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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김하이
송하나는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어느덧 다음 날이었다.

온몸에 빽빽하게 꽂힌 튜브들이 그녀를 뒤덮고 있었다.

의사는 속상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질책했다.

“당분간 부부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남편분이 그렇게 참을성이 없나요? 수술 직후에 관계를 갖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됐네요. 상처에 또 출혈했어요. 제때 오지 않았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요!”

“폐 끼쳐서 죄송해요, 선생님.”

의사는 고개를 숙여 송하나의 무기력하고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마음속으로 안쓰러움이 더해졌다.

결국 의사도 거친 태도를 거두어들였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환자분 남편 정말 인간도 아니에요. 아내 몸을 전혀 아끼지 않잖아요!”

“당장 전화해서 가족분들 병원 나오라고 하세요. 환자분 간호해줘야죠, 뭡니까 이게? 만에 하나 무슨 일 생기면 저는 책임 못 져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송하나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그녀에게 과연 가족이 남아있기나 한 걸까?

17살 되던 해, 부모님은 한순간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날부터 그녀는 고아가 되었다.

삼촌 송종현이 후견인으로 나타나 부모님이 남긴 재산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고 회사와 별장까지 차지해버렸다.

송하나가 19살 되던 해, 술에 취한 삼촌은 돌아가신 그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다짜고짜 그녀의 방으로 쳐들어가 하마터면 강간할 뻔했다.

그날 이후로 송하나는 이 집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그녀는 의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절친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 후.

차설아가 병원으로 달려왔다.

간호사로부터 송하나의 딱한 사정을 들은 그녀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강우 이 개자식! 널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얼굴 한번 안 비춰? 전화번호 이리 내! 이런 자식은 욕사발을 들어야 정신을 차리지.”

차설아가 격분하며 말했지만 송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지금 전화해봤자 자존심만 더 상할 뿐이니까.

오히려 그녀를 더 혐오할 게 뻔하다.

더 추하게 싸우느니 이대로 헤어지는 게 나을 법했다.

“하여튼 넌 정말!”

차설아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고 아무런 도움이 못 돼서 무기력함을 느꼈다.

“4년 전에 너 결혼한다고 신나서 말할 때 난 또 뭐 재벌가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고생길을 자초한 거였잖아!”

“이강우는 너한테 신경조차 안 쓰고 온갖 서러움을 다 겪게 했는데 대체 뭘 보고 계속 옆에 남아있었던 거야?”

“돈 때문에? 그래, 돈 때문이라고 치자! 그런데 하필 이 개자식이 매달 몇십만 원씩 용돈 주는 것도 가정부를 통해서 주고 아주 그냥 짠돌이가 따로 없네?”

“하나야, 이강우가 네 생명의 은인이라도 돼?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는 거야?”

송하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맞아. 날 죽음에서 건져줬어.”

부모를 잃고 우울증이 가장 심했던 시절, 그는 한 줄기 빛처럼 송하나의 삶에 나타났고 그 순간부터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송하나는 손을 들어 자신의 아랫배를 매만졌다.

그를 위해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고 이 정도면 은혜는 갚은 셈이었다.

이제 그녀는 이강우에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

병원에 입원한 일주일 동안 차설아가 곁을 지키며 간호해주었고 이강우한테서는 전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그날 오전.

차설아가 송하나를 부축해 병실을 막 나설 때, 복도 저편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고 간호사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우리 병원에 여자 의사 한 명 새로 왔는데 25살에 부교수래!”

“이렇게 젊은 나이에 부교수라니,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전에 줄곧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상도 거의 다 휩쓸었대. 귀국하자마자 의료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던데?”

“실력도 뛰어나지만 외모가 엄청 예쁘고 신비주의 톱클래스 재벌 남자친구가 있대! 자기 여자친구 밀어주려고 병원에 건물 하나 기부할 생각까지 한다더라!”

“헐, 대박! 이거 완전 레전드잖아.”

병원에서 지낸 며칠 동안 차설아는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토록 대단한 인물이 온다는 소식에 즉시 입을 열었다.

“하나야, 우리도 가서 한번 보자!”

병원 입구는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병원 측에서도 새로 온 여자 의사를 매우 중시하는 듯 원장까지 직접 나와서 환영하고 있었다.

송하나가 혹시라도 다칠까 봐 그녀들은 가장 뒷줄에 섰다.

차설아는 까치발을 들고 머리를 앞으로 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스케일 뭐야? 누가 보면 톱스타가 오는 줄 알겠어.”

화려한 검은색 고급 승합차가 천천히 멈춰 섰고 안에서 두 남녀가 나란히 내려왔다.

인파 때문에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남자는 훤칠한 키 덕분에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는 송하나는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옆에 있는 여자를 팔짱 끼고 돌아서는 순간, 송하나는 숨을 멈췄다.

완벽하게 잘생긴 저 얼굴은... 바로 그녀의 남편 이강우였다!

“새로 오신 송 선생님 남자친구분은 이원 그룹 대표님이라고 하던데 역시 말이 안 될 정도로 잘생겼네요.”

“며칠 전, 뉴스에서 대표님이 여자친구 기쁘게 해주려고 경매에서 최고가 280억을 들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낙찰했다고 하더니 오늘은 또 당당하게 여자친구 응원하러 왔네? 여친 사랑이 너무 지극한 거 아니야?”

“송 선생님 너무 행복하시겠다. 모든 걸 다 갖췄잖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지!”

주변의 탄성과 의논 소리가 끝없이 송하나의 귓가에 쏟아졌다.

차설아도 이강우의 얼굴을 보고는 단단히 충격을 받았다.

“헐, 이런 개자식이!”

‘하나가 죽다 살아났는데 안부 한 마디 없다가 여기서 당당하게 제삼자나 응원하고 있어?”

차설아는 화가 나서 대신 따지러 가려 했지만 송하나가 얼른 말렸다.

“됐어, 설아야. 이만 돌아가자.”

이혼은 이미 결정된 일이니 여기서 더 추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차설아는 내키지 않았지만 이제 막 수술을 받은 송하나가 이런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병실로 돌아왔다.

“이강우 이 개자식! 명색이 유부남이면서 이렇게 대놓고 제삼자랑 애정행각을 하는 거야?”

“그년도 참 뻔뻔하기 그지없네. 의사는 개뿔! 남의 남편 꼬시는 주제에. 의사 도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

차설아는 인간쓰레기 이강우와 그 내연녀를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송하나의 표정은 매우 담담했다.

차설아는 그녀가 이강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니 별안간 걱정이 앞섰다.

“하나야, 괜찮아?”

송하나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괜찮아. 어차피 난 이미 이혼 결심했어.”

이혼 서류는 침실에 놓아뒀으니 늦어도 다음 달이면 이강우가 보게 될 것이다.

차설아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너 정말 마음 정리한 거야? 이강우랑 이혼한다고?”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려고.”

그녀는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가슴은 칼날에 베이는 듯한 고통이 차올랐다.

그녀는 이강우를 꼬박 7년을 사랑했다.

이강우 이름 석 자가 이미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거칠게 뜯어내야만 비로소 그를 완전히 지워낼 수 있을 터였다.

아무리 아프더라도 그녀는 이 결혼을 끝내기로 했다.

“잘 생각했어, 하나야!”

차설아는 조금 흥분한 듯했다.

“너처럼 훌륭하고 예쁜 여자가 어떤 남자인들 못 만나겠어. 왜 굳이 이강우라는 한 나무에만 매달려 있겠니?”

“이혼해! 당장 이혼해! 너 이혼하면 이 언니랑 같이 호빠 선수들 불러서 놀자. 에겐남, 테토남, 연하남, 근육남, 원하는 건 다 있으니 실컷 놀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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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현
결호은 해도 서로 좋은 사람과 결혼 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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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091화

    송하나가 치맛자락을 들고 메이크업룸에서 나오는 순간, 매장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심성빈은 송하나를 보자마자 시선이 그녀에게 꽂혀버렸다. 그의 깊은 두 눈에는 노골적인 감탄이 가득했다.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그의 눈에는 오직 새하얗고 부드러운 그녀의 모습만이 담겨 있었다.그 순간 심성빈은 잠시 넋을 잃었다.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한 장면이 떠올랐다.송하나가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다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걸어오며 마침내 이생에서 유일한 자기 신부가 되는 모습이었다.드레스 숍 매니저도 진심으로 감탄했다.“심 대표님, 여자친구분이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제가 본 화인국 여성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우세요.”심성빈은 천천히 다가가 자연스럽게 송하나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그의 눈가에 담담한 미소가 번졌다.‘물론이지,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야.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내 여자라고.’심성빈은 직접 운전해 송하나와 함께 연회가 열리는 크루즈로 향했다.밤이 내려앉고 넓은 바다가 어둠 속으로 이어졌다.거대한 프라이빗 크루즈가 해상에 정박해 있었다.배 전체가 찬란한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황금빛 조명이 파도에 비쳐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연회장 안에는 이름난 인사와 권력자들이 모여 있었고, 어디를 보아도 최상류층만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이 넘쳤다.심성빈이 등장하자 단숨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그는 심하 그룹의 실질적인 소유주로 젊은 나이에 거대한 기업을 이끌며 냉정하고 과감한 수완으로 이름을 알렸고, 현지 시장에 진출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큰 화제를 모았다.다만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많지 않았다.그를 알아본 기업인과 협력사 임원들이 잇따라 다가와 잔을 들며 인사를 건넸다.“심 대표님께서 직접 와 주시니 오늘 자리가 더 빛나는군요.”“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처음 뵙는데 역시 명성이 괜히 난 게 아니시네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090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안나는 그대로 굳었다.안나는 묵직한 식판을 든 채 네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 웃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봤다. 반면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자신은 그곳에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같았다.안나는 맥없이 몸을 돌려 아무도 없는 빈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식판 위 가득 담긴 음식을 봐도 더는 입맛이 나지 않았다.뒤쪽에서 흘러나오는 수군거림이 그녀의 귓가에 꽂혔다.“저기 봐. 시아랑 송하나, 비주얼이랑 분위기 끝판왕 둘이 같이 있으니까 그림이 장난 아니다.”“난 둘이 무대에서만 겉으로 친한 척하는 줄 알았는데 사적으로도 사이가 되게 좋네.”“그러고 보니 안나는 왜 같이 안 있어? 예전에는 매일 시아 옆에 붙어 다니면서 하루 종일 떨어질 줄 몰랐잖아.”“너 몰라? 시아가 안나랑 절교했대.”“뒤에서 뭔가 못된 짓을 하다가 시아한테 찍혔다던데. 요즘 시아가 아예 눈길도 안 준대.”“그래서 요즘 맨날 혼자 다니는구나.”학생들의 말이 귀에 들어올 때마다 안나가 애써 지키던 체면이 처참하게 찢겨 나갔다.그녀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젓가락을 힘껏 쥐었다. 마음속에서 원망스럽고 억울한 감정이 미친 듯이 번졌다.‘난 이미 자존심을 내려놓고 시아 선배에게 사과했고 화해하자며 문자도 수도 없이 보냈어. 그런데 시아는 조금도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구나. 그것도 모자라 송하나와 저렇게 가까이 지내다니. 이건 보란 듯이 나를 망신을 주려는 거잖아.’안나의 두 눈에 음울하고 차가운 빛이 번졌고 이성은 완전히 무너졌다.‘시아 선배가 이렇게 냉정하고 의리 없이 나온다면 나도 앞으로 인정사정 봐줄 필요가 없어.’심하 그룹 해외 지사.요즘 심성빈의 등 상처는 거의 다 회복되었다.매일 정해진 시간에 드레싱을 받는 것 말고는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며 핵심 업무를 처리했다.오후.그가 급한 일을 막 정리했을 때 사무실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비서실장이 들어와 두 손으로 초대장 한 장을 건넸다.“심 대표님, 이번 주말에 고급 프라이빗 크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089화

    다음 날.송하나는 평소처럼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갔다.점심때가 되자 그녀는 허지안과 함께 교내식당으로 향했다.식당 안은 학생들로 북적였고,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밥을 먹으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송하나는 입맛이 없는지 간단한 가벼운 음식만 식판에 담았다.반면 허지안의 식판은 고기와 채소가 골고루 담겨 푸짐했다.허지안은 송하나의 지나치게 담백한 식판을 보고 감탄하듯 말했다.“하나야, 너 이거밖에 안 먹어? 너무 부실한데? 이걸로 배가 차?”송하나는 가볍게 웃었다.“오늘은 입맛이 별로 없어. 그냥 가볍게 좀 먹으려고.”“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유지하는구나.”허지안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너랑 비교하면 나 완전 돼지 같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송하나는 부드럽게 달랬다.“너 퇴원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몸 회복하려면 영양 보충해야지. 많이 먹는 게 좋아.”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빈자리를 찾았다.그때 허지안이 갑자기 팔꿈치로 송하나를 살짝 건드리며 목소리를 낮췄다.“하나야, 저기 봐.”송하나가 시선을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안나가 식판을 든 채 어색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주변에는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학생들이 가득했지만 안나 혼자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그녀의 얼굴에는 쓸쓸함과 난처함이 떠올라 있었고, 온몸에서 외롭고 갈 곳 없는 기색이 묻어났다.허지안은 그런 안나를 보며 요즘 상황을 조용히 설명했다.“어제 고학년 기숙사 쪽을 지나가는데 다들 그러더라. 안나가 요즘 반에서 완전히 따돌림당한대.”허지안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 말했다.“예전에는 시아 선배 옆에 붙어 다니면서 선배 인기를 믿고 자기가 남들보다 잘난 줄 알았잖아. 사람 대하는 태도도 거만했고 다른 학생들을 늘 무시했어. 그때는 다들 시아 선배 체면 때문에 참고 넘어갔는데, 지금은 시아랑 절교했잖아. 예전에 안나한테 상처받은 사람들은 아무도 상대하려고 안 한대.”“주변을 맴돌던 남자 학생들도 마찬가지야. 다들 시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088화

    나윤정은 몸을 돌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모습이 로비 깊숙이 사라지고 나서야 심성빈이 천천히 송하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낮게 말했다.“가자, 하나야. 우리도 집에 가자.”“네.”송하나는 짧게 대답하고 그를 따라 차에 올랐다.돌아가는 길.송하나는 좌석에 기대 눈을 잠시 감고 있었다.하지만 마음속에는 낮에 들은 한 가지 일이 계속 맴돌았다.학장실에서 나윤정이 무심코 꺼낸 정원이라는 이름이 마치 가느다란 깃털처럼 그녀의 기억을 간질이며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낯선데도 뼛속까지 익숙한 듯했다.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심성빈은 그녀의 기분을 살피고 있었다.송하나가 어딘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는 걸 알아차린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주며 손끝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무슨 생각해? 고민이라도 있어?”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에 송하나의 들뜬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마음속의 의문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성빈 씨, 오늘 이모가 한 사람의 이름을 말했어요. 정원이라는 이름이에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도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고 아주 오래전에 수없이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정원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예요? 성빈 씨는 그 사람을 알아요?”심성빈의 손끝이 순간 뻣뻣하게 굳었다.그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가슴속에는 거센 파문이 일었다.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질문이었다.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마음속 감정을 억누르고 애써 태연한 눈빛으로 송하나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예전에 네가 연구 일을 할 때 알게 된 사람이야. 그때 서로 엮이는 일이 꽤 많았어. 그래서 그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졌겠지.”“그 뒤에 해외 연수 기회를 얻어서 외국에 정착했고, 자연스럽게 연락도 끊겼어.”“하나야, 너 예전에 물에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087화

    송하나가 무대 위에서 그렇게 밝고 편안하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빛날 수 있었던 건 모두 눈앞의 이 남자 덕분이었다.그는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산산이 부서진 송하나를 조금씩 치유했고 비바람을 막아 주며 그녀가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그가 송하나를 위해 쏟은 마음과 대가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심성빈 씨.”나윤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심성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하나를 사랑해요?”심성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고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많이 사랑합니다. 하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영혼에 깊숙이 새긴, 저와 인생을 같이할 유일한 사람입니다.”그동안 심성빈이 송하나를 위해 해 온 일을 생각하면 나윤정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믿을 수 있었다.어쩌면 말로는 그의 깊은 사랑을 다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나윤정은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진심을 담은 목소리에는 어른으로서의 당부와 기대가 담겨 있었다.“하나는 사는 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했어요. 지금은 성빈 씨를 완전히 믿고, 의지하고, 받아들이고 있죠. 하나와 함께하기로 선택했다면 꼭 잘해 줘요. 절대 상처 주지 말고.”“알겠습니다.”심성빈은 고개를 숙이며 겸손하고 진실하게 답했다.“네, 그럼요 제가 곁에 있는 한 절대 서운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할 겁니다.”그는 나윤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선생님은 하나의 이모이자 어른이세요. 앞으로 제가 부족하거나 하나에게 잘못하는 일이 생기면 언제든 꾸짖어 주세요. 어떤 벌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겠어요.”나윤정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빛에 깔려 있던 무거운 기색도 조금 걷혔다.“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룸 문이 열리고 송하나가 들어왔다.“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심성빈과 나윤정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무거운 이야기를 즉시 멈췄고 표정도 한결 편안하게 바뀌었다.나윤정이 다정하게 웃으며 농담하는 말투로 말했다.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086화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나윤정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심성빈은 두 사람을 시내 최고급 프라이빗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자리에 앉자 그는 나윤정의 식성이나 금기 사항을 정중히 물으며 능숙하게 주문을 이어갔다. 식사 내내 그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하면서도 곁에 앉은 송하나를 살뜰히 챙겼다.나윤정은 한눈에 알아봤다. 심성빈이 송하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겉으로 보여 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그것은 오랜 습관처럼 몸에 밴 배려였다.송하나의 입맛과 취향을 전부 꿰뚫고 있었고, 그녀가 싫어하는 재료는 말없이 골라내 주었으며 따뜻한 과일 차는 언제나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놓여 있었다.이런 세심한 배려는 짧은 시간 함께 지냈다고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식사가 절반쯤 진행됐을 때 송하나가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가 나가고 나자 심성빈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윤정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솔직하고 진지했다.“나윤정 선생님, 마음속에 궁금한 게 많으실 거라는 걸 알아요. 부탁이 하나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 앞에서는 예전 일을 꺼내지 말아 주세요.”나윤정의 온화하던 눈빛이 가라앉으며 진지해졌다.“하나가 무대에 선 영상을 봤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예전의 하나는 오로지 연구에만 마음을 쏟았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음악으로 진로를 바꾸다니, 분야가 너무 달라요.”“그리고 정원이도요. 두 사람은 그렇게 사랑했는데, 오늘 내가 정원이 이름을 무심코 꺼냈을 때 하나 반응이 너무 이상했어요.”“심성빈 씨,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숨김없이 말해 줘요.”심성빈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살짝 쥐며 마른침을 삼켰다.그는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낮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윤정 선생님, 이건 이야기가 좀 길어요.”“하나가 해외에서 연구하던 중 사고를 겪었어요. 1년여 전, 차정원 씨가 하나를 구하며 귀국시키려다가 총에 맞고 바다로 떨어졌어요. 그 뒤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고 생사도 확인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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