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화

Author: 김하이
며칠 후, 송하나는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녀는 온라인으로 집을 알아봤는데 월세 100만 원에 연세 계약이었다.

ATM 기기에서 돈을 찾으려고 확인해 봤더니 통장에 단 몇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또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이강우! 강현 갑부에 재산이 수십 조인데 X발 자기 아내한테 이렇게까지 인색한 거야?”

“내연녀한텐 툭하면 몇백억, 몇천억씩 퍼붓고 경매도 최고가로 낙찰하고 건물까지 기부해대면서, 막말로 지나가는 거지에게도 몇만 원 쥐여줄 기세인데 왜 정작 자기 아내한테는 낯선 사람보다도 못하게 대하는 거야!”

“하나야, 너 대체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지내온 거니?”

송하나는 마음이 시큰거렸다.

이강우는 분명 그녀를 뼛속까지 증오할 것이다.

4년 전.

홍경자가 그녀를 이씨 저택으로 초대했다.

저녁 무렵, 폭우가 쏟아져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홍경자는 그녀더러 이강우의 바로 옆방에서 하룻밤 묵고 가라고 했다.

한편 이강우는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누가 그의 술에 약을 탔는지 한밤중에 만취 상태로 집에 돌아와 방을 헷갈려서 결국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

또한 홍경자는 원래 두 사람을 이어주고 싶어 했다.

다음 날, 그들이 함께 잔 걸 알게 되고는 이를 핑계로 삼아 이강우에게 그녀와의 결혼을 강요했다.

이 일로 이강우는 송하나를 단단히 오해했다.

재벌가에 시집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로 여겼고 조종당하는 게 딱 질색인지라 본인만의 방식으로 그녀에게 가혹한 복수를 시작했다.

이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서민경은 그녀에게 용돈을 줄 때마다 항상 자존심을 짓밟고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나 씨는 종일 장을 봐요? 밥을 해요? 그렇다고 전기세나 관리비를 내는 것도 아닌데 대체 돈 쓸데가 어디 있죠? 도련님이 매달 몇십만 원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줄 알아요!”

송하나는 물욕이 아주 적은 사람이다.

이강우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늘 아래 가장 큰 행복이라 전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자신이 이씨 가문의 며느리 노릇을 참으로 비굴하게 해왔음을 깨달았다.

카드를 지갑에 다시 넣다가 우연히 클립 안에서 오래된 카드 한 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대학 시절 쓰던 카드였다.

송하나가 해마다 받던 장학금과 각종 대회 수상금이 이 카드에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 방세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듯싶었다.

카드를 ATM 기기에 넣었는데 화면에 놀랍게도 엄청 긴 숫자가 나타났다.

옆에 있던 차설아도 입이 쩍 벌어졌다.

“헐! 이게 뭐야? 코드 오류인가?”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그녀는 숫자를 꼼꼼하게 세어보았다.

“무려 200억이 넘잖아!”

송하나 역시 이 금액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명세서를 확인해보니 한 제약회사에서 지급하는 특허 로열티 수익이었고 매달 수억 원씩 입금되고 있었다.

학창 시절.

그녀는 지도교수와 함께 제약 관련 연구를 진행하여 특효약을 개발했고 특허까지 취득하여 학교에서는 파격적으로 그녀에게 해외 박사과정 지원 자격을 부여했다.

당시 송하나는 오로지 이강우와 결혼할 생각에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해외에서 심화 학습할 기회를 포기했고, 연구 성과를 전적으로 지도교수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다.

지도교수가 애타게 권유했지만 그녀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지도교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은행 계좌번호를 물었고, 그녀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송하나는 이제야 알게 됐다...

이 특허 로열티 수익이 매달 자신의 계좌로 입금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돈의 출처를 들은 차설아는 그녀에게 감탄하여 무릎을 꿇을 지경이었다.

“하나야, 넌 정말 천재야! 대학교 때 그냥 연구 한번 했다고 이렇게 큰돈을 벌다니! 진짜 너무 대단해.”

송하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렇게 오랜 세월 이씨 가문의 며느리로 살아오면서 그녀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자신이 15살 어린 나이에 수석으로 국내 최고 의대에 입학했던 천재 소녀였다는 것을.

게다가 20살에는 특효약을 개발하여 제약 업계 전체를 뒤흔들었던 촉망받는 연구자였다.

멍하니 넋 놓고 있던 사이, 부동산 중개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송하나 씨, 그 집은 어떻게... 임대하시겠어요?”

“아니요, 임대는 안 할래요.”

“혹시 집주인이 팔 의향이 있는지 알아봐 주시겠어요? 제가 사고 싶어서요.”

“지금 바로 집주인에게 전화해 볼게요!”

그날 오후.

송하나는 매매 계약서에 서명하고 소유권 이전 절차를 마쳤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보금자리로 이사했다.

차설아가 그녀의 새집을 함께 꾸미고 소소하게 집들이 파티까지 열어주었다.

“우리 하나 인간쓰레기 개자식 이강우한테서 벗어난 거 진심으로 축하해요. 앞으로는 꽃길만 걸을 거예요.”

밤이 깊어갈 무렵.

송하나는 잠자리에 들려다 문득 안재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안재준은 그녀의 아버지가 생전에 고용했던 운전기사였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할 리가 없었다.

송하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기사님.”

“하나 씨, 그해 회장님과 사모님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닐 가능성이 커요.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신 겁니다.”

송하나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기사님 혹시 뭔가 알아낸 거예요? 우리 부모님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셨는데요? 누가 그분들을 해친 거예요?”

“범인은 바로 하나 씨 삼촌 송종현이에요. 아직은 죄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지만, 회장님과 사모님의 죽음은 분명 송종현 씨와 관련이 있어요. 제가 장담합니다!”

송종현...

송하나는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모든 이익을 독차지한 것은 그녀의 삼촌 가족이었다.

그들은 부모님이 20년간 피땀 흘려 일궈온 모든 것을 빼앗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탐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 때문에 부모님의 목숨까지 앗아갈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송하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눈을 감기만 하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의 참혹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악몽에서 깨어난 송하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고 범인 가족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다음 날 오전.

차설아가 그녀와 함께 쇼핑을 나서기로 했다.

“하나야,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어제 제대로 못 잤어?”

“새 침대라서 그런지 습관이 안 되더라.”

차설아가 그녀에게 립스틱을 얇게 발라주었다.

“이제 훨씬 보기 좋다!”

“가자. 우리 하나 이렇게 예쁘고 몸매도 좋은데 옷도 몇 벌 안 사면 그건 완전 낭비지.”

차설아는 송하나의 손을 잡고 강현의 고급 백화점으로 향했다.

송하나는 옅은 은색의 오프숄더 롱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고객님, 안목이 정말 뛰어나시네요. 이 드레스는 올해 저희가 선보인 런웨이 한정판이라 딱 한 벌 있어요!”

점원이 드레스를 꺼내 송하나에게 건넸다.

이제 막 손을 뻗으려는 순간, 옆에서 누군가가 먼저 낚아챘다.

“이거 괜찮네요. 포장해 주세요.”

송하나는 고개를 돌리고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정교한 메이크업에 옷차림도 깔끔한 이 여자는 바로 송하나의 삼촌 송종현의 딸 송태리였다.

예전에도 송태리는 그녀의 집을 독차지하고 그녀를 괴롭히기를 일삼았다.

거기에 어젯밤 안재준과의 통화를 생각하니...

송하나는 그녀를 향한 분노가 점점 더 치밀었다.

“내가 먼저 봐둔 거야. 손 떼!”

송하나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한편 송태리는 그녀를 알아보고 눈가에 당혹감이 스쳤다.

거만한 표정으로 송하나를 흘겨보더니 의심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이 드레스 무려 5600만 원이야. 네까짓 게 살 수나 있겠어?”

“알 바야? 신경 꺼!”

직설적인 성격의 차설아가 드레스를 즉시 뺏어왔다.

“하나야, 가서 한번 입어 봐.”

송하나가 피팅룸으로 가려던 찰나, 굵고 힘 있는 커다란 손이 갑자기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머리 위에서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거절할 수 없는 위엄을 띠고 있었다.

“그 옷 태리 줘. 대신 내가 보상으로 다른 옷 사줄게.”

머리를 든 송하나는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 앞에 선 이 남자는, 원수의 딸에게 옷을 양보하라고 말하는 이 남자는 뜻밖에도 그녀의 남편 이강우였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50화

    “잠시 눈 좀 붙일래요? 제가 볼 테니. 무슨 일 있으면 깨워줄게요.”심성빈이 제안했다.송하나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말하려던 찰나, 그녀의 시선이 우연히 멀리 보이는 좁은 골목 출구에 닿았다.짙은 색 후드티를 입은 한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모자챙이 얼굴을 거의 다 가릴 정도였다.송하나의 숨결이 멈칫하며 순간 몸을 일으켰다.“심 대표님, 저쪽 보세요!”성빈이 송하나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심성빈은 순간 눈빛이 굳어졌다.걸음걸이, 체격, 심지어 걸을 때 살짝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까지, 모두 CCTV 화면 속 인물과 높은 유사성을 보였다.“그 사람이에요!”심성빈의 낮고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것 같아요. 택배 보내러 가는 것 같아요!”‘역시!’겨드랑이에 책 크기의 딱딱한 물체를 끼고 있었는데, 검은 비닐봉지로 단단히 싸고 있었다.심성빈은 즉시 차를 출발시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극도로 조심스럽게 그 사람의 뒤를 쫓았다.아니나 다를까 그는 근처의 택배 대리점에 들렀다.심성빈은 멀찍이 길가에 차를 세웠다.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그 사람이 택배를 보내는 틈을 타 가게 안에서 포위하려 했다.바로 그때, 근처에서 폐기물을 가득 실은 밀차와 자전거가 충돌하며 옆으로 넘어졌고 병과 상자들이 사방에 흩뿌려지며 큰 소리를 냈다.한 노인이 당황하며 소리치자 순식간에 주변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고, 택배 대리점에 막 들어가려던 후드티를 입은 남자까지도 마치 놀란 새처럼 고개를 홱 돌렸다.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람들을 훑다가 마침 심성빈과 송하나를 발견했다.두 사람의 분위기는 이 도심 속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아, 즉시 그 남자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그는 망설임 없이 겨드랑이의 물건을 움켜쥐고 홱 몸을 돌려 옆에 있던 더 좁은 골목으로 뛰어들었다.“젠장, 우리를 눈치챘어요!”송하나가 외쳤다.“심 대표님, 빨리 쫓아요!”두 사람은 골목 방향으로 달려갔다.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9화

    송하나는 그가 바람 외도 현장을 잡으러 온 듯한 추궁에 불쾌해졌다.시선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그의 심문하는 눈빛과, 두 눈에 서린 분노가 너무 명확하여 송하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이강우의 시선을 맞받아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이 대표님, 외도 현장 잡으려고 멀리 청림시까지 날아오신 거예요?”이강우는 눈썹을 찌푸렸다.“실망하게 해드려서 미안하네요.”송하나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저와 심 대표님은 아주 깨끗해요. 공과 사 구분도 확실하고요. 우리는 이 대표님처럼 선을 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송하나.”이강우는 얼굴이 굳어지며 낮은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내가 하나의 마음속에서 이렇게 비열하고 저속한 남자였어?’송하나는 더는 그와 말다툼할 생각이 없어 몸을 돌려 떠났다.이강우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그는 무언가 가슴을 막고 있는 것처럼 숨이 꽉 막혀 않아 질식할 것만 같았다.심성빈은 이강우의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으면서도 분풀이조차 하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추적 작업이 순조롭지 않아. 송하나 씨가 예민해져서 말에 가시가 돋쳤을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마.”이강우는 대답하지 않고 짜증 난 듯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심성빈은 손목시계를 보았다.“우리 오전에는 잠복하러 가야 하거든. 강우야, 혹시 마음이 쓰이면 같이 가볼래?”그는 이렇게 말하며 그의 불안한 마음을 덜어주려고 했다.이강우는 바로 거절했다.“됐어. 나는 청림시에 부동산 프로젝트를 검토하러 온 거라 일정이 빠듯해.”그는 절대 송하나가 걱정돼서 쫓아왔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인정하면 속셈을 그대로 들켜 버리니 말이다.심성빈은 이강우가 핑계를 댄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까밝히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럼 먼저 업무를 처리하고 나중에 다시 연락해. 청림시는 그리 크지 않으니까.”말을 마친 후 그는 더 머물지 않고 송하나를 쫓아 재빨리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걸어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8화

    “언니가 어디로 갔는지 말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태리 선배의 목소리에서 언니를 증오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분명 또 무슨 나쁜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 거예요. 하나 언니, 꼭 조심해야 해요.”송하나는 휴대폰을 꽉 잡았다.“알겠어. 알려줘서 고마워. 조심할게.”전화를 끊고 난 그녀는 휴대폰을 가볍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심성빈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그의 목소리에는 알아채기 힘든, 걱정하는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무슨 일 있어요?”송하나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그녀는 다시 지도 위로 시선을 돌렸다.“심 대표님, 계속하시죠.”심성빈은 그녀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그는 지도에 몇 군데 표시하고 낮은 목소리로 분석을 이어갔다.“신현숙 씨가 이 사람과 연락한 후 약을 부치기까지 불과 30분밖에 안 걸렸어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멀리 도망갈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의 거처는 분명히 이 반경 안에 있을 거라고 판단해요.”그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빨간 펜으로 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렸고, 이전 발송지 주소와 결합하여 범위를 더 좁혀갔다.“그리고 두 번 모두 사람이 많고 관리가 허술한 곳에서 우편물을 보낸 점을 고려하면 이 사람의 은신처 역시 이 구역 안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곳 환경에 익숙할 테니 분명히 이 근처에서 활동할 거예요.”송하나가 동그라미로 표시된 지역을 바라보았다.월세가 싸고 어중이떠중이들이 뒤섞인 곳으로, 숨기엔 적합한 곳이었다.“그럼 지금 이 지역으로 다시 가서 잠복하며 조사해 봐요. 이 사람이 다시 움직이면, 혹은 우리가 운이 좋으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그래요.”심성빈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시간이 급하니 지금 바로 나가요.”두 사람은 함께 문 쪽으로 걸어갔다.송하나가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그러나 문밖의 상황에 그녀는 발걸음이 멈췄다.키 큰 남자가 방문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거리의 복도에 서 있었다.이강우였다.그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7화

    “대표님은 오늘 아침 일찍 긴급 출장 가셨어요. 급하게 처리할 게 있으신가 봐요.”‘출장이라고? 어젯밤에 나를 바래다 줄 때까지는 괜찮았잖아? 출장 간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서둘러 떠났을까?’송태리의 심장이 다시 덜컥 내려앉았다.“어디로 출장 가셨는데요?”“청림시로 가셨다고 들었어요.”비서는 사실대로 대답했다.‘청림시?’송태리는 보온통을 꽉 잡았다.이 지명을 듣자마자 그녀는 어젯밤 최로운과 심성빈의 영상 통화가 떠올랐다.어제 심성빈은 자신이 청림시에 있다고 했었다.통화 중에 어렴풋이 송하나와 비슷한 목소리가 들렸었고 오늘 아침 이강우가 급하게 그곳으로 떠났다.‘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이상해.’그녀는 비서에게 억지 미소를 지으며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네, 알겠어요.”이원 그룹 빌딩을 막 나서자마자 송태리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 임효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금방 연결되었고 임효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선배님?”“임효민.”송태리는 일부러 부드럽게 말했다.“송하나가 오늘 회사에 있어?”“하나 언니요?”임효민는 망설이며 목소리에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언, 언니는 회사에 없어요.”“없다고?”송태리는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추궁하듯 물었다.“어디 갔는데?”“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임효민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고 그 안에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담겨 있었다.“아마도... 출장 갔나 봐요. 구체적으로 어디로 갔는지는 저도 몰라요.”‘출장이라고? 그것도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고?’송태리는 차가운 기운이 발밑으로부터 머리끝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그녀는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심성빈이 청림시에 있고 이강우가 오늘 아침 급히 청림시로 갔다.송하나도 출장 중인데 행방을 알 수 없다.세상에 이렇게 많은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이강우의 어젯밤 이상 행동, 오늘 아침의 긴급 출발...그는 송하나를 찾으러 간 것이 분명했다.이런 생각은 독사처럼 송태리의 마음속으로 파고들며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6화

    이강우는 휴대폰을 꺼내 송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송하나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세면대 위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그녀는 화면을 힐끗 보고는 이강우의 번호가 뜨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이 전화를 받아야 하나?’끊기 버튼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곧 그녀의 담담하고 거리감 있는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전해졌다.“대표님, 이렇게 늦게 무슨 일이세요?”이강우는 순간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그의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있지 않는 것처럼 낮았다“본가에 간 지 오래 됐다고 할머니께서 너를 찾으셔. 내일 저녁에 식사하러 오라고 했어.”송하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홍경자는 이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진심으로 아껴준 분이었다.그녀는 목소리를 살짝 누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저 요즘 좀 바빠요. 이 일 끝나면 꼭 가서 뵐게요.”“할머니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지?”이강우의 말투에는 약간의 질책이 섞였다.“내일 퇴근하고 내가 데리러 갈게.”그는 단호하게 결정해버렸다.송하나는 대뜸 얼굴을 찌푸렸다.할머니 때문에 잠시 연약해졌던 마음은 그의 강압적인 태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는 차갑게 대꾸했다.“오실 필요 없어요. 저 요즘 강현에 없거든요.”“강현에 없다고?”이강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는 거의 심문하듯 물었다.“그럼 어디에 있는데?”이런 직설적인 물음은 송하나의 짜증이 밀려오며 거부감이 들었다.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날카롭게 되받아쳤다.“이 대표님, 경찰서에서 심문하는 것처럼 캐묻는 이유가 뭐죠? 제 행선지를 이 대표님께 보고할 의무는 없잖아요?”이강우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송하나, 너 지금 어디야?”송하나는 이 숨 막히는 대화를 더는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다른 일 없으면 먼저 끊을게요.”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하나는 깔끔하게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에는 통화가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기계음만 들렸다.이강우는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5화

    직원이 능숙하게 정갈한 음식과 국이 담긴 뚝배기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송하나가 감사 인사를 건넸다.“수고하셨습니다.”문을 닫은 후 그녀는 간단히 몇 입 먹은 뒤 욕실로 향했다.욕조에 몸을 담그고 피로와 먼지를 씻어낸 후 타올로 몸을 감싸고 나와 헤어드라이어를 집어 들고 축축한 머리카락을 말리려 했지만 드라이기가 전혀 반응이 없었다.드라이기가 고장 난 것이었다.송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프런트 데스크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기에서는 통화 중이라는 신호음만 들려왔다.‘프런트 데스크는 지금 매우 바쁜 모양이야.’축축한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달라붙어 차갑고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었이다.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소파에 놓인 가운을 집어 몸에 단단히 여민 후 허리끈을 꽉 매고는 숨을 깊게 들이쉰 후 심성빈의 옆방으로 향했다.한편, 심성빈은 청림시 시내 지도를 앞에 두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손가락으로 몇 개의 택배 대리점 사이를 그리며 발송인이 다음에 나타날 만한 장소를 찾으려 애썼다.이때 휴대폰 화면이 갑자기 밝아지며 최로운의 영상 통화 요청이 떠올랐다.심성빈이 전화를 받자 최로운의 능글맞고 잘생긴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고 뒤로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성빈아, 뭐 하고 있어? 나와서 한잔할래?”심성빈은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오늘은 안 돼. 다음으로 하자.”“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바쁜 거야?”최로운은 카메라를 옆 좌석으로 옮기며 훑어보았다.“강우와 태리도 여기 있는데 너만 빠졌어.”심성빈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청림시에 출장 중이야. 돌아가면 내가 술자리 마련해서 좋은 거로 한 잔 살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심성빈은 휴대폰을 든 채 문으로 다가갔다.문을 여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송하나가 문밖에 서 있었다.그녀는 헐렁한 목욕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데 목욕 후의 상쾌한 기운이 바디워시의 은은한 향기와 섞여 애틋하게 느껴졌다.젖은 머리가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