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누가 지킨다는 건데? 그 여자? 아니면 그 여자 눈치나 보면서 사는 사용인들? ……말도 안 돼! 전부 엄마를 잊었어. 그곳은…… 엄마의 무덤이라고.”
“그래도 피어 있었잖아!” 나도 외쳤다.“어제 그렇게 예쁘게 피어 있었잖아! 누군가 사랑하지 않으면 피지 못할 꽃이야.”“그건…… 엄마의 집념이야.”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피를 토하듯 비통한 울림이었다.“엄마의 한이 장미를 살려 두는 거야. ……누군가의 ‘사랑’ 따위가 아니라고. 그런 달콤한 이야기로 내 상처를 멋대로 해석하지 마.”“민준 씨……”“&민준은 내 턱에서 손을 떼고 괴로운 듯 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누구야. 누가 너한테 이걸 가르쳐 줬어.” 그의 시선이 방 안을 헤맸다. 그러다 한곳에 멈췄다. 조용히 홍차를 마시고 있는 혜진 어머님에게.“……설마.” 민준의 목소리가 얼어붙은 듯 낮아졌다.“……어머님입니까?” 혜진 어머님은 천천히 잔을 받침 위에 내려놓았다. 그 동작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무슨 이야기일까?”“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이 맛을 아는 건 엄마와 저…… 그리고 그때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이거나, 아니면…….” 민준은 어머님을 응시했다. 증오가 아니었다. ‘믿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과 두려움이었다.“……엄마 흉내를 내면서 제 비위를 맞추려던 ‘그 여자’뿐입니다.” 어머님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차가운 눈으로 민준을 마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피해망상이 지나치구나. 내가 널 위해 요리 같은 걸 할 리가 있니? ……더구나 서영 언니의 요리 맛은 진작에 잊었단다.” 거짓말이다. 그토록 소중히,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노트를 간직했으면서. 어머님은 스스로 악역을 맡아 나를 감싸 주고 있었다.“……그렇겠죠. 당신 같은 사람이 만들 수 있을 리 없죠.” 민준은 힘없이 중얼거리고
“……읏.” 민준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 그 눈에서 흘러넘친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와 식탁보를 적셨다.“민준 씨!”“왜 그러니, 민준아.” 정숙 할머님이 놀라 몸을 앞으로 내미셨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우리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저 떨리는 어깨를 감싸듯 몸을 움츠린 채, 새어 나오려는 오열을 필사적으로 삼켰다.“……말도 안 돼.”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어떻게…… 이 맛이…….” 그가 봉인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었다. 다정했던 엄마. 축축한 흙냄새가 나는 온실에서 진흙투성이가 되어 함께 웃던 날들. 그리고 생일마다 꼭 만들어 주셨던 이 특별한 오므라이스.“……엄마가 해 주던 맛이야.” 민준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보았다. 그 눈은 젖어 있었고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핫초 미소의…… 깊은 맛과 쌉싸래함. ……달걀에 넣은 마요네즈의 새콤한 맛. ……틀림없어. 엄마가 해 주시던 바로 그 맛이야.” 성공했다. 혜진 어머님의 레시피는 완벽했다. 이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넘어, 민준의 기억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행복의 맛’을 조금도 다르지 않게 되살린 것이다.“……맛있어…….”
마침내 운명의 토요일이 왔다.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렸다. 민준의 기분은 날씨보다 더 나빴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커피만 마신 뒤,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한곳을 바라보았다.“……오늘만 끝나면 다시 일 년은 살아남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죄를 갚는 날. 그에게는 여전히 그런 날이었다. 오후 다섯 시. 초인종이 울렸다. 무미건조한 전자음이 처형의 신호처럼 들렸다.“……왔나.” 민준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향했다. 나도 서둘러 앞치마를 벗고 차림을 정돈한 뒤 따라갔다. 문이 열리자 상복 같은 검은 한복을 입은 정숙 할머님과 옅은 회색 정장 차림의 혜진 어머님이 서 있었다. 축하 꽃다발도, 선물도 없었다. 그저 조용하고 무거운 공기를 두르고 있었다.“……축하한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할머님이 첫마디로 말했다.“다만 올해도 무사히 이날을 맞았다는 것…… 그것만 확인하러 왔다.”“……감사합니다, 할머님.” 민준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머님은 민준의 얼굴도 보려 하지 않고 담담하게 인사했다.“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들어오세요.” 상가 같은 분위기 그대로 두 사람을 거실로 안내했다. 넓은 테이블에 앉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주방으로 피했다. 여기부터 내 싸움이다. 냉장고에서 미리 만
“……생일까지 한 발도 밖에 못 나가.” 차가운 통보였다.“일도, 살롱 연락도 금지야. ……내가 허락할 때까지 외부 접촉은 전부 끊어.”“민준 씨, 그건……!”“네가 그렇게 만들었어. ……나를 속이고 GPS를 두고 사라졌잖아. 대가라고 생각해.” 초고층 레지던스 최상층. 그곳은 다정함과 두려움이 뒤엉킨, 도망칠 곳 없는 우리가 되었다. 나는 그의 시야 안에서만 살도록 허락받은 죄수였다. 하지만 목적이 있었다. 가방 밑에 숨긴 어머님의 공책. 이것만은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고요한 새벽 두 시. 옆에서 자는 민준의 숨이 깊고 일정해진 걸 확인하고 조심스레 침대에서 나왔다. 팔을 푸는 데는 폭탄 해체 같은 신중함이 필요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반사적으로 안아 왔다. 나 대신 긴 베개를 안겨 주고 소리 없이 침실을 나섰다. 넓은 거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주방으로 향했다. 손에는 공책 사본과, 낮에 온라인 마트로 주문해 무인 택배함에서 몰래 가져온 재료가 있었다. 원본은 가방 깊숙이 숨겨 두었다.“……좋아.” 환풍기를 가장 세게 틀고 작업등만 켠 채 요리를 시작했다. 데미글라스 소스 만들기. 가장 어려운 관문이었다. 시판 통조림을 쓰는 게 아니었다. 양파를 캐러멜색이 될 때까지 볶고 소 힘줄과 향채를 끓여 레드와인으로 농도를 맞춘다. 마지막에는 ‘핫초 미소’를 더한다.‘……냄새가 문제야.’ 버터
‘……생일?’“응. ……깜짝 선물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위치를 알리고 싶지 않아서…… 미안해.” 궁색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이것밖에는 없었다. 어머님께 받은 공책을 끝까지 감추려면 이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어야 했다.“바로 돌아갈게. ……제발 믿어 줘.” 전화 너머에 긴 침묵이 흘렀다. 아프게 뛰는 내 심장 소리만 들렸다.‘……기다릴게.’ 짧게 말하고 전화가 끊겼다. 뚝, 짧은 신호음만 귀에 남았다.“……서둘러야 해.” 떨리는 손으로 폰을 가방에 넣고 거리로 뛰어나가 택시를 잡았다. 가방 밑에는 어머님이 맡긴 공책이 있었다. 이것만은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그냥 레시피 공책이 아니라 민준과 어머니를 이어 주는 마지막 희망이니까. 차창 밖 풍경을 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눌렀다.‘제발, 민준 씨. ……나를 믿어 줘.’ 살롱 앞에 도착하니 이상한 공기가 감돌았다. 검은 고급 승용차가 위압적으로 길가에 서 있었다. 창 너머로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늘 저 간판만 보면 일할 준비가 됐는데, 오늘은 살롱까지의 짧은 거리도 멀게 느껴졌다. 무릎 위 가방의 모서리가 꽉 쥔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그 옆에는 민준이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비범한 외모와 얼어붙는 기운에 눌려 멀찍이 돌아갔다.“……민준 씨.” 택시에서 내려 달려가자 그가
“네. ……민준 씨가 GPS 앱을 깔아 놨어요.”“어머. ……그 아이답네요.” 어머님은 기막히면서도 어딘가 그리워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어릴 때부터 소유욕이 강했지요. ……아끼는 장난감 숨긴 곳을 아무에게도 안 알려 주던 아이였어요.” 장난감. 지금의 나는 그에게 유일한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장난감’일까. 아니면 없어서는 안 될 생명줄일까.“그럼…… 레시피는요?”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어머님이 가방에서 낡은 공책 한 권을 꺼냈다. 그날 온실에서 본 것과 같은 색바랜 원예 일지……는 아니었다. 더 얇은 요리 공책이었다.“이거예요.” 내민 공책을 받았다. 표지에는 ‘Minjun's Favorite’라고 유려한 필기체가 적혀 있었다. 이서영의 글씨일까. 혜진 어머님의 글씨일까. 장을 넘기자 손으로 쓴 레시피가 빽빽했다.‘함박스테이크(양파는 캐러멜색이 될 때까지)’‘옥수수 수프(체에 두 번 거를 것)’‘푸딩(캐러멜은 쌉쌀하게)’ 시간과 사랑이 듬뿍 들어간 요리뿐이었다. 그 안에 있었다.‘특제 데미글라스 오므라이스’“……이거군요.”“네. ……생일이면 꼭 만들어 달라고 하던 메뉴예요.” 어머님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핵심은 데미글라스 소