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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作者: 김하이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선원들의 옷깃을 흩날렸다. 허리춤은 불룩했고 그 안에서 은밀히 총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 순간 차정원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켜졌다.

그러나 이내 ‘혹시 내가 너무 앞서나가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심성빈이 그와 송하나를 지키기 위해 경호원들을 붙여뒀을지도 모르니까.

다만 진실이 뭐가 됐든 똑바로 짚고 넘어가야 했다.

“하나야, 바람이 너무 세게 부네. 감기 걸릴라.”

차정원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며 창문을 닫고 송하나의 손을 감쌌다.

“잠깐 여기서 쉬고 있어. 난 화장실 좀 다녀올게. 금방 돌아올 거야.”

“네, 정원 씨.”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댄 차정원은 선원들의 시선을 피해 복도를 따라 선실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방을 지나고 기관실을 지나서 선원들의 휴게 공간을 지나치며 모퉁이를 돌아서자 그는 대뜸 걸음을 멈췄다.

바닥에 찍힌 옅은 핏자국, 닦아낸다고 했지만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었다.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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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되어 빛나리   제901화

    “기억을 지운다고요?”심성빈의 목소리가 떨렸다.“네, 심 대표님.”의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침착하게 설명했다.“송하나 씨가 현재 겪는 고통의 근원은 차정원 씨가 총에 맞고 바다로 떨어지던 기억입니다. 만약 그 일을 잊게 해준다면 송하나 씨도 점차 안정을 되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차정원 씨와 관련된 일부 기억도 잃을 수 있어요.”“차정원을 잊는다고요?”“완전히 잊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흐릿해지고 많은 세부 사항이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부작용으로 전반적인 기억력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건망증이나 집중력 저하 같은 증상 말이죠. 이 치료를 진행할지 여부는 가족분들께서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합니다.”심성빈은 복도에 앉아 오랜 시간 깊은 생각에 잠겼다.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머릿속에는 날로 야위어가는 송하나의 얼굴, 퀭한 눈동자, 그리고...창가에 앉아 허공에 대고 차정원의 이름을 부르던 모습까지 반복해서 떠올랐다.그녀가 이대로 절망에 잠식되어 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심성빈은 천천히 눈을 뜨고 병실로 돌아갔다.송하나는 침대에 기대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석양의 붉은 빛이 얼굴에 드리우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유독 투명해 보였다.“하나야.”심성빈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차가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너의 고통을 덜어줄 치료법이 하나 있대.”송하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두 눈은 여전히 충혈됐지만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무슨 방법인데요?”잔뜩 잠긴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이 치료를 받으면 일부 기억을 잃게 될 거야.”심성빈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목울대를 굴리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차정원 씨가 바다로 떨어지던 일, 그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잊게 될 거야. 하지만... 그밖에도 네가 차정원 씨랑 함께했던 다른 기억들까지 잊혀질 수 있어.”송하나는 침묵했다.병실에 기나긴 정적이 흘렀다.너무 길어서 그녀가 대답하지 않을 거라 여길 즈

  • 별이 되어 빛나리   제900화

    “저 목 안 말라요.”“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심성빈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자극적이지 않은 걸로 준비해 오라고 했으니까 몇 숟가락이라도 떠봐. 그러다 너 진짜 쓰러져.”송하나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초점 없는 눈동자는 영혼을 잃어버린 듯 텅 비어 있었고, 주변의 그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았다.“지금은 아무것도 먹기 싫어요.”그 모습을 지켜보는 심성빈은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이미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수색 범위를 넓혔는데도 차정원의 소식은커녕 작은 단서 하나조차 찾지 못했다.그 후로 며칠 동안, 송하나는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았다.식음 전폐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간호사가 들고 온 식사는 매번 손도 대지 않은 채 치우기 일쑤였다.심성빈이 종류별로 죽이며 국물, 예전에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들까지 공수해 와 어떻게든 먹여 보려 애썼지만 송하나는 늘 미동조차 없었다.그녀의 앞에서 차정원의 이름은커녕, 바다와 관련된 그 어떤 단어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송하나가 안쓰러워 직접 음식을 떠먹여 주기까지 했다.그의 지극정성을 차마 모질게 거절할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모든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 건지, 마지못해 한 입 받아먹기도 했다.하지만 삼키기 무섭게 몸에서 극심한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송하나는 허리를 숙이더니 구토를 시작했고, 방금 받아먹은 음식물을 모조리 게워 냈다.급기야는 신물까지 쏟아낼 기세였다.슬픔에 잠긴 그녀의 육체는 이미 본능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 자체가 짐이라도 되는 것처럼.연신 구토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송하나를 지켜보던 심성빈은 가슴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지만 도무지 손쓸 방도가 없었다.그저 의료진을 독촉해 영양제를 맞히는 게 전부였다.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점점 말라갔다.눈동자에 서린 공허함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초췌한 모습은 시들어가는 화초를 연상케 했다.심성빈의 초조함과 자책감을 감추지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99화

    송하나는 울부짖으며 차정원의 이름을 불렀다.목소리는 이미 거칠게 갈라져 있었고, 눈물이 둑이 터진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완전히 이성을 잃은 그녀는 차정원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선박 난간을 향해 몸을 던졌다.그 찰나, 심성빈이 움직였다.재빨리 뒤쫓은 그는 두 팔로 여자의 허리를 꽉 껴안으며 난간 끝자락에서 아슬아슬하게 끌어당겼다.“하나야, 진정해! 제발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송하나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눈동자엔 절망이 가득했고, 눈물로 시야가 흐려진 채 애원했다.“정원 씨 피 흘리는 거 못 봤어요?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무조건 죽는단 말이야...! 내가 찾으러 갈 거예요.”“나한테 맡겨.”심성빈의 목소리 역시 떨리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악을 쓰며 평정심을 붙잡았다.“나 믿어. 내가 있는 한, 그 사람 절대 안 죽어.”그는 송하나를 품에 꼭 끌어안고 부하들을 돌아보며 외쳤다.“서둘러! 전부 구조 장비 챙겨서 당장 바다로 뛰어들어 사람부터 찾아.”그사이 어선 위에서 벌어지던 난전은 어느 정도 진압되어 있었다.빅토르의 부하 중 일부는 심성빈의 사람들에게 제압당해 갑판 구석에 포박된 채 꿇어앉았다.또 다른 무리는 빅토르가 총에 맞고 도망치는 것을 보자 저항을 포기하고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더는 승세를 몰아 추격할 여력도, 정신도 없었다. 심성빈의 모든 신경은 오직 차정원을 찾아내는 것에만 쏠려 있었다.송하나는 갑판 위에 서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바다 한가운데에 향한 그녀의 시선은 떠날 줄 몰랐다. 그저 차정원이 제발 무사하기만을 속으로 몇 번이고 기도했다.심성빈은 그녀의 곁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지켰다.송하나를 달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붙잡으려고 전문 구조 팀에 쉴 새 없이 전화를 돌렸다.최대한 빨리 차정원을 찾아내야만 했다.수색 작업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바다로 뛰어들었던 부하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 올랐다.얼굴에는 하나같이 피로와 죄책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98화

    이 한마디는 마치 갑판 위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폭탄 같았다.빅토르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맹렬히 고개를 돌려 상황을 살폈다. 어느새 검은색 복장을 한 서너 명의 남자들이 어선 뒤쪽에서 소리 없이 올라타고 있었다. 날렵하고 거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가장 가까이 있던 부하 둘을 제압한 터, 그들은 바로 심성빈의 수하였다.빅토르는 동공이 끔찍하게 수축했다. 그의 눈빛에 담겨 있던 온화함은 순식간에 분노로 뒤덮였다.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에는 배신감으로 인한 분노가 소용돌이쳤다.송하나에게 철저히 속았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는 순간이었다.고민? 작별? 맹세? 죄다 시간을 끌기 위한 수작인 것을!그녀는 처음부터 빅토르와 함께 떠날 생각이 없었다.“젠장!”빅토르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심성빈의 수하들은 이미 공격을 개시했고 양측은 격렬한 혼전 속으로 빠져들었다.이들은 철저한 준비를 마쳤고 선제공격을 날렸다.반면 빅토르의 부하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무방비 상태였고 무기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불과 짧은 순간, 몇몇 부하가 총에 맞아 쓰러졌고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며 저항할 의지를 잃었다.두 명의 부하가 총탄이 빗발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빅토르에게 달려왔다.“보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심성빈 쪽 병력이 너무 많아요. 저희가 엄호할 테니 어서 후퇴하세요!”지금 움직이면 살 수 있지만, 더 늦으면 정말 끝장이다.하지만 빅토르는 도저히 물러설 수 없었다.그는 송하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두 눈에는 광기 어린 집착만이 번뜩였다.그렇게 애를 쓰고 함정을 파서 겨우 찾아낸 여자를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송하나는 무조건 데려가야 해. 후퇴하더라도 함께 가야 한다고!’빅토르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자 부하들은 초조하고 당황해서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보스, 어서 가셔야 합니다! 안 가면 늦어요. 여자 하나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실 수는 없어요!”하지만 빅토르는 아무런 충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97화

    어선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 이제 겨우 몇 해리만 남았다.심성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부하들에게 배를 두 갈래로 나누어 기동하라고 명령했다.첫 번째 배는 해상 순찰대로 위장하여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하여 그들의 주의를 분산시켰다.나머지 배들은 어선의 시야 사각지대에 정박한 채 엔진을 끄고 부하들이 수중 추진기를 휴대하여 어선 뒤편으로 조용히 접근했다.어선 위에서는 송하나와 차정원이 애틋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두 사람은 나지막이 속삭이며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눈빛에는 경계심을 감췄다. 멀리서 다가오는 움직임을 주시하며 빅토르의 표정을 은밀히 살폈다. 혹여나 들키면 안 되니까.시간이 일분일초 흐르고 빅토르는 손목시계를 연신 들여다보았다.10분이 거의 다 되어가니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재촉하려 했다.그때 송하나가 갑자기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적당히 연약함도 담고 있었다.“빅토르 씨, 제가 당신과 함께 가면 정원 씨 진짜 풀어주실 거죠?”빅토르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곧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물론이지. 난 내뱉은 말은 꼭 지켜. 네가 얌전히 따라오면 차정원 안전하게 보내주고 앞으로도 더는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할게.”차정원은 그를 두 번이나 암살하려 했다. 그의 대역을 죽인 것은 물론 그에게 총상까지 입혔다.빅토르의 성격대로라면 차정원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고 해도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어쩐지 송하나를 위해 그는 모든 분노를 억누르고 눈엣가시 같은 이 남자를 살려주기로 했다.이는 빅토르의 인생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과 잔혹함을 내려놓은 첫 번째 순간이었다.송하나는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치는 듯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그럼... 앞으로 나도 더는 해치지 않을 거죠? 사실 애초에 날 납치했던 것도 다 장기를 얻기 위해서였잖아요.”이 말을 들은 빅토르는 눈가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녀가 자

  • 별이 되어 빛나리   제896화

    차정원은 송하나의 손을 꽉 붙잡고 놓아줄 기미가 없었다. 이 광경을 본 빅토르는 눈가에 순간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다른 누군가가 송하나와 가까이 있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상대가 차정원이라면 더더욱 예민해지는 법.빅토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뒤돌아 부하들에게 차갑게 명령했다.“저놈 당장 묶어서 쾌속정에 던져버려. 여기서 내보내야겠어.”차정원을 죽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오로지 송하나를 위해서였다.이제 그녀가 자신과 함께 돌아가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저 인간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막아선단 말인가?알아서 얌전히 물러나는 게 나을 법했다. 자꾸 빅토르를 화나게 하면 확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그땐 정말 아무도 차정원을 구해주지 못할 것이다.몇 명의 부하들이 밧줄을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자 송하나가 황급히 막아섰다.“잠깐만요, 빅토르! 정원 씨랑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이 필요해요.”빅토르의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가 송하나에게 머물렀다.불쾌함이 감도는 남자의 눈빛, 두 남녀가 질척거리며 떨어지지 못하는 꼴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이를 눈치챈 송하나는 재빨리 나긋한 톤으로 바꾸어 애원 조로 속삭였다.“정원 씨 제 남편이잖아요. 한때 부부였는데 이렇게 떠나가면 평생 못 만나는 거 아닐까요? 마지막 인사라도 건네고 싶으니까 제발 허락해줘요, 빅토르.”여기까지 들은 빅토르는 대뜸 기분이 좋아졌다.그녀가 드디어 자신을 따라주기로 하다니. 차정원과는 모든 인연을 끊고 영원히 만나지 않을 각오를 하다니. 이것은 빅토르가 무엇보다 바라던 일이었다.그의 기분은 더없이 황홀해졌고 마음 깊숙이 끓어오르던 폭력적인 기세도 거의 잦아들었다.송하나가 앞으로 온전히 내 여자가 될 거란 생각에,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빅토르는 쿨하게 손을 흔들며 말투마저 한결 부드러워졌다.“알았어, 가봐. 가서 충분히 작별 인사 나눠.”송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빅토르의 뒤에서 총을 들고 있는 부하들을 쭉 훑어보자 겁먹은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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