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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Penulis: 김하이
이 광경을 본 송하나는 발끝부터 차가운 기운이 치밀어 오르고 사시나무 떨듯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강우가 뼛속까지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가 바로 송태리였다니!

왜 하필 그녀인 건데? 왜 하필 원수의 딸이냐고?

“싫다면요?”

송하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었다.

“그럼 네 생활비를 일절 끊어버려야지.”

이강우의 목소리에는 차가움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참나.”

송하나는 웃음을 터뜨리다가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송태리를 기쁘게 하려고 이 인간은 정말 못 하는 게 없었다.

“괜찮아요, 강우 씨.”

송태리가 애교를 부리며 이강우의 팔짱을 꼈다.

“얘는 내 사촌 동생이에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릴 때부터 집에서 내 물건을 뺏는 걸 좋아했어요. 고작 옷 한 벌 뿐이니 그냥 얘 줘요.”

도저히 지켜볼 수 없던 차설아가 송태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뻔뻔한 세컨드 주제에 우리 하나가 먼저 찜한 옷을 뺏는 것도 모자라 사실까지 왜곡해?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

이강우의 안색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송하나는 차설아를 잡아당겼다.

자신과 이강우, 송태리 세 사람의 분쟁에 다른 이들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강우는 송하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그녀가 양보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송하나는 그대로 카드를 점원에게 건넸다.

“이 옷 제가 살게요. 카드 결제해 주세요!”

그녀가 노골적으로 거절하자 이강우는 미간을 찌푸렸고 얼굴에는 불쾌감이 역력했다.

다만 송하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비싸게 산 드레스를 들고 뒤돌아섰다.

그녀의 등 뒤에서 이강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이거, 그리고 저것도. 매장에 들어온 신상들 싹 다 포장해서 태리 집으로 보내줘요.”

그 순간 송하나는 걸음을 멈칫했다.

모든 신상품이면 적어도 수억 원은 될 터였다.

송태리가 마음에 드는 옷을 득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는 이토록 사치스럽게 보상해주고 있었다.

송태리를 뼛속까지 사랑해서 일말의 서러움도 겪지 않게 해줄 건가 보다.

이런 상황에 차설아는 욕설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X발! 이강우 눈깔이 삐었나? 너 같이 현명한 아내를 옆에 두고도 몰라주다니. 송태리 저 여우 같은 년이 대체 뭐가 좋다는 거야?”

송하나는 가슴 한쪽이 찌릿했지만, 이내 다시 담담해졌다.

어차피 이혼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왜 굳이 또 이강우 때문에 괴로워해야 할까?

다음 날 오전.

송하나는 혼자 무료함을 달래며 거리를 거닐었다.

어슬렁거리다 보니 어느덧 모교 앞에 도착했다.

캠퍼스에서는 한창 채용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후배들의 맑고 생기 넘치는 얼굴을 보니 그녀의 마음도 잠시 아련해졌다.

만약 4년 전, 연애 호구가 되어 이강우에게 시집가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학업과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은 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겠지...

“송하나?”

등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뒤돌아보니 놀랍게도 대학 시절 지도교수 장현서가 서 있었다.

“교수님.”

장현서는 이전보다 조금 늙어 보였고 흰머리가 늘었지만, 여전히 독설을 내뱉던 영감탱이였다.

“많이 야위었어. 안색도 안 좋고. 사는 게 많이 힘들었니?”

“그게...”

송하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그때 멀리서 그 녀석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는데 널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지 않더라. 하나 너는 꼭 직접 겪어보고 넘어져 봐야 정신을 차리는 애였지. 이제 드디어 상처도 받고 아픈 줄 알겠어?”

장현서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담아 그녀를 타박했다.

이에 송하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게요. 직접 부딪혀 보니 얼마나 아픈지 알겠더라고요.”

“교수님, 그 약품 특허 건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원래 네 것이었으니 당연한 거야. 돈을 손에 쥐고 있어야 막다른 길에 섰을 때 탈출구라도 있지.”

이제야 송하나는 교수님의 깊은 배려를 깨달았다.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끊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길이 불바다임을 뻔히 알기에 그녀가 그곳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차마 직접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점심 무렵.

송하나는 장현서와 함께 학교 식당에서 식사했다.

“직장은 구했어?”

송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이 있었다. 4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오면서 거의 세상과 단절된 채 오로지 이강우만을 바라봤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장현서가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이 회사 대표가 내 제자인데 너만 원한다면 언제든지 출근할 수 있을 거야.”

송하나는 명함을 쓱 훑어보았다.

[현진 바이오테크.]

이곳은 근 2년 사이에 급성장한 기업으로 암 치료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녀의 전공과도 정확히 일치했고 회사 규모도 비교적 단순해 직장 경력이 거의 없는 신입인 그녀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송하나는 스승의 인맥을 이용해 손쉽게 취직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오후, 장현서는 수업에 들어갔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이력서를 작성하여 현진 바이오테크 HR에게 전송했다.

곧바로 HR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다음 날 오전 관련 서류를 지참하여 면접에 응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송하나는 서류를 정리하다가 졸업증명서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성수 빌리지에 두고 온 모양이다.

그녀는 급히 저택으로 달려가 증명서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서민경이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이번 달에 보내주신 금액이 혹시 잘못된 거 아니에요?”

전화기 너머로 이강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돈은 저택 유지비용으로 쓰세요. 이달부터 송하나 생활비는 전부 중단시킬 겁니다!”

송하나를 본 서민경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강우는 매달 서민경의 계좌를 통해 송하나에게 생활비를 보내왔다.

그녀는 송하나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알고 몰래 그 돈을 횡령하고는 상징적으로 몇십만 원만 쥐여주었다.

무덤덤한 표정인 걸 봐서 송하나는 아직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이에 서민경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송하나를 뒤따라 오며 끊임없이 설득하려 애썼다.

“사모님, 혹시 또 도련님 화나게 하셨어요?”

“도련님과 결혼한 건 사모님 인생에 최대의 행운이에요. 도련님이 밖에 여자가 있으면 어때서요? 사모님 의식주는 아무 문제 없잖아요. 대체 왜 이런 사소한 일로 심술을 부려요?”

“제 말 듣고 얼른 도련님께 전화해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빌어요. 그럼 아마 도련님도 용서해주실 거예요.”

“저도 다 사모님 위해서 하는 말이니 쓸데없는 고집은 부리지 말아요.”

서민경은 송하나의 뒤에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그녀를 따라 침실까지 들어왔다.

송하나는 뒤돌아보며 눈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게 과연 나를 위해서일까 아니면 본인 주머니나 채우려는 수작일까? 나보단 본인이 더 잘 알겠지?”

서민경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녀는 손에 쥔 물티슈로 탁자를 닦는 척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서민경의 어색한 행동을 보고 송하나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이강우가 전에 달마다 그녀에게 생활비를 얼마만큼 주었는지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제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서랍에서 졸업증명서를 찾아낸 송하나는 곧장 집 밖을 나섰다.

한편 서민경은 탁자 위에 놓인 이혼 서류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

그녀는 서둘러 송하나를 뒤쫓았다.

“도련님과 이혼하시려고요?”

송하나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왕 본 김에 나 대신 강우 씨한테 좀 전달해줘.”

떠나가는 송하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민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그녀가 죽자사자 매달려서 결혼한 건데 겨우 이씨 가문에 발을 들였더니 선뜻 사모님 자리를 내놓겠다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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