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002. 누군가 황태자와 계약했다
저주라면 차라리 쉬웠다. 끊으면 된다. 정확히 어디를 잘라야 하는지 찾고, 반동을 계산하고, 남은 마력흔을 봉합하면 끝이다. 계약은 달랐다. 계약은 누군가의 의지와 선택을 전제로 한다. 나는 별궁의 작은 서재를 임시 연구실로 바꾼 뒤 세 시간째 같은 문장을 뜯고 있었다. 바닥에는 실패한 술식지가 쌓였고, 창가 탁자에는 분석용 마석이 다섯 개나 식어 있었다. 레오니스는 맞은편 소파에서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그가 문서에서 눈을 들었다. “좋은 것부터 듣지.” “당장 죽지는 않으십니다.” “그게 좋은 소식인가.” “제국 기준으로는 상당히 좋은 소식입니다.”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에드윈이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는 건지 한숨을 참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레오니스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나쁜 소식은.” “지금 당장은 이 계약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책상 위에 황실 결계도를 펼쳤다. “전하의 몸에 있는 계약문은 황실 결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전하의 마력만 잘라내면 결계가 반동을 일으킵니다.” 레오니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에 섰다. “반동이 일어나면?” “황궁 일부가 무너지거나, 전하의 마력핵이 먼저 깨집니다.”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높지.” “후자입니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결계도 위에 올린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을 뿐이었다.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너무 익숙하게 듣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 손에서 시선을 떼고 빈 종이를 끌어왔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네 칸을 그었다. 대상. 조건. 명령. 대가. “계약을 부술 수 없다면 다른 계약으로 속이면 됩니다.” 레오니스의 시선이 종이 위를 따라왔다. “새 계약이 기존 계약보다 먼저 반응하게 만들겠다는 건가.” “정확합니다.” 처음으로 답이 빨랐다. 나는 그의 이름을 적었다. 레오니스 발테른. 그 아래에 내 이름을 썼다. 비비안 아르델. 두 이름 사이에 선을 하나 그었다. 에드윈의 손이 멈췄다. “아르델 경도 계약에 들어갑니까?” “그래야 합니다. 전하에게 들어가는 부담 일부를 제 쪽으로 흘려야 하니까요.” 레오니스가 내 얼굴을 봤다. “그대에게 어떤 영향이 가지.” “마력 일부를 씁니다. 피로가 조금 늘 수 있고요.” “조금?” “계산상으로는.” “계산이 틀리면.” “제가 알아서 감당합니다.” 그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그 답은 마음에 들지 않는군.” 펜끝이 멈췄다. 황태자가 자기 목숨을 앞에 두고 치료자의 안전부터 확인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하, 이건 자선이 아닙니다. 계약금도 받았고 성공하면 추가 보수도 받을 겁니다.” “결국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건가.” “대부분의 문제는 그렇습니다.” “이것도?” 그가 자기 가슴의 검푸른 문양을 가리켰다. “저주는 비쌉니다. 계약은 더 비싸고요.” 레오니스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방 안의 긴장이 그제야 느슨해졌다. 나는 다시 종이로 시선을 내렸다. “조건은 하루 한 번 상호 인식. 서로 살아 있고 계약 의지가 유지되는 걸 확인하는 정도면 됩니다. 인사나 악수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감정이나 기억에는 영향을 주나.” “없습니다.” “의지에는?” “없습니다.” 그 질문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레오니스는 차분했다. “계약이라면 그 부분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나.” 맞는 말이었다. 황태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이름으로 수많은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조약, 서약, 정치적 약속, 언젠가는 혼인까지. 그래서 더 이상했다. 누군가 그런 사람의 몸에 수락 조건을 숨겨 넣었다. “진행하겠습니다.” 레오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 책상 위를 비우고 마석 네 개를 사방에 배치했다. “셔츠를 조금 풀어 주세요. 계약문의 중심이 심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가 손을 들어 단추를 풀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검푸른 문양이 드러났다. 나는 한 걸음 가까이 갔다. “닿겠습니다.” “허락하지.” 손바닥을 그의 가슴 바로 위에 대고 마력을 흘렸다. 금빛 선이 검푸른 문장 사이로 스며들었다. 기존 계약이 내 마력을 밀어내려다가, 내가 새로 그은 선을 읽고 방향을 바꿨다. 좋다. 여기까지는 계산대로였다. 문제는 마지막이었다. 새 계약에는 레오니스가 원하는 하나의 문장이 필요했다. 나는 손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전하께서 가장 원하는 건 무엇입니까?” 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호흡 한 번이 내 손바닥 바로 아래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해방되고 싶다.” 그 순간. 금빛 선 하나가 내가 예상한 방향이 아니라 그의 옷깃 쪽으로 번졌다. 나는 시선을 들었다. 셔츠 가장 위 단추가 아주 작게 떨렸다. 딱.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015. 오늘 밤, 셔츠를 풀어야 합니다별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시녀복부터 벗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황후궁에서 누가 따라붙었을지 모른다.나는 그대로 연구실로 쓰는 작은 서재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책상 위에는 어젯밤 베껴 둔 계약문이 펼쳐져 있었다.레오니스가 맞은편에 앉았다.“아르망.”내가 먼저 이름을 썼다.“고대 황실 봉인술 기록에서 세 번 나옵니다.”“공작가가 직접 저주를 걸었다는 뜻인가?”“아직은 아닙니다.”나는 문장 옆에 선을 그었다.“술식의 계보가 같습니다. 누가 사용했든 뿌리가 아르망 계열일 가능성은 높아요.”레오니스가 의자에 기대었다.“확인하려면?”나는 펜을 멈췄다.방법은 있었다.문제는 방법이 너무 직접적이었다.“가슴 쪽 문양을 다시 봐야 합니다.”“봤잖나.”“그때는 옷이 갑자기 풀린 상태였습니다. 전체 구조를 정확히 기록하지 못했습니다.”“그대가 천장만 봤으니까.”나는 펜을 내려놓았다.“그 상황에서 전하를 계속 보는 편이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지금은 볼 건가?”대답이 잠깐 늦었다.레오니스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휘었다.“연구를 위해서라면 봐야 합니다.”“그럼 보면 되겠군.”왜 저 사람이 더 태연한지 모르겠다.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침실로 가시죠.”***밤이 깊은 뒤에야 준비가 끝났다.마리벨과 에드윈도 바깥 동선을 확인하고 물러났다.황태자 침실.낮에 내가 공격했던 침대는 이제 멀쩡했다.레오니스는 창가 쪽 의자에 앉았다.검은 셔츠.목까지 단추가 잠겨 있었다.나는 작은 마력등과 기록지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푸십시오.”레오니스가 나를 봤다.“내가?”“전하에 셔츠가 아닙니까?”“그대가 확인해야 한다고 했지.”“확인과 탈의는 별개입니다.”“손을 내려 두면 더 잘 보일 텐데.”이상한 논리였다.그런데 맞는 말이기도 했다.내가 직접 풀면 단추 사이마다 문양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나는 결국 그의 앞에 섰다.거리는 팔 하나보다 짧았다.“움직이지 마십시오.”
014. 차를 따르다 손이 닿았다“비비.”세라피나는 식사가 끝났는데도 나를 보내지 않았다.“차를 새로 가져오렴.”“예, 폐하.”“레오니스가 마시는 약차로.”시험이다.그 생각부터 들었다.약차의 종류는 여러 가지였다.황태자가 평소 마시는 건 체온과 마력 순환을 안정시키는 청색 잎차. 물이 너무 뜨거우면 성분이 깨지고, 식으면 쓴맛이 강해진다.나는 주전자를 받아 손바닥으로 온도를 쟀다.조금 높다.마법으로 낮추면 티가 난다.차가운 물을 섞으면 농도가 흐려진다.잠시 기다렸다.세라피나가 물었다.“왜 따르지 않니?”“지금 따르면 향이 지나치게 날아갑니다.”말하고 나서 깨달았다.너무 전문가답다.세라피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차를 잘 아는구나.”“전에 배운 적이 있습니다.”“시녀가?”“필요해서요.”대답이 또 너무 명확했다.마리벨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조금 흐려도 돼요.나는 뒤늦게 덧붙였다.“주인께서 차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세라피나는 더 묻지 않았다.대신 찻잔을 손끝으로 밀었다.“그럼 네가 적당하다고 생각할 때 따라 보렴.”잠시 뒤 주전자를 들었다.잔 높이를 맞추고 기울였다.맑은 청색 차가 얇은 줄기로 떨어졌다.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정확하구나.”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나는 잔을 받침과 함께 들어 레오니스 쪽으로 옮겼다.손목은 아까보다 안정적이었다.그와 세 걸음 안쪽.이제 익숙해진 거리였다.“전하.”잔을 건넸다.레오니스가 손을 뻗었다.받침 아래를 잡을 줄 알았다.그런데 그의 검지가 내 손가락 끝에 닿았다.순간 손목 안쪽의 검푸른 선이 서늘해졌다.뜨거워지는 것과 반대였다.계약이 완전히 안정됐을 때만 오는 감각.그는 잔을 받았다.받았는데 놓지 않았다.내 손은 아직 받침 아래에 있었다.레오니스의 손가락이 가장자리 가까이에 닿아 있었다.반 박자.정말 그 정도였다.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이상하게 길었다.나는 먼저 손을 뗐다.그제야 잔이 그의 손으로 완전히 넘어
013. 황후 앞에서는 시녀입니다 황후 세라피나는 웃고 있었다. 그래서 더 긴장됐다. 차가운 얼굴은 경계하면 된다. 웃는 얼굴은 어디까지가 친절이고 어디부터가 칼인지 계산해야 한다. “레오니스.” 세라피나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식사하는데 표정이 너무 굳었구나.” “평소와 같습니다.” 레오니스가 그녀의 손등 위에 형식적으로 입을 맞췄다. 세라피나의 눈이 그를 지나 내게 닿았다. 딱 한 번. 짧았는데 옷 안쪽까지 훑긴 기분이었다. “그 아이가 새 전속 시녀인가?” “그렇습니다.” “이름이 비비라고 했지?” 나는 배운 대로 한 걸음 나가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목소리를 낮추고 끝을 짧게 했다. 세라피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내리깔고 있는 동안에도 시선이 느껴졌다. “얼굴을 들어 보렴.” 이건 교육에 없었다. 고개를 들었다. 눈을 바로 마주치면 안 된다. 그래서 코끝과 턱 사이쯤에 시선을 두었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스물셋입니다.” “전에는 어디서 일했니?” 대답을 준비했다. 그보다 레오니스가 먼저 말했다. “내가 직접 데려왔습니다.” 세라피나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단다.” “비비의 이전 근무지는 황후궁 식사와 상관없을 겁니다.” “전속 시녀를 새로 들였다니 궁금해서 그렇지.” 부드러운 대화였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 공기가 얇게 굳어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세라피나가 웃었다. “그래. 식사부터 하자꾸나.” *** 문제는 자리였다. 황후와 황태자가 긴 식탁 양쪽에 앉았고 시녀들은 벽 쪽에 섰다. 정해진 위치대로라면 나는 레오니스에게서 일곱 걸음쯤 떨어져야 했다. 처음 두 걸음까지는 괜찮았다. 세 번째에서 손목이 따뜻해졌다. 다섯 번째에서 열이 뚜렷해졌다. 정해진 자리까지 가면 안 된다. 나는 물병을 들었다. 잔
012. 시녀는 귀족처럼 말하면 안 됩니다“가문은 없습니다.”나는 아주 조금 늦게 대답했다.문 앞의 시녀가 고개를 갸웃했다.“그런데 말투가 귀족 같아서요.”역시 들렸다.마리벨이 자연스럽게 내 팔을 잡았다.“비비가 전에 귀족가에서 오래 일했거든요. 주인 말투를 따라 하는 버릇이 있어요.”“아.”시녀는 납득한 듯했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다.레오니스가 그때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궁금한 게 많군.”낮은 목소리 하나에 세 사람의 허리가 동시에 굽었다.“죄송합니다, 전하.”그들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마리벨이 나를 돌아봤다.“큰일 났어요.”“넘어갔지 않습니까?”“오늘은요.”그녀는 내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자세부터 낮췄다.“비비 씨는 시녀처럼 말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말은 그냥 말 아닙니까?”“아니에요.”“같은 제국어인데요.”“그게 문제예요.”***한 시간 뒤.나는 별궁 작은 응접실 한가운데를 다섯 번째 왕복하고 있었다.“허리를 조금만 풀어요.”마리벨이 말했다.“풀었습니다.”“전혀요.”“더 풀면 자세가 무너집니다.”“시녀는 검술 대련하러 가는 게 아니잖아요.”나는 걸음을 멈췄다.옆 소파에 앉은 레오니스가 문서에서 시선을 들었다.그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굳이 볼 필요가 없는 교육을 처음부터 끝까지.“전하께서는 왜 안 가십니까?”“내 전속 시녀 교육 아닌가.”“환자분이 참견할 일은 아닙니다.”“지금은 고용주이기도 하지.”“아닙니다.”“내 궁에서 서녀 옷을 입고 뒤를 따라다니는데?”나는 회색 치맛자락을 내려다봤다.반박하기 어려운 부분만 골라 말한다.마리벨이 손뼉을 한 번 쳤다.“말투도요. 비비 씨는 질문을 받을 때 너무 정확하게 대답해요.”“부정확하게 답하라는 겁니까?”“조금 흐려도 돼요. 그리고 사람 눈을 그렇게 똑바로 보지 말고요.”“왜죠?”“시녀가 황족이나 고위 귀족 눈을 오래 마주 보면 도전적으로 보여요.”불합리했다.상대 얼굴을 보지 않고 어떻게 표정과 마력 흐름을 읽
011. 손을 잡은 채 문이 열렸다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세 개의 흰 앞치마였다.별궁 시녀 셋이 문턱 앞에서 동시에 멈췄다.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나를 찾았다.정확히는 레오니스의 등 뒤에 반쯤 가려진 나를.아까까지 천장에 붙어 있던 시트는 다행히 침대 위에 내려와 있었다. 다만 복도로 날아갔던 베개 하나가 시녀들 발치에 남아 있었다.제일 앞에 선 시녀가 베개를 내려다봤다.그다음 천장을 봤다.마지막으로 나를 봤다.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상승기류 계산에 오차가 있었습니다.”침묵이 생겼다.마리벨이 눈을 감았다.레오니스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웃은 것 같다.“무슨…… 상승기류요?”“침구를 펼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겁니다.”“침구를요?”“네.”더 설명하면 이해할 것 같지 않았다.나는 입을 다물었다.레오니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했다.“오늘부터 내 전속 시녀로 일할 비비다.”세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조금 달라졌다.황태자가 직접 전속 시녀를 들이는 일이 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전속이요?”“문제가 있나?”“아닙니다, 전하.”시녀들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나는 그 틈에 레오니스의 뒤에서 한 걸음 빠져나가려 했다.전속 시녀라고 소개됐는데 계속 등 뒤에 숨어 있는 편이 더 이상했다.발끝을 뒤로 옮긴 순간 손목이 뜨거워졌다.얇은 장갑 안쪽에서 검푸른 선이 피부를 핥듯 달아올랐다.동시에 레오니스의 제복 어깨가 아주 작게 당겨졌다.멈췄다.이 정도 거리도 안 되는 건가.레오니스는 앞을 보고 있었다.그런데 오른손이 등 뒤로 내려왔다.나를 잡지는 않았다.손바닥도 펼치지 않았다.손가락만 조금 뒤로 내밀었다.시녀들 눈에는 제복 옆선에 손을 둔 것처럼 보일 거리였다.나는 그 손끝을 봤다.그가 기다렸고, 내가 뒤로 들어갔다.조금 전에도 그랬다.이번에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검푸른 선이 다시 따끔했다.나는 소매 안에서 손을 움직였다.새끼손가락 끝이 그의 검지에 닿았다.열이 바로 가라앉았다
010. 내 뒤에 서전속 시녀가 된 지 삼십 분 만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첫째.차는 마법으로 따르지 않는다.둘째.황태자 침실의 침대는 공격하지 않는다.“비비 씨.”마리벨이 내 손에서 은쟁반을 받아 내려놓았다.“찻주전자를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노려본 게 아닙니다. 주둥이 각도를 보고 있었어요.”“왜요?”“유량이 일정해야 하니까요.”마리벨이 잠깐 나를 봤다.사람이 이해를 포기하기 직전에 짓는 얼굴이었다.“그냥 따르면 돼요.”“그러면 잔마다 양이 달라집니다.”“원래 조금은 달라요.”“왜죠?”“사람 손으로 하니까요.”이상한 논리였다.그래도 이번에는 마법을 쓰지 않았다.찻주전자를 천천히 기울여 두 잔을 같은 높이까지 채웠다.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됐죠?”“……네. 너무 잘됐는데요.”“그럼 왜 표정이 그렇습니까?”“차 한 잔에도 실수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보여서요.”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그 말은 생각보다 정확했다.나는 주전자 손잡이를 놓았다.“다음은 뭡니까?”마리벨은 더 묻지 않았다.“침실 정리요.”***황태자의 침실은 지나치게 넓었다.짙은 남색 커튼.검은 나무 침대 기둥.흰 시트.낮게 깔린 회색 러그.장식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모든 물건이 비싸 보였다.그리고 이미 깨끗했다.“사용했잖아요.”“한 사람이 여섯 시간 누웠다고 방 전체가 망가지진 않습니다.”“그래도 정리하는 게 일이에요.”마리벨은 익숙하게 침대 끝 이불을 걷었다.나도 반대편을 잡았다.생각보다 무거웠다.“이걸 매일 합니까?”“네.”“비효율적이네요.”“시녀 일의 절반은 비효율을 티 안 나게 반복하는 거예요.”그 말은 제법 철학적이었다.문제는 시트였다.한쪽을 당기면 반대쪽이 올라왔다.반대쪽을 내리면 방금 편 부분에 주름이 생겼다.구조적으로 잘못된 물건이었다.“마리벨.”“네.”“이 침대는 결함이 있습니다.”“침대가요?”“표면 장력이 일정하지 않아요.”“천이니까요.”결국 손가락을 들었다.마리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