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회장님의 불호령에 보안실장을 선두로 직원들이 부리나케 뛰어 올라 왔다.“내보내요.”정다정의 우는 소리는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한 번만 도와 주면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숫자 일이 싫어질 지경이었다.보안 직원들을 보자 정다정은 도혁의 책상에 매달렸다.“아르떼가 쓰러지면 연쇄적으로 이 업계가 쓰러진다구요! 그걸 원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업계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아르떼의 부도만은 막아 주세요!”듣자듣자 하니까.도혁이 책상에서 일어나 정다정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정다정씨. 남해의 토지를 내가 사라고 했나? 레저 단지 개발 계획서를 내가 제출했나? 정다정씨 본인이 저지른 일이잖아. 그런데 왜! 여기와서 나한테 도와 달라 마라야! ”“내가 죽게 생겼다구요,흑흑흑.”정다정은 보안실과 비서실 직원들이 보는 가운데 울음을 터트렸다.“정다정씨가 죽든 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지금 우리 보안 직원들과 조용히 나갈 건지, 경찰한테 끌려 나갈 건지 결정해요. 지금 보안 직원들과 나가지 않으면 강실장! 경찰에 신고하세요!”실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대장 늑대의 포효였다. 집무실에서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직원들의 목이 저절로 움츠러 졌다.“가시죠. 업무 방해로 신고하기 전에.”보안 실장의 말이 끝나자 검정 양복을 입은 여자 직원이 정다정의 팔을 낚아 챘다.거의 끌려 나가다 시피했다.정다정이 나가자 비서실에서 얼른 얼음을 띄운 물을 가져와 도혁에게 건넸다.“로비 데스크에 연락해서 정다정 출입 금지 시키고, 호텔과 카지노에는 블랙 리스트로 올리라고 해!”아빠가 될 거니까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말만 하며 지내야 하는데 정다정때문에 기운이 더렵혀 졌다.“집에 들어가기 전에 소금이라도 뿌려야 하나.”불쾌감에 씩씩거리며 넥타이를 잡아 늘였다. 그리고는 태오를 호출했다.“네, 회장님.”“아르떼가 사 들인 남해 토지. 근저당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 좀 해 봐. 부도라는거 보니까 대출 상환이 안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도혁이 지시하는 내용을 태블릿 PC에 적어 내려가던 태오는 생각했다.어떤 놈인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다른 이도 아닌 태원의 차도혁을 속이려 했다니. 감히.유출자는 아마 …처분은 도혁이 알아서 하겠지.태오는 찾아 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민석과 도혁이 나가고 임원 회의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 나는데 세나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항상 전화를 하기 전에 통화가 괜찮은지 먼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세나의 습관이었다.“어머님이 과일을 보내 주셨는데 너무 많아요.”당황한 세나가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상상되는 말투였다.“뒀다 먹어.”“진짜 너무 많아요. 잠깐만요…”통화중에 세나가 사진을 보내왔다.현관을 가득 채운 과일 상자들. 도혁은 어머니다운 행동에 웃음이 났다.“입덧하는 며느리가 걱정이 되셨나 보네.”“저걸 언제 다 먹어요?”“사용인들이 다 알아서 할 거야. 당장 먹을 것들만 알려 줘.”아침 9시가 되자마자 벨이 울리고 이어서 올라온 것들은 과일 상자들이었다.어제 도혁이 사 온 복숭아도 겨우 세 개 먹었을 뿐인데.이러다 먹는 속도보다 상하거나 물러서 버리는 속도가 더 빠를까 싶어 도혁에게 도움을 청했다.하지만, 도혁은 다 알아서 하니 아무 신경쓰지 말고 맛있게 먹으라는 말과 잘 받았다는 전화는 어머니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만 했다.감사 인사 역시 도혁이 알아서 한다며.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시어머니 서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머님, 식사하셨어요?”“그럼, 먹었지. 차 한잔 하는 중이다. 며느리, 몸은 좀 어때?”“입덧이 있긴 한데 견딜만 해요.”“아유, 그 놈의 입덧. 왜 임신과 입덧은 무슨 공식같니. 입덧만 없었어도 내가 차회장 동생 하나 정도는 더 낳았을 건데.”그 말에 세나가 긴장을 풀고 웃었다.“괴롭지. 먹어도 괴롭고 먹지 않아도 괴롭고. 그나마 과일은 조금 먹는다길래 보내 봤다. 골고루 먹어 보고 특히 자주 먹어지는 과일은 나한테 말하렴. 더 보내 줄거니까.”“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전투에서 적들을 물리치고 금의환향하는 개선 장군같은 얼굴로, 세 박스나 되는 복숭아를 안고 도혁이 왔다.“진짜 복숭아예요?”도혁의 전담 쇼퍼가 있는 백화점에는 복숭아가 없어 압구정동으로 간다고 했다. 그 곳 백화점 지하 식품관은 유명하니까. 특히 과일은 국제적이었다.거기에 있으려나 기대하기가 무섭게 다시 차를 돌렸다고 했다.삼성동에는 복숭아가 있다는 확인을 받았으니까 사서 갈테니 기다리라고.낱개 포장된 두 세개 정도 생각했으나 도혁은 무려 세 박스나 안고 왔다.“조혜은 실장 애써줬어. 일단 먹자.”도혁은 저녁도 제쳐 놓은 채 복숭아를 정성들여 씻었다. 기다리는 세나에게 1분이라도 빨리 먹여 주고 싶어 마음이 급했다. 큼지막한 손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를 잡고 씻은 복숭아를 잘라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복숭아의 단내가 화악 올라 왔다.“자, 빨리 먹어 보자.”닦아도 물기가 남은 손에 접시를 들고 소파에 앉았다.포크로 하나를 찍어 세나의 입에 넣어 주었다.“어때?”딱딱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은 단단한 식감의 복숭아가 세나의 입 안 가득 달콤한 향을 퍼트렸다.“맛있어요, 너무.”이 복숭아를 구하려고 차를 이리저리 돌린 도혁을 상상하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포크를 쥐고 있는 도혁의 손위에 세나가 제 손을 올려 힘주어 한 조각을 더 찍어 올렸다.“진짜 너무 달아요.”도혁의 입에 복숭아가 들어 갔다.익을대로 익어 달달한 향이 금세 입안에 가득했다.“많이 먹어. 다 먹으면 또 사 올게.”세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복숭아를 입에서 오물거렸다.하나의 포크로 사이 좋게 한 조각씩 서로의 입에 넣어 주었다.“이렇게라도 먹고 싶은 게 있어서 좋다. 아무 것도 못 먹고 누워 있을 때는 오빠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르지?”“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도혁의 어깨에 기대오는 세나에게서 달콤한 향이 났다.복숭아는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더 먹을래?”“아니요. 배 불러요. 소화가 좀 되면 저녁 차릴게요.”“아니야. 하지마. 나도
부부는 닮아간다더니, 입덧까지 하는 남편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먹고 싶은 건 없어요? 제가 하지는 못 하고 사 드릴 수는 있어요.”그 말에 도혁이 소리내어 웃었다.“그래. 우리 세나가 산다는데 맛있는 거 먹어야지.”두 사람은 병원을 나와 근처의 죽 전문점으로 갔다. 도혁이 고소한 전복죽이 먹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괜찮아요?”세나가 도혁에게 물었고,“전복죽은 넘어가?”도혁이 세나에게 물었다.전복 내장이 가득 들어간 전복죽을 도혁은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세나가 반 정도 남긴 죽과 새로 주문한 1인분은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 왔다.다음 날 아침, 포장해 온 죽으로 속을 달랜 도혁이 출근길에 나섰다.“신박사님께 연락해 놓을거니까 오늘 가서 영양제 한 대 맞고 와. 몸이 훨씬 괜찮아.”“오늘은 레슨없어서 집에만 있을 거에요. 나가지 않으니까 괜찮아요.”“안 나가더라도. 컨디션이 달라. 속도 좀 편한것 같고.”도혁의 걱정을 알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너무 유난으로 비쳐 질까봐 세나는 조금 몸을 사렸다.“입덧이 쏙 들어 갔어요. 어제 오빠 병원에 입원한 거 보고. 오늘은 퇴근하면 아기 태명 지어요.”“태명?”“뱃 속에 있는 동안 부르는 이름이요. 이름이 있어야 자주 불러줄 것 같아서요.”“그래. 일찍 올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세나의 임신 후 출근하는 도혁에게 늘 한 마디가 추가되는데 그건 ‘언제든지 전화해’였다.먹고 싶은 게 있으면, 필요한 게 있으면, 문득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이라는 조건을 붙이며.한 번도 전화를 한 적은 없지만 그 말 한 마디가 늘 가슴에 와 닿았다.자신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올 사람임을 알기에. 그 말에서 충분한 사랑을 느꼈다.*****세나의 입덧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첫 시작은 냄새에 민감해진 정도였다. 모든 음식에 미약하게 비린내가 난다고 했고 도혁 역시 냄새에 구역감이 올라오는 정도라 주의하며 지냈다.도혁의 입덧은 늘 거기서 거기, 비슷한 정도였는데
[단독! 태원 그룹 호텔 체인의 첫 삽. 피로 얼룩진 시작][태원 차도혁 회장이 살기 위해 직원을 버렸다. 결국 직원은 사망!]믿을만한 소식통이라는 한 줄에 수십, 수백 개의 언론사가 일단은 그 기사를 받아 썼다.조금씩 다른 기사들이지만 틀은 거기서 거기였다.경찰서는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거기다 당사자인 도혁까지 침묵하자 경찰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인지하고 과거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경찰보다 빨리 당시 호텔 인수에 관한 관련 자료를 입수한 기자들은 그야 말로 펜이 미쳐 날뛰듯이 기사를 써 내려갔다.사실이 아닌 기사라면 도혁이 삭제 요청을 했을 법한데 잠잠했다.그 점이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기사 내용이 진실이라 차도혁이 침묵한다.그래서 변호인도 적극적으로 그 사건에 임했다. 사건을 조사하고 자료를 입수하고.진영의 몰래촬영이라는 범죄와는 별도로 혈육의 죽음에 대한 억울함은 밝혀 줘야 겠다 다짐했다.하지만, 도혁의 기자 회견을 보고 의문이 시작되었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진영이 검사실에서 딜을 했다는 정보까지 입수하게 됐다.몰카 유출보다 더 거물인 사건의 정보를 줄테니 형량을 낮춰 달라는 딜.변호인의 마음이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였다.불쌍해 할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 즉시 사임계를 작성했다.도혁과 관계된 재영의 사망 사고만큼이나 떠들썩하진 않지만 언론은 타겟을 진영으로 돌리고 기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그 동안 도혁의 돈으로 호의호식하다 몰카 유출 사건을 계기로 돈줄이 끊어지자 발악하다는 내용의 기사를.*****세나의 요리 수업이 또 중단되었다. 입덧때문이었다.요리 선생님께 정중하게 이유를 말씀드리고 축하를 받았다.바이올린 수업은 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대로 이어 가 보기로 했다.힘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지만 세나는 바이올린으로 태교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아이와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레슨을 끝낸 세나가 출입문을 열자 도혁이 아닌 경호원이 눈에 들어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딸이었으면 좋겠어요?"아기의 성별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세나의 질문에 아들과 딸을 상상해 봤다.세나를 닮아 뽀얗고 눈이 선한 딸.세나를 닮아 악기를 연주하는 아들."딸도, 아들도 상관없는데. 아들이라면 같이 운동도 하고, 나중에 든든하게 내 여자를 지켜줄 수 있어서 좋겠지. 딸이면…거기다 널 쏙 빼닮은 딸이라면…어디 출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벌써부터 딸바보 예약인 거예요?”도혁은 세나의 평평한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중에 아이가 커져 볼록 나온 배를 상상해 보았다. 그 마저도 아름다울 것 같았다.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아빠의 온기를 뱃 속 작은 생명체도 느낄까.“먹고 싶은거,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참지 말고 바로 말해. 언제든지. 뭐든 해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어머니가 하신 말. 기억하지? 막 부려 먹어.”“그럴게요.”웃음이 났다.아기를 가졌다고 이렇게 좋아하는데 지난 번 유산때 도혁 역시 큰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이 아기는 열 달동안 잘 지켜야지.다짐했다.“방 하나를 아기방으로 만들어야 겠다.”“벌써요?”“살 것들이 많을 거잖아. 아기용품은 아기방에.”“이제 9주예요. 내년 초에 준비해도 늦지 않아요.”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세나는 잘 알았다.추진력 하나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 정도인 도혁이니까.도혁은 다음 날 당장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운동 기구가 있는 방을 아기방으로 꾸미기로 결정했다. 더 크면 만들어 줘도 된다며 운동을 좋아하는 도혁이 계속 그 방을 쓰도록 했지만 도혁은 아기를 위해 양보했다.쇠질하지 않아도 러닝나가면 되니까 걱정 마. 조금 일찍 출근해서 호텔에서 운동해도 되고.운동기구를 빼내고 아기자기한 벽지와 매트 시공으로 이제 겨우 9주된 아기를 위한 방을 만들었다.*****복도에서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던 경찰들의 벌건 눈이 허탈함과 분노로 뒤얽혔다.6년 전 있었던 태원 그룹의 직원 사망 사건.회장인 차도혁과 관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