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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김하이
송하나는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어느덧 다음 날이었다.

온몸에 빽빽하게 꽂힌 튜브들이 그녀를 뒤덮고 있었다.

의사는 속상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질책했다.

“당분간 부부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남편분이 그렇게 참을성이 없나요? 수술 직후에 관계를 갖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됐네요. 상처에 또 출혈했어요. 제때 오지 않았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요!”

“폐 끼쳐서 죄송해요, 선생님.”

의사는 고개를 숙여 송하나의 무기력하고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마음속으로 안쓰러움이 더해졌다.

결국 의사도 거친 태도를 거두어들였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환자분 남편 정말 인간도 아니에요. 아내 몸을 전혀 아끼지 않잖아요!”

“당장 전화해서 가족분들 병원 나오라고 하세요. 환자분 간호해줘야죠, 뭡니까 이게? 만에 하나 무슨 일 생기면 저는 책임 못 져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송하나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그녀에게 과연 가족이 남아있기나 한 걸까?

17살 되던 해, 부모님은 한순간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날부터 그녀는 고아가 되었다.

삼촌 송종현이 후견인으로 나타나 부모님이 남긴 재산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고 회사와 별장까지 차지해버렸다.

송하나가 19살 되던 해, 술에 취한 삼촌은 돌아가신 그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다짜고짜 그녀의 방으로 쳐들어가 하마터면 강간할 뻔했다.

그날 이후로 송하나는 이 집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그녀는 의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절친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 후.

차설아가 병원으로 달려왔다.

간호사로부터 송하나의 딱한 사정을 들은 그녀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강우 이 개자식! 널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얼굴 한번 안 비춰? 전화번호 이리 내! 이런 자식은 욕사발을 들어야 정신을 차리지.”

차설아가 격분하며 말했지만 송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지금 전화해봤자 자존심만 더 상할 뿐이니까.

오히려 그녀를 더 혐오할 게 뻔하다.

더 추하게 싸우느니 이대로 헤어지는 게 나을 법했다.

“하여튼 넌 정말!”

차설아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고 아무런 도움이 못 돼서 무기력함을 느꼈다.

“4년 전에 너 결혼한다고 신나서 말할 때 난 또 뭐 재벌가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고생길을 자초한 거였잖아!”

“이강우는 너한테 신경조차 안 쓰고 온갖 서러움을 다 겪게 했는데 대체 뭘 보고 계속 옆에 남아있었던 거야?”

“돈 때문에? 그래, 돈 때문이라고 치자! 그런데 하필 이 개자식이 매달 몇십만 원씩 용돈 주는 것도 가정부를 통해서 주고 아주 그냥 짠돌이가 따로 없네?”

“하나야, 이강우가 네 생명의 은인이라도 돼?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는 거야?”

송하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맞아. 날 죽음에서 건져줬어.”

부모를 잃고 우울증이 가장 심했던 시절, 그는 한 줄기 빛처럼 송하나의 삶에 나타났고 그 순간부터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송하나는 손을 들어 자신의 아랫배를 매만졌다.

그를 위해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고 이 정도면 은혜는 갚은 셈이었다.

이제 그녀는 이강우에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

병원에 입원한 일주일 동안 차설아가 곁을 지키며 간호해주었고 이강우한테서는 전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그날 오전.

차설아가 송하나를 부축해 병실을 막 나설 때, 복도 저편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고 간호사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우리 병원에 여자 의사 한 명 새로 왔는데 25살에 부교수래!”

“이렇게 젊은 나이에 부교수라니,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전에 줄곧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상도 거의 다 휩쓸었대. 귀국하자마자 의료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던데?”

“실력도 뛰어나지만 외모가 엄청 예쁘고 신비주의 톱클래스 재벌 남자친구가 있대! 자기 여자친구 밀어주려고 병원에 건물 하나 기부할 생각까지 한다더라!”

“헐, 대박! 이거 완전 레전드잖아.”

병원에서 지낸 며칠 동안 차설아는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토록 대단한 인물이 온다는 소식에 즉시 입을 열었다.

“하나야, 우리도 가서 한번 보자!”

병원 입구는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병원 측에서도 새로 온 여자 의사를 매우 중시하는 듯 원장까지 직접 나와서 환영하고 있었다.

송하나가 혹시라도 다칠까 봐 그녀들은 가장 뒷줄에 섰다.

차설아는 까치발을 들고 머리를 앞으로 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스케일 뭐야? 누가 보면 톱스타가 오는 줄 알겠어.”

화려한 검은색 고급 승합차가 천천히 멈춰 섰고 안에서 두 남녀가 나란히 내려왔다.

인파 때문에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남자는 훤칠한 키 덕분에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는 송하나는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옆에 있는 여자를 팔짱 끼고 돌아서는 순간, 송하나는 숨을 멈췄다.

완벽하게 잘생긴 저 얼굴은... 바로 그녀의 남편 이강우였다!

“새로 오신 송 선생님 남자친구분은 이원 그룹 대표님이라고 하던데 역시 말이 안 될 정도로 잘생겼네요.”

“며칠 전, 뉴스에서 대표님이 여자친구 기쁘게 해주려고 경매에서 최고가 280억을 들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낙찰했다고 하더니 오늘은 또 당당하게 여자친구 응원하러 왔네? 여친 사랑이 너무 지극한 거 아니야?”

“송 선생님 너무 행복하시겠다. 모든 걸 다 갖췄잖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지!”

주변의 탄성과 의논 소리가 끝없이 송하나의 귓가에 쏟아졌다.

차설아도 이강우의 얼굴을 보고는 단단히 충격을 받았다.

“헐, 이런 개자식이!”

‘하나가 죽다 살아났는데 안부 한 마디 없다가 여기서 당당하게 제삼자나 응원하고 있어?”

차설아는 화가 나서 대신 따지러 가려 했지만 송하나가 얼른 말렸다.

“됐어, 설아야. 이만 돌아가자.”

이혼은 이미 결정된 일이니 여기서 더 추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차설아는 내키지 않았지만 이제 막 수술을 받은 송하나가 이런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병실로 돌아왔다.

“이강우 이 개자식! 명색이 유부남이면서 이렇게 대놓고 제삼자랑 애정행각을 하는 거야?”

“그년도 참 뻔뻔하기 그지없네. 의사는 개뿔! 남의 남편 꼬시는 주제에. 의사 도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

차설아는 인간쓰레기 이강우와 그 내연녀를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송하나의 표정은 매우 담담했다.

차설아는 그녀가 이강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니 별안간 걱정이 앞섰다.

“하나야, 괜찮아?”

송하나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괜찮아. 어차피 난 이미 이혼 결심했어.”

이혼 서류는 침실에 놓아뒀으니 늦어도 다음 달이면 이강우가 보게 될 것이다.

차설아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너 정말 마음 정리한 거야? 이강우랑 이혼한다고?”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려고.”

그녀는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가슴은 칼날에 베이는 듯한 고통이 차올랐다.

그녀는 이강우를 꼬박 7년을 사랑했다.

이강우 이름 석 자가 이미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거칠게 뜯어내야만 비로소 그를 완전히 지워낼 수 있을 터였다.

아무리 아프더라도 그녀는 이 결혼을 끝내기로 했다.

“잘 생각했어, 하나야!”

차설아는 조금 흥분한 듯했다.

“너처럼 훌륭하고 예쁜 여자가 어떤 남자인들 못 만나겠어. 왜 굳이 이강우라는 한 나무에만 매달려 있겠니?”

“이혼해! 당장 이혼해! 너 이혼하면 이 언니랑 같이 호빠 선수들 불러서 놀자. 에겐남, 테토남, 연하남, 근육남, 원하는 건 다 있으니 실컷 놀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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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50화

    “잠시 눈 좀 붙일래요? 제가 볼 테니. 무슨 일 있으면 깨워줄게요.”심성빈이 제안했다.송하나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말하려던 찰나, 그녀의 시선이 우연히 멀리 보이는 좁은 골목 출구에 닿았다.짙은 색 후드티를 입은 한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모자챙이 얼굴을 거의 다 가릴 정도였다.송하나의 숨결이 멈칫하며 순간 몸을 일으켰다.“심 대표님, 저쪽 보세요!”성빈이 송하나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심성빈은 순간 눈빛이 굳어졌다.걸음걸이, 체격, 심지어 걸을 때 살짝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까지, 모두 CCTV 화면 속 인물과 높은 유사성을 보였다.“그 사람이에요!”심성빈의 낮고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것 같아요. 택배 보내러 가는 것 같아요!”‘역시!’겨드랑이에 책 크기의 딱딱한 물체를 끼고 있었는데, 검은 비닐봉지로 단단히 싸고 있었다.심성빈은 즉시 차를 출발시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극도로 조심스럽게 그 사람의 뒤를 쫓았다.아니나 다를까 그는 근처의 택배 대리점에 들렀다.심성빈은 멀찍이 길가에 차를 세웠다.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그 사람이 택배를 보내는 틈을 타 가게 안에서 포위하려 했다.바로 그때, 근처에서 폐기물을 가득 실은 밀차와 자전거가 충돌하며 옆으로 넘어졌고 병과 상자들이 사방에 흩뿌려지며 큰 소리를 냈다.한 노인이 당황하며 소리치자 순식간에 주변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고, 택배 대리점에 막 들어가려던 후드티를 입은 남자까지도 마치 놀란 새처럼 고개를 홱 돌렸다.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람들을 훑다가 마침 심성빈과 송하나를 발견했다.두 사람의 분위기는 이 도심 속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아, 즉시 그 남자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그는 망설임 없이 겨드랑이의 물건을 움켜쥐고 홱 몸을 돌려 옆에 있던 더 좁은 골목으로 뛰어들었다.“젠장, 우리를 눈치챘어요!”송하나가 외쳤다.“심 대표님, 빨리 쫓아요!”두 사람은 골목 방향으로 달려갔다.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9화

    송하나는 그가 바람 외도 현장을 잡으러 온 듯한 추궁에 불쾌해졌다.시선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그의 심문하는 눈빛과, 두 눈에 서린 분노가 너무 명확하여 송하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이강우의 시선을 맞받아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이 대표님, 외도 현장 잡으려고 멀리 청림시까지 날아오신 거예요?”이강우는 눈썹을 찌푸렸다.“실망하게 해드려서 미안하네요.”송하나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저와 심 대표님은 아주 깨끗해요. 공과 사 구분도 확실하고요. 우리는 이 대표님처럼 선을 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송하나.”이강우는 얼굴이 굳어지며 낮은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내가 하나의 마음속에서 이렇게 비열하고 저속한 남자였어?’송하나는 더는 그와 말다툼할 생각이 없어 몸을 돌려 떠났다.이강우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그는 무언가 가슴을 막고 있는 것처럼 숨이 꽉 막혀 않아 질식할 것만 같았다.심성빈은 이강우의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으면서도 분풀이조차 하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추적 작업이 순조롭지 않아. 송하나 씨가 예민해져서 말에 가시가 돋쳤을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마.”이강우는 대답하지 않고 짜증 난 듯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심성빈은 손목시계를 보았다.“우리 오전에는 잠복하러 가야 하거든. 강우야, 혹시 마음이 쓰이면 같이 가볼래?”그는 이렇게 말하며 그의 불안한 마음을 덜어주려고 했다.이강우는 바로 거절했다.“됐어. 나는 청림시에 부동산 프로젝트를 검토하러 온 거라 일정이 빠듯해.”그는 절대 송하나가 걱정돼서 쫓아왔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인정하면 속셈을 그대로 들켜 버리니 말이다.심성빈은 이강우가 핑계를 댄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까밝히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럼 먼저 업무를 처리하고 나중에 다시 연락해. 청림시는 그리 크지 않으니까.”말을 마친 후 그는 더 머물지 않고 송하나를 쫓아 재빨리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걸어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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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7화

    “대표님은 오늘 아침 일찍 긴급 출장 가셨어요. 급하게 처리할 게 있으신가 봐요.”‘출장이라고? 어젯밤에 나를 바래다 줄 때까지는 괜찮았잖아? 출장 간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서둘러 떠났을까?’송태리의 심장이 다시 덜컥 내려앉았다.“어디로 출장 가셨는데요?”“청림시로 가셨다고 들었어요.”비서는 사실대로 대답했다.‘청림시?’송태리는 보온통을 꽉 잡았다.이 지명을 듣자마자 그녀는 어젯밤 최로운과 심성빈의 영상 통화가 떠올랐다.어제 심성빈은 자신이 청림시에 있다고 했었다.통화 중에 어렴풋이 송하나와 비슷한 목소리가 들렸었고 오늘 아침 이강우가 급하게 그곳으로 떠났다.‘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이상해.’그녀는 비서에게 억지 미소를 지으며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네, 알겠어요.”이원 그룹 빌딩을 막 나서자마자 송태리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 임효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금방 연결되었고 임효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선배님?”“임효민.”송태리는 일부러 부드럽게 말했다.“송하나가 오늘 회사에 있어?”“하나 언니요?”임효민는 망설이며 목소리에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언, 언니는 회사에 없어요.”“없다고?”송태리는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추궁하듯 물었다.“어디 갔는데?”“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임효민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고 그 안에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담겨 있었다.“아마도... 출장 갔나 봐요. 구체적으로 어디로 갔는지는 저도 몰라요.”‘출장이라고? 그것도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고?’송태리는 차가운 기운이 발밑으로부터 머리끝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그녀는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심성빈이 청림시에 있고 이강우가 오늘 아침 급히 청림시로 갔다.송하나도 출장 중인데 행방을 알 수 없다.세상에 이렇게 많은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이강우의 어젯밤 이상 행동, 오늘 아침의 긴급 출발...그는 송하나를 찾으러 간 것이 분명했다.이런 생각은 독사처럼 송태리의 마음속으로 파고들며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6화

    이강우는 휴대폰을 꺼내 송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송하나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세면대 위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그녀는 화면을 힐끗 보고는 이강우의 번호가 뜨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이 전화를 받아야 하나?’끊기 버튼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곧 그녀의 담담하고 거리감 있는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전해졌다.“대표님, 이렇게 늦게 무슨 일이세요?”이강우는 순간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그의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있지 않는 것처럼 낮았다“본가에 간 지 오래 됐다고 할머니께서 너를 찾으셔. 내일 저녁에 식사하러 오라고 했어.”송하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홍경자는 이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진심으로 아껴준 분이었다.그녀는 목소리를 살짝 누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저 요즘 좀 바빠요. 이 일 끝나면 꼭 가서 뵐게요.”“할머니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지?”이강우의 말투에는 약간의 질책이 섞였다.“내일 퇴근하고 내가 데리러 갈게.”그는 단호하게 결정해버렸다.송하나는 대뜸 얼굴을 찌푸렸다.할머니 때문에 잠시 연약해졌던 마음은 그의 강압적인 태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는 차갑게 대꾸했다.“오실 필요 없어요. 저 요즘 강현에 없거든요.”“강현에 없다고?”이강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는 거의 심문하듯 물었다.“그럼 어디에 있는데?”이런 직설적인 물음은 송하나의 짜증이 밀려오며 거부감이 들었다.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날카롭게 되받아쳤다.“이 대표님, 경찰서에서 심문하는 것처럼 캐묻는 이유가 뭐죠? 제 행선지를 이 대표님께 보고할 의무는 없잖아요?”이강우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송하나, 너 지금 어디야?”송하나는 이 숨 막히는 대화를 더는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다른 일 없으면 먼저 끊을게요.”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하나는 깔끔하게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에는 통화가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기계음만 들렸다.이강우는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5화

    직원이 능숙하게 정갈한 음식과 국이 담긴 뚝배기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송하나가 감사 인사를 건넸다.“수고하셨습니다.”문을 닫은 후 그녀는 간단히 몇 입 먹은 뒤 욕실로 향했다.욕조에 몸을 담그고 피로와 먼지를 씻어낸 후 타올로 몸을 감싸고 나와 헤어드라이어를 집어 들고 축축한 머리카락을 말리려 했지만 드라이기가 전혀 반응이 없었다.드라이기가 고장 난 것이었다.송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프런트 데스크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기에서는 통화 중이라는 신호음만 들려왔다.‘프런트 데스크는 지금 매우 바쁜 모양이야.’축축한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달라붙어 차갑고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었이다.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소파에 놓인 가운을 집어 몸에 단단히 여민 후 허리끈을 꽉 매고는 숨을 깊게 들이쉰 후 심성빈의 옆방으로 향했다.한편, 심성빈은 청림시 시내 지도를 앞에 두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손가락으로 몇 개의 택배 대리점 사이를 그리며 발송인이 다음에 나타날 만한 장소를 찾으려 애썼다.이때 휴대폰 화면이 갑자기 밝아지며 최로운의 영상 통화 요청이 떠올랐다.심성빈이 전화를 받자 최로운의 능글맞고 잘생긴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고 뒤로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성빈아, 뭐 하고 있어? 나와서 한잔할래?”심성빈은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오늘은 안 돼. 다음으로 하자.”“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바쁜 거야?”최로운은 카메라를 옆 좌석으로 옮기며 훑어보았다.“강우와 태리도 여기 있는데 너만 빠졌어.”심성빈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청림시에 출장 중이야. 돌아가면 내가 술자리 마련해서 좋은 거로 한 잔 살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심성빈은 휴대폰을 든 채 문으로 다가갔다.문을 여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송하나가 문밖에 서 있었다.그녀는 헐렁한 목욕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데 목욕 후의 상쾌한 기운이 바디워시의 은은한 향기와 섞여 애틋하게 느껴졌다.젖은 머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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