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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김하이
송하나는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어느덧 다음 날이었다.

온몸에 빽빽하게 꽂힌 튜브들이 그녀를 뒤덮고 있었다.

의사는 속상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질책했다.

“당분간 부부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남편분이 그렇게 참을성이 없나요? 수술 직후에 관계를 갖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됐네요. 상처에 또 출혈했어요. 제때 오지 않았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요!”

“폐 끼쳐서 죄송해요, 선생님.”

의사는 고개를 숙여 송하나의 무기력하고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마음속으로 안쓰러움이 더해졌다.

결국 의사도 거친 태도를 거두어들였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환자분 남편 정말 인간도 아니에요. 아내 몸을 전혀 아끼지 않잖아요!”

“당장 전화해서 가족분들 병원 나오라고 하세요. 환자분 간호해줘야죠, 뭡니까 이게? 만에 하나 무슨 일 생기면 저는 책임 못 져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송하나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그녀에게 과연 가족이 남아있기나 한 걸까?

17살 되던 해, 부모님은 한순간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날부터 그녀는 고아가 되었다.

삼촌 송종현이 후견인으로 나타나 부모님이 남긴 재산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고 회사와 별장까지 차지해버렸다.

송하나가 19살 되던 해, 술에 취한 삼촌은 돌아가신 그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다짜고짜 그녀의 방으로 쳐들어가 하마터면 강간할 뻔했다.

그날 이후로 송하나는 이 집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그녀는 의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절친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 후.

차설아가 병원으로 달려왔다.

간호사로부터 송하나의 딱한 사정을 들은 그녀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강우 이 개자식! 널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얼굴 한번 안 비춰? 전화번호 이리 내! 이런 자식은 욕사발을 들어야 정신을 차리지.”

차설아가 격분하며 말했지만 송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지금 전화해봤자 자존심만 더 상할 뿐이니까.

오히려 그녀를 더 혐오할 게 뻔하다.

더 추하게 싸우느니 이대로 헤어지는 게 나을 법했다.

“하여튼 넌 정말!”

차설아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고 아무런 도움이 못 돼서 무기력함을 느꼈다.

“4년 전에 너 결혼한다고 신나서 말할 때 난 또 뭐 재벌가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고생길을 자초한 거였잖아!”

“이강우는 너한테 신경조차 안 쓰고 온갖 서러움을 다 겪게 했는데 대체 뭘 보고 계속 옆에 남아있었던 거야?”

“돈 때문에? 그래, 돈 때문이라고 치자! 그런데 하필 이 개자식이 매달 몇십만 원씩 용돈 주는 것도 가정부를 통해서 주고 아주 그냥 짠돌이가 따로 없네?”

“하나야, 이강우가 네 생명의 은인이라도 돼?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는 거야?”

송하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맞아. 날 죽음에서 건져줬어.”

부모를 잃고 우울증이 가장 심했던 시절, 그는 한 줄기 빛처럼 송하나의 삶에 나타났고 그 순간부터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송하나는 손을 들어 자신의 아랫배를 매만졌다.

그를 위해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고 이 정도면 은혜는 갚은 셈이었다.

이제 그녀는 이강우에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

병원에 입원한 일주일 동안 차설아가 곁을 지키며 간호해주었고 이강우한테서는 전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그날 오전.

차설아가 송하나를 부축해 병실을 막 나설 때, 복도 저편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고 간호사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우리 병원에 여자 의사 한 명 새로 왔는데 25살에 부교수래!”

“이렇게 젊은 나이에 부교수라니,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전에 줄곧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상도 거의 다 휩쓸었대. 귀국하자마자 의료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던데?”

“실력도 뛰어나지만 외모가 엄청 예쁘고 신비주의 톱클래스 재벌 남자친구가 있대! 자기 여자친구 밀어주려고 병원에 건물 하나 기부할 생각까지 한다더라!”

“헐, 대박! 이거 완전 레전드잖아.”

병원에서 지낸 며칠 동안 차설아는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토록 대단한 인물이 온다는 소식에 즉시 입을 열었다.

“하나야, 우리도 가서 한번 보자!”

병원 입구는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병원 측에서도 새로 온 여자 의사를 매우 중시하는 듯 원장까지 직접 나와서 환영하고 있었다.

송하나가 혹시라도 다칠까 봐 그녀들은 가장 뒷줄에 섰다.

차설아는 까치발을 들고 머리를 앞으로 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스케일 뭐야? 누가 보면 톱스타가 오는 줄 알겠어.”

화려한 검은색 고급 승합차가 천천히 멈춰 섰고 안에서 두 남녀가 나란히 내려왔다.

인파 때문에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남자는 훤칠한 키 덕분에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는 송하나는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옆에 있는 여자를 팔짱 끼고 돌아서는 순간, 송하나는 숨을 멈췄다.

완벽하게 잘생긴 저 얼굴은... 바로 그녀의 남편 이강우였다!

“새로 오신 송 선생님 남자친구분은 이원 그룹 대표님이라고 하던데 역시 말이 안 될 정도로 잘생겼네요.”

“며칠 전, 뉴스에서 대표님이 여자친구 기쁘게 해주려고 경매에서 최고가 280억을 들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낙찰했다고 하더니 오늘은 또 당당하게 여자친구 응원하러 왔네? 여친 사랑이 너무 지극한 거 아니야?”

“송 선생님 너무 행복하시겠다. 모든 걸 다 갖췄잖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지!”

주변의 탄성과 의논 소리가 끝없이 송하나의 귓가에 쏟아졌다.

차설아도 이강우의 얼굴을 보고는 단단히 충격을 받았다.

“헐, 이런 개자식이!”

‘하나가 죽다 살아났는데 안부 한 마디 없다가 여기서 당당하게 제삼자나 응원하고 있어?”

차설아는 화가 나서 대신 따지러 가려 했지만 송하나가 얼른 말렸다.

“됐어, 설아야. 이만 돌아가자.”

이혼은 이미 결정된 일이니 여기서 더 추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차설아는 내키지 않았지만 이제 막 수술을 받은 송하나가 이런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병실로 돌아왔다.

“이강우 이 개자식! 명색이 유부남이면서 이렇게 대놓고 제삼자랑 애정행각을 하는 거야?”

“그년도 참 뻔뻔하기 그지없네. 의사는 개뿔! 남의 남편 꼬시는 주제에. 의사 도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

차설아는 인간쓰레기 이강우와 그 내연녀를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송하나의 표정은 매우 담담했다.

차설아는 그녀가 이강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니 별안간 걱정이 앞섰다.

“하나야, 괜찮아?”

송하나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괜찮아. 어차피 난 이미 이혼 결심했어.”

이혼 서류는 침실에 놓아뒀으니 늦어도 다음 달이면 이강우가 보게 될 것이다.

차설아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너 정말 마음 정리한 거야? 이강우랑 이혼한다고?”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려고.”

그녀는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가슴은 칼날에 베이는 듯한 고통이 차올랐다.

그녀는 이강우를 꼬박 7년을 사랑했다.

이강우 이름 석 자가 이미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거칠게 뜯어내야만 비로소 그를 완전히 지워낼 수 있을 터였다.

아무리 아프더라도 그녀는 이 결혼을 끝내기로 했다.

“잘 생각했어, 하나야!”

차설아는 조금 흥분한 듯했다.

“너처럼 훌륭하고 예쁜 여자가 어떤 남자인들 못 만나겠어. 왜 굳이 이강우라는 한 나무에만 매달려 있겠니?”

“이혼해! 당장 이혼해! 너 이혼하면 이 언니랑 같이 호빠 선수들 불러서 놀자. 에겐남, 테토남, 연하남, 근육남, 원하는 건 다 있으니 실컷 놀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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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mentar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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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현
결호은 해도 서로 좋은 사람과 결혼 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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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31화

    심성빈은 품 안의 온기를 느꼈다. 코끝을 스치는 송하나의 은은한 향기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득한 그리움과 덧없는 소망이 샘솟았다. 마치 먼 시간을 건너온 듯한 착잡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지금 이 순간 거짓된 친밀함이 연극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녀가 자신의 명실상부한 아내가 되어 매일 퇴근 후면 이렇게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하며 소박하고 따스한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최로운이 SNS에 연신 아내와 딸 자랑을 늘어놓을 때마다 심성빈은 자신도 송하나와 함께 둘만의 가정을 꾸리고 둘을 쏙 빼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에 잠기곤 했다.며칠 후, 경호원이 황급히 달려와 보고했다.“대표님, 별장 주변을 맴돌던 수상한 사람들이 확연히 줄었습니다.”심성빈의 눈가에 찰나의 깨달음이 스쳤다.빅토르는 결국 그가 집에 여자를 숨겼다는 거짓말을 믿고 잠시 의심을 접고서 인력을 다른 곳으로 돌린 게 틀림없다.하지만 이것은 단지 임시방편일 뿐 안심할 수는 없었다.빅토르처럼 집요하고 광적인 인간은 송하나의 행방을 완전히 파악하기 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터.만약 그가 계속 파고든다면 결국 꼬리가 잡힐 것이다.후환을 완전히 없애려면 그의 모든 기대를 산산조각내야 한다.심성빈은 미리 준비해 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그는 몰래 사람을 시켜서 송하나와 비슷한 체격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여성의 시신을 찾아냈다.곧이어 시신의 옷을 송하나가 실종 당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히고 옷가지에는 송하나의 머리카락과 피 등 DNA 샘플까지 뿌렸다.그 후, 마치 짐승에게 습격당한 것처럼 현장을 꾸미고 그 끔찍한 잔해를 인적이 드문 외딴 숲에 버렸다.며칠 뒤 산에 약초를 캐러 간 어느 농부가 흩어진 옷가지와 잔해를 발견하고는 경악하여 경찰에 신고했다.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DNA를 채취하고 대조한 결과 송하나의 DNA와 완전히 일치하게 나왔다.이 소식은 금세 빅토르의 귀에 들어갔다.그는 순간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지체 없이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30화

    “겉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심성빈 씨가 몰래 데리고 사는 애인일 테고 게다가 임신 중인 것 같습니다. 별장에 있는 가정부와 개인 의사들까지 전부 임신한 그 여자의 시중을 들고 있거든요.”빅토르는 사진 속의 전혀 낯선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에 불만과 아쉬움이 맴돌았다.반복해서 대조했지만, 이 여자는 분명 송하나가 아니었다.그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했다.설마...그녀가 정말 심성빈 곁에 없는 걸까?자신의 연이은 추적이 또다시 빗나갔다는 말인가?빅토르의 병적인 집착은 그를 쉽게 포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그는 머리를 번쩍 들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계속 조사해서 이 여자의 신상을 철저히 밝혀내! 24시간 내내 별장 감시하고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마!”하지만 부하들이 조사한 결과는 마침 심성빈이 정교하게 꾸민 함정이었다.그는 이미 송하나를 위해 완벽한 새 신분과 새로운 배경을 세팅해 놓았다.여자의 이름은 김서윤, 22세, 집안 형편이 어려운 유학생으로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었다.나이트클럽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우연히 심성빈의 눈에 띄어 비밀 애인 노릇을 하더니 몇 달 전 예상치 못하게 임신을 했다.심성빈의 신분으로서는 아무런 기반이나 배경도 없는 이런 여자와 결혼할 리가 없었다.그는 아이를 남기고 싶었지만, 자신의 신분과 지위 때문에 경쟁자들과 언론이 이를 빌미로 삼을까 두려워 김서윤을 비밀리에 별장에 안착시키고 외부와의 모든 소식을 차단했다.심성빈처럼 돈과 권력을 지닌 남자는 밖에서 몰래 여자를 만나고 사생아를 키우는 것이 너무나도 흔한 일이었다.이런 일들은 공식 석상에 내세울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사생활 보호에 각별히 신경 썼다.모든 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지라 어떠한 허점도 찾아내기 어려웠다.더욱 치밀했던 이유는 현실에 실제로 김서윤이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다만 심성빈의 부하들이 김서윤과 관련된 모든 사진을 가면을 쓴 송하나의 모습으로 교체했다.빅토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29화

    전화를 끊은 심성빈은 즉시 사람을 시켜 맛있는 음식과 재미있는 것들을 총동원해 별장으로 긴급 배송했다. 송하나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서였다.한편 그는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모니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음은 온통 송하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어느 날 오후, 송하나는 날씨가 좋아서 뒷마당으로 산책을 나섰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갑자기 변덕을 부렸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더니 곧이어 장대비가 쏟아졌다.가정부가 일기 예보를 잊었는지 송하나에게 미리 외투를 준비해주지 못했다.그녀는 비를 맞으며 바람을 쐬다가 끝내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한밤중이 되자 송하나는 갑자기 고열에 시달렸다. 온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의식이 흐릿해졌으며 입에서는 헛소리까지 새어 나왔다.덜컥 겁이 난 가정부는 황급히 심성빈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는 순간, 남자는 안색이 돌변하여 망설임 없이 별장으로 돌아갔다.가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하나는 무조건 무사해야 해!’별장에 도착하자 개인 의사가 이미 그녀에게 해열제를 놓았고 한창 체온을 재는 중이었다.심성빈은 재빨리 침대로 달려가 열에 시달려 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상하면서도 분노가 치밀었다.이토록 연약하고 무기력한 송하나의 모습에 속상했고 가정부의 부주의함에 분노했다.그는 가정부들을 거실로 불러왔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한기가 감돌았다.“너희들 월급이 시장가의 다섯 배인 건 알지? 최선을 다해서 하나 보살피라고 그 돈을 주는 거잖아! 오늘 같은 일이 또 발생하면 그땐 나도 어떻게 나올지 몰라!”가정부들은 고개를 숙이고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심성빈은 더 이상 질책하지 않고 송하나의 방으로 돌아갔다. 밤새도록 그녀 곁을 지키며 때때로 물에 적신 수건으로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고 반복해서 체온을 확인했다. 그의 눈가에는 애처로움과 불안감이 역력히 드러났다.날이 밝아올 무렵, 송하나의 열이 마침내 내렸고 숨결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28화

    심성빈은 천천히 눈을 감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지막이 읊조렸다.‘하나야,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너랑 며칠만 더 함께 있게 해주라. 네가 건강을 회복하고 안전해지면 나도 손 놓을게. 절대 집착하지 않아.’차가 별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어둠이 드리워진 밤, 별장 안은 고요했다.심성빈은 차에서 내려 재빨리 본관으로 들어서서 위층으로 향했다.그는 조용히 송하나의 방 문을 열었다. 침대 머리맡의 스탠드가 따스한 빛을 냈고 그녀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편히 잠들어 있었다. 긴 속눈썹이 눈꺼풀 아래 옅은 그림자를 드리웠다.멀리서 그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자 며칠간 쌓였던 피로와 긴장이 한순간 말끔히 사라졌다.심성빈은 비로소 불안했던 마음을 내려놓았다.문을 닫고 나가려 할 때, 침대에 누워 있던 송하나가 문득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문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에 시선이 머물자 나직이 이름을 불렀다.“왔어요, 성빈 씨.”심성빈은 문 앞에 서서 부드러운 조명에 드리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갑자기 씁쓸한 감정이 차올랐다.“응, 이제 막 도착했어.”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침대 곁에 앉았다.송하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질문을 건넸다.“피곤해 보이네요. 무슨 일 있어요?”심성빈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아무 일 없으니 걱정 마.”송하나는 나지막이 권유했다.“그럼 일찍 쉬어요. 밤늦게까지 무리하지 말고요.”“알았어.”심성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정하게 속삭였다.“아직 시간 이른데 뭘. 좀 더 자. 잠들면 나갈게.”송하나는 더 말하지 않고 천천히 눈을 감더니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심성빈은 침대 곁에 앉아 그녀의 잠든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이어서 조용히 몸을 일으켜 소리 없이 방을 나섰다.그날 밤, 심성빈은 꼬박 밤을 지새웠다.마음 한구석에는 늘 불안감이 맴돌았다. 빅토르가 절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란 불길한 느낌 말이다.빅토르의 추적에 어떻게 대처해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27화

    차정원은 어쨌든 송하나가 직접 선택한 사람이고 게다가 남편이기도 했다.그가 사방으로 송하나를 찾아 헤매는 걸 뻔히 알면서 의도적으로 숨긴다면 언젠가 송하나가 기억을 되찾고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심성빈을 원망하진 않을까?아쉬움과 갈등이 마음속에서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지금 그녀와 함께하는 고요한 이 시간을 애달프게 붙잡고 싶었다.차정원이 나타나면 심성빈은 더 이상 그녀 곁에 머물 기회를 얻지 못할 터였다.하지만 송하나가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그녀가 앙금을 품는 것은 더욱 원치 않았다.심사숙고 끝에 심성빈은 마침내 휴대폰을 꺼냈다. 차정원에게 진실을 알리기로 한 것이다.어떻게 입을 열지 고민하고 있을 때, 차가 갑자기 급정거했다.“대표님, 누군가 우리 차를 막았습니다!”비서가 소스라치게 놀라 외쳤다.심성빈이 고개를 들자 길 한가운데 가로놓인 몇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그들의 차를 단단히 막아버렸다.검은색 옷차림의 남자들 몇 명이 안에서 내렸다. 앞장선 훤칠한 몸매의 남자는 안색이 창백하고 눈빛이 퀭했으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압박감을 내뿜었다.그는 바로 빅토르였다.심성빈은 동공이 아찔거렸으나 겉으론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당황하지 말고 내 명령 없이 절대 차에서 내리지 마.”빅토르는 심성빈의 차창 앞으로 걸어가 창문을 두드렸다.이에 심성빈은 천천히 차창을 내리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두 남자의 시선이 밤의 어둠 속에서 아찔하게 부딪혔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고 서늘한 기운이 주변을 맴돌았다.“심성빈 씨.”빅토르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지만 그 속에 음침함이 숨겨져 있었다.“말씀 많이 들었어요.”“네, 빅토르 씨.”심성빈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저 고개를 살짝 돌려 빅토르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물었다.“실례지만 무슨 연유로 제 차를 막으신 거죠?”“돌려 말하지 않을게요.”빅토르는 몸을 숙이고 차창 가장자리에 손을 갖다 댔다.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에는 음습한 빛이 소용돌이쳤다.“그 화인국 여자가 지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26화

    심성빈은 송하나를 안고서 방에 돌아가 푹신한 침대에 눕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또다시 피로가 밀려와 눈을 감았다. 숨결은 점차 고르고 길어졌으며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심성빈은 침대 곁에 앉아 평온히 잠든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남자의 눈가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한참을 바라본 후에야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그는 가정부를 불러와 나직이 몇 마디 당부했다. 별장을 좀 더 아늑하게 꾸미고 정원에는 활짝 핀 꽃들을 더 많이 심으라고 했다.송하나가 언제까지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순 없으니까.좀 더 나아지면 자주 함께 밖으로 나가 밝고 화사한 풍경들을 구경할 생각이었다.그녀의 마음이 편안해야 몸도 더 빨리 회복될 터였다.심성빈의 극진한 보살핌 아래 송하나는 하루하루 나아졌다.예전에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혼수상태로 보냈고 깨어 있는 시간은 고작 몇 시간뿐이었으나 지금은 깨어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정신 상태도 한결 나아졌다.전에 뒷마당 산책을 나가면 몇 분을 걷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기력이 다 빠졌는데 이제는 천천히 30분을 걸을 수 있었고 얼굴에도 점차 혈색이 감돌았다.다만 머릿속이 여전히 텅 비어서 기억이 되살아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칠 후, 심성빈은 인근 국가로 출장을 가야 했다.지난번 조사했던 프로젝트 평가가 완료되어서 이번에는 협력을 확정하고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였다.중대한 사안인지라 부득이하게 심성빈이 직접 나서야 했다.떠나기 전, 그는 송하나의 침대 곁에 앉아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지막이 작별 인사를 건넸다.“나 이틀 동안 출장 다녀와야 해. 금방 돌아올 테니 몸 잘 돌보고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가정부한테 얘기해.”송하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심성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마음속 깊이 차오르는 미련을 억누르고 이내 방을 나섰다.부하들에게 송하나를 잘 보살피라고 지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일 수면, 식사, 건강 상태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보고해야 한다고 알렸다.

  • 별이 되어 빛나리   제303화

    “별말씀을요. 오늘 데려다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송하나는 그를 문 앞까지 배웅하며 깍듯하게 말했다.문이 부드럽게 닫히면서 복도의 빛을 차단했다.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 소파에 앉아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무언가 느껴졌다.일어나 보니 검은색 가죽 지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그건 바로 심성빈이 놓고 간 지갑이었다.송하나는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연결음이 한참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대략 30분 후, 그녀의 휴대폰 화면이 밝아졌다.마침내 심성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미안! 휴대폰 무음으

  • 별이 되어 빛나리   제288화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태리야, 강우가 아무리 화났어도 아기는 죄가 없잖아. 아이까진 외면할 수 없을 거야.”그녀는 말하면서 송태리의 평평한 아랫배에 시선을 두었다.그러고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약봉지를 꺼냈다.“어차피... 네 배 속에 있는 애도 강우의 씨가 아니니 언젠가 정리해야 할 걸 차라리 미리 일을 만드는 게 어때? 애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강우도 분명 마음 아파할 거야.”이 약은 원래 송하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준비해 둔 것인데 이렇게 빨리 쓰일 줄이야.송태리는 하얀 알약 두 개를 보며 내심 갈등했다.“

  • 별이 되어 빛나리   제282화

    병실 안에서 그 갑작스러운 포옹은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송하나는 이내 흥분과 감격에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행동이 선을 넘었음을 깨닫고는 서둘러 손을 떼었다.차정원의 팔 역시 늘 신사적으로 그녀를 허공에 감싸고 있었을 뿐 실제로 힘을 줘서 잡고 있지는 않았기에 그녀가 물러서자 자연스럽게 놓아주었다.병실에 미묘한 정적이 감돌았다.차정원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이 어색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깨뜨렸다.“종일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고프겠다. 나가서 먹을 것 좀 사 올게.”그는 돌아서서 병실을 나갔다. 송하나가 감정을 추스를 수

  • 별이 되어 빛나리   제239화

    홍경자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주름진 얼굴에는 실망감, 분노,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까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저 망할 놈이 마음속에 누굴 담았든 무슨 상관이야? 스스로 흑심에 빠져서 누가 좋고 나쁜지도 분간 못하는걸! 하나를 놓치면 평생 후회해도 소용없어. 그때 가서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되돌릴 수 없을 거야.”다음 날 오전.차설아가 연락이 오더니 함께 쇼핑을 가자고 했다.송하나는 최근에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제대로 쉬지 못했고, 차설아와 만난 지도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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