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 Chapter 1 - Chapter 10

100 Chapters

제1화

[서류 아직 안 왔어?]전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거의 다 왔어요.”FH그룹 빌딩까지 고작 2킬로 남았지만, 앞 도로 공사 때문에 차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심지설은 창밖에 퍼붓는 장대비를 바라보다, 결국 이를 악물고 돈을 내고 차에서 내렸다.외투를 벗어 서류봉투를 감싸 쥔 채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달렸다.비는 지설의 얇은 옷을 무참히 적셨다.‘내 꼴이 어떤지는 상관없어. 제발 일찍 도착하기만 하자.’지금은 그 생각뿐이었다.겨우 FH그룹 사옥 앞에 도착했지만, 경비가 지설을 막아섰다.그녀가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로 들어오면 바닥이 젖는다는 이유였다.하는 수 없이 지설은 1층 데스크 여직원에게 부탁해 서류를 위로 올려보냈다.그리고 부영민과 그의 비서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이미 도착했어요.]하지만 아무런 답이 오지 않았다.다른 한 명의 데스크 여직원이 지설을 훑어보았다.평범한 옷차림을 본 그녀는 지설을 택배 기사쯤으로 생각한 듯 중얼거리며 따뜻한 물 한 컵을 건넸다.“고생 많으세요.” “감사합니다.”물을 다 마신 지설은 조용히 자리를 뜨려 했다.그때, 로비 중앙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FH그룹 대표, 그리고 지설의 남편, 부영민이었다.그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순간, 지설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대표님, 주유연 씨 차가 도로에서 고장 났다고 합니다. 이미 기사 보내드렸으니 걱정하지 마세요.”영민은 핸드폰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유연이 전화 계속 안 받아. 다시 연락해 봐.”“네.”지설은 구석에서 그 대화를 들었다.‘주유연? 돌아왔구나.’영민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지설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급회의’라며 서류를 당장 가져오라던 남자.이제는 그 회의를 포기하고, 단숨에 첫사랑을 찾아가고 있었다.‘난 뭐야... 이런 비까지 맞으면서 뛰어왔는데...’영민은 끝내 자신을 한 번도 돌아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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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날 밤, 영민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하지만 지설은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라희의 SNS에는 주유연의 귀국 파티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K시 최대 규모 호텔을 통째로 빌리고 밤새 폭죽이 터졌다.연회장 구석구석에는 그랜드 플로라 장미가 수북이 깔려 있었다.영민의 친구들은 모두 모여 유연의 귀국을 축하했고, 웃음과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그건 지설이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본 적 없는 세계였다.영민은 지설을 그저 가사도우미 취급했고, 친구들에게 소개한 적도 결혼 사실을 공개한 적도 없었으니까.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장경은 여사가 보낸 이혼합의서가 도착했다.지설은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고, 그 서류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평소처럼 장을 보러 나갔다.이혼합의서에는 이혼이 성립되기 전까지 지설이 영민을 돌봐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그래서 영민이 집에 없더라도, 저녁은 준비해 두어야 했다....밤 8시, 영민이 돌아왔다.회사의 조명을 받은 듯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아마 회사에서 옷을 갈아입고 온 듯했다.지설이 음식을 데우려는 순간, 영민이 말했다.“신경 쓰지 마. 나 곧 나가야 해.”그는 지설을 보지도 않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지설이 뒤따라가자, 영민은 욕실로 들어갔다.그녀는 깨끗한 셔츠와 바지를 챙겨 문 옆 선반에 올려두었다.다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영민이 샤워를 마치고 내려오기를 기다렸다.아마 오늘 이혼 얘기를 꺼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시계를 차며 계단을 내려오던 영민이 무심하게 말했다.“내일 밤에 B시로 3일 출장을 가. 옷 좀 챙겨놔.”“네.”지설은 식탁 위 서류를 들었다.“이거, 한번 봐줄래요?”영민은 서류를 훑어볼 생각조차 없었다.“장모님 치료비 명세서?”매달 지설이 돈을 쓰려면, 이렇게 어머니 병원 치료비 항목을 작성해서 영민에게 결재를 받아야 했다.지설에게는 가장 큰 지출은 늘 어머니의 치료비였다.영민은 이미 익숙한 듯 마지막 장에 서명만 했다.“됐어. 내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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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장경은 여사가 이씨 집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지설은 끼어들 틈이 없어 조용히 정원으로 나왔다.이씨 집안은 K시에 이름난 명문가답게, 본가의 정원만 해도 한없이 넓었다.조금 걷다 보니 지설은 다리가 뻐근해졌다. 마침 눈앞에 그네가 보여서 잠시 앉아 쉬기로 했다.그런데 문득 그네 옆 나무 울타리에 조그맣게 새겨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부영민과 주유연, 영원히 함께하자.]글씨는 서툴고 앳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린아이가 장난삼아 새긴 듯한 글씨였다.지설은 자연스레 떠올렸다. 영민과 유연은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자란 소꿉친구였다. 어린 시절 이씨 집안 본가에 함께 드나들며 이런 흔적을 남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지설이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앞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오빠, 내가 사는 집을 다시 공사해야 해서... 집에 들어가면 또 부모님 잔소리 들어야 하잖아. 난 오빠 집에서 잠깐 지내면 안 돼?”영민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당연히 괜찮지. 네 방은 내가 계속 비워두고 있었어.”지설은 본능적으로 그네의 밧줄을 세게 움켜쥐었다.지설과 영민이 함께 사는 집에는 가장 크고 밝은 객실이 있었다.가사도우미는 매일 그 방을 청소했고, 며칠마다 침대 시트가 새것으로 갈아입혀졌다.처음엔 지설이 단순히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아무도 쓰지 않는 방을 왜 이렇게 공들여 관리할까 싶었다.하지만 지금, 지설은 알았다. 그 방이 바로, 유연을 위해 남겨둔 자리라는 것을....장례가 끝나고, 지설은 말없이 영민의 뒤를 따랐다.그는 내내 핸드폰만 내려다보며, 지설에게 단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지설도 영민의 싸늘한 얼굴에 굳이 다가갈 마음은 없었다. 이제 그녀가 곁에 있는 건, 합의서라는 굴레 때문일 뿐이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다가오더니, 유연이 자연스럽게 영민의 팔을 끼어 올렸다.“오빠, 우리 집에 가서 짐 먼저 챙기자.”영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지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유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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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지설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그녀는 천천히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붕대로 감싼 팔을 드러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나 다쳤어요. 요리는 못 해요.”영민은 입까지 차올랐던 말이 목구멍에서 막혀 버렸다.“다쳤으면, 왜 진작 말을 안 했어?”지설은 씁쓸하게 웃었다.‘말해봤자 소용 있어?’지난 3년 동안, 지설이 아프거나 다칠 때마다 영민은 단 한 번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지설이 맹장이 터졌을 때, 주순심과 기사가 모두 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영민은 마침 G국으로 비행기를 타기 직전이었다.[스스로 알아서 해.]그게 전부였다.결국 지설은 혼자 구급차를 불렀다. 수술 후에도 병실 옆에는 보호자 대신 고용한 간병인뿐이었다. 영민은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쌓이고 쌓인 실망 끝에 지설은 더 이상 영민에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다행히... 두 사람의 관계도 곧 끝날 예정이었다.그때, 영민의 핸드폰 벨소리가 적막을 깨뜨렸다.그는 화면을 흘끗 확인한 뒤, 발코니로 걸음을 옮겼다.지설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희미하게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 ‘유연’이라 부르는 호칭이 귀에 꽂혔다.발코니에서 들어온 바람이 방 안을 휘돌았다.지설은 어깨가 시려 외투를 걸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새벽에 주순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손자가 아파 오늘은 못 온다는 내용이었다.지설은 괜찮다고, 이쪽은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그녀는 찬장에서 오트를 꺼내 컵에 한 숟갈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내 톡 깨 넣고 노른자를 터뜨린 후, 뜨거운 물을 부었다. 뚜껑을 덮어 전자레인지로 넣었다.3분 뒤, 간단한 아침이 완성됐다.컵을 들고 나온 지설은 탈지우유를 부어 섞고, 위에 견과류를 흩뿌렸다.막 먹으려던 순간, 영민이 계단을 내려왔다.그는 지설이 오직 한 사람 몫의 식사만 차린 것을 보고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하지만 지설의 다친 팔을 떠올리자, 그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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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지설은 달력을 세어 보았다. 이혼숙려기간이 아직 스무날 남짓 남아 있었다.“아직 23일은 더 기다려야 해요. 선배님 말대로 전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않아요.”은화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전남편 쪽에서 괜히 붙잡고 늘어지는 건 아니지? 넌 학교 다닐 때도 유명했잖아. 그런 여자를 쉽게 놓아줄 남자가 몇이나 되겠어.”지설은 씁쓸하게 웃었다.“아니에요. 차라리 저랑 빨리 끝내고 싶어 할 거예요.”‘부영민의 눈에는 이제 오직 주유연만 있잖아.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겠지.’“그렇다면 다행이고.”은화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혹시라도 일이 꼬이면 두려워할 것 없어. 내가 아는 친구가 K시에 있는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데, 이혼 소송 전문이야. 그 친구만 있으면 네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야.”지설은 아마도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받아 들었다.“고마워요, 선배님.”...지설이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현관에는 낯선 하이힐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거실 소파 위에는 여자 옷과 가방이 흩어져 있었다.지설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2층에서 들려오는 유연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그래... 주유연이 아예 이 집으로 들어왔지. 오늘 퇴원했구나.’2층으로 올라가자 안방 쪽에서 웃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지설의 마음이 단번에 무거워졌다.‘아무리 곧 이혼할 사이라지만...’ ‘안방은 아직 내 공간인데...’ ‘제멋대로 들어와 씻고, 버젓이 눌러앉다니. 이건 선을 넘은 거야.’그녀는 문을 열자, 수건만 걸친 채 침대에 앉아 있는 유연이 보였다.그 옆에서는 영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여자의 발목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그 광경은 지설의 눈을 찌를 듯 불편했다. 그리고 속으로 들끓는 걸 억눌러, 간신히 입을 다물었다.유연이 서둘러 변명했다.“언니, 아까 욕실에서 미끄러져서요. 오빠가 도와준 것뿐이에요. 언니가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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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지설은 백화점에서 단정하고 세련된 옷 네 벌과 편안한 구두 두 켤레를 샀다. 계산서를 받아 들었을 때, 총액은 오백만 원을 훌쩍 넘었다.쇼핑백을 든 손이 무거웠지만, 지설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지설은 더 이상 값비싼 옷을 살 수 없었다.영민과 함께 연회에 나설 때 입던 고급 드레스는 모두 남편의 명의로 된 것들이었고, 그 어느 것도 지설의 소유가 아니었다.사적인 자리에서 그녀가 입는 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옷들뿐.영민은 그런 지설을 종종 농담처럼 ‘촌스럽다’고 놀리곤 했다.정작 지설에게는 단 한 번도 옷을 사준 적이 없으면서, 유연에게는 매년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 맞춘 옷을 공수해 보냈다.그 사실을 지설은 라희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이렇게까지 차별하는데, 내가 아직도 사랑받는다고 착각했다면...’‘그게 더 우스운 거지.’백화점 입구를 나서던 순간, 지설은 라희와 마주쳤다.선글라스를 벗은 라희의 시선이 곧장 지설의 쇼핑백으로 향했다.“유연 언니가 새언니 때문에 다쳐서 병원에 누워 있는데, 새언니는 여기서 쇼핑이라니? 오빠 돈으로 먹고 쓰면서, 이제는 뻔뻔하기까지 해요?”지설은 냉소를 흘리며 응수했다.“그분이 왜 다쳤는지, 아가씨 오빠가 제일 잘 알겠죠. 제가 왜 내연녀 간병을 자처해야 해요? 그리고 참고로 말하지만, 지금 산 건 내 돈이에요.”“언니의 돈?” 라희가 비웃었다.“언니가 무슨 돈을 벌어요? 일도 안 하면서 무슨 자기 돈타령이에요?”지설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순심 이모님 월급이 한 달에 550만 원이에요. 나는 아가씨 오빠의 합법적인 아내로, 남편의 밥 챙기고, 재활 도와주고, 생활 전반을 관리했어요. 남편이 생활비 주는 게 당연한 거죠. 내가 감사하며 빌어먹어야 할 돈이 아니에요.”“새언니!”라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예전 같았으면 순순히 고개를 숙였을 지설이, 지금은 단호하고 날카로웠다.“오빠가 언니를 버릴까 봐 두렵지도 않아요?”라희는 비웃듯 말했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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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지설은 새집에 산 물건들을 정리해 두고 나서야 영민과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현관 불을 켜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던 영민이 싸늘한 얼굴로 지설을 바라보고 있었다.지설은 신발을 갈아 신고는 그저 영민의 곁을 지나쳤고, 말을 섞을 의도는 전혀 없었다.그런데 영민이 불쑥 손을 뻗어 지설의 팔을 잡아채더니 그대로 소파 위로 내던졌다.부딪히는 순간, 다친 팔에 통증이 번져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하지만 영민은 지설이 다쳤던 일을 까맣게 잊은 듯, 늘 그랬던 것처럼 차갑게 입을 열었다.“오늘은 또 뭐야? 감히 날 카톡에서 차단해? 병원은 왜 안 갔어?”지난 3년 동안, 영민은 기분이 나쁠 때마다 지설에게 화풀이했다.말로만 끝나는 날도 있었지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을 쓴 적도 있었다.가장 심할 땐 지설이 가구에 부딪혀 멍든 채 사흘을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어야 했다.사과는 늘 있었다.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영민은 그렇게 말했다.지설도 그가 환자라는 걸 알기에 받아들이고 참아 주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영민은 이미 다시 일어섰고, 예전처럼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니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어.’지설은 차갑게 내뱉었다.“당신이 내 번호 차단할 땐 괜찮고, 내가 카톡 차단한 건 문제예요?”“그리고, 난 주유연 씨 간병인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다치든 말든, 내 책임 아니에요. 나도 그럴 의무 없어요.”영민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젓더니, 핸드폰을 꺼내 차단 목록을 열었다.거기엔 분명 지설의 번호가 있었다.‘아... 내가 차단했었지.’ 이유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그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피곤한 듯 지설을 바라보았다.예전엔 언제나 순한 양 같던 지설이, 요즘엔 너무 많이 달라졌다.‘그러고 보니... 이 사람이 해 주는 밥도 못 먹은 지 꽤 됐네.’영민은 자신이 최근 지설을 방치해왔다는 걸 깨달았다.그래서 목소리를 한층 누그러뜨리며 말했다.“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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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지설은 영민이 유연의 팔을 끼고 연회장을 누비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금세 흥미를 잃었다.‘똑같은 그림이지... 늘 저 여자 곁에만 서 있는 사람...’이어서 시선은 장경은 여사를 찾았다. 여사 곁에는 명문가 사모님들이 여럿 모여 있었기에, 지설은 바로 다가가지 않았다.한참이 지나 장 여사 곁이 한산해졌을 때, 그제야 지설이 걸음을 옮겨 선물을 내밀었다.장 여사는 지설을 보자 눈빛이 복잡해졌다.“정식으로 이혼까지는 겨우 5일 남았구나, 아가. 난 정말 네가 아쉽다.”그리고 기억 속엔 여전히 그날들이 남아 있었다. 영민이 두 다리를 쓰지 못하던 시절, 성질은 날카롭고 손찌검도 서슴지 않았다.열 명이 넘는 간병인이 그 앞에서 도망쳤다.어쩔 수 없이 장 여사가 꺼낸 마지막 수가 바로 ‘대리 아내’였고, 운 좋게도 지설 같은 착하고 성실한 아이를 만난 것이었다.지설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시간이 되면, 사모님 뵈러 오겠습니다.”이미 이혼을 앞둔 사이, 더는 ‘어머니’라 부를 수 없었다.장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가가 붉어졌다.그러고는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지설 손에 쥐여주었다.“여기 2억이 들어 있어. 내 나름의 보상이다. 그리고 전원주택 한 채도 정리해 뒀으니, 내일 비서 보내서 명의 이전 같이 해라.”지설은 잠시 카드를 내려다보다, 끝내 거절하지 않고 받아서 들었다.‘합의 결혼일지라도, 3년을 버텼지.’‘아내로서 할 일은 다 했고, 매일 모욕과 폭력을 참아냈지.’‘받아도 부끄러울 건 없어.’그녀의 머릿속엔 지난날이 스쳤다.영민의 폭언과 폭력, 무심한 외도, 끝없는 무시.‘부영민과 함께한 지난 3년... 내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시간이었어.’그때, 옆에서 불쑥 끼어드는 목소리가 들렸다.“엄마, 지설 언니한테 뭐 준 거예요? 아까 명의 이전이라던데, 그게 뭐예요?”라희였다.장 여사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딸을 째려보았다.“별거 아냐. 괜히 귀 쫑긋 세우지 마.”“엄마, 혹시 새언니한테 돈 준 거예요? 매달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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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지설의 입술은 하얗게 질러 있었고, 다리는 힘이 풀려 휘청였다.벽을 짚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그녀는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물었다.“제가 들었는데요... 제 택배가 5층에 있다고요.”직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5층은 내부 직원용 헬스장인데요. 사모님 택배가 거기에 있을 리가 없는데요?”순간, 지설의 머릿속에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그럼... 어제 경비원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거야?’지설은 벽을 짚으며 천천히 건물을 나와 아파트 입구 경비실로 향했다.어제 자신에게 택배 이야기를 했던 경비원은 지설을 보자 눈빛이 흔들렸다.지설은 두 손을 꽉 움켜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예요?”경비원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부 대표님께서 하라는 대로 한 겁니다.”‘부영민... 당신이 날 엘리베이터에 가두라고 지시했다고?’지설은 허무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작 주유연이 면전에 굴욕을 줬다고...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히는 거야?’분노와 절망이 동시에 치밀어 올라, 그녀의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집에 돌아온 지설은 핸드폰을 충전한 뒤, 차단해 두었던 영민의 연락을 풀고 메시지를 보냈다.[부영민, 당신 정말 뻔뻔해!!]잠시 후, 보이스톡이 걸려 왔다.영민의 차갑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앞으로도 말 안 들으면... 어제 같은 일, 계속 겪게 될 거야.]그 순간, 지설의 인내심은 무너졌다. 처음으로 입에서 거친 욕이 튀어나왔다.“부영민, 당신 진짜 쓰레기야!!”그녀는 전화를 끊고 다시 차단해 버렸다.차단됐다는 사실에 불쾌해진 영민은 옆에 있던 비서 오리정을 노려보며 말했다.“내가 뭐랬지? 그냥 집 물과 전기 하루 끊으라고 했잖아. 좀 불편하라고. 근데 이 사람이 날 쓰레기라고 욕을 해? 이게 말이 돼?”리정은 얼굴이 잔뜩 굳어 조심스레 답했다.“저도... 사모님이 그렇게까지 화내실 줄은 몰랐습니다.”옆방에서는 유연이 핸드폰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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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내가 직접... 서명한 거라고?’영민의 뇌리를 스친 기억.한 달 전, 지설이 어떤 서류를 들고 와 사인을 부탁했었다.그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또 돈 달라는 건가?’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성의 없이 이름만 적어줬다.지금 와서야 알았다.그 서류가 바로 이혼합의서였다는 사실을.‘왜? 왜 말하지 않았지?’ ‘떠날 생각이었으면 적어도 한 번은 내게 직접 얘기했어야지.’영민은 혼란스러웠다.지설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어왔다.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차갑게 대해도, 늘 곁을 지키던 여자가 아니었나?‘그런데... 왜 갑자기? 왜 이제 와서 날 버린 거야?’영민은 전화를 붙잡은 채 장경은 여사에게 물었다.“어머니, 왜 그 사람을 막지 않았어요? 전 이혼할 생각, 단 한 번도 없었어요.”장 여사는 더더욱 어리둥절했다. 아들은 지설에게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니... 네가 지설한테 관심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네가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니...]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말했다.[지설은 이미 떠났어. 그 아이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 것 같아. 이젠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니?]그 말에 영민의 표정은 더 일그러졌다.“아니에요! 전 동의한 적 없어요. 이건 무효예요. 그리고 지설은 제 아내예요. 설령 죽어도 제 여자예요.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장 여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전화를 끊은 영민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내리며 리정을 불렀다.“사모님 지금 어디 있는지 당장 찾아.”리정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은 늘 주유연 씨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사모님이 깨끗하게 떠나 주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왜... 버려진 사람처럼 안달이신 거지?’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유연도 이해할 수 없었다.귀국하면 지설과는 확실히 갈라서고, 자신과 결혼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런데 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설마... 심지설을 좋아한다고? 말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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