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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hor: 레몬티
‘내가 직접... 서명한 거라고?’

영민의 뇌리를 스친 기억.

한 달 전, 지설이 어떤 서류를 들고 와 사인을 부탁했었다.

그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또 돈 달라는 건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성의 없이 이름만 적어줬다.

지금 와서야 알았다.

그 서류가 바로 이혼합의서였다는 사실을.

‘왜? 왜 말하지 않았지?’

‘떠날 생각이었으면 적어도 한 번은 내게 직접 얘기했어야지.’

영민은 혼란스러웠다.

지설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어왔다.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차갑게 대해도, 늘 곁을 지키던 여자가 아니었나?

‘그런데... 왜 갑자기? 왜 이제 와서 날 버린 거야?’

영민은 전화를 붙잡은 채 장경은 여사에게 물었다.

“어머니, 왜 그 사람을 막지 않았어요? 전 이혼할 생각,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장 여사는 더더욱 어리둥절했다. 아들은 지설에게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네가 지설한테 관심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네가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니...]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말했다.

[지설은 이미 떠났어. 그 아이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 것 같아. 이젠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니?]

그 말에 영민의 표정은 더 일그러졌다.

“아니에요! 전 동의한 적 없어요. 이건 무효예요. 그리고 지설은 제 아내예요. 설령 죽어도 제 여자예요.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장 여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전화를 끊은 영민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내리며 리정을 불렀다.

“사모님 지금 어디 있는지 당장 찾아.”

리정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은 늘 주유연 씨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사모님이 깨끗하게 떠나 주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왜... 버려진 사람처럼 안달이신 거지?’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유연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귀국하면 지설과는 확실히 갈라서고, 자신과 결혼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설마... 심지설을 좋아한다고? 말도 안 돼.’

그녀는 애써 스스로를 설득했다.

‘부영민... 자존심이 강해. 이혼 얘기를 먼저 꺼내는 건 본인이어야 해.’

‘그런데 심지설이 먼저 이혼을 진행했으니, 체면이 상한 거야.’

‘분명 그래서 저렇게 집착하는 거야. 그렇지, 절대 사랑은 아니야...’

유연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반복하며, 마음속의 불안을 억눌렀다.

...

지설은 새집에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아침 햇살이 비집고 들어왔을 때, 그녀는 낯선 평온함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음 날, 장경은 여사의 비서와 함께 전원주택 명의 이전 절차를 밟았다.

모든 서류에 도장이 찍히고 끝난 순간, 지설은 곧장 부동산 공인중개사를 찾아가 집을 팔겠다고 말했다.

“큰 거래라서 바로 매수자 찾겠습니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공인중개사는 허리를 깊이 숙이며 연신 공손했다.

지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리는 건 시간문제지. 더는 머리 아플 일 없어.’

이후 그녀가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어머니 예연숙은 예전보다 훨씬 안정된 모습이었다.

병실엔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병동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지설은 가져온 과일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칼로 정성스럽게 잘랐다.

“이거 같이 드세요.”

그녀는 이모, 아저씨들에게 나눠주며 웃었다.

작게 썰어 포크에 꽂은 과일을 어머니 입에 가져다주자, 예연숙은 자연스럽게 받아먹으며 말했다.

“지설아, 부 서방은 같이 안 왔니?”

지설의 손이 잠시 굳었다.

“응, 부서방이 요즘 바빠서. 다음에 시간 되면 같이 올 거야.”

“그래? 그럼 너희 언제 아기는 낳을 거야? 엄마가 기다리잖아.”

지설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예연숙은 병으로 기억이 많이 흐릿해져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도, 집안 사업이 무너진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도 그녀는 남편이 출장 나갔다고 생각했고, 지설과 영민이 막 결혼한 새 신혼부부라고 믿고 있었다.

‘엄마에게 충격 주면 안 돼.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야.’

지설은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지갑에서 꺼낸 잔돈을 고스톱판 위에 툭 올려놓으며 말했다.

“엄마, 또 아기 얘기야? 그런 얘기 들으면 머리 아파. 얼른 고스톱이나 치셔. 내 돈 잃지 말고.”

예연숙은 소녀처럼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에이, 네 아빠가 다 벌어다 주는데, 내가 돈이 없냐. 네 건 필요 없어.”

지설은 장단을 맞추듯 다정히 말했다.

“그럼, 아빠가 엄마 많이 사랑하시잖아.”

...

고스톱 한 판 끝나고 난 뒤, 지설은 예연숙을 부축해 병원 정원으로 나갔다.

햇살 아래 앉은 어머니는 바람을 맞으며 천진하게 물었다.

“지설아, 나 입원한 지 벌써 두 달이 다 돼 가는데... 너희 아빠는 왜 아직도 안 와? 전화는 해 봤어?”

지설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지금 외국에서 프로젝트 때문에 바빠. 금방 들어온다고 했어.”

“그 사람 참... 일만 알지 가족은 몰라. 이런 나이에 뭐가 그리 바쁜지.”

잠시 후, 예연숙의 눈빛이 의아하게 흔들렸다.

“근데 내가 메시지 몇 번이나 보냈는데 왜 답이 없지?”

지설은 익숙한 듯 태연히 대답했다.

“엄마도 알잖아. 아빠는 원래 일할 땐 핸드폰 잘 안 봐. 아마 못 본 거야.”

“흥, 이번에 오면 내가 가만 안 둔다. 회사 일 좀 내려놓고 날 챙기라고 할 거야.”

“맞아. 나도 옆에서 잘 거들게.”

딸의 든든한 대답에 예연숙은 기분이 풀렸는지 다시 웃었다.

병실에 예연숙을 돌려보낸 뒤, 지설은 홀가분하게 집으로 향했다.

새로 얻은 전셋집.

넓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그곳에서만큼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살면 돼.’

...

며칠 푹 쉰 뒤, 지설은 드디어 출근을 시작했다.

지난 3년 동안 낮에는 꾸준히 피아노를 연습했기에, 손이 굳지는 않았다.

실기 시험도 무난히 통과했고, 바로 학원에서 수습 강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뭐랬어? 넌 분명 잘할 줄 알았다니까. 정식으로 채용되면 내가 한턱 크게 쏠게.”

소은화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선배님.”

지설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첫 직장이라 그런지, 마음 한구석이 조마조마했다.

‘괜히 실수하면 어쩌지... 학생들 앞에서 당황하면 안 되는데.’

그런 불안감에 지설은 매번 수업 전날 밤에도 피아노 앞에서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다행히 처음 맡은 제자 두 명은 순하고 성격이 좋아서 수업 분위기는 원만했다.

하지만 학원 수습 기간에는 평가 항목이 많아,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지설은 매일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뻗듯 잠들었고,

그 덕에 지난 결혼 생활의 불쾌한 기억을 곱씹을 여유조차 없었다.

...

어느 날, 야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

병원 간병인 하희자에게서 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지설 씨, 큰일이에요! 어머님이 병원에서 안 보이세요.]

지설은 순간 핏기가 가시는 듯했다.

“네? 지금요?!”

심장이 쿵쾅거려 손에 쥔 핸드폰이 덜덜 흔들렸다.

그녀는 곧장 뛰어가려다, 급한 마음에 발이 헛디뎌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

강한 충격이 발목을 찌르듯 훑고 지나갔다.

지설은 숨을 몰아쉬며, 난간을 붙잡고 억지로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등 뒤에서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세요?”

지설은 고통에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역광 속에서 길고 곧은 실루엣이 서 있었고, 낯선 남자의 눈빛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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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   제174화

    유상철은 심지설이 결국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실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지설은 표정을 굳힌 채 담담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이 자리에 더 남아 있어 봤자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는 걸 지설은 알고 있었다.아무리 밤새 연습해도 방송 분량은 결국 잘려 나갈 가능성이 컸다.괜히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지설은 도진과 함께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그러나 유상철은 그걸 그대로 넘길 생각이 없었다.“야, 성질 한번 더럽네. 내가 이렇게까지 체면 세워줬는데, 감히 이러고 나가겠다고?”유상철은 방송국 내에서 입지가 탄탄했다. 친척 중에 고위 간부가 있었고, 본인도 시청률 잘 나오는 프로그램 몇 개를 쥐고 있었다.주변에서 늘 고개를 숙여왔기에, 유상철은 스스로를 ‘무시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유상철은 벌떡 일어나며 욕설을 내뱉었다.“심지설, 네가 뭐 대단한 줄 알아? 내가 눈 한번 안 줬으면 네가 여기까지 왔을 것 같아? 감사할 줄도 모르고 말이야 어디서 튕겨?”유상철은 옆에 서 있던 비서 둘을 향해 손짓했다.“저거 붙잡아. 술 들이부어.”비서들은 유상철이 이미 많이 취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유상철은 비서들이 움직이지 않자, 그대로 발길질을 날렸다.“뭐야, 말 안 들어? 너희도 잘리고 싶어?”요즘 같은 때에 일자리를 잃는 건 치명적이었다. 비서들은 얼굴이 새하얘진 채, 결국 지설 쪽으로 다가왔다.손이 지설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 비서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도진이었다.도진은 차갑게 말했다.“심지설 씨는 방송에 출연하러 온 참가자입니다. 술자리에 불려 나온 게 아닌데, 이런 행동을 해도 되는지요. 이 상황, 방송국 윗선에서도 알고 계십니까?”유상철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너 뭐야, 어디서 감히 훈계질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K시에서 못 버티게 할 수 있어!”유상철이 인맥을 들먹이며 더 떠들려는 순간, 앞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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