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심성빈이 멍하니 넋 놓고 있자 송하나가 옷자락을 살짝 잡아끌었다.“성빈 씨? 왜 그래요?”심성빈은 정신을 차렸다. 마음속에서 들끓는 씁쓸함과 죄책감을 애써 누르고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좀 옛날 생각이 나서.”그녀가 더는 캐묻지 못하게 바로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리키며 물었다.“저기 아이스크림 파네? 먹을래?”기억을 잃은 후의 송하나는 어린 소녀가 되어 이런 것들에 쉽게 마음을 빼앗겼다.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먹고 싶어요!”심성빈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당부했다.“사 줄 테니 조금만 먹어. 의사가 아직은 찬 음식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 하나 다 먹으면 배탈 나.”송하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았어요.”두 사람은 나란히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송하나는 좋아하는 맛을 골라 작게 한 입씩 베어 물고 만족감에 흠뻑 도취했다.쇼핑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해가 이미 저물었다.심성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오늘 어때? 쇼핑 즐거웠어?”송하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네, 완전 재미있었어요. 고마워요, 성빈 씨!”그녀의 해맑은 미소는 눈 부신 햇살처럼 심성빈의 마음속 어두운 곳까지 환하게 비추었다.이번 외출은 아주 원만하게 마무리했다. 빅토르 쪽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심성빈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며칠 뒤, 밤.심성빈은 송하나를 재우고 서재로 와서 밤늦게까지 업무를 처리했다.송하나는 자기 전에 물을 조금 마신 터라 밤에 자다 말고 화장실로 향했다.문득 밖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문을 열고 보니 가정부가 커피 한 잔을 들고 있었다.“하나 씨? 왜 깨셨어요?”가정부는 그녀를 보자 황급히 인사했다.송하나는 잠에서 덜 깬지라 눈을 비비며 물었다.“이 늦은 시각에 왜 다들 안 주무세요? 이 커피는?”“대표님께 드리는 겁
심성빈은 다정한 제스처로 송하나의 귀 언저리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뒤로 넘겨주었다. 이어서 부드럽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다 됐다. 이러면 아무도 너 못 알아봐.”송하나는 그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임을 잘 알기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협조했다.차는 시내 중심가의 가장 번화한 백화점을 향해 달렸다.송하나는 다시 깨어난 이후로 처음 별장을 나섰다.그녀는 차창에 얼굴을 기대고 한없이 낯선 창밖을 바라보며 두 눈에 신선함으로 가득 찼다.오가는 사람들, 끊임없이 흘러가는 차량들,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다만 미처 알지 못한 점이 하나 있다면 이번 외출을 위해 심성빈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에게 혹시라도 실수가 생길까 봐 수많은 사람들이 몰래 지켜주고 있었다.백화점에 도착한 두 사람은 아주 평범한 젊은 부부 같았다.심성빈은 내내 그녀의 곁을 지키며 인내심 있게 매장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송하나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가격표를 살펴보다가 비싸다고 생각되면 몰래 제자리에 내려놓았다.그럴 때마다 심성빈은 두말없이 부하에게 결제하라고 신호하고 담담한 투로 말했다.“마음에 들면 사. 가격 신경 쓰지 말고.”송하나는 그저 바람 쐬러 나왔는데 심성빈은 그녀의 취향이라면 주저 없이 만족시켜 주었다. 그녀의 시선이 단 1초라도 더 머물면 바로 플렉스 해버렸다.이런 식이라면 백화점을 통째로 사버릴 기세였다.송하나는 더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심성빈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로드샵이 즐비한 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대부분 젊은 세대라 활기가 차 넘쳤다.걷다 보니 고소한 계란빵 냄새가 풍겨왔다. 송하나는 걸음을 멈추고 향기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이를 눈치챈 심성빈이 나지막이 물었다.“먹고 싶어?”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계란빵 가게 앞에 웨이팅이 너무 길어 딱 봐도 사기 어려웠다.심성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여기서 기다려. 금방 사 올게.”그는 두 명의 경호원를
심성빈의 세심한 보살핌 아래 송하나는 근심 걱정 없는 나날을 보냈다.별장의 가정부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심성빈이 송하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극진히 보살피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그녀들은 남몰래 수군거리기도 했다. 송하나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며,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을 보석처럼 여기는 대표님을 만날 수 있겠냐고 말이다.오직 심성빈만이 알고 있었다. 그녀야말로 자신을 치유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지금처럼 곁에 머물 기회를 주었고 지난날의 후회를 만회할 수 있게 됐다.한편 송하나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다.그녀는 심성빈에게 옛이야기를 물었고 자신에게 가족이 있는지 물었다.심성빈은 해맑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차마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다는 잔혹한 진실을 말할 수 없어 나직이 거짓말을 둘러댔다.“그럼. 너도 당연히 가족이 있지.”이에 송하나가 캐물었다.“근데 왜 아직도 안 찾아온대요?”그녀의 잠재의식 속에는 자신을 걱정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심성빈의 마음이 살짝 아려왔다. 그는 부드러운 말투로 핑계를 둘러댔다.“네가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닌데 그분들이 오면 괜히 방해가 될까 봐, 네가 또 감정이 격해질까 봐 걱정돼서 일부러 안 오시는 거야. 이제 완전히 회복되거든 꼭 보러 오실 거야.”그 말을 내뱉는 순간, 심성빈의 마음은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녀의 가족이라 하면 법적인 남편 차정원뿐이다.차정원이 그녀 앞에 나타나는 순간이면 훔쳐 온 지금 이 시간도 완전히 끝날 것이다. 그때 되면 송하나는 심성빈과 완전히 이별해야 하는 건가?은밀한 미련이라고 해야 할까? 이 감정은 마치 심장을 바늘로 콕콕 찌르듯 희미한 고통을 안겨주었다.송하나는 그의 눈가에 어린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가족이란 아빠, 엄마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진지한 투로 말했다.“성빈 씨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우리 가족들도 분명 성빈 씨를 좋아하실 거예요.”심성빈은 억지 미소를 짓고는
“좀 어때요?”송하나는 심성빈의 손가락에 입김을 살짝 불어주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따뜻하고 부드러운 숨결이 손끝을 스치자 남자의 가슴은 순식간에 온기로 가득 찼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행복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그는 송하나의 걱정스러운 눈매를 바라보면서 목울대를 살짝 굴렸다. 목소리에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의 가냘픈 떨림이 섞여 있었다.“이제 안 아파.”송하나는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준 후 약상자를 정리해서 방으로 돌아갔다.심성빈은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심란해지고 눈가에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이토록 사소한 관심에도 가슴이 미칠 듯이 요동치는데...나중에 그녀를 놓아주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시간은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다.심성빈이 송하나에게 베푸는 호의는 곳곳에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어느 날 오후, 그녀와 함께 뒷마당을 산책하다가 해 질 녘 노을이 예쁘게 내려앉아 정원을 따스한 주황빛으로 물들였다.송하나는 꽃밭 앞에 서서 무언가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때 산들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날렸고 잔잔한 눈매까지 더하니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다.그녀의 뒤에 서 있던 심성빈은 가슴이 설레서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찰칵하는 소리가 고요한 황혼 속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울렸다.송하나도 곧장 알아채고 몸을 돌려 예쁜 살굿빛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왜 찍어요, 성빈 씨!”심성빈은 태연하게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대답했다.“그냥 기록하고 싶어서.”“제대로 찍긴 했어요? 안 되겠다. 다시 찍어요 얼른!”그녀는 꽃밭 앞에 서서 심성빈을 향해 브이 포즈를 취했고 눈동자에는 생기가 차 넘쳤다.기억을 잃은 후, 송하나는 예전의 차가운 모습을 벗어던지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함과 귀여운 모습을 더했다. 꼭 마치 순수한 어린 소녀 같았다.심성빈은 실소를 터트리며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정면과 옆모습, 45도 각도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90도 꺾기까지 다양하게 찍었다.송하나는 신나게 포즈
심성빈은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다가 송하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서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람 시켜서 사 왔지.”송하나는 미간을 구기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리나 씨가 여러 군데 찾아봐도 파는 곳 없다고 했는데...”“제대로 못 찾았겠지 그럼.”심성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서류를 한 장 넘기면서 그녀에게 눈짓했다.“먹어봐.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송하나는 탕후루 꼬치를 집어 들었다. 가볍게 한 입 베어 물자 설탕 시럽이 부서지며 바사삭 소리를 냈다. 딸기의 신맛과 시럽의 단맛이 혀끝에서 어우러져 송하나가 좋아하는 바로 그 새콤달콤한 맛을 냈다.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만족감을 드러냈고 눈가에도 미소가 번졌다.심성빈은 기쁨에 도취한 그녀의 모습을 보더니 저도 몰래 입꼬리가 올라갔다.“어때?”“너무 맛있어요.”송하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빵빵해진 볼은 꼭 마치 다람쥐처럼 귀엽고 앙증맞았다.접시에 담긴 탕후루가 꽤 많아 그녀 혼자서는 다 먹어치울 수 없을 터였다.심성빈의 허락을 받은 후 나머지를 가정부들에게 나눠주었고 또 일부러 가장 맛있다고 생각되는 딸기 탕후루를 심성빈에게 남겨주었다.그녀는 탕후루를 들고 심성빈 앞에 다가가 넙죽 건네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성빈 씨도 드셔보세요. 진짜 맛있어요.”심성빈은 애초에 어린 애들이나 좋아하는 단 음식에 별 흥미가 없지만 송하나가 건네는 탕후루는 달랐다.그는 곧장 수중의 서류를 내려놓고 흔쾌히 탕후루를 받아들었다.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꼬치를 집어 들던 찰나, 송하나는 뒤늦게 발견했다.이 남자의 손에 빨간 물집이 몇 군데나 나 있었다.유독 눈에 거슬리는 흉터를 보며 송하나는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성빈 씨 손이 왜 이래요?”그제야 심성빈도 손을 거두며 태연하게 대답했다.“아니야, 아무것도. 실수로 뜨거운 물을 쏟아서 살짝 데었어. 괜찮아.”구석에 서 있던 가정부는 이 광
심성빈은 몸을 숙여 송하나의 고요하고 평온한 눈매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길고 가는 속눈썹은 나비 날개처럼 살포시 내려앉았고 오뚝한 콧날과 옅은 입술색까지 모든 게 사랑스러웠다.마음속 깊이 억눌렀던 충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고개를 숙여 송하나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추고 싶었지만 끝내 참았다. 그저 조심스럽게 이불깃을 여며주고는 소리 없이 일어나 방을 나섰다.차마 전하지 못한 진심과 모든 인내를 밤의 장막 속에 고이 숨겨 둔 채로...다음 날 오전.심성빈이 서재에서 나오다가 복도 모퉁이를 지나는데 두 가정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우리 대표님 송하나 씨한테 너무 잘해주시는 거 아니에요? 무슨 보물 다루듯이 하시는 거 있죠. 남자가 여자한테 저렇게까지 정성을 쏟는 건 처음 봐요.”또 다른 가정부도 나지막이 감탄했다.“대표님 분명 송하나 씨를 좋아하시면서 대체 왜 고백을 안 하는 걸까요? 늘 친구인 척하는 이유가 뭘까요?”두 사람은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그중 한 명이 심성빈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서 표정이 다 굳어버렸다. 그녀는 황급히 동료를 잡아끌었다.두 사람은 즉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심성빈은 걸음을 멈추고 두 가정부를 바라보았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단호한 기색이 역력했다.“앞으로 하나 앞에서 이런 잡담 하지 말아요. 알겠어요?”“네, 대표님.”가정부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했다.이에 심성빈도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는 남 말에 신경 쓰지 않지만, 행여나 이런 얘기가 송하나의 귀에 들어가 현재의 안일함을 깨뜨릴까 봐 걱정했다.모두가 알다시피 대표님은 송하나 씨를 엄청 아끼시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셨다.저녁 무렵, 심성빈은 회사 업무를 마치고 별장으로 돌아왔다.집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가정부에게 물었다.“하나는요?”가정부가 곧바로 대답했다.“방에 계십니다.”식사량을 물었더니 오늘 매우 적게 먹었다고 했다. 심성빈은 대뜸 미간을 구겼다.“음식이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