람은 부부 침실로 돌아가 청소했다. 침구를 정리하던 중 작은 병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도우미가 집어 들어 확인하니 엽산이 들어 있는 병이었다.그때 연지아가 문밖에서 다시 돌아왔다.도우미는 그녀를 보고 놀랐다.“사모님.”연지아는 앞으로 다가가 도우미가 들고 있던 엽산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두
연지아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설민성은 황급히 병상 각도를 알맞게 조절하고 그녀의 등 뒤에 놓인 쿠션을 정리했다.연지아가 말했다.“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요.”설민성은 강 대표에게 알리지 말라는 뜻임을 알고 있었다. 걱정스러웠지만 에블린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알겠습니다.”간호사는 처방된 영양제를 가져와 주의해야 할 사항을 알려 주었다. 다음 주에는 수술을 받아도 된다고 했다.병실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간 뒤 설민성은 병원비를 납부했다. 이어 차를 몰고 병원을 떠나 연지아를 집으로 데려다주려 했다.연지아가 말했다.“회사로 가요.”설민성이 말했다.“에블린, 오늘은 푹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몸이 우선이에요.”“지금은 괜찮아. 우선 남진거리에 가서 뭐라도 좀 먹자.”연지아가 고집을 부리자 설민성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연지아는 병원에서 포도당 수액만 맞고 아무것도 먹지 않아 조금 배가 고팠다.남진거리의 주원쌀국수 식당에 들어서자 쌀국수의 향긋한 냄새가 식욕을 돋웠다. 연지아는 한 그릇을 모두 먹었다. 그녀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본 설민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 후 설민성은 차를 몰아 연지아를 회사까지 데려다주었다.오전 내내 연지아는 금세 업무에 몰두했다. 회의를 진행하고 그동안의 주요 프로젝트 데이터를 검토했다.점심시간이 되자 설민성은 연지아에게 점심을 가져다주었다. 모두 담백하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음식이었다.온종일 일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연지아는 전보다 조금 더 야위었을 뿐, 그 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연지아만이 자신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여러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뒤 연지아는 의사가 처방한 영양제를 제시간에 먹고 침대 옆에 놓인 약은 쓰레기통에 버렸다.씻고 정리를 마친 뒤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태블릿으로 근처에 나온 집들을 살펴보았다. 마음에 드는 집은 모두 설민성에게 보내 내일 확인해 달라고 했다.메시지를 확인한 설민성이 답장했다.
하지만 달걀을 집어 드는 순간 손이 갑자기 떨렸다. 달걀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깨졌고 달걀물이 슬리퍼에 묻었다.연지아는 바닥에 깨진 달걀을 바라보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휴지를 가져와 바닥을 깨끗하게 치운 뒤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릇을 들고 그 안에 달걀을 넣었다.하지만 달걀을 깰 때도 손에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 토마토를 썰 때는 칼을 쥔 손이 불안정해 조심스럽게 조금씩 썰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토마토를 다 썬 뒤 파도 잘라 놓고 불을 켜 팬에 기름을 둘렀다.기름을 부을 때는 한 손을 다른 손으로 붙잡아 고정한 채 조금씩 부었다. 기름이 달아오르자 달걀물과 토마토를 넣고 물을 부었다. 이어 조미료와 소금을 넣고 뚜껑을 덮어 끓였다.마지막으로 물을 끓여 면을 삶았다.모든 준비를 마친 뒤 연지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랫동안 요리하지 않았더니 간단한 토마토 달걀 국수 하나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조금 지쳤다.그녀는 조리대에 조용히 기대어 기다렸다.몇 분 뒤 토마토 달걀이 완성되자 불을 껐다.면이 익자 조금씩 건져 그릇에 담았다. 주걱으로 토마토 달걀을 면 위에 끼얹은 뒤 마지막으로 다진 파를 뿌렸다.마침내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토마토 달걀 국수 한 그릇이 완성되었다.힘이 풀려 그릇을 떨어뜨리고 어렵게 만든 국수를 쏟을까 봐 식탁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조리대에 기대어 젓가락을 들고 허리를 숙인 채 면을 한입 먹었다. 그 순간 달걀 특유의 비린내가 유난히 선명하게 치밀어 올랐다.연지아는 입을 막고 빠르게 싱크대로 다가가 그대로 뱉었다. 이후에도 헛구역질을 참지 못했다.황급히 수도꼭지를 틀고 물을 마셔 입안에 남은 비린내를 씻어 냈다.겨우 진정된 뒤 연지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손으로 아랫배를 감싼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그녀는 온몸이 굳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연지아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려 주방 밖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지만 억지로 버티며 휴대전화를
성유원은 이제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저 연지아가 먼저 연락해 설명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아파트 안.이서연은 성시하를 재운 뒤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는 성유원을 발견하고 다가갔다.“유원아, 시간이 늦었어. 오늘 막 퇴원했으니 일찍 쉬렴.”성유원은 눈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전 괜찮아요. 어머니는 먼저 주무세요.”이서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그의 곁에 앉았다. 손을 어깨에 올리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유원아, 엄마를 걱정시키지 마.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우선 몸부터 회복한 뒤에 해야지.”성유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그동안 어머니가 연지아를 찾아간 적 있어요?”이서연은 아들의 깊고 어두운 눈과 마주치자 가슴이 이유 없이 막혔다. 하지만 태연하게 대처하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네게 그렇게 큰 사고가 생겼는데 내가 그 아이까지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었겠니?”말하면서 이서연은 아들의 반응을 살폈다. 성유원은 줄곧 침착한 모습을 보였지만 연지아가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은 것에 마음속으로 원망이 생긴 듯했다.성유원에게도 자존심이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연지아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깨닫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 아이가 널 찾아올 생각이 없다는 것만 봐도 마음속에 네가 없을 수 있다는 뜻이야. 유원아, 너도 더는 그 아이를 마음에 두지 마. 세상에는 그 아이보다 뛰어난 여자가 많아.”성유원은 시선을 거두었다. 야윈 얼굴의 옆선은 더욱 차갑고 날카로워 보였다.“어머니는 먼저 쉬세요.”이서연은 아들의 몸이 걱정되었지만 그의 안색을 보고 결국 더 말하지 않았다.“그럼 일 빨리 마치고 일찍 자.”다음 날 성유원은 회사로 출근했다.회사 임원들은 그가 무사히 돌아온 모습을 보고 여러 날 동안 짓눌렸던 부담을 마침내 내려놓았다.하지만 성유원에게서 느껴지는 지나치게 위압적인 기세는 사람을 두렵게 했다.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이어진 회의가 끝나자 겨우 진정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